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프린지 4기와 더불어서 보고 있는 멘탈리스트입니다. 


-대 수사물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드 분야에서 수사물이 흥하고 있는데요, 거의 대부분이 CSI 짝퉁 또는 쓸데없이 수위가 높은데 반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작품들은 그들과 다르게 나름대로의 컨셉을 확실히 잡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몽크는 결벽증 환자의 개그가 볼만한 작품이며, 본즈 같은 경우에는 그냥 토막난 시체가 나오는 로멘틱 코미디고, 크리미널 마인드는 다른 수사물들과 다른 템포로 흥하고 있으며, 프린지의 경우 수사물은 개뿔 그냥 떡밥물 ㅇㅇ 로 밀고 있으니까요. 멘탈리스트도 컨셉을 잘 잡은 수사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려 사기 수사극(...)이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밀고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잘 나가던 영매였던 주인공 패트릭 제인이 토크쇼에서 연쇄살인마를 도발했다가 가족을 잃고, 레드 존을 잡기 위해서 CBI(켈리포니아 수사국)에 사건 자문을 해주게 됩니다. 수사 자문을 하면서 이런저런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 주요 내용. 보통 수사극이 '사건이 일어남->증거가 나옴->증거를 확대한다->증거를 더더욱 확대한다->???->범인을 검거한다.' 라는 뻔한 패턴을 보여주는데 반해서 멘탈리스트는 극중 특이한 상황을 하나 던져놓고, 주인공 제인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이리저리 굴리는(쉽게 이야기하면 사기극) 그런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줍니다. 미세한 부분에서 단서를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점은 몽크와 유사한데, 몽크와 다르게 패트릭 제인이라는 케릭터 자체가 다른 인물들 머리 위에서 내려다 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케릭터 이기 때문에 상당히 독특한 상황이 많이 연출됩니다.


가령 누군가 제인을 속이려하고, 제인이 그 속임수에 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건 제인이 진짜 속아넘어간게 아니라, 그 인물의 뒤통수를 후려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전'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제인이 계속 이런식으로 범인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뒤통수를 후려치는 전개를 항상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최소한의 개연성(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상식선에서의 이유들)을 보장하고 있는데, 덕분에 덜 억지스럽습니다. 게다가 패트릭 제인이라는 케릭터의 매력 덕분에 사건 사이의 약한 인과 관계의 연결고리도 비교적 말이 된다는 느낌을 받구요.


-패트릭 제인이라는 케릭터는 근래 미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케릭터인데, 농담이 아니라 각본가의 입장에서 전체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패트릭 제인 역을 맡은 사이먼 베이커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 덕분에 온갖 상황에서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능청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결과와 상황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케릭터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신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케릭터이나, 자신의 능력을 믿고 만용을 부리다 자신의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가 있다는 점, 자신의 복수에 대해서는 대단히 사적이고 인간적으로 변한다는 점이 바로 패트릭 제인이라는 케릭터가 가지는 핵심 포인트죠. 이러한 모순된 케릭터성 덕분에 패트릭 제인이라는 케릭터가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전지전능함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주인공인 패트릭 제인의 전지전능한 능력 덕분에 그의 적수라 할 수 있는 레드 존의 케릭터성이 이상해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패트릭 제인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데 능란하다면, 그의 적수인 레드 존 역시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 봐도 무방하죠. 문제는, 패트릭 제인의 능력이 워낙이 뛰어나다 보니 레드 존이 제인한테 잡히지 않으려면 제인보다 몇 수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레드 존이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코스믹 호러물을 보는거 같아요. 드디어 레드 존의 덜미를 잡으려 하면, 레드 존은 아주 여유롭게 제인의 손아귀를 빠져나오고 제인의 신경을 박박 긁습니다. 게다가 사람 정신을 붕괴시켜서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믿게 한다던가, 주 정부 컴퓨터를 해킹해서 제인을 감시한다던가, 아무 흔적도 없이 멕시코로 도망간 배신자를 살인한다던가, 멀쩡한 사람을 연쇄 살인마로 만드는 등 이쯤 되면 초자연적 존재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 모든게 자기 능력을 믿고 깝치던 제인을 계도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레드 존이라는 탈을 쓰고 내려오셔서 친히 제인을 단죄하신 거였다 라고 해도 저는 믿겠습니다(.....)


-드라마의 완성도는 특이하게 1기에 비해 2기나 3기로 갈수록 좋아지는 편. 1기는 '심령술사이기를 그만둔 심령술사로 무슨 이야기를 만들까? 아 그래, 심령술 비스무리한 소재를 쓰면 되겠구나' 이런 느낌이었다면, 2기 이후로는 '전지적 제인 시점에서 보는 사기 수사극'이라는 컨셉이 확립이 된 듯 합니다. 물론 레드존이 나오면 갑자기 코스믹 호러물이 되는 건 참 미묘하지만 말이죠.


-요즘 애니보다 미드가 끌리는게, 역시 케릭터라는 측면에서는 애니보다는 미드가 훨씬 나은거 같습니다. 일본 애니의 케릭터와 미드의 케릭터를 비교하는 것도 나름 방법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