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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극장판 공각기동대는 세계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붐을 일으키는데 큰 영향을 준 작품입니다. 공각기동대는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고 인간이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게 되었을 때 과연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철학적인 주제와 독특한 설정으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죠.

공각기동대:Stand Alone Complex(이하 SAC)는 그러한 극장판 공각기동대의 설정과 케릭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TVA입니다. 일면 원작의 명성을 등에 업고 인기를 벌어보려는 수작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화 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준 극장판과 달리 TVA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와 정치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TVA는 원작의 명성에 전혀 모자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 SF 작품이 Science Fantasy 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과학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인간의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주된 경향이죠. 하지만 공각기동대는 SF, 즉 Science Fiction 이라는 장르에 충실합니다. 과학을 통해 세계와 사회, 개인은 어떻게 바뀌는가, 거기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를 충분히 잘 보여줍니다. 특히 SAC는 현대 사회문제(정확히는 일본의 사회 문제)를 SF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통의 SF 장르 작품이 보여주지 못하는 경지에 도달합니다.

SAC의 전반적인 주재는 Stand Alone Complex입니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과거의 농경 및 유목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한 연대나 유대의 끈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자유로워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인간들은 역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주었던 집단이나 사상, 종교로부터 해방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로 파편화되고 고립됩니다. 이런 고립된 상황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대입할만한 대상을 찾고 방황합니다. 그리고 SAC에서처럼 웃는 남자나 개별 11인 같은 영웅이나 행동의 모범이 될 만한 대상을 찾아내면 그러한 대상에 자신을 대입하고 모방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의 동 목적적인 행위의 발생, 즉 Stand Alone Complex라는 겁니다.

SAC는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이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홀로서기의 작업(Stand Alone)입니다. 이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한 현대인들에게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대인들은 일련의 SAC 현상에서 자신이 취하고 싶은 이미지만을 취한다는 겁니다. ‘웃는 남자’ 사건에서는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현대사회의 영웅의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개별 11인’ 같은 경우에는 아예 대중이 원하는 모습의 영웅을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려는 악역이 등장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왜 작품 내의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SAC와 같은 현상에 말려드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는 현대인들이 이미지 생산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이미지를 소비하는 객체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이미지를 생산하지 못하고 원본을 모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러한 원본의 모방자들에 반해,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공안 9과는 SAC 현상의 숨겨진 진실을 바라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 난 것인가? 이 사건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인가? 그들은 SAC 현상의 본질까지 파고들고, 자신들이 일하는 정부 내부의 위협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목숨과 명예를 버리면서 까지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그렇기에 작품에서 그들은 숨은 영웅입니다.





카마미야 감독은 공안 9과의 모습을 통해서 현대사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미지를 단순히 소비하지 말고 이미지 너머의 본질을 보라, 자신의 정의를 묵묵히 수행하라, 조직에 굴복하지 말고 소신을 지켜라 등등... 그들은 그들 자신이 바로 고유한 원본이며 독특한 존재입니다. 즉, 작품을 통해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의 객체가 아닌 주체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소신을 가지고 스스로 주체로 거듭나라 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스스로도 그러한 주체적인 인간은 현대 사회라는 시스템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1기에서 공안 9과를 파괴하면서까지 전뇌 경화 백신에 대한 비리를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9과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 2기에서는 조국에 핵이 떨어지는 상황을 막아냈지만 본질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등은 결과적으로 공안 9과의 존재가 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인정될 수 없는 존재라고 감독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정부 조직과 일반 대중들, 난민, 해커, 마피아 등등 그 어느 곳에도 속해있을 수 없는 영원한 사회와 조직의 아웃사이더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3기 극장판에서 주인공은 스스로 조직의 한계를 절감하고 조직을 나와서 독자적으로 행동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마지막에 가서는 주인공 스스로가 개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조직으로 복귀하는 듯한 암시를 줍니다. 즉 공안 9과, 혹은 주체적 개인들은 조직의 일부가 될 수 없지만, 자신들의 이상을 위해서 조직을 떠날 수도 없는 그러한 딜레마의 빠져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Endless Gig(끝나지 않는 연주, Gig이 연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입니다. 현대사회라는 시스템의 결함이 만들어낸 SAC 현상,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 정확히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정의를 수행하는 사람들, 하지만 주체적인 개인은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스템은 다시 SAC 현상을 만들어내고... 현대사회란 결국 이러한 돌고 도는 순환 고리 안에 갇혀있다는 것이 감독의 주장입니다.

작품은 이러한 일련의 주제 의식들을 추상적인 스토리가 아닌 구체적인 사회 현상이나 상징적인 상황을 통해 풀어냅니다. 덕분에 작품은 추상적인 스토리에 갇혀 해매지 않고 주제의식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달하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공안 9과라는 특수한 조직이 처한 독특한 정치적 상황과 조직 사이의 긴장을 통해서 스토리의 긴장감과 템포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는데도 성공합니다. 여기에 사이보그나 전뇌, 네트 등의 SF 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구요.





결론적으로,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는 재미와 주제의식을 둘 다 성공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약간의 흠이 있다면 2기의 국제 역학관계라던가 정치적인 설정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위를 심히 거슬리게 할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도 나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고 있으니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빼고 본다면 SAC는 대단히 훌륭한 작품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감상하시라고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