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념의 잠드'에 해당되는 글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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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전편 읽으러가기)는 죽은 자와 산 자의 화해, 그리고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그 사이의 희망에 대하여 다루었다면, 작품의 후반은 이렇게 삶을 부정하는 루아콘 교의 가르침과 삶을 긍정하는 나키아미의 가르침으로 나누어져서 대립하는 것이 주요 이야기다.





4.대립-나키아미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핍박받는 민족인 테시크 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히루코를 인도하는(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히루코를 시체에서 추출하는) 루아콘 교의 무녀로 선발되었다. 어느날 그녀는 시체 더미 속에서 한 소녀를 구하게 되고, 루아콘 교의 무녀의 의무를 포기하고 산노바의 곁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과 세상들과 만난다. 한 때 그녀의 이름은 '구름을 베는 자'였지만, 이제 그녀의 이름은 '나키아미'이다.

망념의 잠드라는 작품에서 나키아미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잠드들(라이교와 아키유키, 얀고)의 어머니이며, 아키유키와 더불어서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 내의 중요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루아콘 교의 무녀일 때 배운 지식을 토대로 잠드들에게 가르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공존과 화해를 가르친다.

전번 리뷰에서 다루었듯이, 잠드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있는 중간자적인 존재다. 일단 잠드라는 존재는 작품 내에 등장하는 루아콘 교적인 개념인데, 특이한 점은 잠드에 대한 나키아미의 가르침과 루아콘 교의 가르침이 서로 상반된다는 것이다. 루아콘 교 역시 잠드를 죽은 자와 산 자의 중재자로 본다. 하지만, 루아콘 교는 살아있는 것과 그 현제의 세계 그 자체를 고통이라 보고 이를 죽음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잠드는 산 자를 죽음이라는 영원한 평화로 인도하는 구원자인 것이다.

루아콘 교라는 종교 자체는 불교, 티벳 불교, 이슬람 교, 기독교 등등을 복합적으로 혼합한 종교이다. 루아콘 교의 교리 자체는 '일체는 고통(苦)이다'라는 불교적인 사고방식과 이슬람교의 성지 순례 개념, 기독교의 중보자적인 존재 잠드,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종교적 지도자 '황제'까지 다양한 종교 개념이 혼재되어있다. 이러한 루아콘 교의 교리는 인류 종교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루아콘 교는 인간이 현세적인 고통을 구원받기 위해서 만들어낸 극단적인 종교 개념이다. 즉, 인간은 극단적인 삶의 부정, 즉 죽음으로서 구원하고 새로운 삶은 창출하겠다는 것이다.(물론 현실 종교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유의하시길)

그런 루아콘 교를 표상하는 것이 '황제'라는 개념이다. '황제'는 죽은 자에게 히루코를 심어서 만들어진 잠드이다. 그리고 대순례의 때, 황제가 깨어나 태동굴에 있는 순례자들(요호로기)을 삶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좋은 말로 하면 이렇지, 하루의 표현을 빌리자면 때죽음이다), 다시 한번 삶을 만들어내는 대순환을 일으킨다.




하지만, 나키아미는 루아콘 교의 가르침에 반대로 가르친다. 살고 싶다면, 소원하라. 자신을 잃지 마라. 그녀가 가르치는 것은 명백히 루아콘 교의 '황제(잠드)'와는 다르다. 그녀는 죽은 자들의 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삶의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을 토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으면서 동시에 그 둘을 아우르는 존재인 잠드를 잉태한다.

나키아미는 자신의 여동생인 쿠지레이카와 한 때 자신을 이끌어 주었던 산노바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 끝에 쿠지레이카를 만났지만, 테시크 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잠드가 된 쿠지레이카를 본 나키아미는 더 이상 자신이 고향에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타는 고향을 뒤로한 그녀는 산노바를 만나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태동굴로 향한다. 동시에, 하루와 아키유키도 잠드가 모이는 태동굴로 향하고, 이슈와 라이교는 금강탑을 둘러싼 일전에서 승리하여 히루켄 황제를 쓰러뜨리는 듯 하지만, 오히려 황제를 깨우게 된다. 그리고 히루켄 황제가 깨어나면서, 이야기는 대단원으로 흐른다.




5.화해-대단원,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영웅들의 이야기는 막바지로 흘러 죽은 자와 산 자, 삶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극단적인 세계가 화해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인물은 바로 히루켄 황제다. 히루켄 황제는 누구인가? 그는 그 누구도 아니다(Nobody). 그는 죽은 아이며, 이름도 자아도 없는 존재다. 그는 대순례의 때, 태동굴에 모인 순례자들의 영혼을 삼켜 세계를 정화하고 세계를 유지한다(루아콘 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한 막중한 의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외로워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작품 내에서 황제는 삶에 대한 고통과 공허감, 일체의 삶의 부정적 모습을 환기시키는 존재다.

대순례의 의무에 얽메여, 누구인지도 모르는 히루코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그(혹은 그들? 아니면 모든 죽은 자들?)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자신의 존재의 소멸, 죽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제에게는 '대적자'가 필요하다. 자신과 대칭되는 존재. 황제는 아키유키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가 그의 '의무'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자아를 잃었을 때) 도움을 준다.

황제는 금강탑에서 풀려나(아이러니 하게도 이슈가 황제를 죽이기 위해 설치한 폭탄에 의해)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고, 태동굴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선택한 대적자 아키유키와 대결한다. 이 대결은 상징적인 싸움, 삶의 희망과 절망의 대리전이다. 아키유키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은 대단히 작다. 그러나 황제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부정, 고통은 엄청나게 크다. 아키유키와 황제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며, 거대한 슬픔과 작은 희망의 싸움이다.




나키아미는 산노바와 만난다. 거기서 그녀는 산노바에게 자신이 산노바를 떠나서 깨달은 것들ㅡ작은 희망과 삶에 대한 긍정ㅡ을 이야기 한다. 그녀의 삶에 대한 긍정은 대단히 지독한 긍정이다. 핍박받는 민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수많은 비극을 봐온 그녀가 산노바 앞에서 세상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노바는 나키아미의 의지와 소망을 받아들여, 나키아미가 천년 동안 태동굴을 봉인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키아미는 태동굴에 모인 수많은 히루코들을 정화하고 태동굴을 자신과 같이 봉인하면서 천년 동안의 긴 잠을 자게 된다.




나키아미가 태동굴을 봉인할 무렵, 아키유키와 히루켄 황제의 싸움도 막바지에 다다른다. 황제는 아키유키와의 싸움에서 스스로 사라지길 원했지만, 아키유키는 히루켄 황제에게 자신의 소중한 '이름'을 준다. 희망과 절망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승리하는 것이 아닌, 희망이 절망을 감싸 안으면서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의미('아키유키'라는 소중한 이름)를 부여한다. 결국 황제는 아키유키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아키유키는 다시 한번 자아를 잃고 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어둠은 물러가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게 된다.




6.귀환-Life Goes On.


그리고 영웅은 다시 한번 자신이 구했던 일상으로 귀환한다.




나키아미와 아키유키의 모험은 세상을 구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가? 아니다. 그들의 모험은 세계를 일시적으로 구했을 뿐, 세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남과 북은 그 이후 휴전을 했지만, 여전히 언제라도 다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본질적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언제라도 문제는 다시 생겨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모험은 무의미한 헛수고였을까? 아니다. 이들은 모험을 통해 그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희망'을 찾아냈다. 나키아미가 천년 동안 자신과 함께 태동굴의 히루코를 정화하고, 태동굴을 닫은 것도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소망, 그 소망이 있으면 언제든지 세상이 나아질 희망과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그리고 아키유키는 다시 한번 일상으로 귀환한다. 자신의 이름을 계속 불러주고,
계속해서 마음을 전해주려고 했던 소중한 사람, 하루에게로.



※후기


4개월이었다. 리뷰 하나 완성시키는데 걸린 시간이 4개월이었다. 사실, 리뷰 자체를 포기할 뻔도 했었다. 리뷰를 중간까지 썼다가 뒤엎기도 했었다. 사실 4개월만에 리뷰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쁘다기 보다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실상, 작품의 핵심만을 짚어서 리뷰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작품 속에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향시편 에우레카 7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적어도 10년 안에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본즈는 그러한 나의 전망을 비웃듯이 약 3년만에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방영 당시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26화 하나 하나가 모두 몇 년간 공을 들인 극장판처럼 느껴졌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사실, 4~5개월 정도를 질질 끈 리뷰를 완성하고 나니까, 뭔가 시원 섭섭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드디어 끝냈으니까, 다른 리뷰를 쓰러 갈 수 있겠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자신을 보면서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끝까지 봐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글 솜씨가 좀 괜찮은 사람이라면 더 축약적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글 솜씨가 후달리는 관계로 글이 장황하게 길어진 점을 좀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 올리며, 부족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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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들어가면서

애니 감상은 이미 5개월 전에 끝이난 작품이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도 많았고, 도대체 어떤 틀에 기초해서 리뷰를 써야 할지 막막했었다. 처음 글을 요한 갈퉁의 평화 이론에 근거해서 전개하려고 했으나, 거의 반 논문처럼 변해버린 리뷰를 보고는 기겁해서 중도하차(.....)하였다. 여러 가지 분석틀이나 글 구조를 생각했었지만, 결국은 조셉 켐벨의 영웅 신화 구조를 통해서 분석하기로 결정했다.

1.세계로의 입문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세계 정세나 전략적인 측면에서 아무 의미도 가지지 않는 조그마한 섬에서 태어나 자라고, 친구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등의 평범한 삶은 살았다. 항상 타고 다니던 통학 버스에서 자살 테러가 일어난 그 날까지는.

망념의 잠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여타 다른 애니메이션과 같이 갑작스런 사건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서 주인공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은 그 성격이 각기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모험의 길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세계를 구원하는 길이고, 혹은 복수의 길이다. 각자는 자신만의 사명을 띄고 원래 속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세계, 비일상적이고 비정상적인 세계로 나선다.

망념의 잠드가 다른 작품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아키유키가 일상을 떠나 당도한 세계는 보통 사람들이 잊어버린 공간이다. 전쟁과 차별, 증오, 죽음, 테러 등의 비극적인 사건이 넘쳐나는 세계, 그러나 그것은 세계의 일부이자 세계의 추한 면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러한 타인의 고통과 비극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심지어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소비재'로써 소비한다. 수잔 손텍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미지 과잉의 세계에서는 타인의 고통은 스펙터클로 변해버린다고.

망념의 잠드의 세계 또한 그렇다. 세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싸우고, 폭력과 차별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통학버스에서 일어난 자폭테러는 아키유키에게 일상적인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통해 아키유키의 몸에 죽은 자의 혼인 히루코가 깃들고, 그는 잠드, 일상적인 세계와 어두운 세계의 양쪽을 동시에 아우르는 존재로 화한다.

그가 처음 잠드로 화했을 때, 그는 무의식 중에 자신을 공격하는 인형과 전투를 벌이고 폭주하여 돌로 변해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 때, 나키아미가 아키유키에게 외친다.




살고 싶다면, 그렇게 맹세하라!

이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는 돌이 되어 죽어가는 아키유키에게 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어서 원혼이 된 히루코에게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잠드란 존재 자체가 죽음과 삶의 양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키유키는 소망한다. 살고 싶다고.

나키아미는 아키유키를 데리고 센탄도를 떠난다. 이는 아키유키에게 있어서 기나긴 모험의 시작이었다.

2.소명의 인식

처음 잔바니 호에 승선한 아키유키는 자신이 왜 일상을 떠나야 하는지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반항한다. 이는 영웅의 모험에 있어서 자신의 소명을 거부하는 단계인 것이다. 물론 영웅은 결과적으로 소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나, 아키유키가 소명을 거부하는 경우는 좀 특이하다. 아키유키는 위대한 영웅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아닌 평범한 학생이었고, 그의 생각에는 자신과 무관한 폭탄테러에 휘말린 다음 영문도 모른체 이역만리 우편선에 끌려와서 이상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왼팔에 깃든 존재, 히루코와의 공존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명을 알아간다.

아키유키가 받아들인 히루코는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원혼이다. 산 사람에게 히루코가 깃들게 되면, 인간은 죽은 자의 원념에 휩싸이고 잠드-다른 말로는 人形(히토카타)-로 화한다. 그렇기에 잠드란 존재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 서있는 중재자이다. 자신의 팔에 깃든 히루코 존자 자체를 받아들이고 잠드는 히루코와 공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히루코에서 나오는 원념 및 부정적인 감정만을 받아들인다면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먹혀서 살아있는 자신을 잊고 돌이 되어 죽을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과 히루코, 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잠드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키유키의 팔에 깃든 원념이 누구인지는 작중에서 분명히 밝혀지지는 않기 때문에, 오히려 아키유키의 팔에 깃든 히루코는 전쟁에서 죽은 일반적인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즉, 아키유키가 잔바니 호에서 히루코와 자신 사이의 공존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일반적인 세계 및 산 사람과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나 전쟁의 비극 사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조정하는가의 문제이다.

잔바니호 승선 초기에 아키유키는 '자신이 왜 여기있는가?' 에 대해서 반항한다. 이는 영웅에 있어서 소명의 거부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깃든 다른 존재 혹은 세상에 만연한 비극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아키유키만의 이기심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이다. 왜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의 고통을 이해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나 하나, 가족 챙겨서 살기도 바쁜 인간이라고.

하지만 비극은 외면할 수 없고, 설령 외면한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인간은 그러한 비극을 화해할 수 밖에 없다. 아키유키가 잔바니 호에서 배운 것은 보통의 세계에서 부정당한 존재들과의 화해였다. 그리고 아키유키는 자신에게 깃든 또다른 존재를 긍정하면서 새로운 존재, 잠드로 화한다. 그리고 그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하나의 기적이자 희망ㅡ망자와 산 자를 아우르고, 이들을 중재하여 세계를 평화로 이끈다ㅡ이 된다.

3.귀환의 실패와 위기

아키유키가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히루코와의 조화를 이루어내었을 때, 그는 나키아미와 함께 자신의 고향 센탄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깨달음을 얻은 영웅이 자신이 떠나온 일상적 세계와 조우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귀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고향에서 마주친 것은 일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부정적 기운과 존재ㅡ후루이치의 잠드화ㅡ였다. 그는 친구와의 대면 이후, 나키아미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된다. 그리고 그는 군의 ASP에 요격당해서 살아있는 자신과 기억을 잃는다.

영웅의 귀환 단계에서 영웅이 귀환을 거부하거나 귀환의 과정에서 외부적인 시련이 흔히 존재한다. 하지만, 아키유키가 겪은 경우는 독특하다 할 수 있다. 이는 귀환의 거부나 외부의 시련에서 오는 갈등이 아닌, 자신이 깨달음을 전파하려는 일상적 세계 자체로부터 거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아키유키에게 그 어떤 시련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이로 인해 아키유키는 잠드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자아를 잃는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절망 속에 빠진 아키유키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아키유키의 친구, 니시무라 하루이다. 그녀는 아키유키가 센탄도를 떠난 뒤에도 계속 그와 소통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이 그에게 닿기를 기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루는 아키유키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아키유키를 만나기 위해서 군에 입대하기도 한다.




하루가 아키유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가 도달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은 단순히 아키유키에 대한 연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다른 존재와 간절하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하루의 소망은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폭력이 만연하며,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세계에서 아키유키와는 다른 또 하나의 작은 희망이다.

그러한 그녀의 소망은 그녀에게 세계의 이면을 보여준다. 아키유키의 목소리, 잠드나 인형의 감정들, 그리고 모든 비극의 상징이자 북쪽을 대표하는 히루켄 황제까지. 이렇게 그녀는 다른 인물들 보다 세계의 비극이나 문제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판단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는 정상의 세계에서 비정상으로 몰리고,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탈출한 그녀는 다양한 조력자와 북쪽으로의 모험을 통해서 아키유키에게 도달한다. 아키유키가 자아를 잊고 추락하는 도중, 하루는 아키유키의 이름을 힘껏 부르고, 아키유키는 다시 자아를 되찾는다. 하루의 소망이 아키유키를 다시 한번 구원한 것이다.


나머지 부분을 下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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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かえり, アキユキ
어서와, 아키유키

ただいま
다녀왔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때까지,
사람은 살아간다.

여태까지 망념의 잠드를 제작한 본즈 및 자막 제작자이신 크로미트님에게
감사 말씀 올립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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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일본 애니계에 아카데미 상이 있다면 

2009 대상-망념의 잠드
2009 감독상-망념의 잠드
2009 각본상-망념의 잠드
2009 주연성우상-망념의 잠드
2009 조연성우상-망념의 잠드
2009 케릭터상-망념의 잠드
2009 작화상-망념의 잠드
2009 전투 장면 연출상-망념의 잠드
2009 음악상-망념의 잠드
2009 오프닝 & 엔딩 상-망념의 잠드
2009 평생공로상-망념의 잠드의 제작진 및 본즈 & SCE 및 PS3와 블루레이 개발진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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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메카닉 디자인 상-라이드 백(????)


이렇게 줘야합니다. 올해 4월 신작 10월 신작 나오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1년, 아니 5년 내(솔직한 심정으로는 10년 내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심하니까;)에 이런 테마로 이 애니를 능가 할 수 있는 작품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솔직히, 본즈가 작심하고 이걸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는한 과연 더 뛰어난 작품이 나올수 있는지 부터가 의심됩니다. 예전에 에우레카 7을 다 보고 난 뒤에 '이런 테마와 분위기의 작품이 일본 애니에서 다시 한번 나올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망념의 잠드는 그러한 의문을 비웃듯이 훌륭히 전작인 에우레카 7을 극복해냈습니다.

사실 초반에는 에우레카 7의 대척점에 있는 듯한 분위기로 에우레카 7의 거울속 쌍둥이 같다라고 생각을 하였지만, 점점 뒤로 가면 갈수록 자신의 세계나 표현법을 구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지금 거기 있는 나'와 비교하고 싶은데, '지금 거기 있는 나'를 세련되게 바꾸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더군요.

아직 한화가 남아있으나, 거의 후일담적인 성격이 강한 내용이고 실질적인 이야기는 이번화에서 끝났습니다. 깔끔하게 여태까지 나온 모든 떡밥 처리에 성공. 이제 남은건 후일담에 얼마나 터뜨려주느냐의 문제.

그리고 罪惡業 예고 입니다. 罪惡業 5부는 스트레인져:무황인담, 罪惡業 6부는 망념의 잠드(26화 감상 후에), 罪惡業 7부는 블랙라군 순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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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좌인 너를 여기서 죽인다. 이제부터 너는 그저 카키스 토우지로일 뿐이다."

-망념의 잠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케릭터 중 하나인 카키스 중좌가 22화에서 타케하라 류조 선생의 총에 맞고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끝까지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갱생의 여지를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결국은 자신이 행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이런 식의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군요. 사실 중간에 밥맛 떨어지는 짓도 많이 했지만, 그러면서 여러가지 의미로 씁쓸한 느낌을 준 케릭터입니다.

사실 카키스의 매력(?)은 바로 완벽하게 악이 되지 못하는 그 어중간함에 있겠죠. 처음 센탄도에 왔을 때는 순수하게 어머니(스마코)의 고향인 섬을 지키고 대 인형병기 연구(이때는 그 정체를 몰랐음)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대 인형 병기라는 것이 결국 인간을 쓴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러한 연구를 진행하는 칸바 박사의 꼬드김에 분개하지만, 결국 칸바 박사와 함께 사람을 실험체로 이용한 대 인형 병기 연구에 착수합니다. 즉, 죄인이 되어서 전쟁을 종결하자는 것입니다. 그 이후, 칸바 박사와 함께 미도리를 이용해서 대 인형 병기를 완성합니다(그 와중에 칸바 박사가 딴 생각을 먹으니까, 칸바 박사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인종 차별 발언까지 해주는 강한 모습까지 보여주죠) 혹자는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개츠비형 케릭터(처음에는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타락하게 되는 케릭터 유형)이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딱 들어맞는 설명이더군요.

 하지만 원래 인간이 그렇게 나쁜 인간이 되지 못했고 워낙이 어설픈 악당이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전장에서 살려내었던 타케하라 류조에게 자신을 죽이게 하려는 의도적인 자살을 꾀합니다. 이 부분에서 이 케릭터에 대한 묘한 동정심이 일었는데, 결국 자신이 이루던 바를 이루었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서 어린 아이처럼 해매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칭점에 있는 에우레카 7에서의 악역 듀이는 애니 끝까지 완벽하게 자신이 모든 계획을 리드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여주었지만(그래도 마지막에는 정말 씁쓸한 최후였지만), 그에 비해 카키스는 대단히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준 케릭터입니다. 앞으로 잊지 못할 악역 케릭터 중 하나가 되겠군요.

벌써부터 그의 헛소리들이 그리워지는군요(망념의 잠드에서 카키스가 가장 많이 현학적인 대사를 내뱉었습니다)

-22화에서는 결국 '남쪽이나 북쪽이나 미쳤다->세상의 근본 구조 자체가 미쳤다'로 나가는 망념의 잠드입니다. 과거 에우레카 7이 대단히 희망적인 이야기ㅡ'러브&피스!'를 외치는 히피 테러리스트들과 한 소년의 성장담과 첫사랑ㅡ를 그려내었다고 할 수 있다면, 망념의 잠드는 철저히 '미친 세상에서 어디에도 없어 보이는 희망 찾기'라는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인상깊은 점이, 그러한 완벽한 절망 속에서 묘하게 현실적인 희망이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죠. 이제 곧 26화이고 이제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었습니다만(마지막 일전은 태동굴에서 이루어 질 것 같군요), 다 보고 나서 여운은 에우레카 7이나 흑의 계약자, 카우보이 비밥 급이 될 거 같군요.

-나키아미가 했던 대사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자신을 잊지마." 암, 잊을 수 없지. 잊을 수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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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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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꼭 괜찮을 거에요. 망념의 잠드(Xam'd, The Lost Memory)...

 본즈가 스튜디오가 3개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스튜디오를 3개를 동시에 돌려서-소울 이터, 20면상의 딸, 망념의 잠드- 이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내는 본즈에게 정말 찬사를 보낼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왠만한 유명회사는 스튜디오를 6~7개 가지고 있지만, 본즈는 스튜디오 하나가 따로 회사 차려도 될 듯. 기본적인 틀은 교향시편 에우레카 7에서 많이 따오기는 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맛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에우레카 스테프들이 대거 참여해서, 그림체나 복식(군복서부터 루이콘 교 전통 복식까지) 등은 에우레카 7의 분위기와 많이 비슷하지만 에우레카의 가벼우면서 반항적인 히피 문화와 애시드 음악의 독특한 분위기와는 달리, 무겁고 현실적인 진지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우레카 7과의 차별성을 잠드는 음악과 극중에서의 스토리에 대한 묘사로 커버하고 있습니다. 전작 에우레카 7이 톡톡 튀면서 동시에 몽환적인 테크노와 애시드 음악(80년대 히피 문화라 할 수 있는 레이브 문화의 산물로, 그 예로 KLF와 808 State, New Order, Orb, Prodigy 등)을 썼다면, 잠드는 무겁고 중후한 느낌의 음악을 씁니다. 또한 전작의 반항적이면서 동시에 유쾌한 히피 문화에 기반해서 무거운 내용을 지향했지만 'Love&Peace!'라는 구호로 내용을 전개한 에우레카 7과 달리, 잠드는 전쟁에 대한 구체적이고 복잡한 묘사, 그리고 인물의 감정(특히 아키유키가 실종된 뒤의 아키유키의 모친과 부친의 말다툼에서)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서 작품 내에서 무개를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애니 내내 에우레카 7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으면서 동시에 에우레카 7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확보한 것처럼 보입니다.

 작품내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코드나 주제는 반전과 소통, 공존이라는 에우레카 7의 연장선상, 혹은 동어반복일 듯 싶습니다. 작게는 주인공인 아키유키와 잠드-히루코-와의 공존, 크게 본다면 전쟁으로 갈라진 북과 남의 화해와 공존(....써놓고 보니 미묘하다;)을 이야기 내에서 풀어낼 듯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평화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주요 인물들 간의 갈등-힘으로 얻은 평화이냐, 아니면 대화와 소통을 통한 평화냐-들로 통해서 이번작의 코드와 주제를 표현할 거 같습니다. 전작 에우레카 7을 생각한다면, 이와같은 결론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잠드의 정체에 대해서 추측을 해보았는데....

열어봅니다.


덧.그러고 보니 방학 2주밖에 안남았군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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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N exclusive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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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에는 뜨지 않은 정보지만, 이번 E3에서 나온 정보라는군요; 말그대로 PSN 독점인지, 아니면 HD 방송만 PSN 독점인건지 알수 없지만, 뭔가 저 재수없는 듯한 PSN exclusive라는 것은 전자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어제까지 FF13때문에 PS3에 엄청난 타격이 갔다고 열심히 PS3 깠는데, 갑자기 저거 PSN 독점으로 나온다고 하니까 한대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역시 입은 함부로 놀리면 천벌 받는건가; 일단은 PSN에서 다운로드 가능한 컨텐츠 일터이니 왠만해서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시청자도 근 실시간에 가깝게 볼 수 있으리라 예상은 합니다만, 여러가지로 놀라운 소식인건 사실입니다.

그나저나 트레일러 멋지군요. 역시 본즈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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