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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기대중...


게임 이야기




디아블로 2의 전례없는 성공 이래로 많은 게임들이 디아블로 2를 벤치마킹 또는 모방하여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었다. 물론 그렇게 나온 수많은 게임들 중에서 제대로 된 게임은 얼마 없었고,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긴 게임의 수는 그보다 더 적었다. 심지어 정식 후속작인 디아블로 3가 나온 지금 이 시점에서도 디아블로 3는 디아블로 2만 못하다, 제대로 된 후속작이 아니다 라는 평가를 간간이 들을 정도로 액션 RPG 계에 있어서 디아블로 2의 위치는 확고 부동하며 여타 다른 게임 장르에도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게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대체 디아블로 2는 어떤 게임이었으며, 디아블로 2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그리고 이것들을 즐기는 게이머의 입장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림 돈은 타이탄 퀘스트를 만들었던 아이언 로어의 개발진들(11명 정도 뿐이지만)이 뭉쳐서 만든 크레이트 엔터테인먼트가 3년여간의 얼리 억세스 과정을 거쳐 올해 2월 말에 정식으로 출시한 액션 RPG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그림 던은 많은 부분 타이탄 퀘스트(듀얼 클래스 같은 기본적인 시스템)과 타이탄 퀘스트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디아블로 2에 근거하고 있으며, 종말론적인 세계관과 크툴루적인 분위기를 합쳐놓은 우중충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영웅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완전히 맛이 가버린 적들의 머리통을 호쾌하게 두쪽으로 쪼개버리고, 레벨업 하고, 폐지를 주워모아 더 나은 폐품을 만들어내서 강해진다는 점에서 충분히 디아블로 2를 연상케하는 작품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림 던은 디아블로 3보다 더욱 디아블로 2에 게임 시스템이나 분위기 자체로 근접한 작품이며 대단히 재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림 던이라는 게임의 기본기가 탄탄하기에 가능한 부분이며, 3년에 걸쳐서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게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완성한 얼리 억세스의 모범적인 사례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이 단어만으로 그림 던의 리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디아블로 2의 정식 후계자.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자. 디아블로 2의 정식 후계자라는 평가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 것일까? 우리가 디아블로 2를 지금에 와서 플레이를 한다면 게임은 과거에 느꼈던 재미를 똑같이 주지 못한다고 평할 수 있다:UI의 문제, 게임 시스템에 의해서 손해를 보는 직업군들이 있는 점, 레벨링과 보상, 파밍의 속도 등등 디아블로 2는 그 당시로써는 혁신적이었지만 개선되어야 할 여지도 많았던 게임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디아블로 2의 파생작들은 이들의 문제를 자신의 나름대로 풀어내려고 하였고, 이들의 실험과 개선은 디아블로 2 이후로 쌓이고 쌓여서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기까지 이르렀다. 즉, 시간은 디아블로 2의 후계자라는 칭호에 대해서 기대치를 많이 올려놓았고, 단순하게 디아블로 2를 계승하였다는 것을 넘어서 디아블로 2의 핵심을 이어받으면서 자신을 차별화시키는 것을 요구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그렇기에 그림 던에 대한 리뷰는 디아블로 2의 계보에 있어서, 그 계보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작품이 과연 어떤 게임인가에 대해서 평가를 해야한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핵심은 케릭터의 개성을 극대화시키는 시스템에 있다:그리고 이것은 크게 아이템을 통한 차별화와 스킬 및 직업을 통한 차별화로 지탱이 된다. 먼저 스킬 및 직업 시스템의 경우, 디아블로 3와 토치라이트 2가(흥미롭게도 토치라이트 2는 디아블로 3에 근접한 묘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케릭터별로 관리해야 하는 자원을 분화시키는 등의 흐름으로 나아갔기에 이전의 디아블로 2와 다른 기믹을 추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 던은 여전히 스킬 포인트와 공통된 자원의 분배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디아블로 2의 스킬 시스템에 근접하였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 던의 자유로운 듀얼 클래스 시스템(하나의 케릭터가 두 직업을 선택하는 시스템)보다 엑티브 스킬-패시브 스킬의 구성이다. 그림 던에는 수많은 스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메인 엑티브 스킬에 엑티브 스킬의 속성을 보정하는 패시브 스킬이 달려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엑티브 스킬만 놓고 본다면 그림 던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신에 게임은 패시브 스킬로 엑티브 스킬에 다양한 속성을 부여하면서 게이머가 어떤 스킬을 메인으로 삼고 어떤 스킬을 보조로 삼을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케릭터를 만들고자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샤먼의 스킬들은 대부분 전격과 약간의 빙결 속성의 엑티브 스킬로 구성되어 있지만, 파생되는 몇몇 패시브 스킬을 찍을 경우 전격과 빙결 속성에 출혈 등의 순수 체력 기반 데미지가 들어가기도 한다. 이것이 그림 던 특유의 별자리 시스템과 결합함으로써 게임은 기존의 디아블로 2의 파생작들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놀라운 깊이를 지닌 육성 시스템을 보여준다:별자리 시스템은 성소를 정화해서 얻는 헌신 자원을 사용하여, 직업 외의 패시브 스킬을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이 별자리 시스템은 심지어 엑티브 스킬에 확률 기반의 보조 속성을 부여하기도 하는데, 이 보조속성에 따라서 엑티브 스킬이 사실상 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게임의 운영에 거의 무한에 가까운 다양성을 부여하게 만든다. 디아블로 2나 여타 게임들이 스킬 포인트의 효율적인 배치라는 정석적 스킬 트리를 강요하고 운영이나 아이템 세팅이 고정적인 모습이 되었다면, 그림 던의 경우에는 핵심 운영 스킬에 어떤 패시브와 별자리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운영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림 던은 디아블로 2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새롭게 해석한다:디아블로 2가 케릭터 스킬 트리를 통해서 더욱 강해지고 차별화되는 케릭터라는 감각을 게이머에게 심어주었고, 이러한 디아블로 2의 핵심을 수많은 게임들이 계승하려 노력하였다면, 그림 던은 패시브 스킬을 통해서 액티브 스킬을 차별화하고 별자리 시스템을 통해 하늘의 별자리 수만큼 케릭터의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는 측면에서 디아블로 2의 케릭터 육성을 뛰어넘었다고 평할 수 있다.


파밍의 경우, 여타 게임들과 크게 다를바 없다:다만 흥미로운 점은 그림 던의 경우, 많은 아이템에 아이템을 착용하였을 시에 쓸 수 있는 고유 스킬을 부여하였다는 점이다. 앞서 별자리 시스템에서 언급하였듯이, 별자리 시스템을 통해서 엑티브 스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림 던은 아이템 스킬의 존재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갖고 있다. 다만 레벨업을 하는 도중에 수시로 아이템이 바뀌는 파밍 게임의 특성상, 이러한 아이템의 고유한 스킬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알아보려면 만랩까지 도달한 뒤에 판별을 할 수 있을 것인데, 현재로써는 1회차 엔딩만 본 상태라서 뭐라고 평하기는 미묘한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외에도 그림 던은 게임의 페이스나 연출적인 측면에서 많은 부분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적들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게이머도 적들을 끝없이 쓸어내야 하며, 적들은 잔인하고 강력하며 도전적이며, 이런 점에서 그림 던은 디아블로 2가 게이머에게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림 던은 훌륭한 액션 RPG이며, 디아블로 2 이후로 쌓아온 계보에 케릭터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디아블로 2가 갖고 있었던 핵심을 잘 재해석하고 있으며 새로운 페이지를 연 작품이라 평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림 던이 1회차를 클리어한 본인이 느끼기에도 아직 더 발전할만 여지들(엔드 컨텐츠의 추가와 모딩, 확장팩, 생존 모드 등등)이 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지며 지금 보다 더 나은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디아블로 2를 즐겁게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그림 던은 후회가 없을 최고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게임 이야기



현대인들에게는 모두가 공유하는 은밀한 공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가 너무나 연약하고 복잡한 기틀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 사회가 예기치 못한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다라는 공포다. 사람들은 이러한 공포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현실의 수많은 사건들은 우리의 삶이 정말로 깨지기 쉬운 인프라 위에 세워졌음을 증명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종말이 거의 도래한 니어 아포칼립스와 종말 이후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에는 섬세하고도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세상이 멸망한 이후에도 우리가 믿었던 것이 과연 가치있었던 것들인가(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세상이 끝나가는 그 지평선에서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행하고 볼 것인가(니어 아포칼립스)? 톰 클렌시의 디비전은 분명 그런 의미에서 후자를 지향하고 있는 작품이다:폴아웃 4의 사례는 게임의 설정과 스토리가 게임과 매칭되지 않는다면 어떤 재앙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면, 디비전은 게임의 설정과 세계가 게임과 매칭되었을 때 어떤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디비전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디비전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수많은 게임 중 하나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비전의 핵심은 뉴욕이라는 공간을 구현하는 디테일에 있다. 게임의 모든 지형지물들은 현실의 비율과 1:1로 매칭되며, 게임은 거의 4년 이상을 쏟아부은 트리플 A 게임 답게 엄청난 디테일을 보여준다. 또한 게임 속의 세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 특유의 '과장됨'을 억누르려 한다:디비전은 기존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들 같이 현실의 지형지물을 모티브로 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닌, 현실 위에 약간의 새로운 터칭을 더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터칭이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디비전이라는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디비전은 이 바닥의 장르(MMORPG)의 특성을 따르는 쪽 보다는 뉴욕이라는 배경을 살리는데 더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게임은 현실의 도시처럼 대로와 거리라는 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게임의 스테이지 구성은 너무 디테일이 넘치는 나머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못할 때가 있다. 가령 초반 터널 미션의 경우, 맵은 쓸데없이 넓은데다가 미션 전체의 구조 역시 성기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하지만 디비전이 게이머에게 제공하려 했었던 것은 게임적으로 완벽한 경험이 아닌 현실 뉴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면이라는 재현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에 처음 게이머가 이 미션을 마주했을 때는 현실과 1대1로 대응하는 이 스케일 덕분에 대단히 인상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MMORPG의 특성 및 파밍이 중심이 되는 게임 특성 상 이 감흥은 게임을 반복하면 할수록 줄어들겠지만 말이다.

디비전의 스토리는 별다른 반전이 있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도 신선하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디비전의 이야기는 게임의 메인 플룻을 따라 이어지는 서사에 있지않고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방계적인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에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섬뜩한 과거의 이야기들과 적들에 대해서 동정심이 느껴지게 만드는 로딩 문구와 2차 자료들은 세계가 점차 망가져가면서 사람들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특성이 1대1로 대응하는 뉴욕이라는 세계와 결합되면서 디비전의 게임 서사는 매우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주목할 부분은 게임 내의 디비전 요원의 설정이다:게임 내에서 디비전은 설정상 최후의 수단으로 사회에 잠복해 있는 대기요원으로써, 누가 평시에는 디비전 요원인지 알 수 없다는 것과 함께 비상시가 된다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우리의 이웃이, 내 친구가, 내 가족이 디비전 요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게이머가 회수하는 1차 투입된 실종 디비전 요원들은 군대 출신 이외에도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며, 이러한 디비전의 설정들은 주인공과 내가 바라보는 세계의 눈높이를 맞춤으로써 게이머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여기서 UBI와 톰 클랜시 게임 프랜차이즈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서사가 등장한다:위기의 상황에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모든 전권을 위임받은 요원들(주인공)이 세계를 자신의 방법과 믿음대로 재구축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인공의 대척점에는 처음 뉴욕에 투입되었던,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재구축하려 했었던 메인 악역인 아론 키너가 있다. 게임은 주인공과 아론 키너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지어주지 않기에 폴 로드가 지적했었던 아주 중요한 문제, '선한 의도를 가졌다는 믿음 이외에 대체 디비전 요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약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를 마주하고 있다. 실제 다크존의 게임 플레이 방식이나 앞으로 업데이트 등을 통해서 전개될 이야기들은 이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에 디비전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마주하는 껄끄러움을 스토리 및 게임 시스템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비전은 많은 부분에서 흥미로운 게임이라 할 수 있으며, 현대 대중이 갖고 있는 공포와 함께 대중이 매료되고 몰입할 수 있는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물론 정식 리뷰에서도 다루겠지만 디비전이라는 게임 자체가 완벽한 것은 아니며, 몇몇 부분에서는 분명한 단점을 갖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디비전은 흔한 트리플 A 게임과 다르게 자신이 갖고 있는 매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게임이며, 게임의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연 게임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재밌어 보이네요

(2연속 땜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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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하는 때앰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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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2016년도 둠 멀티플레이 트레일러를 보고 '헤일로가 떠오른다'라고 평하였다: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둠과 퀘이크의 게임 흐름이 헤일로보다 선행하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반응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헤일로:컴뱃 이볼브드의 출시 이후로, 둠의 유전자를 가장 잘 이어받고 있었던 게임은 아이러니하게도 헤일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배틀필드 시리즈가 밀리터리 FPS에 대한 근 10년간의 확고한 유행을 구축하면서 많은 FPS의 트렌드들이 조용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그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힘들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람들의 눈밖으로 나갔다고 해야할까. 분명한 점은 헤일로 같은 경우, 엑스박스 콘솔의 상징으로써 그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쉬웠던 반면, 다른 게임들은 매출이나 트렌드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서 노선을 갈아타는 모습을 보였다. 본인은 여기에 콘솔중심의 게이밍 환경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콜옵은 어떻게 보면 게임과 영화의 결합이라는 점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어미가 아닌 대중들을 매료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둠과 같은 게임, 게이머들은 열광하지만 동시에 그 과격함(표현에서부터 빠른 움직임까지)으로 게이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지 못할 게 분명한 게임들은 일선에서 밀려나버린 것이다.

하지만 콜옵이 더이상 콜옵이기를 거부하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블랙옵스 2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블랙옵스 3와 어드벤스드 워페어는 이전 콜옵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빠르고 트릭키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변화하는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좀 더 두고볼 필요는 있다고 보지만, 현재까지 본인이 조심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가설은 다음과 같다:지난 몇년 동안, 콜옵이 주도했었던 트렌드 속에서 콜옵이 끌어들인 새로운 세대의 게이머들은 분명하게도 '성장'하고 있었다. 게이밍 커뮤니티든 게임 실력이든 유튜브 유저든 그 무엇이든 간에, 콜옵이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흥미롭게도 '과거로부터 도래한 새로움'이라는 것은 인상적이지만 말이다.

둠의 움직임이 헤일로와 유사하다는 것은 다소 둠 멀티플레이에 실례가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헤일로 멀티플레이 자체가 점프를 통한 수직-수평의 변칙적인 움직임보다는 평면 상에서의 스텝을 통해서 헤드샷을 따내는, 다소 정형화되어있고 양식화된 스포츠에 가깝다. 둠 멀티플레이의 움직임은 과거 퀘이크 3의 움직임에 기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둠 멀티플레이에서 보여주는 다소 많은 점프들은 퀘이크 3의 유산에 가깝다고 보여지나, 본인이 보기에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고전적인 둠이나 퀘이크 멀티플레이와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둠은 수십~수백의 몬스터를 무지막지한 무기를 이용해서 쓸어버리는데 초점을 맞춘 게임이고, 그렇기에 엄청난 스피드에 기반한 게임이었고, 그것을 통해서 파괴적으로 풀어내느 쾌감이 상당한 게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퀘이크 3의 문화, 도저히 사람의 머리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전의 게임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둠의 핵심은 이것을 게이머가 따라잡을 수 있게 풀어내면서, 동시에 그것을 '옛날처럼 과격하고 빠르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다:다소 모순되지만 이러한 2016년 둠의 흐름은 재해석되는 고전 트렌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는다. 그것은 과거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영감을 얻어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옮기는 작업인 것이다. 그렇기에 둠은 구작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인스턴트 킬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데몬 룬을 이용해서 적을 학살하거나, 헤일로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한 몇몇 도구들을 도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재미를 재현하기 위해서 현재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2016년 버전 둠은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스냅맵을 통해서 유저 크리에이티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멀티플레이나 게임플레이 트레일러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결합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때 게임의 헤게모니를 좌우했었던 이드 소프트의 저력일지도 모른다.

둠 2016년 버전은 5월 발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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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가 아서 C 클라크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발달된 과학기술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이 마법과도 같은 신기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이는 비단 카고 컬트(비행기를 숭배하는 오지의 주민들 같은)뿐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과학기술을 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어구의 핵심은 과학과 마법이라는 양극단의 존재, 한쪽은 세계를 이해하는 이성의 영역과 다른 한쪽은 이성적 법칙과 관계가 없는 비이성과 신비의 영역은 한쪽의 극단적이고 정교한 발전을 통해서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보자면 마법이 충분히 과학적인 설명과 해석이 동반되게 된다면, 과학같은 이성적이고도 정합적인 영역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 게임 리뷰 첫머리에 인용한 이유는 이러한 과학-마법의 관계론을 변용하여 보드 게임(테이블탑 같이 오프라인 상에서 주사위 같은 것을 이용하는 게임)과 컴퓨터 게임(컴퓨터 연산에 기반하여 디스플레이와 컨트롤러가 동원되는 게임)의 관계에 대입해 보기 위해서다:보드 게임이 충분히 빠른 정교하고도 복잡한 공식과 함께 반응 속도(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반영되어 결과로 표상되는 과정)가 빨리진다면 보드 게임은 컴퓨터 게임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역도 가능할까? 컴퓨터 게임이 충분히 느려지고 판단 하나 하나가 치명적이 된다면, 보드 게임이 주는 경험과 비슷해질 수 있을까?


파이락시스 게임은 그런 의미에서 눈여겨봐야할 제작사다:파이락시스의 창업자 시드 마이어가 만들고 파이락시스 게임을 대표하는 문명이란 프렌차이즈 자체도 보드게임 문명의 받아서 탄생하였으며, 게임들의 대부분이 턴 기반의 전략게임이라는 점은 파이락시스 게임이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보드게임을 연상케 만드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엑스컴 2도 전작인 엑스컴:에너미 언노운과 함께 턴전략 게임이며 전작의 시스템을 많은 부분 개수하여 들고 왔었다. 하지만 본인이 전작에 대해서 리뷰해서 평가를 했었던 부분들을 생각해본다면, 엑스컴 2는 마땅히 기대감이 떨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http://leviathan.tistory.com/1661) 전작이 과거 유명했었던 전략 게임 프랜차이즈를 잘 만들어진 체스 퍼즐 게임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언가로 만들어놓고, 다른 턴 기반 전략게임들이 걸어왔던 발전의 역사를 역행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엑스컴 2는 그런 실망감을 안겨준 전작과는 다르다. 엑스컴 2는 훌륭한 턴 전략 게임이며 게임을 끝낸 이후에도 다시 플레이를 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엑스컴 2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에는 엑스컴 1편의 모드인 롱 워의 공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엑스컴 1의 경우 모드를 지원하지 않았지만, 롱 워는 엑스컴 1을 거의 마개조에 가까운 수준으로 뜯어고쳐서 원본의 본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꾸어버렸다. 롱 워는 게임의 전체적인 길이를 길게 늘리고 전략적인 선택지를 보강하며 난이도를 늘림으로써 매번의 선택이 장기적인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만들었다.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전투가 일종의 퍼즐게임화 되어가는 본작과 다르게 롱 워 모드는 전략적인 선택지를 늘림으로써 게이머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대폭 늘렸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게임에서 전략적 선택보다는 정답이 있어 게이머가 무언가 결단을 내리기 보다는 정답을 향해서 얼마나 깔끔하게 나아가느냐라는 엑스컴 1편의 문제를 롱 워는 근원적으로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롱 워의 파급력은 엄청났으며 이는 엑스컴 2의 전체적인 모습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물론 엑스컴 2가 롱 워 모드처럼 아주 기나긴 시간을 두고 게임을 풀어나가는 형태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엑스컴 2는 엑스컴 1편에 비교하면 그 플레이 타임(시작해서 엔딩을 보기까지)이 더 짧다고도 볼 수 있다.(물론 게이머가 실력이 있고 운도 어느정도 뒷받침 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하지만 게이머가 플레이하는 엑스컴 2의 시간은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2편이 전작과 다르게 전략적 선택의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매 순간마다의 선택이 게임의 판도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게이머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1편과 다르게 2편에서 엑스컴은 도망자 신세이며, 그야말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게릴라 전투를 벌이는 입장이며, 자원과 지원은 빠듯하게 한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적들은 더욱 강력해져서 제각기 엑스컴 대원들에게 치명적인 특수능력들을 갖고 있으며, 부상 판정이 너그러웠던 전작과 다르게 이번작에선 스쳐도 부상판정을 받는 등 게임 자체가 더욱 가혹해졌다. 정보라는 획득하기 어려운 재화의 추가로 다른 지역에 접근하거나 다크 이벤트를 확인하는 등의 활동에 제약을 두고,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관리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엑스컴 2에는 제한된 재화로 싸우는 것보다 더 핵심적인 요소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게임에는 아바타 프로젝트라는 외계인의 연구 프로젝트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프로젝트는 점차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외계인들의 방해는 누적되어 쌓여간다. 게이머의 목표는 이러한 방해사항을 뚫고 아바타 프로젝트가 완성되기 전에 외계인의 본거지를 쳐서 외계인을 절멸시키는 것이다.


제한된 시간이라는 요소 때문에 엑스컴 2는 매 선택들이 매우 중요해졌다:게이머는 어벤저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위원회에서 주는 임무를 해결하고 외계인의 공격을 방어하며, 아바타 프로젝트를 방해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게이머의 손을 빠져나가는 것들이 결국은 생길 수 밖에 없다:예를 들어서 최우선 임무의 경우, 임무를 각기 대응하는 이벤트가 있지만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임무는 단 하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머는 자신이 판단하였을 때 어떤 이벤트가 발생되어도 이를 감수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떤 이벤트는 일어나는 것 자체를 꼭 막아야하는지를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게임 내의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예측불가능한 형태로 게이머를 맞이할 때도 있다:엑스컴 2는 전반적인 미션의 흐름 이외에도 월드맵에서 다양한 이벤트들이 발생하고 각기 이벤트들은 시간을 소모함(스캐닝)으로써 이벤트에 해당하는 자원을 습득하거나 유리한 효과를 받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빠듯한 시간이란 요소와 겹치면서, 이런 무작위적인 이벤트들은 때로는 게이머가 역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렇기에 게이머는 항상 어떤 판단을 내리고 게임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부분을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게임은 많은 부분 게이머가 느끼기에 느린 페이스로 진행된다.


게임이 전반적으로 자원이나 시간측면에서 빠듯해졌지만, 재밌는 점은 그만큼 게임의 전략적 선택지도 늘려두었다는 것이다:이제 병사들은 진급시 생기는 병과 능력 이외에도 다양한 보조 무장이나 아이템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외골격 수트 같은 강력한 장비를 사용할 수도 있다. 장비할 수 있는 수류탄이나 탄환의 폭도 대폭 증가하였기 때문에 게이머의 전략적 선택 폭은 전작에 비해서 많은 부분 증가하였다. 심지어는 시간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점에 근접하게 되면 게임이 전작에 비해서 더 쉬워진다는 평가마저도 들을 정도다. 하지만 전략적인 선택이 늘어났다는 점은 게이머에게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점들에 비추어본다면 엑스컴 2는 게임의 템포를 전작에 비해서 느리게 만드는데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물론 롱 워와 같이 게임의 길이를 늘리는 동시에 게임의 매순간 순간의 선택에 집중하게 만드는 모습은 아니지만, 매 순간의 선택하고 그 선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예측가능한/불가능한 결과를 맞이하는지를 보고 컨트롤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엑스컴 2는 보드 게임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월드맵의 UI도 그렇지만, 턴 기반의 전략 게임이라는 점, 더 나아가 게임의 템포가 컴퓨터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느리고 긴장감이 넘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엑스컴 2는 충분히 게임이 느리고 무거워 진다면 보드게임과 같은 오프라인 게임들의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게임 자체에 단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게임 내의 시스템을 익히는데 있어서 두서가 없다는 점, 튜토리얼을 진행하면 황당하게도 게임이 어려워 진다는 점, 최적화가 정말로 개판이라는 점 등등 게임이 완벽무결하다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컴 2는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게임이다. 전작이 갖고 있었던 한계들을 훌륭하게 뛰어넘고 더 나아가 클리어 이후에도 계속 도전하고 싶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엑스컴 2의 매력은 대단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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