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그 날 이후, 남들은 볼 수 없는 무언가 날 따라오기 시작했다! 19살 제이는 멋진 남자친구와 근사한 데이트를 한 그 날 이후,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불안에 떨게 한 것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존재가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알 수 없는 정체는 언제 어디서나 제이 앞에 나타나 그녀의 일상을 서서히 옥죄어오고, 악몽보다 더한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리는 제이. 이 기이한 저주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으면 ‘그것’은 죽을 때까지 쫓아온다!(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팔로우는 겉으로 보기엔 전형적인 하이틴 호러 영화처럼 보인다:섹스를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집요하게 쫒아오는 초자연적인 존재와 이로 인해서 생기는 사건들의 이야기는 이미 존 카펜터의 할로윈 이후로 수도 없이 반복되고 변형된 이야기다. 하지만 팔로우가 독특한 부분은 전형성이 색다른 형태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감독은 팔로우를 제작할 때, 호러 만화인 '블랙홀'을 많이 참조하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크로넨버그와 B급 호러 영화 특유의 신체 변이에 초점을 맞춘 블랙홀과 팔로우 사이에는 큰 접점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10대들의 성과 불안, 섹스를 통해 전염되고 공유되는 불안과 감성을 다룬 블랙홀은 팔로우라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열쇠다.


보통의 영화에서 섹스는 성적인 자극을 제공하는 관음증적인 코드로써 삽입되기 쉽다. 또한 이것을 피해가려는 수많은 창작자들도 스스로의 무의식과 관습, 습관에 내재되어 있는 관음증적인 시선이나 성적인 편견에 의해서 의도치 않게 이 편견을 재생산하기도 하였다. 엄밀하게 보자면, 섹스를 주요한 소재나 주제로 다루는 작품은 성적인 자극을 거세해야 하며 이는 섹스에 대한 창작자 자신의 확고한 자기 인식에 의해서 가능하다. 팔로우는 이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성공하고 있다:팔로우에서 섹스는 성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팔로우에서 섹스는 중요한 행위(그것을 옮기는)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삭막하고 메말라있으며 불안하다는 감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섹스를 통해서 전염되는 '그것'의 존재는 작중에서 행해지는 모든 섹스를 어딘가 불안하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행위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팔로우에서 나오는 섹스와 그것의 이미지는 '성병'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도 볼 수 있다. 섹스를 통해서 전염되는 성병의 이미지는 이미 B급 호러 영화에서 자주 사용된 소재이기도 하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작품들에서 자주 사용되는 섹스를 통한 성병과 감염의 이미지는 섹스가 갖고 있는 파괴력과 힘을 드러내며 영화가 깊이 영향을 받은 블랙홀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로우의 특이점은 성병 특유의 끈적함이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팔로우에서 섹스를 통해서 전이되는 것은 성병 특유의 신체적이거나 내부적인 변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바깥에서 오며, 뛰지는 않지만 감염자가 어디에 숨어있든 끝까지 따라오는 집요함과 정시성, 그러고 피할 수 없는 숙명론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집중한다. 


이러한 '그것'의 특징은 극중에서 주인공들은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불안에 떨게 만든다. 그것은 프레임 바깥에 있더라도 여전히 주인공을 향해서 오고 있다. 이 정시성과 숙명적인 분위기에 기반한 공포는 여지껏 호러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함을 보여준다. 보통의 호러 영화에서 유령이나 초자연적인 존재는 주인공과 관객을 놀래키기 위해서 연출된 타이밍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것이 놀랍고 무섭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의 리듬과 템포를 알면 쉽게 이에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팔로우의 그것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속도가 느리기에 따돌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하게 회피할 수 없으며 프레임 바깥에 있더라도 주인공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성실하게 오고 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유령에 놀라기 보다는 그것이 언제 주인공에게 도착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으로 각 시퀸스의 장면들을 세밀하게 살펴보게 된다. 이는 주인공이 공유하는 공포와 불안을 관객들도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 막연하지만 확실한 불안감과 죽음에의 공포는 팔로우를 청년들과 섹스를 소재로 한 호러영화 중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는다.


팔로우 특유의 이러한 분위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는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집단에서부터 분석을 시작함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팔로우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어른'의 존재가 거세되어 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할 뿐, 영화는 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또래집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또래집단은 보통의 하이틴 영화에서 등장하는 활발한 집단과는 다르다. 이들은 무언가 적극적으로 하거나 밝다기 보다는 어딘가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누워있거나 각자의 할 일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친구들은 주인공이 처한 황당한 상황(내 눈에만 보이는 존재가 나를 따라오면서 공격하는데, 이게 섹스로 옮겨간다)을 이해하면서 같이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섹스를 통해서 전염되는 그것의 존재는 오로지 섹스를 통해서만 '시선'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은 조력자인 동시에 안타깝게도 방관자일 수 밖에 없다.


팔로우에서 섹스는 단순하게 쾌락을 찾는 행위 그 이상이 된다:섹스를 통해서 주인공은 주변사람과 자신의 공포와 불안을 공유하며 또래집단 내에서 은밀하게 오가는 성적인 욕망의 교차가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과 그녀의 친구가 섹스를 함으로서 시선을 공유하는 동시에 섹스를 통해서 전염되는 그것의 존재는 역으로 새로운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섹스는 유일하게 불안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점점 더 나락으로 밀어내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옮겨붙기 전에 주인공이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 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이나 욕망들의 공유는 섹스가 갖고 있는 힘을 보여주며, 동시에 이후에 불안에 떨면서도 몸을 섞음으로서 시선을 공유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친구 그 이상의 관계로써 바라보는 세상을 공유하고자 하는 소통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소통의 행위로써 섹스로 옮겨지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화는 이에 대한 뚜렷한 답을 던지지는 않지만, 동시에 이를 추론할 수 있는 정황증거들을 던져주고 있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클라이맥스 직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주경계를 넘어서 박물관에 가는데 어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과 그것이 정말로 별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말 큰일 처럼 느껴진 어린 시절의 경험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클라이맥스에 그것이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 모습이나, 어른들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모습 등을 통해서 영화는 어른의 존재를 제거하는 동시에 어른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차용한다. 즉, 섹스는 어떻게 보면 정말로 별거 아닌 삶의 일부 같은 행위지만, 젊은 세대의 무의식 속에서는 마치 어겨서는 안되는 금기로써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기를 어김으로써 생겨난 죄의식과 불안감은 올곧게 금기를 어긴 행위자에게로 돌아온다. 그렇기에 '그것'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금기를 어긴(섹스를 행한) 사람들을 쫒아온다. 그리고 이 뚜렷하지 않은 죄의식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범을 늘림으로써 같은 세계와 시선을 공유하는 것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죽였다고 생각한 그것의 존재가 주인공과 그녀의 남자친구를 뒤쫒아오는 모습을 통해서 이러한 명제를 공고하게 만든다.


영화 팔로우는 섹스라는 소재를 자극적이지 않게 다루면서도 그것의 본질에 깊숙하게 접근한 작품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불안을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프레임 내에 공포의 존재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주인공과 관객들이 그것일 지속적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호러영화로써도, 하이틴 영화로써도, 그리고 섹스를 다룬 영화로써도 팔로우는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