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게임이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산업으로 인식된 데에는 1995년부터 시작된 E3의 공이 혁혁하다 할 수 있다:전세계 모든 콘솔 게임 회사들이 한 곳에서 모여서 기술력과 컨텐츠로 그 해의 게임 패러다임을 결정한다. 게임을 위한 인터넷이나 대중매체가 발전되지 않았던 시기의 E3의 위상은 엄청났으며, 6월에 시작하여 10월 ~ 12월 연말 대목까지 이어지는 마케팅의 흐름을 시작하는 포문이자 더 나아가 수년간의 패러다임을 좌우하는 장이라 할 수 있었다. 역사성과 시기적인 특수성은 훗날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와 언론이 등장하고 파리 게임 쇼나 도쿄 게임 쇼, 게임스컴 같은 이벤트들이 생겨났음에도 E3가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니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E3의 권위를 볼 수 있는 단적인 예는 바로 콘솔 세대의 교체와 비전이 E3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PS4도 그러하고, 엑스박스 원도 그러했으며, 닌텐도 Wii U도 E3를 거쳐서, 연말 대목으로 이어지는 마케팅 일정을 형성하였다. 모든 콘솔이 E3를 거쳐간 것은 아니었지만, E3를 통해서 게임회사들이 하반기와 연말, 더 나아가 몇년간의 비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국면 전환의 장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핵심에는 화려한 테크 데모들과 게임 트레일러들이 있었다. 한 게임 회사에게 주어진 컨퍼런스 시간은 짧고, 대중들에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최대한 인상적이고 많은 컨텐츠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1분에서 2분 남짓한 게임 트레일러들나 현장에서 10~15분 정도 시연가능한 테크 데모는 즉효가 있었다. 그렇기에 E3에 참가한 많은 게임 회사들은 무리해서라도 완성되지 않은 게임의 테크 데모와 컨셉 트레일러로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에게 어필하였고, 이런 노력들은 게이머들의 게임과 기술력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변이 생기고 있다:한때 마소와 소니와 함께 E3를 장식하였던 닌텐도는 E3와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인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베데즈다는 E3에서 장기적 마케팅을 포기하고 3~4개월 되는 기간 내에 발매되는 게임 마케팅에 집중하였다. 소니와 마소의 경우, E3는 큰 행사이기는 했지만 자체적인 컨퍼런스와 여타 게임쇼에서 분산하여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E3에 목메는 게임 회사는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PS4와 엑스박스 원의 런칭 후, E3에서는 기술을 선도하는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올해까지 포함하여 지난 2년간 소니와 마소는 4K 게이밍과 VR 등을 새로운 기술 혁신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근 2년간의 성적은 참혹했다:PS4 PRO나 엑스박스 원 엑스는 4K 모니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시장에서 몇몇 호사가들을 위한 물건이 되어버렸고, VR은 그보다도 더 소수의 모험심 강한 얼리 어뎁터를 위한 물건이 되었다. 한국 언론들이 좋아하는 '혁신은 없었다'라는 표현을 넘어서 '혁신은 실패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지난 2년간의 E3의 기술 비전은 맥을 못추었다.


물론 4K와 VR 기술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분명,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게이밍의 저변을 확대시켜줄 혁신이 될 가능성이 있고, 잠재적인 수요 역시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너무 성급했다는데 있다. 4K 해상도쪽을 보자:FHD(1080) 해상도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데에는 영화나 TV 등의 영상 매체에 대한 수요가 함께 맞물려 들어갔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재 4K의 컨텐츠는 대부분 게임에 집중되어 있고, TV나 영화 등의 컨텐츠에서는 아직 시기상조 또는 필요성이 없다라는 이야기들이 돌고 있다. VR의 경우, 양쪽에 동일한 해상도의 영상을 두번 쏴줘야 한다는 문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보급기라 할 수 있는 기기가 없다는 난점이 있다. 비디오 게임 산업이 PC와 다르게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산업이라는 것을 감안하자면 최근 E3의 기술 동향은 적어도 5년, 10년은 앞질러서 먼저 테제를 던졌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는 게임 회사들이 브랜드 전략의 핵심을 압도적인 기술력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보다 더 뛰어난 기술력으로 브랜드와 인지도를 압도하고 마케팅에서 승리한다는 오랫동안 E3와 게임 업계를 지배해왔던 명제였다. VR과 4K는 그런 명제 아래서 자명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게임 회사들(주로 마소와 소니)은 정작 그걸로 즐길 수 있는 컨텐츠와 대중이 기반하는 인프라 부분을 간과하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참사 속에서 E3로 대변되는 기술력 중심의 패러다임이 삐걱거리는 전조가 드러났다는 것이다:E3에서 이탈하는 게임회사들이 늘어나고, 연 단위의 대작 마케팅에서 손 때고 공개에서 발매까지 짧은 기간동안 단기간 마케팅을 하거나(베데즈다) 데모와 오픈 베타 등 체감형 마케팅을 하는 등(캡콤의 몬스터 헌터 시리즈) 게임 업계의 흐름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동향에는 게임=기술이라는 명제에 대한 게임 제작사의 피로가 있다. 게임 소매가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게임 제작 단가는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초창기 게임이 거의 제로 코스트에서 시작하여 말도안되는 수익을 만드는 황금알은 낳는 거위였다면, 이제는 까다로워진 고객과 고 기술 관여 산업으로 높아진 개발 단가로 발생된 재무 리스크 관리, 멀티플레이 중심의 게임 환경으로 인한 서비스화 된 게임 산업 트랜드 등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였다. 시즌패스나 DLC, 소액 결제 같은 것들은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발악으로 시작되었지만(물론 과거와 비슷하게 미니멈 코스트 - 멕시멈 프로핏으로 이어지는 모바일 게임의 성공에 현혹된 부분도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인 고기술 관여 산업이라는 게임의 산업 특성이 만들어낸 함정이 가장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함정의 끝에는 두가지 비극적 결론이 존재한다:하나는 CD 프로젝트와 같이 노동자의 열정을 착취하여 저임금으로 우수한 결과물을 뽑아내거나, 아니면 코나미 같이 첨단 기술 중심의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게임 자체가 갖는 기술 관여적인 부분은 제거할 수는 없다. 하나의 게임이 완성되기 위해서 거의 모든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그래픽, 연산, 서버 등등)이 집약되기 때문에, 이것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경쟁에 따른 기술 개발 과열은 늦춰질 수 있다. E3와 같은 대형 컨퍼런스에서 테크 데모와 트레일러로 대표되는 기술 마케팅으로 상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객이 있는 곳, 고객이 볼만한 곳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거기에 맞춰 게임 개발과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일례로 바이오하자드 7을 보자. 바이오하자드 7은 6보다 덜 팔렸음에도 내부적으로 만족할만한 수익을 냈다. 6은 거대하고 화려하게 게임을 만드는데 집착해서 쓸데없을 정도로 거대한 게임 컨텐츠와 화려한 그래픽을 만드는 바람에 제작비나 게이머의 재미 양측면에서 재앙을 만들어냈다. 반면 7은 기술적으로는 코스트를 줄이는 방향으로 혁신을 유도하였다. 그리고 컨텐츠 측면에서는 기존 바하와 이질적이긴 하지만 인디 서바이벌 호러의 전통과 바이오하자드 1편의 전통을 결합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게이머라는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회사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게임 회사들의 변화는 E3를 중심으로 하는 최첨단 기술 중심의 게임 업계 패러다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니어 오토마타나 인왕 같은 트리플 A급 게임이 아닌 게임들이 강세를 보이거나, 헬블레이드 같은 독특한 게임을 제작사가 직접 유통하고, 바이오하자드 7의 성공이나 베데즈다의 새로운 E3 정책 등등은 그저 우연의 연속이 아니다. E3를 중심으로 하는 첨단 기술 중심의 게임 업계 패러다임은 4K와 VR의 실패로 조금씩 붕괴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어떤 페러다임이 콘솔 게임 업계을 지배할 것인지는 앞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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