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이볼브에 대해서 할 이야기는 정말로 많다:우리는 이볼브가 게임 자체의 완성도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패했음에도 이볼브가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은 이볼브라는 게임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4명이 힘을 합쳐서 한명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거대한 맵을 쉴새 없이 쫒는 추격 페이즈와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가 이볼브에는 모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온지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볼브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게임이다. 물론 게임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된지 오래지만, 한번이라도 이볼브에 빠진 사람은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이볼브에 대해서 호의적인 평가를 주고 있다. 그만큼 이볼브라는 게임이 최근 게임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볼브 스테이지 2는 이볼브의 F2P 버전이다.. 원래 패키지 게임으로 발매된 게임이 F2P로 전환한 사례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눈여겨 봐야할 점은 이볼브 스테이지 2는 게임 자체의 벨런스와 진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쳤다는 것이다. 이제 게임은 20분 내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분 내외에서 종료되며, 아레나는 누구나 칠 수 있고, 리스폰 주기는 더욱 빨라졌으며, 추격은 더욱 쉬워졌다. 기존의 게임이 심리전에 기반한 장기전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헌터들은 끊임없이 몬스터를 쪼고, 몬스터는 끊임없이 도망다니는 단기전의 승부 양상으로 변화한 것이다.


실제 이볼브 스테이지 2는  기존의 이볼브 게임 플레이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만 압축해서 넣었다는 인상이 강하다:헌터측에선 거대한 몬스터가 내뿜는 불길이나 전기를 피하면서 싸우고, 몬스터는 온갖 최첨단 기기로 무장한 헌터 4명을 상대로 소모전을 벌이는 양측 모두에게 필사의 전투다. 스테이지 2는 전투의 주기를 짧게 하기 위해서 추격을 쉽게 하고(트래퍼는 추적기술과 별개로 이제 나침반으로 상대 몬스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돔을 칠 수 있게 만들었는데, 과거 전투 한번 하지 못한 채 3단계가 된 몬스터에게 전멸 당하는 일이 많았던 과거의 게임을 생각하면 많은 부분 발전하였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점은 스테이지 2에 와서 비로소 명확해진 것은 바로 터틀락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작자가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일은 그렇게까지 희귀한 일은 아니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손을 떠난 시점, 아니 창작되는 그 순간에도 주변환경과 교류하며 새로운 맥락들을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창작자가 이 맥락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이다:가장 뛰어난 창작자들은 그 맥락들이 들어와서 자리잡을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해준다. 또는 블리자드나 닌텐도처럼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철저한 통제(의도된 방향으로만 즐길 수 있는)를 깔아둘수도 있다. 창작자는 창작물의 모든 것을 만들지 않지만, 많은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터틀락은 참으로 기묘한 회사이다. 터틀락이 이볼브라는 게임을 만들었을 때는 어떤 자신감이 있었다:게임 길이를 20분으로 늘리고, 몬스터와 헌터가 20분 내내 전투 한번 없이 숨바꼭질을 벌이는 게임을 기획-개발-QA-심지어 베타테스트까지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밀어붙인 점은 터틀락의 이볼브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게임의 프로토타입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볼브는 당연히 역사속으로 사라졌어야 했었던 실패작이었다. 게임이 시대를 앞섰던 혹은 4대 1(경쟁-코옵의 혼재)이라는 게임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물론, 이볼브가 재시한 이러한 발상의 매력은 여전하여,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라는 작품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모든 위대한 실패작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역사의 어느 곳에 발자취를 남기고 사라지거나 더 나은 후속작을 만들었어야 했었다. 그러나 터틀락이 선택한 것은 기존 작품에 생명유지장치와 심폐소생기를 부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볼브의 문제는 게임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이기에 게임의 근원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이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었다:어째서 몬스터는 처음에 헌터를 피해서 도망다니고, 헌터는 왜 몬스터를 쫒는가? 몬스터는 어째서 최종진화를 하면 발전기를 때려부숴야 하는가? 이를 설명하는 게임 내의 서사적 장치는 희박하며(흥미롭게도 케릭터나 게임 내의 이야깃거리는 짜임새 있게 갖춰져 있다-잡담 같은), 게임의 진행은 직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룰들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패치와 베타 패치로 이어지는 터틀락의 장대한 삽질의 내역이다:게임은 거의 조선시대 환국정치 수준에 가까운 벨런싱을 보여주고 있어서, 어떤 케릭터가 강케가 되면 지속적인 너프로 쓰레기가 되었다가 다시 지속적인 버프로 강케가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며 헌터와 몬스터의 승률은 집단과 플레이 양태에 따라서 극단적으로 움직이는 등 게임 경험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된 경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볼브의 가장 큰 문제는 각각 맡은 역할(헌터에서 몬스터까지)을 모두 다 잘 수행해야 하는데, 5명이 모두 잘하는 게임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터틀락의 벨런싱은 기준되는 집단이 없이 그 변동폭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으며, 터틀락이 자신들이 무슨 게임을 만들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스테이지 2의 전반적인 게임 템포는 훌륭해졌다:기존의 게임 시간을 20분에서 10여분 남짓으로 줄인 점 등은 게임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이볼브는 죽었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죽어서 그 시체를 토양으로 삼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어야 했었다. 터틀락이 스테이지 2를 만든 것은 어찌보면 자신들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애정과 헌신,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차마 죽이지 못하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스테이지 2 역시도 이볼브 원판과 유사하게, 아니 조금 더 낫지만 다를바 없게 흘러갈 것이다:사람들은 흥미에 게임을 잡아보겠지만, 오래 붙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임은 직관적이지 못하고, 재밌는 경험을 위해서 갖춰져야 하는 허들이 너무 높으니까. 그리고 결국은 하는 사람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이볼브 2를 위해서 이볼브를 빠르게 죽였어야 했었다. 그것이 스테이지 2에 대한 가장 합당한 평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