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찰리 '버드' 파커, 1920년 캔자스 시티 출생 1955년 보스톤에서 알콜 중독 및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 35년간의 짧은 생애 동안 그는 빠른 속주와 거침없는 연주, 무엇보다 자유로운 예술혼이 기반인 '비밥'이란 재즈 장르를 만들었으며, 재즈가 딴따라가 아닌 음악으로 인정받기를 갈구했다. 그 후,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재즈 음악가들이 재즈를 발전시켰고, 찰리 파커의 이름은 재즈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카우보이 비밥, 일본 애니메이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 봤을 이름이다. 1998년, 와타나베 신이치 감독, SF 느와르, 옴니버스 형식, 선라이즈 제작, 총 26화 완결. 성인 취향의 애니메이션으로 처음에는 13화 완결이었으나, 후에 26화로 완결. 한국에서는 일본 성우판 보다 한국 성우판이 더 좋다고 평가받는 몇 안되는 애니메이션. 당연히 위의 찰리 파커가 만든 재즈 장르인 '비밥'에서 이름을 딴 작품.

 카우보이 비밥은 정말 독특한 애니메이션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애니메이션도 이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렇지 않을 것이다. 사실 카우보이 비밥을 정의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어떤 애니메이션인가?  이 질문에 가장 현명한 대답은 '카우보이 비밥은 카우보이 비밥이다'라는 다소 선문답적인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옴니버스 식의 내용전개를 보여주는 이 애니메이션은 옴니버스 구조안에 여러가지 다양한 장르적 클리셰를 내포하고 있다. SF, 로멘스, 느와르, 액션, 호러, 코미디, 싸이키델릭까지 다양한 장르가 혼재되어 있다. 

 재밌는 건 이 또한 재즈라는 음악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재즈는 어느 누가 정해진 시기에 만든 음악이 아니다. 19세기 말, 남북전쟁 종료 이후 군악대 해채로 인해 남아돌던 싸구려 중고 악기와 흑인적 감성, 이주민들의 문화가 섞인 다소 잡탕스러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세계 최초의 대중음악으로 군림하였다. 이는 그만큼 재즈가 도시인들의 즐거움, 슬픔, 우수 등의 감성을 잘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양한 인간들, 만남과 해어짐, 슬픔, 공포, 웃음, 즐거움, 애수. 사람이 사는 어느곳이든 간에 사람 사는 이야기는 똑같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연주자들을 만나 독특한 즉흥연주를 이루어낸다. 과거를 버렸지만 결국 과거에 속박된 삶을 사는 스파이크, 현재만을 살아가는 페이, 과거 따위 어찌되어도 상관없다는 제트, 그리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유쾌한 에드와 아인까지. 그들은 만나고 해어지고, 울고 웃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하나의 재즈 연주가 된다.

 원 오브 사우전드(One Of Thousand)라는 개념이 있다. 2차세계대전 때, 하나의 총을 조립할 때 다양한 불확정 변수들이 맞물려 떨어지면서 완벽한 라이플이 탄생하는데, 이것이 원 오브 사우전드다. 카우보이 비밥은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걸작으로 완성되었다. 과거 찰리 파커가 혼자서 비밥 장르를 만들고, 재즈를 재정립하고, 비밥 장르의 끝을 내었던 것처럼. 어떤 의미로는 두번 다시 나오지 못할 작품이란 점에서 찰리 파커와 많은 유사점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선 추억이자 향수로, 더이상 이 이상의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없을거란 점에서는 슬픈 작품이다. 그럼에도 언젠간 이런 감성을 다시 느낄 수 있겠지. See You Again, Space Cow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