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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박스 매거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링크)

노동과 게임의 차이가 무엇일까. 쉬운 대답은 '재미'의 영역이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게임은 재밌고, 노동은 재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단순 명쾌한 답일 수 있다. 하지만 재미라는 것의 개념은 무엇일까? 게임학이나 유희를 다루는 철학에서 유희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진행하였지만, 몇몇 관점에서는 재미를 '학습'의 영역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플레이어들은 학습을 통해서 점차 더 나은 성취를 이루게 되고, 그것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과 게임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노동이나 게임이나 학습을 통해서 더 나은 수준과 경지로 나아가는 과정이 수반되고 충분히 학습의 성취를 통한 재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이란 관점에서 둘 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본다면 배움을 통해서 얻는 재미의 곡선의 짜임새가 각각 짜임새가 다르다는 점, 그리고 노동은 보통 단조롭고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지루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하드스페이스 : 쉽브레이커는 어떻게 보면 게임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폐선된 배를 해체하는 해체자가 되어서 배를 각각 파츠로 잘게 쪼게서 분류하고, 보내야할 곳으로 분리수거해야 한다. 일종의 '케이크 자르기'의 양식을 갖고 있는 게임인데, 즉 '적은 절단으로 효율적으로 조각을 나누는 것’ 이 핵심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본 게임은 여기에 로그라이크 요소를 접목시켜서 배를 무작위로 생성하는 시스템을 넣고 게임 플레이 콘탠츠를 늘렸다. 
 
하드스페이스:쉽브레이커가 여타 게임들과 다른 부분들이 있다면 플레이어에게 정직한 플레이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본 게임은 기본적으로 분리수거 게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배를 용광로/처리기/폐품 그물로 나눠서 수납해야 돈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하나의 배를 큰 덩어리로 잘라 나누기 보다는 최대한 부품 단위로 잘게 자르고, 그 부품들을 한 데 모아서 각 분리수거 장소로 보내야 한다. 전반적으로 게임의 템포는 느린 편인데, 파츠를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분리수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테더 기능을 얻을 때는 템포가 일시적으로 빨라지긴 한다.  
 
앞서 하드스페이스:쉽브레이커에서 로그라이크 요소가 접목된 무작위 생성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였다. 배마다 급이 있어서 각 급에 맞는 위험 요소들(전기 배터리, 반응로, 연료 탱크 등등)이 존재하는데, 본 게임에서는 이 위험 요소들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다. 때문에 같은 급의 배를 분해하더라도 경험 자체가 달라진다. 또한 모드에 따라서는 퍼머데스(영구적 죽음) 요소도 들어간다. 플레이어는 회사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상태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며, 플레이어가 쓰는 장비나 여러 요소들은 모두 비용 및 이자로 청구된다. 이 빚이 너무 쌓이게 되면 게임 오버가 되기 때문에 매번 게임 플레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꾸준히 내는 것이 중요하다. 퍼머데스 모드의 경우, 몸을 적당히 사리면서 빚을 적당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드스페이스 쉽브레이커는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게임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도 플레이어의 능력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거나 강해지지 않고, 플레이어의 실력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정직하게 배를 분해해야 한다. 대충 배를 분해하려 했다가는 스코어(=돈)이 되는 부품을 상하게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배 전체를 파괴하는 위험 요소들을 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에 비례하여 꾸준하고 신중하게 배를 분해하는 정직함이 요구된다. 대체로 일반적인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빠르게 학습하고 강해지도록 하며, 극적인 게임 템포를 가지는 반면, 본 게임은 그와 반대이기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본 게임은 플레이어를 매우 집중하게 한다. 게임 내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 중 '두 번 재고, 한 번에 잘라라' 라는 대사가  있다. 플레이어가 자르기 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자를 수 있게끔 먼저 측정하고, 자를 때는 과감하게 한번에 자르라는 의미인데, 플레이어의 영혼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 레이저 절단기의 두 가지 절단 모드에서 이 대사의 진가가 드러난다. 레이저 절단기의 절단 기능은 선을 한번에 자를 수 있는 절단 모드와 절단 부위만 핀 포인트로 가열해서 녹이는 가열 모드로 나뉘어진다. 절단 모드의 경우, 넓은 범위를 한번에 절단할 수 있지만 판정에 따라서는 부품에 손상을 입히거나 심지어 위혐요소를 터뜨릴 수 있는 등의 위험성이 있다. 반면 가열 모드의 경우, 자신이 자르고 싶은 요소만 핀 포인트로 잘라낼 수 있지만, 가열해서 녹이는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절단 전에 최대한 재서 절단 모드로 한번에 부품 손상 없이 깔끔하게 부품을 절단하고 안전하게 분해해야하는 부품은 가열 모드로 잘라내는 것이 핵심이다.  
 
하드스페이스 쉽브레이커는 이러한 정직한 구조 덕에 단조로운 노동과 성과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임이다. 드라마틱하게 강해지거나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거나 하는 화끈한 모습은 적지만, 정직하게 관찰하고 잘라내고 최적의 분해 순서를 고민할수록 게임은 플레이어의 노력에 화답해서 정직하게 성과(스코어)를 제공하는 형태다. 비록 최근 게임 트렌드와는 많이 다른 흐름이긴 하지만, 이런 단순한 부분 때문에 여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직한 재미를 준다. 
 
하드스페이스:쉽브레이커는 여타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게임 서사를 보여준다. 게임은 미국 블루칼라 노동계의 삶을 이야기로 구성하는데, 먼 미래에 기업이 국가를 넘어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주인공들이 먼 과거의 유물인 '노조'를 부활시킨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 이러한 흐름이다 보니 게임 전반이 거대한 블랙코미디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작부터 몇억 달러의 빚을 지고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나, 안전 보험이라 하면서 클로닝 시스템에 플레이어를 등록시킬 때 물리적으로 죽여버리고 클론을 만들어버리는 등 실소가 터져나오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보니 컷씬이 모두 대사창이나 일러스트, 이메일 등으로 되어 있어 몰입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하나 하나 잘 뜯어보면 재밌는 것들이 많다. 
 
결론을 내리자면 하드스페이스:쉽브레이커는 분명 재밌는 게임이지만, 이 게임의 재미는 최근 게임들의 재미와는 많이 다른 부분들이 있다. 추천할만한 작품이지만, 이 게임의 특징을 인지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