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 스위치 버전을 기반으로 쓰여진 리뷰입니다.

 

북 오브 데몬은 상당히 독특한 지점에서 시작된 게임이다:북 오브 데몬은 디아블로 1편을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게임의 스토리에서부터 직업 선택, NPC, 분위기, 스테이지 구성 등등 너무 충실하게 디아블로 1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북 오브 데몬의 흥미로운 점은 지금껏 나왔던 많은 게임들이 디아블로 1이 아닌 디아블로 2를 벤치마킹의 모델로 삼았다는 점 때문이다. 디아블로 1편은 분명 잘 만들어진 게임이긴 했다. 하지만 1편의 강점들(무작위성, 케릭터 육성, 어두운 분위기, rpg와 액션의 결합 등)은 디아블로 2를 통해서 장르화되고 공식화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미완성'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장르적으로 더 나은 게임을 버리고 그 이전의 게임을 선택한  북 오브 데몬은 디아블로 2식의 게임(액션과 케릭터 육성, 그리고 아이템 파밍)보다도 디아블로 1의 노스텔지아에 더 기대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희안하게도 북 오브 데몬은 디아블로 1의 장점들을 모두 가져온 게임이 아니다. 디아블로 1은 마우스 클릭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단순화된 액션 감각과 함께 마우스 클릭만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직관적인 이동이 결합된 작품이었다. 이후 수많은 게임들이 디아블로 1의 마우스 게임 플레이를 차용하였는데, 디아 3가 콘솔까지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디아블로의 탑뷰 arpg의 조작 방식은 장르의 특성(액션과 직관적이고 자유로운 이동)을 정립하였다. 그러나 북 오브 데몬은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한하고 '1자 통로'를 앞뒤로 오갈 수 밖에 없는 대단히 제한적인 맵 구조와 이동 기믹을 취하였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점들은 후술하겠지만 게임 경험 자체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북 오브 데몬의 가장 불합리한 점은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1자 통로를 오가는 정도로 제한되어있는데,  적들은 맵 전체를 활용하면서 플레이어를 압박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북 오브 데몬을 플레이하는 내내 플레이어는 적들 사이에 껴서 두드려맞는다. 일반적으로 기존 디아블로나 ARPG에서 이런 상황은 곧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이 장르는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적과 싸우기 때문에, 근접전 케릭터든 원거리 케릭터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싸우는 것은 장르의 핵심적 경험과 동떨어진 부분인 동시에, 게임 플레이 자체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북 오브 데몬은 자유로운 움직임 자체가 불가능하니 좁은 공간에서 서서 적들과 치고받고 하는 지구전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 하며, 게임 시스템이나 체력 회복 수단 등등을 통해서 이러한 게임 플레이 양상을 보조한다. 덕분에 게임은 적극적으로 적을 찾아 죽이기 보다는 체력이 치명적이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적을 하나 하나 말려 죽이는 양태가 되었다.

 

하지만 북 오브 데몬은 시스템으로 보완하고 있긴 하지만, 게임의 플레이 양태가 만들어내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턴과 관련된 게임 시스템일 것이다. 북 오브 데몬에서 플레이어가 스턴에 걸릴 시, 갑자기 화면이 흐려지며 허공에 떠있는 별들을 커서로 클릭하는 미니 게임으로 이어지는데, 게임 플레이 흐름과 완전히 다른 미니 게임이기 때문에 상당히 당혹스럽다. 이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좁은 곳에서 스턴을 거는 적들과 부대낄 때 상당히 더 체감되는데, 연속으로 다섯번 여섯번 스턴 걸리는 상황을 경험하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위와 같은 문제도 있지만, 북 오브 데몬의 콘솔판은 몇몇 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느린 이동 속도와 함께 일반 공격과 스킬의 사거리가 비상식적으로 긴(쉽게 이야기해서 근접 공격으로 한 5m 너머의 적을 공격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것에 대비해서 스킬은 한 개만 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정확한 타겟팅이 힘들다는 점이 북 오브 데몬 콘솔판을 더 엉망으로 일조하고 있다. 콘솔판에서 스킬은 L, R 버튼으로 움직여서 선택하고 사용해야 하는데, 여러개의 아이템과 스킬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보다 패시브 스킬을 잔뜩 껴놓고 스킬 한 두개만 쓰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게임 플레이가 편하다. 또한 자세한 타게팅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몇몇 적 스킬 차단이 어려워져서 게임 난이도를 올리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북 오브 데몬에서 그나마 좋게 봐줄 수 있는 점은 종이 접기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게임 그래픽 스타일일 것이다.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에 화려한 그래픽이 아니더라도 상당한 눈요기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그래픽과 별개로 북 오브 데몬이 지향하는 게임의 스타일이 상당히 애매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게임은 디아블로 1편의 호러와 1편을 패러디한 게임으로서의 패러디 게임 사이에서 상당히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호러가 되기에는 종이접기의 가벼움이 더 인상적이고, 패러디 게임으로 보기에는 개그나 이런 부분들이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북 오브 데몬은 그저 그런 로그라이크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의 길이를 조절하는 요소나 죽지 않고 플레이할 시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시스템 등등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의 베이스가 되는 시스템은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고 버벅거리는 요소들이 다소 있다. 물론 디아블로 1을 해보지 않았거나 ARPG에 대해서 큰 기대감을 가지지 않는 플레이어라면 이러한 게임 성향이 나름 맞을 수 있겠지만, 절대로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지 않고 구매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