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주의, 심각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령이란 무엇일까? 영원히 저주받은 존재? 어쩌면 순간의 고통...

죽은 것도 어떤건 산 것처럼 보인다. 조만간 감정이 정지된다. 

빛바랜 사진처럼. 호박 안의 벌레처럼.


-악마의 등뼈(2001), 기예모로 델 토로


팬텀 페인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환영' 또는 '유령'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게임은 지속적으로 환지통Phantom Pain이나 환영, 유령 등의 이미지를 차용하며, 팬텀 페인의 주요한 스포일러나 이야깃거리들 역시 환영이라는 코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서 팬텀 페인은 환영과 유령을 주요한 테마로 삼은 것일까?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이야기들은 국가와 군대, 그리고 통제(생물학적인 통제, 정보전적인 통제, 핵이라는 슈퍼파워에 의한 통제 등등)에 기반하고 있다.(이에 대한 본인의 분석은 여기를 참조시라) 그리고 팬텀 페인은 메탈기어 솔리드 3와 피스워커에서 메탈기어 솔리드 1편으로 이행하는 미싱링크를 다루는 작품이며, 게임은 핵(3편과 피스워커)에서 생물학적, 정보전적인 통제(1편과 2편, 4편)로 이어지는 일종의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팬텀패인은 환영과 죽음을 통해서 위대했었던(혹은 위대하도록 만들어졌었던 가련한) 영웅의 파멸과 현대 국가와 군대, 그리고 통제사회로 이어지는 당위성을 완성한다.


환영과 유령이란 무엇인가? 이들의 공통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란 것이다:죽어서 떠도는 유령과 단 한명에게만 보이는 환영은 현실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을까? 환지통은 잘려진 사지로부터 느껴지는 고통이며 환영이다. 하지만 그걸 느끼는 사람에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존재하지 않음이 환지통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구원받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인간은 점점 무기력하게 꺾여가며 잔불이 은은하게 퍼지듯이 광기와 분노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불태운다. 팬텀패인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미 피스워커를 통해서 파멸의 전조를 보았다:자신이 믿었던 가치와 멘토를 스스로 죽여버린 죄책감에 몸부림치던 빅 보스가 자신의 멘토(더 보스)를 부정함(총을 버리는 군인, 죽어서도 국가와 인류에 충성하는 자)으로써 마주하는 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고통이다. 그는 자신을 버린 세계와 가치를 버림으로써 구원받을 수 없는 고통과 광기 속에 자신을 던진다. 오히려 그라운드 제로의 사건들은 그가 모두의 믿음과 더 나아가 '자기 자신마저도' 배신하게 되는 외형적인 동기를 제공할 뿐이었다.


그와 반대로 빅 보스의 대적자인 제로 소령은 멘토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빅 보스와 다른 무언가를 보게 된다:그것은 가치에 복종하는 절대적인 시스템이다. 제로 소령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방아쇠를 통제하는 사회였다. 메탈기어 솔리드 4에서 나오는 나노머신으로 통제당하는 군대와 전쟁으로 하나되는 세계처럼, 정보와 행동을 통제함으로써 세계가 더 보스의 유지 아래 하나되는 세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제로 소령은 자신의 이름 그대로 세계의 0을 만들고자 하였다:0은 단순히 공허가 아니다. 0은 바로 기준이다. 0의 존재로부터 현대 수학은 시작되었고, 모든 지표와 수치를 묘사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게 된다. 제로 소령(=사이퍼)이 만들고자 하였던 것은 바로 가치에 복종하는 시스템의 근원, 0이라는 존재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0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다:수학적인 개념으로써 0과 달리, 시스템으로서의 0은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과 양의 영역 사이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유지해야한다. 즉, 시스템으로서의 0은 바로 동사이다. 그리고 동사로써 0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양수와 음수 사이에서 자신을 유지한다. 그 시스템으로서의 0 위에 올려져있는 양수의 세계와 달리, 0의 밑에 깔려있는 끔찍한 무저갱 음의 세계가 존재한다. 밀러가 이야기하였듯이, 스컬페이스는 바로 0 너머의 무한한 무저갱으로부터 왔다. 자신들을 이끌어주었던 구세대의 멘토를 지녔던 제로와 빅 보스와 달리, 스컬페이스는 철저하게 음지의 길을 걸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가 시스템을 불태움으로써 세계를 구한다(인간은 시스템이 아닌 자기 자신의 언어와 무기에 갇힘으로써 진정으로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진다)는 발상을 한 것은 한 미치광이 악역의 궤변이라 할 수 없다. 0이라는 기준 아래 시스템에 포섭되는 세계와 포섭되지 않는 세계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구분하는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스템이자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에 포섭되지 않는 세계를 부정하는 동사로써의 0이다. 음지를 경험한 자가 필요악으로 지옥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부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기에 스컬페이스가 제로와 빅보스를 증오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제로와 빅 보스는 역사의 음지에서 싸웠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은 세계를 구한 영웅이었다. 하지만 스컬페이스는 자신의 이름을 빼앗긴 채, 자신을 부정당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제로와 빅 보스에 대한 스컬 페이스의 증오가 뜬금없다는 평가를 하였는데, 이름을 빼앗긴 자가 자신을 이용하며 어둠 속에서 양지를 꿈꾸는 위선자들(스컬페이스 입장에선)을 증오할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또한 세계를 불지르기 위해서 과거의 영웅들을 먼저 죽이는 것, 구시대 미덕의 잔재를 제거하는 것은 스컬페이스가 꿈꾸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행위다. 그라운드 제로의 괴멸적인 사건을 통해서 과거의 메기솔 시리즈가 어둠 속에서 빛을 꿈꾸는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어둠 속에 파묻힌, 세계로부터 빼앗긴 자들의 이야기로 변화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를 빼앗긴 악인(스컬페이스), 목소리를 빼앗긴 저격수(콰이어트), 일생의 업적을 빼앗긴 참모(밀러), 미래를 빼앗긴 아이(일라이=리퀴드 스네이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믿고 섬겼던 영웅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긴 베놈 스네이크까지 말이다.


빅보스가 자신의 죽음을 속이기 위해서 베놈 스네이크라는 바디 더블을 내세운 것은 빅보스라는 인물의 몰락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기존의 매기솔 시리즈에서 스네이크라는 존재가 상황과 음모에 따라서 '만들어진 영웅'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은 만들어진 영웅 스네이크들이었다. 즉, 메기솔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스네이크는 하나의 밈이자 바이러스 코드인 것이다:단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주변 환경과 의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존재가 바로 메기솔의 영웅 스네이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네이크는 어둠과 빛의 어스름 사이에서 빛을 향해서 나아가길 꿈꾼다. 하지만 팬텀 패인에서 빅보스가 베놈 스네이크를 만들고 그의 업적을 찬탈함으로써 영웅은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과연 빅보스가 사이퍼와 다른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베놈 스네이크가 겪었던 일들은, 그가 받았던 고통은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세계로부터 버려진 멘토를 보고, 그 멘토와 달리 버려진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했었던(피스워커의 마지막 독백에서처럼) 빅 보스가 베놈 스네이크를 만들었던 것은 그가 더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동일하다.


팬텀페인의 스토리는 그렇기에 위대했던 영웅의 몰락이자, 음수의 세계에서 벌어진 세계의 어둠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 코지마는 기존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가 갖고 있었던 빈틈을 채워넣는다. 잔지바랜드 봉기와 아우터 헤븐 봉기에서 두번 죽었던 빅보스가 사실은 각기 다른 인물이었다는 것, 베놈 스네이크와 빅 보스가 서로 분리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팬텀패인의 큰 문제는 어째서 빅 보스의 밈을 이어받았던 베놈 스네이크가 완벽하게 타락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빅보스는 베놈 스네이크를 배신하였다, 하지만 베놈은 어째서 자신 속에 남아있는 일말의 선함을 배신하는가? 그 과정은 팬텀패인은 다루지 않는다. 또한 下편에서 다룰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일라이와 베놈의 관계, 트랜치 레즈녹(=사이코 맨티스)의 존재, 콰이어트의 행방, 언어와 국가, 인간의 관계 등등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빈칸을 남겨두었다. 그것은 게임에 대한 외압(코나미의 콘솔 게임에 대한 태도 등)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언어와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는 下편에서 계속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