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책 이야기





어느 날 사탄을 추종하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사탄의 아들이 태어나는데, 이 아이는 미국 대사 부부에게 입양되어 훗날 지상에서 아마게돈을 일으킬 운명. 그런데 재수없게도 이 아이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각성시킬 임무를 띄고 지상에 파견되었던 악마 크롤리는 실수로 아이를 엉뚱한 사람에게 입양시켜 버린다. 어쨌든 임무는 받았으니 지상을 파멸로 이끌기는 해야겠는데 인간계에서 6천년정도 구르는 사이 락 음악 cd와 무도회와 초밥따위를 꽤 좋아하게 된 크롤리는 직장 옆 사무실 동료쯤 되는 천사 아지라파엘(이 분도 독서광이며 은제 코담배갑과 골동품 가게와 흥미로운 고서들을 좋아한다.)과 리츠에서 술을 마시며 궁리를 하다, 11년동안 미국 대사 부부에게 입양된 아이(사탄의 아이로 알고있는 아이)에게 서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최소한 아마겟돈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아이의 곁에 파견된 정원사와 보모는 각자 모든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잔인함을 열심히 가르치기는 하는데 11년 후 그 소년은 정작 멀쩡한 인간으로(...) 자라고, 그제야 악마와 천사는 아이가 엉뚱한 곳으로 입양된 사실을 알게된다. 이에 크롤리와 아지라파엘은 아마겟돈이 5일 남은 시점에서 사탄의 아들을 찾으려고 하는데...(앤하위키 멋진 징조들 줄거리 요약에서 발췌)


멋진 징조들은 디스크 월드로 유명한 테리 프래쳇과 샌드맨으로 대중문화에 있어서 독자적인 입지를 다진 닐 게이먼의 합작 소설이다. 사실, 반쯤 농담으로 낄낄 거리면서 쓰여진 소설 멋진 징조들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출판되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와 그와 관련된 신화와 성경에 대한 이야기, 문화 등등을 비틀어 만든 패러디 소설이다(심지어 이 소설의 기본 모티브는 유명한 영화 '오멘'-사탄의 아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초점을 맞춘 호러영화-에서 따왔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패러디가 넘처나기에, 이 소설의 최대 단점이자 아쉬운 부분인 '이야기는 재밌는데 패러디가 너무 길어서 분량이 부담된다'라는 문제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소설의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패러디 소설이라고 하지만, '멋진 징조들'의 세계관은 기존의 패러디 소설들이 보여주는 맹렬한 공격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멋진 징조들이 보여주는 시선은 대단히 따스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데, 흔히 기독교를 모티브로 한 패러디 소설들이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의 딱딱한 교리에 대한 격렬한 공격성을 드러내고 비꼬는 쪽이었다면 멋진 징조들은 그러한 공격성에 기초하기 보다는 천사와 악마에서부터 거대한 신의 섭리까지 인간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아주 상식적이고 평범한 토대에서부터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은 테리 프래쳇의 성격이 두드러지는데, 디스크 월드를 통해서 기존의 판타지 세계관을 비트는 작업을 기존의 기독교적 세계관(선과 악, 아마겟돈)으로 변용하여 적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은 인간 '바깥'의 섭리가 인간 내부로 적용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멋진 징조들의 세계는 인간의 섭리가 인간 '바깥'으로 스며든다. 선과 악은 더이상 절대적인 선이나 악의 지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선이나 악이라는 가치를 지탱하기 위한 관료주의적인 '구조'이자 '시스템'이다. 아마겟돈이 도래하자, 아지라파엘에게 아마겟돈에 대한 형식적인 문답을 벌이는 대천사 메타트론(신의 목소리)이나 혹은 조직에 있어서 서열을 중시하는 악마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범우주적인 신의 섭리를 관리하는 관료제 사회의 모습이며, 이들 사이에 끼인 아지라파엘이나 크롤리의 모습은 영락없는 중간관리자들의 고뇌, 그 자체다. 또한 이 종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간들 역시 종말에 어울리는 독특한 케릭터(적그리스도, 마녀 사냥꾼, 심령술사, 마녀 등등...)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설정'이나 '케릭터'에 얽메이기 보다는 인간적인 부분에 뿌리를 내린다. 즉, 이들은 대단히 독특하고 장황하며 종말에 어울리는 뒷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 군상들의 전형이다. 그리고, 이들의 케릭터 조형은 지나가는 다른 엑스트라들까지 확장되며, 이 종말의 이야기는 평범한 인간들의 이야기 그 자체가 된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인간군상의 전형들이 판을 치는 이야기(심지어 악마와 천사까지!)에서 유일하게 비인간적인 존재들은 바로 묵시록의 4기수(전쟁, 기아, 질병 대신에 오염, 죽음)들이다. 인간적인 느낌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이들 4명의 케릭터들은 그야말로 '자연재해' 그 자체와도 같은 느낌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적그리스도인 아담이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모조리 없어졌다는 것, 아담이 죽음만은 없애지 못했고 죽음이 나의 존재는 인간 그 자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소설은 세계와 이야기를 지극히 인간 중심적으로 재구성한다.


닐 게이먼의 특징은 소설 전반에 뚜렷하게 드러난다. 혹자는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대중문화의 (고전적 의미에서)이야기꾼이라 칭송했던 닐 게이먼은 이미 샌드맨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재능을 십분발휘하기도 했었다. 그는 이야기에 있어서 적재적소에 대중문화의 광범위한 인용과 신화의 재해석과 분해, 재결합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히 샌드맨의 경우 동양과 서양의 신화들을 꿈이라는 모티브를 이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멋진 징조들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기독교와 기독교 관련 전설과 신화들을 통해서 드러낸다. 특히 이는 크롤리의 욕망에 탐닉하는 모습에 역사적인 맥락을 부여하는 서술들에서 두드러진다.(벤틀리나 시대에 따라 적응하지만 동시에 일관적인 욕망에 기초하여 시대에 따라 얼굴을 달리하는 그의 탐닉 대상이라던가)


물론 패러디가 아니라 이야기로만 따지면 좀 늘어지는 아쉬움이 있는 책이긴 하지만, 훌륭한 패러디만으로 의미가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사실 이야기가 너무 긴걸 빼면 이야기는 훌륭한 편이기도 하다) 문제는 부모님과 같이 읽는 과정에서 부모님이 느꼈던 그 무한한 지루함이다. 이에 대해서 일종의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대중문화와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대중문화의 기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이런 '해외'의 대중문화를 쉽게 접하고 소비하며 동시에 재생산하지만, 부모님 세대에서는 이러한 해외의 문화'만'이 재생산되는 대중문화의 세태에 대해서 여러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문제제기가 제기되었었다.


이에 대해서 몇마디 첨언이자 사족을 덧붙이자면, 기본적으로 한국이 겪어왔던 지난 중세~근현대사의 굴곡들과 그리고 한국 문화 저변에 깔려있는 '괴력난신에 대한 혐오'가 뿌리깊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본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강력한 유교적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되었는데, 그 조선이라는 사회 내부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 내부에서 다양한 신화와 전설, 이야기들이 살아남아서 후대로 '문자의 형태'로 전승되지 못했었다. 물론 문화라는 것이 문자의 형태가 아닌 구전이나 생활양식, 다양한 풍습 등으로 전해져 내려올 수 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러한 생활양식과 풍습, 구전문화들이 소멸될 수 밖에 없었던 상태를 맞이한다.(그렇다면 반대로 문자와 기록으로 많이 남은 양반 문화는 어떠한가? 라는 문제가 남아있는데 친구는 이는 너무 복잡한 토대위에 세워진 문화이기 때문에 현대 대중문화가 인용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라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또한 현대를 거치면서 밥먹고 사는데 있어서 쓸모없는 신화나 전설 등등의 괴력난신에 대한 증오가 한국 문화 전반에 뿌리깊게 내려박는다. 물론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흔히들 이야기하는 쓸모없는' 이야기나 문화의 소비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대중문화 그 자체에 대한 몰이해가 체감상 더 심하다는 느낌이다(물론 다른 나라 살지도 않았는데 '체감상'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뭣하지만, 문제는 다른 사회에서는 그러한 대중문화에 대한 혐오와 동시에 그에 대한 옹호가 같이 이루어져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면 한국에서는 오로지 혐오 한 측면만 남아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그 코드를 받아들여서, 이러한 패러디를 익히기 보다는 이러한 패러디 자체에 시작부터 거부감이 드는, 뭐 그런게 아닐까 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어서 상태를 복잡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결론을 내리자면, 멋진 징조들은 그 내부의 패러디와 코드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읽기 힘들고 지루한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전지식이 충분하다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물론 그런것들을 감안하더라도 이야기가 심각하게 길어서 살짝 느슨한 감이 없지않아 있다는건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