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엔딩 스포일러 포함.


이 글을 시작하기 앞서서 분명한 사실 하나만 밝히고 시작하죠:라스트 오브 어스는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의 선물이나 완벽한 창조주의 피조물 같은 게임이 아닙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가 명작임을 부정하는 것이라, 이것이 어떠한 '맥락'도 없이 툭하고 튀어나오는[각주:1] 시대의 개척자이자 완벽한 타이틀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하는 겁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흔히들 트리플 A급 게임들이라 불리는 게임 프랜차이즈 치고는 상당히 독보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본적으로 게임의 시스템이나 컨셉 등은 과거에 볼 수 있었던 여러 게임들로부터 차용[각주:2]하게 자신의 구조에 맞게 알맞게 재해석한 작품 쪽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가 지향하는 게임의 지점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근래 트리플 A급 게임이라 알려진 게임들, 거대 자본과 재능있는 제작자들이 결합해서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이런 게임들은 소비자들에게 거대한 스펙타클을 판매하였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지금의 너티독을 있게 해준 언차티드 시리즈의 경우,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를 모티브로 초현실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유적들, 그리고 그 유적에 불질러서 죄다 박살내버리는 아나키즘적인 영상미를 추구함으로서 게이머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게임들은 게이머 앞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고, 그리고 파괴하는데 주력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스펙타클은 이야기와 관계 없이 '과도하게' 소비되기도 합니다. 배틀필드 3를 예를 들어보죠:플레이어가 F-15D 호넷을 조종하는 이 미션은 스토리 자체에 전혀 관계없이 오로지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결국 게이머들은 이렇게 넘쳐흐르는 스펙타클에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주인공을 살아남을 것이며, 악당은 죽고, 갓블레스 마더 뻐킹 아메리카로 귀결되는 스토리[각주:3]는 게이머들에게 스펙타클의 소비로 인한 쾌감이 아닌 피로감을 안겨주기 시작했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바로 이 '명제'를 부정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각주:4] 과거 게임들이 스펙타클을 소비하기 위해서 스펙타클의 뒷배경 정도의 스토리와 최소한의 개연성에 집중했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는 드라마와 스토리를 위해서 게임 시스템과 연출을 재배치합니다. 게임의 스테이지는 과거 게임들이 보여주기 위해서 배치된 거대한 '전시회'들의 연속 같은 공간이었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는 잘 짜여진 TV 드라마나 연극 무대 쪽에 가깝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모든 것은 케릭터의 시야 너머의 거대한 광경에 초점에 맞춰져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듣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게임은 상당히 디테일하고, 대사가 많으며 공간을 조밀하게 구성을 합니다. 


게임 플레이는 전적으로 가혹한 세계를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유저 인터페이스는 최소한도로만 제공되고, 총알이나 무기들은 다른 게임과 비교할 때 터무니 없을 정도로 부족하며[각주:5], 적에게 피해를 입을 때마다 히트백이 상당해서 몸이 빙그르 돌아버리거나 주저앉아버려서 다른 액션 게임처럼 맞으면서 공격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며[각주:6], 듣기모드는 다른 게임의 시야 시스템에 비해서 제한이 많으며[각주:7], 즉사공격을 하는 적들은 게임 내내 흔하게 깔려 있는 등등 게임이 기본 전제로 깔아두는 규칙은 대단히 가혹합니다. 그리고 게임 내의 환경이 가혹해지면 가혹해질수록, 게임은 게이머에게 조엘처럼 현명해지고 신중해지며, 동시에 필요할 때는 잔인해질 것을 요구합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규칙을 필수적으로 이해해야합니다. 클리커는 소리에 민감하고 근접시에 즉사공격을 가하며, 러너는 시야가 있으며, 스토커는 빛에 민감하면서 소리를 내지 않고 멍하게 서있습니다. 인간들은 즉사공격만 갖고 있지 않을 뿐, 모든 조건을 다 갖고 있구요. 플레이어가 이러한 규칙을 이해하고 이들에 맞는 파훼법으로 조심스럽게 접근을 할 때[각주:8], 이 가혹한 게임의 해법이 드러납니다.


규칙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게임 플레이를 잠입 게임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라스트 오브 어스의 게임 플래이는 '숨바꼭질'에 가깝습니다. 이걸 잠입으로 이해하기에는 게임 내에서의 발각-은신의 경계가 상당히 애매하고 불친절하기 때문입니다.[각주:9] 게임의 각각의 스테이지는 다양한 엄폐물들과 보급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플레이어가 우회해서 적을 기습하는 플레이가 상당히 용이합니다. 그러나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가장 쉬운 난이도에서도 골로 가기 십상이죠. 게임은 가혹한 세계와 생존이라는 컨셉과 클리어 가능한 난이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 있어서는 성공적입니다.


게임 플레이와 폭력을 드러내는 방법에 있어서도 라스트 오브 어스는 독특합니다. 기존의 게임들이 폭력을 멋있는 것으로 소모했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의 폭력은 멋지지도 않고, 추하고 잔인하며 동시에 일상적이며 '필수불가결'합니다. 언차티드 시리즈의 근접전을 개수해서 적용시킨 라스트 오브 어스의 근접전은 헐리웃 식의 치고 받는 액션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추하게 발버둥 치는 인간군상들을 그려냅니다. 조엘이나 적들이 휘두르는 각목이나 이벤트 씬에서 몸싸움, 혹은 살인을 할 때의 구도에서 드러나는 미학은 상대방을 죽일 때 비열하게 미소짓는 가학적 변태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생존을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평등한 인간임을 강조합니다.[각주:10] 그리고 이러한 폭력 묘사들은 조엘과 엘리의 생존을 단순한 액션 영화적인 묘사를 위한 장치가 아닌, '어떻게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대재앙 이후의 생존 명제의 어두움을 두드러지게 부각합니다.


기초적인 스토리는 많은 부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모티브[각주:11]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칠드런 오브 맨이 개인적인 무력감과 작은 희망,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류 전체를 향한 희망으로 승화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는 철저하게 조엘과 엘리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게임은 이러한 이들의 관계를 플레이어들에게 설득력있게 제공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예산을 쏟아붓습니다. 격리구역 내에만 있었던 엘리가 세상에 나와서 다양한 것들과 상호작용하거나 조엘에게 물어보는 부분, 그리고 끝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부분은 모션 액팅을 맡은 배우와 목소리를 맡은 성우 모두에게 있어서 엄청난 도전이었을겁니다. 너티독은 이를 위해 언차티드 2,3을 통해서 그들이 쌓아왔던 디테일한 그래픽 테크닉과 정교한 카메라 워크, 그리고 인물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대한 노하우, 배우와 성우, 각본가 모두를 갈아넣었습니다.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게임은 영화가 아니라 잘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며, 몇몇 장면들은 실제 배우가 보여주는 아우라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미묘한 감정에서 복잡하고 터질듯한 감정까지 게임은 잘만든 만화적인 과장과 왜곡을 거친 케릭터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의 연기를 보는 듯한 장면들을 연출합니다.[각주:12] 조엘과 엘리가 여행을 하는 도중에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를 신뢰하게 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합니다.[각주:13]


하지만 게임은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상당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것이 개연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나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바람에 드라마가 미처 구성되기도 전에 게임의 엔딩으로 직결된다는 겁니다. 물론 게임이 보여주는 두 사람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점은, 조엘의 극단적인 선택, 그리고 엘리의 구원과 과거 딸을 구하지 못했던 조엘의 과거와 함께 그의 선택이 인류에 대한 올바름의 문제를 넘어서 개인적인 모티브로 행동하며, 그의 선택이 정당화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조엘 역시 그러한 인류의 구원에 대한 대의를 어느정도 믿고 있었으며[각주:14] 그러한 믿음과 엘리에 대한 사랑이 상충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에 끝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엔딩의 감정선들은 상당히 미묘합니다. 조엘이 엘리에게 거짓말을 했고(사실 파이어플라이는 치료제 찾는것을 포기했고, 너같은 사람은 수십명 있더라) 엘리는 그것이 거짓말임을 눈치채지만 조엘에게 그것이 진실임을 맹세하라고 요구하는 장면은 게임 내내 겪었던 모든 갈등 보다 더 큰 갈등과 파국의 암운이 그들의 관계를 덮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조엘의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엘리의 미묘한 표정을 끝으로 올라오는 크레딧은 이 시궁창같은 내용의 스토리 속에서 해피엔딩을 갈구했던 게이머들에 큰 씁쓸함을 안겨주는 대목이었구요. 그렇기에 라스트 오브 어스의 마지막은 대단히 미묘하며 씁쓸합니다. 개인적으로 이건 배드엔딩에 포함시켜야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결론적으로 라스트 오브 어스는 대단한 게임입니다. 여태까지의 게임들이 거대한 서사, 거대한 담론, 거대한 스펙타클에 초점을 맞췄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는 케릭터와 케릭터 사이의 미묘한 감정, 관계의 변화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잘 다뤄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쌈빡하게 멸망하는 세계를 스펙타클로만 소비하는 게임들에 대해서 또다른 대안을[각주:15] 제시한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딩이 상당히 미묘하기 때문에 클리어 후 참으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이 둘의 관계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 인류의 마지막(The Last of Us)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살아남고 인내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였으면 좋겠습니다.





  1. 그런 게임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본문으로]
  2. 언차티드 3의 전투 방식의 개수, 적은 보급과 서바이벌의 느낌, UI의 최소화와 호러 분위기를 냈다는 점에서 데드 스페이스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는 게임의 지향점, 드라마를 중시하는 트리플 A급 게임이라는 점에서 헤비레인과 유사한 점 등등 [본문으로]
  3. 특히 콜오브듀티와 그 아류작들인 밀리터리 슈팅류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입니다. 웃기는건 블옵 2를 통해서 콜옵은 이를 빠져나가려 하지만 배필3이나 4나 여전히 그게 그거라는 겁니다. 역시 망충한 EA. [본문으로]
  4. 누차 이야기하지만, 라스트 오브 어스는 이것을 '처음'으로 시도한 게임이 아닙니다. 이를 시도하고, 또 성공한 게임들의 사례를 수도 없이 제시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5. 한 종류의 총알을 스무발 이상 가질 수 없으며, 심지어 근접무기 조차 '소모'됩니다. [본문으로]
  6. 심지어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임 내에서는 되도록 안맞으면서 적을 처리해야한다. [본문으로]
  7.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 듣기 범위도 업그레이드 전에는 상당히 작다는 점 등등... [본문으로]
  8. 클리커 앞에서는 천천히 걷고, 스토커 앞에서는 전등을 끄고, 러너의 시야 범위 밖에서 활동 등등... [본문으로]
  9. 보통의 잠입 게임이라면 발각 되었을 때와 발각 이후에 은신하였을 때를 구분할 수 있지만, 라오어에서는 그 둘의 구분이 상당히 모호합니다. 발각 되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다시 은신에 들어갈때(즉, 적이 나를 다시 인지하지 못할 때)를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본문으로]
  10. 물론 데이빗 같은 놈은 제외로 합시다. 페도 새끼... [본문으로]
  11. 닳고 닳아버린 주인공, 여전히 생존하고 있지만 인간성 측면에서는 이미 끝나버린 인류,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여자아이, 그리고 이 여자아이를 '밀수'해서 인류에게 희망과 구원을 가져다 준다라는 이야기 구도 등등... [본문으로]
  12. 벤야민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아우라'의 이야기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죠. 물론 벤야민은 아우라가 대량복제를 통해서 제거된다고 보았으며, 게임 그래픽으로 치환된 배우의 연기는 아우라에서는 일백만광년정도는 떨어져있을지도 모릅니다만, 마치 실제로 살아움직이는 사람의 연기를 보는듯한 게임내의 케릭터들을 기존의 게임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13. 물론 이러한 과정을 비슷한 소재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 텔테일의 워킹데드에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전적으로 라스트 오브 어스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보기는 미묘합니다. [본문으로]
  14. 엘리는 그야말로 인류의 희망입니다. 게임 내내 보여주는 면역인 엘리의 존재감은 기름에 불지르듯이 퍼져나가는 감염사태 덕에 희망도 인간성도 없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본문으로]
  15. 왜냐면 이런 게임이 라스트 오브 어스가 '처음'이 아니니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