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약간의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1.

기어즈 오브 워 라는 게임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상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랜서 기관총입니다. 반동을 줄이기 위한 개머리판도 없는 원시적인 총 디자인에 돌격소총인지 분대지원용 화기인지 알 수 없는 무식한 장전량, 결정적으로 총열 밑에 무식하게 생긴 전기톱을 달아놓고 적을 문자의미 그대로 썰어버리는 기행까지 보여줍니다. 문자 의미 그대로 '단순, 무식, 과격'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에 총기의 비주얼이나 총기가 저지르는 그로테스크함이나 어느쪽이든 간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죠.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디오는 '전기톱은 과격하니 삭제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픽은 전기톱 '회의'까지 열어가며 '전기톱은 이 게임의 핵심이다. 뺼 수 없다'라고 거절한 일이 있었죠. 랜서 기관총이 기어워 시리즈에서 갖는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기어즈 오브 워 3는 기어워 시리즈의 최신작이자 3부작의 종결작입니다. 일단 제가 기어워는 3편을 처음으로 해보았기 때문에 주감상은 3편 중심이 되겠습니다만, 기어워 시리즈 자체가 지난 5년 동안 눈에 띄는 변화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시리즈 전반에 대한 리뷰로 보셔도 될 듯 합니다.

2.

5년전 기어워 1편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기어워는 게임사상 거의 최초로 엄폐의 개념을 게임에 도입하고, 현재 유행하고 있는 숄더뷰 형식의 TPS를 정립한 게임이라 할 수 있죠. 에픽의 당시 코멘트는 '진짜 총싸움의 느낌을 재현하고 싶었다.'라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도 1인칭 시점의 몰입감과 3인칭 시점의 넓은 시야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면서 그당시 다른 게임들은 재현할 수 없는 놀라운 게임성을 구축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어워가 지향하고 있는 엄폐형 액션 게임에는 게임 컨셉상 빠지기 쉬운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고착' 상태입니다. 기본적으로 차폐물이 마뜩찮은 FPS에서는 게이머가 게걸음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적들을 상대해야 하지만, 엄폐를 할 수 있는 게임에서는 단순하게 엄폐 하나만으로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적을 상대할 수 있죠. 그렇기에 적당한 곳에 엄폐한 후에 적이 고개를 내밀때만 자신도 고개를 내밀고 총질, 적이 총을 쏘면 나도 엄폐하면서 기다리고, 다시 적이 고개를 내밀면 총질.....이런식의 게임 진행이 무한히 반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어워 후의 엄폐 시스템을 채용한 게임들에서는 스테이지 구조나 특수한 시스템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였습니다만, 기어워는 아주 단순하고도 무식한 방법을 사용해서 이를 극복합니다. 그것은 게임 자체를 아드레날린으로 가득채우는 것이었죠. 게이머가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 엄폐를 지향하는 것보다 게이머가 넘치는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을 잠시 제쳐두고'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엄폐물에서 다른 엄폐물로 진격하고, 머리를 내밀고 총질을 하고 육탄돌격을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기어워 게임 플래이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게임의 지향점을 보조하는 시스템으로 로디 런의 연출, 빠른 재장전, 처형 시스템 등등이 있습니다만 기어워의 게임성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을 꼽자면 그것은 바로 랜서의 근접공격 장면입니다. 기본적으로 총질 게임에서 근접공격은 특별한 시스템이나 추가사항이 없다면 별 의미가 없는 부수적인 시스템인데다가, 공격을 성공해도 큰 메리트가 없죠. 게다가 엄폐하고 있는 적을 향해서 큰소리로 덜덜 거리는 랜서의 전기톱을 들고 접근하는 것은 자살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하지만 기어워의 랜서의 근접 공격은 이 모든 단점을 극복하고 상쇄시킬만한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공했을때 나오는 연출과 쾌감입니다. 공격에 성공하면 랜서의 전기톱으로 적을 어깨에서부터 허리 밑까지 두동강 내는데,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와 함께 적이 지르는 비명과 자신의 케릭터가 지르는 고함, 그리고 절단 낼때의 진동과 절단'음'은 가히 현세대 게임 연출 중에서 최고 수준입니다. 한 두번정도 랜서로 적을 절단내는데 성공하면, 싱글이든 멀티든 간에 기회가 되면 엄폐물 뒤에 적이 소드오프 샷건을 들든 붐샷을 들든 랜서의 전기톱을 키고 닥돌하는 자신을 발견할 정도니까요.

3.

게임 싱글은 스토리는 '적은 외계인이 아니라 원래 지하에 살고 있던 토착 괴물'이라는 설정이라는 점만 빼면 그닥 놀라울 것이 없는 스토리라인입니다. 3편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매 장면마다 현상황을 초월해버린(.....) 주인공 마커스와 그의 친구들의 개드립이 정식 스토리라인보다 흥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로커스트는 중세시대 유럽인들이 몽골인들에 대해 느꼈을법한 공포와 혐오감과 증오가 뒤섞인 디자인으로, 야만적인데다가 역겹고 게다가 어디서 끌고 오는건지 온갖 혐오스러운 생물체들(특히 지네...)로 군대를 조직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적어도 로커스트를 디자인할 때 나치, 좀비 다음으로 신나게 죽이고 그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대상을 기획했다고 한다면 저는 대성공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 대 로커스트라는 구도이기는 하지만 1, 2편까지는 로커스트를 죽입시다 로커스트는 나으 원쑤 였다면 3편은 사실은 인간도 나쁜놈이었어 구도로 가는 바람에 좀 미묘합니다. 이는 3편에서 로커스트가 E-데이를 일으키는 이유가 나오고, COG가 초호화 대피시설을 지어놓고 바깥의 로커스트랑 인간 및 램번트가 모두 죽을 때까지 뻗팅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플래이어들은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별 죄책감없이 로커스트들을 랜서로 썰어버리면서 다니지만요(.....) 다만 3부작의 끝임에도 불구하고 떡밥 회수(로커스트 기원 등)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친절합니다. 차후 DLC를 노린듯합니다만...이는 두고 봐야겠죠.

멀티는 싱글의 손맛을 그대로 잘 살렸습니다. 다만 다양한 대결 모드 지원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팀 데스매치룰이 목표 킬수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든데스 처럼 한쪽을 전멸시키는 형식의 게임이라서 좀 그렇습니다. 초보나 좀 재수가 없는 경우, 연속으로 죽을 수도 있는데 이때 뭐하나 해보지도 못하고 팀전멸, 게임 셋이 되니까요.

그보다 기어워 3의 멀티의 꽃은 호드 모드입니다. 5명이서 타워 디팬스 처럼 50웨이브의 적을 막아내는 형태의 모드인데, 2편에서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미 큰 인기를 끌고 있었죠. 3편에서는 이를 추가 발전 시켜서 건물을 설치하고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는 등의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덕분에 전작에 비해 어떤식으로 적을 막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머리를 굴려야 하는 부분이 더욱 강화되었죠. 이런 비슷한 모드로는 레포데의 서바이벌 모드를 들 수 있겠으나, 레포데의 서바이벌 모드는 진짜 플래이어 보고 죽어봐라 라는 느낌으로 진행되는데 반해서(보통 서바이벌 맵 금매달이 9분 전후인데, 그쯤되면 그 좁은 맵에 탱크가 4마리 이상 기어다니니.....), 호드 모드는 어렵기는 하지만 클리어 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입니다. 물론 하드코어한 게이머들을 위해서 난이도 조절도 가능합니다.

호드모드의 성공에 힘입어서 기어워 3는 새로이 비스트 모드를 추가하였는데, 이번에는 로커스트 입장에서 상대방을 공략하는 것. 물론 상당히 재밌고, 머리를 써야하는 부분이 많지만 문제는 역시 인간들 앞에서 AI는 대단히 멍청하다는 점과 12 웨이브라는 짧은 분량 때문에 뭔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게임이 끝난다는 점은 치명적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왠지 DLC로 분량을 추가할듯한 느낌이(.......)

4.

이번작은 언리얼 엔진의 극한을 보여준 작품이라 평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고기덩어리와 선혈이 난무하는 작품과 블레이드 앤 소울의 육덕진 김형태 작가의 화풍, 그리고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 코믹스 느낌의 그래픽 등하고 비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전반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기어워를 넘어설 작품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시종일관 무언가 터져나가고 피가 튀고 고기덩어리들이 날아가는데도 불구하고 프레임 드랍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게임 내 그래픽도 훌륭합니다. 특이하게 카메라가 줌인되거나 사물 디테일적인 측면을 보기 시작한다면 '음?'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만, 그럴일은 몇몇 컷씬을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사운드 부분에서는 랜서의 묘한 딱총음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완성도는 훌륭한 편. 사실 다른 것들도 괜찮지만 랜서로 적을 갈아버릴때 음향만으로 이미 충분히 사운드 부분은 만점을 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5.

이래저래 모든 것을 종합하여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한 기종에서만 수백만장을 팔아치우는 독점작의 위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이 게임의 유일한 단점은 시리즈의 잔인함이 갓 오브 워나 모탈컴뱃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설적인 수준이라는 점인데, 사실 잔인함 이라는 요소를 기어워 시리즈에서 제외하면 게임의 매력이 반으로 떨어지기에 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잔인함을 극복한다면 대단히 재밌는 작품입니다. 엑박을 가진 분들이라면 꼭 필히 구입하셔야 할 타이틀이라고 저는 추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