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일반적 레이싱 게임과 그리고 몰락

레이싱 게임은 게임이란 장르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게임의 한 장르입니다. 주로 차량이나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조작하여 경쟁자 보다 더 빠르게 결승지점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가진 장르로 레이싱 게임이란 장르의 등장 이후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꾸준한 인기를 받고 있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레이싱 게임은 그 장르의 등장 이후로 한번도 메이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물론 게임 장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FPS나 플랫포머 처럼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적은 없었죠. 게다가 레이싱 장르는 점점 사양 장르가 되는 추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레이싱 장르는 더이상 올라갈, 보여줄 수 있는 발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제부터 리뷰할 스플릿 세컨드가 그러한 통념을 뒤집지만, 레이싱 게임은 아주 단순한 목표-상대방을 추월하여 더 빨리 목표지점에 도달한다-와 게임을 클리어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정형화된 루트를 얼마나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느냐의 레이싱 게임 플레이 스타일, 마지막으로 점점 진짜 차를 조작하는 조작감을 따라가기에 생기는 복잡함으로 진입장벽이 높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스플릿 세컨드-본격 폭파 레이싱

한때, 스플릿 세컨드가 출시 되기전, 블랙락 스튜디오는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죽어버린 레이싱 게임계를 다시 살릴 것입니다. 물론 이는 대단히 도발적인 발언이었죠. 프로젝트 고담 레이싱를 만든 비쟈 크리에이션, 그란 투리스모의 제작사인 폴리포니, 더트 시리즈를 만든 코드 마스터즈과 같은 유수한 제작사들도 말하지 못한 그 말을, 그들 앞에서는 거의 신생 제작사에 다름 없는 블랙락 스튜디오가 기존의 레이싱 게임계를 두고 선전포고를 한 꼴이었죠.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스플릿 세컨드는 블랙락 스튜디오가 그러한 큰소리를 뻥뻥칠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스플릿 세컨드는 동명의 가상 TV 프로그렘인 스플릿 세컨드에서 세계 최고의 스턴트 드라이버를 가린다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레이싱 게임으로, 기본적으로 레이싱 게임의 진행 방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서킷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물들을 폭파시켜 경쟁자를 제거하는 독특한 방식의 레이싱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독특한 진행과 함께, 스플릿 세컨드는 장르적 특성에서 많이 벗어난 특이한 게임이기도 합니다.

먼저 스플릿 세컨드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바로 조작감입니다. 물론 시뮬레이션 레이싱이 아닌 아케이드 레이싱 중에서도 간소한 HUD와 조작버튼을 가진 게임이 많으나 스플릿 세컨드와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복잡한(?) 게임들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흔한 속도계 조차 없는 레이싱 게임은 거의 스플릿 세컨드가 최초일테니까요. 허드는 차의 뒷 범퍼에 간소하게 게이지(후에 설명할)와 남은 바퀴수, 순위만 적혀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액셀과 브레이크를 제외하면 클러치나 사이드 브레이크 조차 없는 단순한 조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간단한 조작을 통해서 게임은 속도감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고난이도 기본기(?)인 드리프트도 게임 내에서는 액셀과 브레이크, 조작키만으로 직관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스플릿 세컨드는 복잡한 조작을 포기하고 레이싱의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재미인 속도감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스플릿 세컨드 역시 레이싱 게임이기 때문에 레이싱 게임의 영원한 테제이자 한계인 완벽한 주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아무리 조작이 쉬워도, 결국은 서킷 내에서 일어나는 경쟁이니까요. 하지만, 스플릿 세컨드는 대단히 혁신적인-아마도 게임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변혁 TOP 10에 들어갈 수 있는-변화를 꾀합니다. 

뻥! 뻥! 뻥!

스플릿 세컨드는 드리프트나 주행에 따라서 일정량의 폭파 게이지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폭파 게이지를 사용함으로서 서킷 곳곳에 깔려있는 장애물 및 폭발물을 폭파시켜 앞서 나가는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아예 서킷의 형태를 바꿔버립니다. 이는 여태까지 나왔던 그 어떤 레이싱 게임에도 부합하지 않는 독특한 시스템입니다. 물론 마리오 카트나 카트라이더 같은 게임들은 아이템을 이용해서 경쟁자를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서킷 자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죠. 하지만 스플릿 세컨드는 서킷에 영향을 줌으로써 레이싱 게임의 근본 개념, 완벽한 주행의 재현을 뒤집어 엎어 버립니다.

 일단 레이싱 게임은 결과적으로 고스트와 나의 싸움으로 귀결됩니다. 즉, 컴퓨터가 보여주는 완벽한 주행을 불완전한 인간이 얼마나 재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되죠. 그렇기에 나와 경쟁자의 싸움은 서로의 경쟁이 아닌 얼마나 고스트에 근접하는가가 중요한 것이죠. 물론 레이싱에서 완벽한 주행이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이것이 기본적인 베이스입니다. 그리고, 점점 조작이 실재 차량에 근접해지고, 서킷의 상태, 날씨, 다양한 요소들이 들어가면서 완전한 주행에 도달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서 초심자와 매니아의 차량 사이 거리도 늘어나기 시작하구요. 그렇기에 레이싱 게임의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레이싱 게임을 하는 사람은 특수한 매니아층으로 구분되며, 레이싱 게임 자체가 사양 장르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스플릿 세컨드는 플레이어가 서킷을 통제합니다. 즉, 서킷은 더이상 완벽한 주행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닌,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이 되며, 플레이어는 완벽한 주행보단 뒤에 따라오는 경쟁자와 치열한 심리전을 펼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스플릿 세컨드에서 가장 위험한, 아슬아슬한 자리에 놓인 것은 바로 1등입니다. 1등은 2, 3등에게 반격할 수는 없지만, 2, 3등, 심지어는 8등까지 1등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내 주행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일발역전의 기회를 주어 게임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들고, 특유의 스릴과 중독성을 갖게 됩니다. 게다가 여태까지 나왔던 그 어떤 게임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1등과 꼴지 사이의 묘한 긴장관계를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스플릿 세컨드는 기존의 페러다임 내에서 소재와 요소를 끊임없이 바꾸고 재생산한 레이싱 장르의 기반부터 때려부순 속 시원한 변화라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결과적으로 스플릿 세컨드는 그들이 이야기한 목표-레이싱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에 부합하는 멋진 게임입니다. 레이싱 게임에서 복잡한 조작을 제거하고, 단순한 조작으로 레이싱 게임의 최고의 매력인 속도감과 곡예레이싱을 즐기게 만들었죠. 동시에 플레이어가 서킷을 통제하는 진행으로 게이머는 더이상 서킷 내에서의 완전한 주행이라는 명제에 사로잡히지 않은 체로 화끈한 레이싱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주행 자체가 스트레스 요소가 아닌 즐거운 것으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레이싱 게임 팬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 게이머들에게까지 어필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스플릿 세컨드는 서킷을 바꾼다는 개념으로 인해서 큰 단점을 만들고 맙니다. 그것은 바로 어렵다 라는 것이죠. 사실, 게임 자체의 조작이나 주행이 어려운 건 아닙니다. 문제는 폭발하는 장애물을 피하는 것이죠. 게이머는 항상 장애물들을 아슬아슬한 수준에서 피합니다. 아무리 노련한 게이머라도 채감 시속 200km로 달리는 상태에서 폭발하는 장애물들을 피하는 것은 절대 쉽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레이싱 게임에서 완벽한 주행이란 테제를 뒤집은 서킷 변형 시스템이 게임의 난이도를 한층 올려버린 것입니다. 물론, 게임 내에 나오는 장애물들은 대부분 패턴이 있고, 그에 따라서 폭파시키는 타이밍이나 쓸수 있는 타이밍이 존재합니다만, 그걸 다 외운다는 것 역시 상당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스플릿 세컨드는 상당히 재밌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레이싱 게임의 고질적인 문제점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플릿 세컨드는 산 것을 절대 후회하게 만들지 않는 게임입니다. 앞서 지적하였다 시피, 기존 레이싱 게임의 문제점(?)들을 속시원하게 뒤집은 기념비적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제가 아예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블랙락이 어떻게 해결하는가의 문제가 있겠지만, 그들이 호언장담한 것의 반은 이미 성취되었으니 저는 앞으로 블랙락 스튜디오라는 곳의 행보를 기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