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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kimtag 님이 넘기신 바톤입니다.

 저번주에 받은 바톤이지만,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늦어버렸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몬헌 때문에 많이 늦어졌습니다. 근데 그렇게 열심히 해도 매진고피는 안나오잖아? 난 안될꺼야, 아마....



1.최근에 생각하는 'BONES'

 사실 예전에 본즈는 저와 취향이 맞는 작품을 만드는 집단이었습니다. 라제폰으로부터 시작해서, 강철의 연금술사,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 오란고교 호스트부까지 일본 애니이긴 하지만 독특한 감각과 센스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냈고, 적절한 오락성과 주제의식을 적절히 버무릴줄 아는 회사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생각하는 BONES는 한마디로 진정한 '오타쿠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좋아하는 분야에서 소재를 뽑아 작품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자기만의 코드를 집어넣을 줄 아는 독특한 집단이라구요.

 물론 제가 높게 평가하는 애니메이션 회사 4군데ㅡ본즈, 프로덕션 I.G, 매드하우스, 가이낙스ㅡ들도 나름대로의 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IG 쪽은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매드하우스는 이것저것 닥치는데로 만들어내지만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가이낙스는 오타쿠 적인 소재를 유쾌하게 표현하는데 재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즈는 그들 중에서도 정말 독특한 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각 작품에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에우레카 세븐은 70~80년대 히피 코드와 애시드 문화의 기조를 토대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입니다. 소울이터는 최근 90년대의 미국 대중 음악이나 문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구요. 아야카시 아야시는 기존의 사극물을 영웅이나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찐따들의 이야기로 재해석한 작품이며, 스컬맨이나 20면상의 딸은 과거 일본 대중문화의 형태를 띄면서 반 제국주의적인 색체를 띈 기이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이런식으로 그들은 자기 작품에 독특한 자기만의 코드를 집어넣는데 성공적입니다.

 사실 이런 해석을 하게 된 것은 스트레인져:무황인담 서플먼트나 에우레카 세븐:포켓 속에 무지게가 가득 의 감독의 코멘트를 듣고 나서였습니다. 실상 에우레카 극장판을 음악적인 리믹스 작품으로 봐달라는 감독의 코멘트나, 다양한 영화에서 인용을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한 줄로 줄이자면, 요즘 제가 느끼는 본즈는 자신의 작품에 다른 회사들과 다른 독특한 코드를 집어넣는, 독특한 집단이라는 겁니다.



2.이런 BONES는 감동!

 저는 원래 감동의 역치가 한없이 낮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감동적인 장면이나 신파적인 장면이 나와도 눈시울을 붉히죠. 사실, 제가 본즈 작품은 언제나 감동을 받습니다. 사실 본즈 뿐만이 아니라 감상하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대해서 감동을 받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도 다른 작품에 비해 감동을 더 받는 부분이 있다면, 인기에 상관없이 무너지지 않는 꿋꿋한 작화력과 장인정신(심지어 본즈의 흑역사인 아야카시 아야시 조차도 작붕이 일어나지 않았으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진짜 정말 궁금한데, 이사람들은 남들 몇배나 더 좋은 작화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마이너한 작품을 만들고도 먹고살 수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물론 스퀘어 에닉스라는 엄청난 돈줄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의미에선 정말 BONES의 장인정신에는 혀를 내두릅니다. 정말 이 사람들은 모든 자기 작품을 사랑하는거 같아요.



3.직감적으로 BONES

 직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진정한 오타쿠 집단이며, 자신들이 아는걸 제대로 만들줄 아는 집단'입니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 오타쿠 세대의 현 계승집단인 '아키바 계'(친구 표현을 빌린 건데, 도대체 이게 뭘까요...아시는 분은 댓글 좀;)와 다른 예전 시대의 얼마 안 남은 진성 오타쿠 집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상  아키바 계 쪽이라 할 수 있는 교토 애니메이션이나 A.I,C(진짜 이렇게 표현하나요? '이럴 것이다'라는 느낌으로 이야기하는 거라서;)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좋아하는 BONES

 매년 두작품 이상 꼬박꼬박 내주는 것만으로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정말로요.



5.이런 BONES는 싫다.

 저는 항상 강조하듯이, 감동과 만족의 역치가 한없이 낮은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제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기준을 가지고 있는 이상한 인간으로 알고 있는 것도 같은데, 절대 아닙니다. 제게 작품 감상의 기준은 딱 두가지 입니다. 감동과 재미. 이거 두개중 하나만 만족시켜도, 저는 작품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작품의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합니다. 법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무죄추정의 원칙(혐의가 완전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무죄이다=작품이 재미나 감동 둘중 하나만 있어도 무조건 좋은 작품이다)에 입각해서 작품을 감상하는 거죠. 사실, 완벽한 건 세상에 없으니 있는 것만으로 어떻게든 만족하고 살아야지 세상이 편한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어떤 작품이든 왠만한 단점이나 문제점은 많은 부분 눈감아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태까지 본즈의 작품에 실망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여러가지 의미로 경악스러웠던('미친! 이런 소재와 내용이 토요일 오후 6시에 방영된다고?'에서부터 '미친! 뜬금없이 저기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이야기는 왜 나오고 지랄이야!'까지) 아야카시 아야시 마저도 제 감상을 이야기할 때 본즈에게 '실망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경악했다'라는 표현을 쓰죠. 실상 아야카시 아야시라는 작품이 지향하는 지평이 너무 분명했고, 그것이 불러일으킬 결과 또한 분명했습니다(당연히 TV 방영하다 중도하차, 끝은 급하게 OVA로 마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화도 붕괴시키지 않고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그들의 자세를 보고, 저는 그들에 대해서 도저히 실망할 수가 없더군요.

 다만 제가 우려하는 본즈는 있습니다. 그건 현재와 다르게 자기 노선을 잃은 본즈 입니다. 실상 지금의 대부분의 애니 제작사들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루 하루 똥이나 쳐 만드는 기계'에 불과합니다. 대충 허접한 퀄리티로 유행하는 코드 들만 때려놓고 이 작품이 저 작품인지, 저 작품이 이 작품인지 햇갈리게 만드는 작품들을 양산하는 현재의 작태를 저는 대단히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쓰레기들은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명작들은 엄청난 쓰레기 더미 위에 놓인 작품들이죠. 하지만 요즘은....그게 대단히 심하다고 느껴지는군요.

 저는 본즈의 작화력이 나빠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제가 두려워 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애정을 잃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체를 잃는 것입니다. 한때 에반게리온 이후 애니메이션 계에 있어서 가장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들이 나왔던 선라이즈의 황금기(천공의 에스카플로네에서부터 플라네테스 까지)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끝이 나버렸으니까요. 결국 본즈 또한 주류가 되지 못하고, 가이낙스 처럼(개인적으로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등의 시기에 나온 가이낙스 작품은 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서운 슬럼프의 길로 접어드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기에 저는 그들이 언제까지나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6.세계에 BONES가 없었다면?

아마 애니 자체에 관심이 없었겠죠. 사실 상 애니는 본즈로 입문하고 본즈 이후의 다양한 작품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7.BONES 이후에는 무엇이?

 아마도 지금 추세라면 미국 비주얼 노벨이나 유럽식 예술영화 혹은와 결합한 독특한 형식의 하이브리드 코드의 작품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 등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본즈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그런 느낌의 작품이나 코드를 여기저기서 잘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실제 매드하우스나 I.G 쪽에서 추구하는 것도 그런 느낌이 많이 들더군요)



8.마치며....

 딴 건 필요없고, 젭라 에우레카 7 DVD 한국 출시 좀......



바톤 누구한테 넘겨드릴까 음....

일단 giantroot 에게 영국 음악, saddle 님에게 라노베 넘겨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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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전반부(전편 읽으러가기)는 죽은 자와 산 자의 화해, 그리고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그 사이의 희망에 대하여 다루었다면, 작품의 후반은 이렇게 삶을 부정하는 루아콘 교의 가르침과 삶을 긍정하는 나키아미의 가르침으로 나누어져서 대립하는 것이 주요 이야기다.





4.대립-나키아미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핍박받는 민족인 테시크 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히루코를 인도하는(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히루코를 시체에서 추출하는) 루아콘 교의 무녀로 선발되었다. 어느날 그녀는 시체 더미 속에서 한 소녀를 구하게 되고, 루아콘 교의 무녀의 의무를 포기하고 산노바의 곁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과 세상들과 만난다. 한 때 그녀의 이름은 '구름을 베는 자'였지만, 이제 그녀의 이름은 '나키아미'이다.

망념의 잠드라는 작품에서 나키아미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잠드들(라이교와 아키유키, 얀고)의 어머니이며, 아키유키와 더불어서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 내의 중요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루아콘 교의 무녀일 때 배운 지식을 토대로 잠드들에게 가르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공존과 화해를 가르친다.

전번 리뷰에서 다루었듯이, 잠드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있는 중간자적인 존재다. 일단 잠드라는 존재는 작품 내에 등장하는 루아콘 교적인 개념인데, 특이한 점은 잠드에 대한 나키아미의 가르침과 루아콘 교의 가르침이 서로 상반된다는 것이다. 루아콘 교 역시 잠드를 죽은 자와 산 자의 중재자로 본다. 하지만, 루아콘 교는 살아있는 것과 그 현제의 세계 그 자체를 고통이라 보고 이를 죽음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잠드는 산 자를 죽음이라는 영원한 평화로 인도하는 구원자인 것이다.

루아콘 교라는 종교 자체는 불교, 티벳 불교, 이슬람 교, 기독교 등등을 복합적으로 혼합한 종교이다. 루아콘 교의 교리 자체는 '일체는 고통(苦)이다'라는 불교적인 사고방식과 이슬람교의 성지 순례 개념, 기독교의 중보자적인 존재 잠드,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종교적 지도자 '황제'까지 다양한 종교 개념이 혼재되어있다. 이러한 루아콘 교의 교리는 인류 종교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루아콘 교는 인간이 현세적인 고통을 구원받기 위해서 만들어낸 극단적인 종교 개념이다. 즉, 인간은 극단적인 삶의 부정, 즉 죽음으로서 구원하고 새로운 삶은 창출하겠다는 것이다.(물론 현실 종교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유의하시길)

그런 루아콘 교를 표상하는 것이 '황제'라는 개념이다. '황제'는 죽은 자에게 히루코를 심어서 만들어진 잠드이다. 그리고 대순례의 때, 황제가 깨어나 태동굴에 있는 순례자들(요호로기)을 삶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좋은 말로 하면 이렇지, 하루의 표현을 빌리자면 때죽음이다), 다시 한번 삶을 만들어내는 대순환을 일으킨다.




하지만, 나키아미는 루아콘 교의 가르침에 반대로 가르친다. 살고 싶다면, 소원하라. 자신을 잃지 마라. 그녀가 가르치는 것은 명백히 루아콘 교의 '황제(잠드)'와는 다르다. 그녀는 죽은 자들의 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삶의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을 토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으면서 동시에 그 둘을 아우르는 존재인 잠드를 잉태한다.

나키아미는 자신의 여동생인 쿠지레이카와 한 때 자신을 이끌어 주었던 산노바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 끝에 쿠지레이카를 만났지만, 테시크 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잠드가 된 쿠지레이카를 본 나키아미는 더 이상 자신이 고향에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타는 고향을 뒤로한 그녀는 산노바를 만나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태동굴로 향한다. 동시에, 하루와 아키유키도 잠드가 모이는 태동굴로 향하고, 이슈와 라이교는 금강탑을 둘러싼 일전에서 승리하여 히루켄 황제를 쓰러뜨리는 듯 하지만, 오히려 황제를 깨우게 된다. 그리고 히루켄 황제가 깨어나면서, 이야기는 대단원으로 흐른다.




5.화해-대단원,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영웅들의 이야기는 막바지로 흘러 죽은 자와 산 자, 삶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극단적인 세계가 화해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인물은 바로 히루켄 황제다. 히루켄 황제는 누구인가? 그는 그 누구도 아니다(Nobody). 그는 죽은 아이며, 이름도 자아도 없는 존재다. 그는 대순례의 때, 태동굴에 모인 순례자들의 영혼을 삼켜 세계를 정화하고 세계를 유지한다(루아콘 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한 막중한 의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외로워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작품 내에서 황제는 삶에 대한 고통과 공허감, 일체의 삶의 부정적 모습을 환기시키는 존재다.

대순례의 의무에 얽메여, 누구인지도 모르는 히루코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그(혹은 그들? 아니면 모든 죽은 자들?)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자신의 존재의 소멸, 죽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제에게는 '대적자'가 필요하다. 자신과 대칭되는 존재. 황제는 아키유키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가 그의 '의무'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자아를 잃었을 때) 도움을 준다.

황제는 금강탑에서 풀려나(아이러니 하게도 이슈가 황제를 죽이기 위해 설치한 폭탄에 의해)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고, 태동굴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선택한 대적자 아키유키와 대결한다. 이 대결은 상징적인 싸움, 삶의 희망과 절망의 대리전이다. 아키유키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은 대단히 작다. 그러나 황제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부정, 고통은 엄청나게 크다. 아키유키와 황제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며, 거대한 슬픔과 작은 희망의 싸움이다.




나키아미는 산노바와 만난다. 거기서 그녀는 산노바에게 자신이 산노바를 떠나서 깨달은 것들ㅡ작은 희망과 삶에 대한 긍정ㅡ을 이야기 한다. 그녀의 삶에 대한 긍정은 대단히 지독한 긍정이다. 핍박받는 민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수많은 비극을 봐온 그녀가 산노바 앞에서 세상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노바는 나키아미의 의지와 소망을 받아들여, 나키아미가 천년 동안 태동굴을 봉인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키아미는 태동굴에 모인 수많은 히루코들을 정화하고 태동굴을 자신과 같이 봉인하면서 천년 동안의 긴 잠을 자게 된다.




나키아미가 태동굴을 봉인할 무렵, 아키유키와 히루켄 황제의 싸움도 막바지에 다다른다. 황제는 아키유키와의 싸움에서 스스로 사라지길 원했지만, 아키유키는 히루켄 황제에게 자신의 소중한 '이름'을 준다. 희망과 절망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승리하는 것이 아닌, 희망이 절망을 감싸 안으면서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의미('아키유키'라는 소중한 이름)를 부여한다. 결국 황제는 아키유키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아키유키는 다시 한번 자아를 잃고 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어둠은 물러가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게 된다.




6.귀환-Life Goes On.


그리고 영웅은 다시 한번 자신이 구했던 일상으로 귀환한다.




나키아미와 아키유키의 모험은 세상을 구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가? 아니다. 그들의 모험은 세계를 일시적으로 구했을 뿐, 세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남과 북은 그 이후 휴전을 했지만, 여전히 언제라도 다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본질적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언제라도 문제는 다시 생겨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모험은 무의미한 헛수고였을까? 아니다. 이들은 모험을 통해 그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희망'을 찾아냈다. 나키아미가 천년 동안 자신과 함께 태동굴의 히루코를 정화하고, 태동굴을 닫은 것도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소망, 그 소망이 있으면 언제든지 세상이 나아질 희망과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그리고 아키유키는 다시 한번 일상으로 귀환한다. 자신의 이름을 계속 불러주고,
계속해서 마음을 전해주려고 했던 소중한 사람, 하루에게로.



※후기


4개월이었다. 리뷰 하나 완성시키는데 걸린 시간이 4개월이었다. 사실, 리뷰 자체를 포기할 뻔도 했었다. 리뷰를 중간까지 썼다가 뒤엎기도 했었다. 사실 4개월만에 리뷰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쁘다기 보다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실상, 작품의 핵심만을 짚어서 리뷰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작품 속에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향시편 에우레카 7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적어도 10년 안에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본즈는 그러한 나의 전망을 비웃듯이 약 3년만에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방영 당시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26화 하나 하나가 모두 몇 년간 공을 들인 극장판처럼 느껴졌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사실, 4~5개월 정도를 질질 끈 리뷰를 완성하고 나니까, 뭔가 시원 섭섭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드디어 끝냈으니까, 다른 리뷰를 쓰러 갈 수 있겠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자신을 보면서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끝까지 봐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글 솜씨가 좀 괜찮은 사람이라면 더 축약적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글 솜씨가 후달리는 관계로 글이 장황하게 길어진 점을 좀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 올리며, 부족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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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사실 애니 감상이라는 취미 자체는 3~4년밖에 안된 짧은 역사를 지닌(그에 비해 영화나 게임은 거의 10년 이상 되었으니) 취미에 있어서, BONES라는 제작사를 빼놓을 수가 없더군요. 처음으로 본 애니메이션은 누구나 다 그렇듯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지만, 라제폰이나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 오란고교 호스트부, 흑의 계약자:Darker Than Black, 스컬맨, 강철의 연금술사, 크라우 팬텀 매모리, 천보이문:아야카시 아야시, 스트레인져, 망념의 잠드 등등 제 애니메이션 감상에 있어서 기준을 정립하게 만든 회사라 할 수 있습니다.

 BONES라는 회사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의 괴물같은 작화력이 아니라, 그들의 그려내는 작품 하나 하나가 그들만의 철학으로 뭉쳐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본 애니매이션을 여태까지 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감독이나 각본 등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작품의 색체나 내용이 결정된다는 것이었는데(물론 영화나 게임도 그러하지만), 특이하게 BONES라는 회사는 그 회사가 작품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성향이 묻어나온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특이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로서는 매드하우스나 프로덕션 IG도 있지만, 그들은 작가주의적인 감독이나 각본가들에 의해서 작품이 결정되기 때문에 작품 성향의 통일성이 적습니다. 그에 비해서 BONES는 뭘 만들어도 '아 이 사람들이 만들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오시이 마모루나 안노 히데야키 등의 1세대 문화의 정신적인 계승자는 BONES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교토나 샤프트 등이 오타쿠 문화의 대변자라고 하지만, 상업적인 코드로서의 오타쿠 코드가 아니라 오타쿠 문화, 그리고 그 근저에 깔려있는 정신의 계승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이런다고 제가 교토나 샤프트를 까는건 아닙니다. 물론 싫어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BONES는 이와 다르게 작품 하나 하나에 오타쿠적인 코드를 집어넣고, 이에 대해서 재해석을 가합니다.

 예를 들어서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은 히피 문화와 과거 1980년대 유행했던 애시드 문화 코드가 기저에 잔뜩 깔려있습니다. 소재에서부터 각종 명칭, 그리고 케릭터와 스토리의 흐름까지 그러한 문화의 영향이 역력하게 드러나죠. 이러한 코드를 그대로 차용하는 것을 넘어서 BONES는 소통과 사랑이라는 이야기로 이를 묶어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우레카 세븐이 1980년대 애시드 문화와 히피 문화를 좋아하는 매니아와 오타쿠들을 위한 잔치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를 모르는 사람까지도 포섭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과거의 매니아적 혹은 오타쿠적인 코드를 이용하지만, 그러한 코드의 인용에서 끝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일반적인 사람들도 같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BONES의 저력입니다.

 그리고 BONES가 더 대단한 점은 그러한 코드의 재발견과 재해석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990~2000년대 서양 팝문화와 음악 코드를 차용한 소울이터(물론 원작이 그러한 색체를 지니기는 했지만), 역사물이라는 코드를 차용한 아야카시 아야시와 무황인담:스트레인져, 복고 코드를 차용한 스컬맨과 20면상의 딸 등 흥행을 하거나 말거나 혹은 이게 요즘 애니의 코드에 맞거나 안 맞거나를 넘어서 항상 그들은 새로운 코드를 발견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BONES는 이번 TAF(Tokyo Ani Festival)에서 신작인 동경 마그니니튜드 8.0(http://tokyo-m8.com/)의 제작을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는 TVA로 지진 재난물을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제가 알기로는 전대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나오는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포켓속의 무지개와 더불어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바랍니다^^


....근데 망념의 잠드 리뷰느으으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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