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기획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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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에르고 프록시를 극도로 비판하는 글입니다. 만약 에르고 프록시를 재밌게 보셨다던가, 인생 최고의 걸작이었다 라고 하시는 분들은 살포시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나름대로 동생한테 퇴고까지 맡기고 좀 글을 순화시키려고 했는데 그래도 글이 험악하게 나오는군요;;





罪惡業 4부-에르고 프록시:세상이 망하더라도 난 에르고 프록시를 까야겠어!

누구나 자신이 여태까지 본 소설, 시, 영화, 애니 등을 통틀어서 최악이었다고 꼽을 수 있는 작품이 있을 겁니다. 친구들하고 농담삼아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의외로 가지가지 작품들이 나오더군요. 4000만 대국민 낚시를 벌인 디워, 임달영이 시나리오를 쓴 한국형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 제로의 게임 버전(한국 게임 스팟 평점이 2.0이었지 아마...),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일반적인 질에도 미치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판타지 소설 등등...다양한 게임과 애니, 소설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진정한 최악은 단 하나, 에르고 프록시 하나뿐입니다.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니까,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어? 그거 각종 커뮤니티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작품을 제 인생 최악의 작품으로 뽑습니다. 그 작품은 그런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되고, 받을 수도 없는 작품입니다. 그냥 망작이 될 뻔한 작품이, '나는 내일 세상이 망하더라도 그걸 까야겠습니다' 수준으로 격상(?)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르고 프록시는 위치헌터 로빈의 무라세 슈코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그 자체만 본다면 평범한 SF 액션 스릴러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돔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돔 밖의 황폐한 환경, 자아를 가진 로봇을 만들어내는 코기토 바이러스, 그리고 인간에게 지혜를 주고 돔이라는 거주 환경을 만들게 한 존재 프록시(대리인)들...이러한 세계에서 과연 프록시는 무엇이고 인류는 어쩌다 이러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또한 또다른 주인공인 빈센트의 자아찾기도 이 과정에 들어가겠군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록시 원을 만나게 되죠. 사실, 애니에 쓰인 상징, 구조 등은 나름대로 괜찮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잘 만든 애니가 될 '뻔'했지요. 사실 에르고 프록시는 잘 만든 애니와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애니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절실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러분은 애니, 소설, 영화 등을 볼 때 가장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까? 케릭터? 주제의식? 영상미? 아니면 서비스 씬이 많은가 여부? 사실, 고전 소설이든 대중 문학이든 아니면 아주 먼 옛날의 전설이나 신화든 간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재미'와 '감동'입니다. 이 세상에 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작품, 그것이 고상한 목적에서 쓰여 진 순수 문학이든 그냥 좀 팔아먹고 갔다버릴 목적으로 쓰인 싸구려 대중 문학이라도 읽는 동안 '재미와 감동'이 없다면 그 작품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읽은 작품이 어떤 감동이나, 재미를 주지 못했다면 그 작품은 어떤 의미로든 간에 실패한 것입니다.

근데 이게 에르고 프록시와 무슨 관련이 있냐 원래 작품이라는 것은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이해하고, 재미나 감동 역시 대단히 주관적인 요소가 아니냐고요? 뭐, 일반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작품이든 모든 사람이 똑같은 감동과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르고 프록시가 변호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에르고 프록시는 절대로 좋게 평가 받지 못할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작품의 태도입니다.

일단 어떤 문학 작품이든 간에,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조를 띕니다. 추상적으로 이야기 하면 재미가 없으니, 한번 상황을 가정해보죠. 여러분은 지금 오후의 따스한 햇볕이 드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있다고 상상해보세요(아니면 술자리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앞에는 여러분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자기에게 커피 한잔(또는 술 한잔)을 사주면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죠. 그러면 여러분은 이야기에 혹해서(혹은 시간이 남아돌았다던가), 그 사람에게 커피를 사주고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이제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ㅡ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서부터 무서운 이야기까지 아무거나 생각하시면 됩니다ㅡ를 들려줍니다. 뭐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여러분은 여러 생각이 들 겁니다. '좋은 이야기인데?'에서부터 '에이 별론데 이거?'까지요.

이것은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에 통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문학 장르든 간에 작가나 화자가 작품 밖의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의 독자, 청자, 시청자 등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독자 등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더라도 청자를 생각해서 그걸 돌려 이야기하거나 청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요. 그러한 기본적인 룰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그 작품은 그래도 기본 이상은 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에르고 프록시는? 제가 본 작품들 중에서 가장 짜증나는 태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마치 깐죽거리는 인간이 와서, 자기 이야기를 두서도 없이 막 늘어놓고 거기에다가 자기는 그 이야기가 정말 재밌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재밌을 거라고 착각을 합니다. 이해를 못했다고 하니까 "그것도 이해 못하냐?"라고 한 다음에 그냥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거기에다가 다 이야기가 끝난뒤 "이거 후속작도 생각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죠. "워낙이 복잡한 상징을 이용하니까 그럴 수도 있는거 아니냐?" 저는 그것에 대해서 단연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에르고 프록시가 무슨 칸느 영화제나 베니스 영화제에 나갈 정도로 대단한 작품인가요? 혹은 알레한드로 조드르프스키가 만드는 초현실주의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애니인가요? 게다가 그런 소위 작품성 있거나 상징을 쓰는 복잡한 작품들도 보고 난 다음에는 어떤 충격이나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근데 에르고 프록시는 전혀 그런게 없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일본 애니 중에서도 나름대로 주제의식이나 분위기를 잡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 중에 잘 만든 작품들은 절대로 자기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시하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에르고 프록시가 이미지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작품도 아닙니다. 남은 건 오직 발상과 분위기인데, 이 발상도 이야기나 주제하고 따로 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에르고 프록시의 문제점은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나 발상이 안 좋은게 아니라 애니를 진행하는 작가와 제작사입니다. 사실 주인공들이 나와서 똥폼 잡으면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 해도, 아무리 진지한 분위기와 멋진 아이디어들이 나와도 이 작품에서 캐릭터들이나 이야기 구조는 그러한 고민을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애시당초부터 이 애니의 목적은 자기 머릿속의 망상을 풀어내는데 있는거지,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애니 내에 쓸데없이 많은 실험은 이야기를 더 산만하게 만들고, 사람을 짜증나게 만듭니다.

사실 제가 위에서 짚은 정도에서만 에르고 프록시의 문제점이 끝났으면 제 인생에서 더 이상 에르고 프록시를 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에르고 프록시는 두가지 죄를 더 저지릅니다. 그것은 에르고 프록시만의 잘못이 아니라 무라세 슈코와 감상자들의 죄이기도 한데, 하나는 무라세 슈코가 위치헌터 로빈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간들이 에르고 프록시가 마치 대단한 작품성을 가진 애니처럼 평가한다는 것이죠.

무라세 슈코의 위치헌터 로빈은 에르고 프록시의 대칭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대단히 잘난 척 하지 않고 로빈의 감성에 초점을 맞추고, 게다가 사근사근 조용하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반면 에르고 프록시는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한 다음에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죠. '도대체 내가 이 애니를 보는거지?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만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렇습니다. 위치헌터 로빈을 보고 난 다음에 이 애니를 본다는 것은....거의 재앙입니다. 사실 같은 감독의 작품을 본다는 것이 원래 전작의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걸 정 반대로 달려나간다는 것은 시청자에게 큰 반칙과 죄를 범하는 것이죠.

그리고 에르고 프록시는 이상하게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경향이 에르고 프록시를 본 사람들의 전반적인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가 처음 에르고 프록시를 본 다음, 국내 최대의 애니 커뮤니티에서 에르고 프록시의 평을 확인했습니다. 반응이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이게 뭔소리인지 난 알아먹을 수 없다'와 또 하나는 '에르고 프록시 대단히 철학적인 작품임. 까지 마삼.'이었습니다. 후자쪽이 더 비중이 높았습니다. 사실 사람들 반응이 이정도 였으면 그냥 웃고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갈려고 했습니다. 뭐, 원래 사람이 생각한다고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제가 정말로 열받아버린 부분은 작년 어느 회지에 실린 에르고 프록시 분석 글이었습니다. 마치 그 글은 에르고 프록시의 모든 요소를 다 조목조목 분석한 글이었는데, 그 애니를 분노하면서 끝까지 모든 내용을 머리에 새겨넣은 저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쓰는거야? 애니를 보면서 받아쓰기라도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봤을 때는 에르고 프록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심각하게 이상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끝까지 봄으로써 자신을 고문하는 것을 즐기는 메저키스트, 또 하나는 그냥 머리는 쓰기 싫은데 잘난 척은 하고 싶고, 근데 에르고 프록시라는 작품을 보고 '이거야! 이걸로 나는 잘난 척을 할 수 있게 되었어!'라고 날뛰는 사람들 중 하나일 겁니다. 아니면 저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이상한 작품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전 이 작품이 싫습니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그건 아마 저의 과민반응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악몽같은 요소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재앙같은 존재입니다.



덧.동생이 그러더군요. "형, 형 리뷰쓰는 투가 마치 듀나 같아!"
아, 그건 좀 미묘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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