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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노이타미나 시간대 방영작인 동쪽의 에덴이 11화 완결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TVA 이야기 자체의 완결성은 있었다고 보지만, 문제는 역시 이 또한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후에 나올 극장판을 염두에 둔 석연치 않은 엔딩(뒷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엔딩)으로 작품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멋졌습니다.

 저번 감상에서 다루었듯이 동쪽의 에덴은 주인공인 아키라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는가가 주된 이야기의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앞서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구원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동쪽의 에덴을 구원의 대상과 사회의 문제를 젊은 세대(혹은 서민, 빈민 등)가 기성세대(혹은 부르주아)에게 착취당하고 제도화된 틀에 의해서 규격화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애니메이션 전반에 깔려있는 문제 재기 인데, 능력도 있고 야심도 포부도 있지만(예를 들어 사키와 클럽 부원들이 만들어낸 휴대폰 사이트, 니트의 낙원 '동쪽의 에덴') 사회적인 제약과 그러한 자신의 재능을 실천할 재원이 부족하기에 젊은 세대들은 좌절하게 됩니다.

 이는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낙오와 사회 정체화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도 끼도 있고 패기도 있는 젊은 세대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1학년 때부터 대기업 입사를 위한 소위 스펙 관리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사회에 알아서 머리 숙이고 들어가지 않으면 사회에서 낙오되는(히키코모리, 백수, 니트, 뭐 기타 등등) 세태를 여지없이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쪽의 에덴에서 문제 삼는 이야기는 비단 일본 시청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습니다.

 '동쪽의 에덴'은 여기서 동화같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구원자, 타키자와 아키라 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젊은이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실현화 시키는 추진력을 부여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진력으로 젊은 세대들은 이 답답한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을까요? 작품은 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봅니다. 결국 젊은 세대란 집단은 하나 하나가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으로 모여 있으면 자기들 편한대로 행동하는 등 개개인 보다 못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익명성 등의 방패 뒤에 숨어서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까지 합니다.(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로 인해서 아키라는 좌절하지만,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의 저력을 긍정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 세대의 구심점을 만드는 것이죠. 그것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면서 책임지려 하지않는 이 세계에서, 모든 책임을 떠맡는 존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작품 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왕이 없는 나라의 왕자님'이죠. 그리고 아키라는 스스로 이 자리에 올라 모든 책임을 부담하기로 결심합니다.

 마지막 11화에서는 이러한 파편화된 젊은 니트들의 아키라라는 구심점을 만나 어떤 기적을 불러일으키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만명의 집단 지성을 통해 일본 전국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는 부분은 동쪽의 에덴의 전 에피소드 중의 최고의 명장면. '젊은 세대란 것이 문제가 많기도 하지만, 뭉치면 정말 놀라운 저력을 보여준다'라는 것을 작품 내에서 피력하고 싶은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의 구원이라는 주제의식에서는 코드기어스 시리즈가 연상이 되기도 합니다만, 코드기어스 시리즈가 힘은 있지만 우매한 대중, 그리고 거의 모든 케릭터들이 주인공 루루슈의 체스말의 의미 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기분이 나쁜 작품입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은 더럽게 잘난 몇명의 사람에 의해서 움직인다(그게 설령 사실이라도 기분 나쁜 명제입니다) 라는 것을 작품내에서 열심히 피력하기 때문이죠. 코드기어스 엔딩도 결국 그 이야기의 연장선상 입니다(세상 사람들이여! 날 미워하라! 그러면 평화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동쪽의 에덴은 대중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코드기어스보다 동쪽의 에덴이 훨씬 뛰어나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엔딩이 석연치 않은 관계로 뒷이야기가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서 이번 TVA의 완성도도 같이 엇갈린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왕이 없는 나라의 왕자님'이란 개념은 어떤식으로 실현 될 건가? 과연 서포터는 누구인가? Mr.Outside, 아토 사이조는 진짜 살아있는걸까? 작품에서 나온 세레손은 6~7명 정도인데, 나머지 세레손은 어디있는걸까? 석연치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작품입니다. 노이타미나 시간대에 처음으로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한 점이나 설정이나 장르적인 다양한 시도들은 높게 평가를 해야 합니다. 올해 최고의 작품...까지는 아니고(이미 망념의 잠드가 차지했으니까), 올해 신선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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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동쪽의 에덴은 노이타미나에서 현재 방영중인 09년도 4월 신작입니다. 공각기동대 SAC의 감독인 카마미야 켄지와 허니와 클로버의 원화가인 우미노 치카가 다시 만나서 만든 작품으로 애니의 작화나 분위기, 케릭터에서 허니와 클로버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여태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서스펜스와 순정장르의 결합이죠. 줄거리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하나는 세계를 구하는 게임에 참가하고, 그 와중에 기억을 잃은 아키라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가는 추리 및 서스펜스적인 축과 그리고 사회 초년생 사키-기억을 잃은 아키라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연애적인 축으로 나뉩니다.

서스펜스 부분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바로 아키라가 처해있는 부조리한 상황입니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억을 잃기 전에 이미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100억 엔으로 썩어빠진 일본을 구해야 하는 게임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의 의지로 기억을 지웠고, 자신이 기억을 지운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행적을 되짚어 올라갑니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ex.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창, 현기증 등)과 제한적인 인식에 근거한 추리극이라는 측면에서 히치콕 영화와 많은 부분 유사합니다.(주1) 아키라가 처해있는 세계를 구하는 게임, 세레손,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리고 스스로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이라는 상황은 아키라 본인으로서는(일단 현재까지는) 부조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으로써 자신이 잃은 기억을 되찾아 올라가기 위해서 제한된 기억과 단서에 근거해서 추리를 하죠.

재밌는 점은, 이러한 기억을 되찾아 올라가는 과정이 아키라가 의도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데스노트에서 L을 죽이기 위해서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멀쩡한 척하는 라이토와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아키라는 세계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기억을 지웠고,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그러한 이유와 마주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키라가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구할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이 세상을 구하기위해서 해결해야할 문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사키와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사회 초년생인 사키가 보는 세상의 부조리함 혹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관계, 혹은 현대사회의 매정함이 주된 이야기의 축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5화 마지막 장면ㅡ사키가 회사 면접에 떨어지고 나서 아키라에게 이야기하는 장면ㅡ에 근거해서 추측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잃기 전 아키라가 2만 명의 니트(2만 니트 대군?)를 사회로 회귀시켰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은 아키라가 기억을 지웠다는 점(아키라가 사회로 복귀시킨 니트가 '어? 너 결국 기억을 지운거야?'라는 점을 통해서 보았을 때)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4번 세레손 형사의 죽음 장면(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칼 맞고 죽어가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모습),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유토피아를 건립하였지만 세계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은 9번 세레손 등등 애니메이션 내에서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연애 쪽을 살펴봅시다. 사키-아키라의 관계는 좀 묘한 관계입니다. 아키라는 사키에게 있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백마 탄 왕자 같은 느낌입니다. 애니메이션 초반의 사키의 나레이션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아키라는 사키에게 대학교라는 안전한 틀을 막 벗어난 사회 초년생의 불안감과 형부에 대한 감정 등에 대한 해결책 같은 존재입니다. 즉, 사키에게 있어서 아키라는 꽉 막힌 세계에서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하지만 아키라에게 있어서 사키는 그 반대입니다. 처음 워싱턴에서 만났을 때, 알몸으로 기억이 없는 자신과 처음 만난 사람이자 도와준 사람입니다. 즉, 기억을 잃고 난 뒤에 맺은 첫 인간관계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아키라에게 있어서 사키는 기억이 없는 자신과 세상 사이의 끈을 확인해주는 존재인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키와 아키라는 서로에게 있어 각별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키-아키라의 관계를 통해서 위에서 다룬 서스펜스적인 축이 강화(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됩니다. 이렇게 동쪽의 에덴은 서스펜스의 축과 연애의 축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동쪽의 에덴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동쪽의 에덴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동쪽의 에덴은 애니의 템포 자체가 서스펜스나 스릴러 장르라기보다는 순정물에 가까운 템포라는 점입니다. 즉, 이야기 진행이 너무 담담해서 보는 사람을 강렬하게 흡인하는 무언가가 없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 작품 자체는 별로였지만 관객을 쥐었다 폈다하는 서스펜스 측면에서는 대단했던 코드기어스:반역의 루루슈 같은 경우, 매화 매화 관객들은 '다음 화는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으로 애니를 봅니다. 하지만 동쪽의 에덴은 이야기가 진행되도 '어 그런가 보다'라는 느낌입니다. 오히려 전개 자체가 감독의 전작인 허니와 클로버 쪽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니까요.

두번째는 애니가 제기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 또한 대단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애니 내의 사회 문제 해결 과정 및 접근 방법이 맥이 빠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너무 문제 제기 및 해결의 범위가 광범위합니다. 마치 논술 문제를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20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라고 내고, 이에 대한 답안을 '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심성의 것, 전심전령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라고 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가 5화까지 진행되도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자주 시도되지 않은 서스펜스와 순정 장르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해주고 싶습니다. 또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을 어느 정도 눈감아 준다면, 충분히 재밌습니다.

동쪽의 에덴은 주 애니메이션 시청 대상을 오타쿠 집단이 아닌 일반 여성층으로 삼고 있는 노이타미나 시간대에서 처음으로 '11화+극장판'의 시리즈 구성을 한 대규모 프로젝트입니다. 그만큼 감독이 이 작품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저는 보고, 극장판 까지 포함해서 애니메이션 끝까지 기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주1. 예를 들어, 영화 현기증 같은 경우, 주인공은 고소공포증으로 인해서 살인 사건을 목격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현기증으로 인해서 환상을 본 것인지에 대해서 햇갈립니다. 이를 통해서 주인공은 자신의 제한적인 인식에 근거해서 사건을 찾아간다는 것이 영화의 주 내용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제한된 인식과 이를 근거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히치콕 영화의 특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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