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1막에서 총이 등장했다면, 3막에서는 쏴야한다. 안쏜다면 없애버려라"

-안톤 체호프


과거 존 카멕이 "게임에서 있어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이 비중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게임에 있어서 이야기 전개의 본질을 짚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게임에서 스토리란 존재해야 하지만, 그 역할이 핵심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게임은 기본적으로 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한다는 행위 자체를 무시하고 스토리를 구성한다는 것은 게임이란 매체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포르노에서 스토리가 기능하는 모습을 통해서 본다면, 존 카맥이 게임의 스토리를 포르노에 빗댄 것은 화자의 발화 맥락을 넘어선 묘한 맥락을 갖는다:포르노에 있어서 서사는 단순히 성행위의 촬영을 넘어서 성행위를 둘러싼 다양한 성문화적 페티쉬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포르노를 단순한 성행위의 관음으로만 치부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성행위를 구성하는 문화적인 맥락과 관계들이 미약하게나마 폭넓은 의미에서의 서사를(카메라 연출, 묘사 등)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게임에도 같이 적용된다.:게임 내에서의 행위는 게임 내에서의 서사에 의해서 그 맥락이 결정된다. 좁은 의미에서의 스토리텔링을 넘어서 음향과 시각,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어떻게 구성하고 플레이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까지 더 넓은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게임 산업과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게임에 대한 수요도 점점 다변화/고도화되고 있으며, 이전의 게임들보다 더욱 이야기의 소재나 표현 양태에 있어서 고도화된 게임들도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호러 게임이 b급 스플레터 물이나 좀비 호러 등의 감수성을 빌린 바이오하자드나 왁스맨, 엘비라 같았다면, 최근 호러 게임들은 개인의 심리적 공포와 강박관념 등을 다루는 레이어즈 오브 피어나 헬블레이드, 소마 같은 게임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물론 과거의 b급 감성의 게임들이 사라진건 아니다) 그리고 게임이 서사의 소재로 다루는 요소가 추상화되면서 게임 내 서사와 이를 받아들이는 감상 자체도 크게 바뀌었으며, 게임이라는 문화의 폭을 넓혔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실패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게임 내의 서사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직관적인 플레이로부터 괴리되어 플레이어를 의도치 않게 헤매게 만드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레이어즈 오브 피어의 DLC를 플레이하던 한 니지산지쪽 버추얼 유튜버는 한 구간에서 약 15분간을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람이 게임이라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이다:FPS를 플레이하듯이 맵 구석구석을 탐험한다던가, 무기나 아이템을 찾는다던가, 주변 환경을 보고 퍼즐을 푼다든가 하는 등의 모습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초적인 배경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특정 구간에서 15분을 해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째서일까? 흥미롭게도 이는 레이어즈 오브 피어라는 게임의 모호한 게임 서사와 스테이지 구조에 기반하여 생긴 문제였다:레이어즈 오브 피어는 개인의 트라우마에 따라서 스테이지와 세계, 퍼즐을 재구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플레이어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레이어즈 오브 피어는 이 과정을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고 일직선의 워킹 시뮬레이터의 형태로 만들었어도, 그 와중에도 게임 내의 레벨과 서사 사이의 불명확한 관계로 인해서 헤맬 수 밖에 없는 문제가 생긴다. 주인공 딸이 지하실에서 줍는 개와 자신의 사진은 게임 플레이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벽장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플레이어에게 던져지는 이 모호한 이미지와 상징들은 '무언가 정답이 있는데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한다'라는 답답한 인상을 심어준다. 


게임 서사의 특징들은 영화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위와 같은 문제가 두드러진다:영화라는 매체는 관객에게 정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방향적으로 전달하는 특성 덕에 시간에 따른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게임은 관객의 참여 여부와 별개로 흘러가는 영화와 달리, 플레이어가 행동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다. 결국 레이어즈 오브 피어의 경우처럼, 게임 내에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암시적인 정보량(=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이 늘어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야기가 암시적일수록 플레이어가 복잡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은 그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잡음이 발생하여 필연적으로 게임 플레이 경험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플레이어에게 모든 것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설명하거나 안내를 하는 것도 방법처럼 느껴질 수 있다.: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영화와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하는 매체'이기에 플레이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게임 내의 서사에 있어서 유리되었다는 점이다. 영화나 소설 같은 매체에서 감상자는 작품이 제4의 벽을 부수고 관객의 몰입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게임 매체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품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행동하는 것이 매체를 구성하는 주요 요건인 게임이라는 매체는 특성상 '플레이어의 행동'이라는 작품 외적인 요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품 외부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라는 존재는 창작자의 의도와 같이 단일하고 균질하지 못하다:모든 플레이어는 제각기 다른 경험과 문화적 기반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행동하는 양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즉, 몰입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정보가 제공하는 경우, 게임 내 서사 바깥의 플레이어를 강하게 인지하게 되거나 플레이어가 기반하는 환경에 따라서 의도한 것과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 수 있다. 


종종 플레이어를 배려하겠답시고 많은 정보를 던져주다 실패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일례로 콜옵 어드벤스드 워페어를 보자.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버튼을 눌러서 조의를 표하세요"는 잘못된 QTE의 모범적 사례다. 게임은 분명 비극적인 상황에서 전우를 잃어버린 경험에 대해서 플레이어가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자 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QTE가 영화적인 액션 같은 동적 경험에 쓰인다는 점과 그리고 일반적으로 조의를 표하는 그 순간에는 침묵과 묵상하는 장례 문화가 일반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드벤스드 워페어의 QTE는 그야말로 과유불급이었다. 


위와 같은 상황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게임 서사의 난제는 바로 플레이어에게 게임에의 이입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적당한 정보량을 제공하느냐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를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일반적인 플레이어의 손에 닿을 정도로 단순하고 직관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변주를 주어서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주고, 생각에 잠기게끔 만드는 것이 유효하다:예를 들어 바이오쇼크의 Would you Kindly 같은 반전이나 헬블레이드의 서사처럼, 플레이어가 몰입할 수 있는 서사를 제공하고는 결국에는 플레이어의 행동과 진실이 서로 대치되게끔 구성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