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책 이야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가족 독서토론에서 다뤄진 내용을 요약한 감상입니다.


1957년 10월 4일, 구소련은 우주에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렸다. 그리고 12년 뒤,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는 아폴로 계획은 아폴로 11호를 통해 실현된다. 7월 20일, 인류는 달에 첫발을 디딛으며 달에 사는 토끼를 모조리 멸종시키는데 성공시켰으며, 이 모든 과정은 전세계로 생방송되어 미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성공한다. 스푸트니크로 시작된 우주 개발 경쟁은 스푸트니크 쇼크로 불리며 이후 50년 가까이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과학기술 개발의 장을 열었다.


인류가 달에 가기 1년전인 1968년, 스탠릭 큐브릭과 아서 C 클라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공동 작품을 낸다. 스탠릭 큐브릭의 동명의 영화와 아서 C 클라크의 소설은 인류의 진화와 외계 생명체 조우, 그리고 새로운 인류 문명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달에 가기 1년전에 인류의 달기지 건설과 우주 진출이라는 예측한 이 SF 작품은, 소설 전반적으로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 대한 선언적인 예언들로 가득차있다. 소설이 보여주는 하드 SF(철저한 고증에 바탕을 둔)적인 성향과 과학기술 묘사를 제외하면, 소설은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의 시초는 최초의 모노리스와 접촉하고, 스타게이트의 실험을 통해서 지능을 가진 현생 인류가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2001년, 달기지에서 인류는 TMA-1(모노리스)와 접촉하고, TMA-2(스타게이트)를 알아차린다. 인류는 과연 TMA-1의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토성 부근의 TMA-2를 조사하기 위해 디스커버리 호에게 임무를 부여한다. 최첨단 장비와 HAL 9000이라는 AI를 탑재한 디스커버리 호는 HAL의 폭주로 선장 데이브를 제외한 전원이 전멸하게 되고, 더이상 잃을게 없었던 데이브는 TMA-2 스타게이트로 진입해서 새로운 세대의 인류, 스타차일드로 각성한다.


우리가 이 소설을 다루기 전에 알아둬야 하는 사실은, 이 소설이 우주개발의 정점에 이르던 시기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아서 C 클라크의 이러한 선언적인 예언은 현시점에 있어도 SF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폴로 계획 이후로 인류는 상업/군사적 목적을 지닌 위성 개발을 제외하고는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린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는 1970년대 이후, 미국-소련 사이의 데탕트의 도래로 무한경쟁적인 우주개발의 이유가 사라진 점, 우주개발의 또다른 목표였던 ICBM(Inter-Continental Balistic Missile,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개발 완료, 무엇보다 들어가는 돈에 비해서 홍보 말고는 성과가 없었던 우주개발의 진실 등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실, 아서 C 클라크가 이러한 모든 정황을 파악했을리는 전무하고, 우주개발이 결국 정치적인 생명과 함께 끝장날 것을 예견하지 못했었다. 물론, 그걸 아서 C 클라크가 알았다면 그는 이미 신의 영역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서 C 클라크의 이 선언적인 예언은 지금 관점에서 봤을 때도 상당히 정교하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상이 아닌 확고한 과학기술적인 신념과 가능성으로 채워넣어졌다. 우주정거장에 대한 묘사, 달기지, 디스커버리 호, AI, 냉동수면 등등 그는 우주개발에 있어서 필요한 장애물과 해결책에 대해서 공학적인 상상 대안들을 제시한다. 원래 출신 자체가 기술자였던 아서 C 클라크는 스토리를 다소 희생시키면서 까지 이 과학기술과 가능성을 표현하는데 대부분을 소비하였으며, 그렇기에 소설적으로는 스토리가 성기지만 SF 적인 재미와 치열함에 있어서는 다른 SF명작들에 꿀리지 않은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과연 인류에게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예견한 세계가 도래할 것인가? 우주개발이 다시 한번 대 유행을 타게 될 것인가? 이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주개발은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언가라는 점이다. 인류는 항상 미지의 것을 동경해왔다. 모든 사람이 세상이 평평하다고 믿는 순간에도 마젤란은 세계를 한바퀴 돌았으며,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고, 라이트 형제는 사람이 날 수 있다는 것을 공학적으로 증명해냈다. 인류에게 있어서 우주는 이제 얼마 안남은 미지의 영역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불에 이끌리는 불나방 마냥 사람들은 우주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친다. 재밌는 점은 인류의 우주 개발을 가로막는 것은 기술적 한계가 아닌 바로 '비용'의 문제다.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들은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단돈 '30억원'이면 러시아 우주비행센터에서 훈련 받고 ISS(국제 우주 정거장)에 채류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모든 인류가 30억원을 단지 관광 목적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갑부는 아니다. 우주 개발의 문제는 이러한 '비용'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 비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수많은 밴처 사업가들과 몽상가들(이라 쓰고 맨땅에 헤딩하는 개척자들이라 읽는다)은 이 비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많은 연구를 하고 있었다. 지구 중력을 탈출해서 대기권을 돌파하는 제 1 우주속도를 넘기기 위한 가장 전통적인 방법인 탄도체(쉽게 이야기하면 로켓)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들인데, 지상에서부터 대기권 바깥까지 거대한 구조물을 세워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기권을 돌파하는 궤도 엘레베이터(재밌는 점은 이 방법은 아서 C 클라크가 처음으로 상상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일정 고도까지 제트기를 타고 올라간 다음에 비행체를 이용해서 대기권을 돌파하는 방법, 콩코드 여객기 처럼 단독 기기로 대기권을 돌파하는 방법, 심지어 초거대 구경의 '대포'를 이용해서 우주로 나가는 스페이스 건 같은 방법 등등 실패 여부를 떠나서 인류는 아폴로 계획 이후 전통적인 탄도 역학에 의한 지구 탈출의 방법이 아닌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모든 방법이 실제 성공한 것은 아니나, 몇몇 방법들(특히 제트기-비행체의 경우) 비용을 어느정도 절감하는데 성공해서 관광객들이 단독 '3억' 정도만 들이면 대기권 바깥에서 무중력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실험적인 방법들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진행되다 보면, 임계점을 돌파해서 인류가 우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할 수 있겠다.


소설의 하드 SF 적인 성향과 달리, 아서 C 클라크는 '이미 육체나 정신 따위는 옛저녁에 초월해버린 존재가 인류나 다른 문명을 선도한다는' 기묘한 SF 사조를 만든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도 모노리스를 만든 종족들에 대한 묘사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진화의 정점에서 자신들이 걸어온 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앞으로 다른 덜 진화된 종족들을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한 표현물로서 모노리스를 만들었다 라고 묘사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라는 소설 자체는 인류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모노리스와 접촉한 인류가 지능이라는 요소를 이용해서 우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마지막에 스타게이트를 통과하고 신인류가 된 데이브가 인류를 말살함으로서(물론 영화판에서는 좀 다르다고는 하지만) 구인류의 몰락과 신인류의 등장을 다루고 있다. 재밌는 점은 이 과정에서 모노리스가 인류에 개입한 것은 바로 인류라는 종의 한계 상황 혹은 임계점인 부분에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원숭이 인간들은 지능이 없었으면 멸망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TMA-1을 발견한 인류 역시 달까지 개발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실상은 문명에 있어서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TMA-1을 발견해서 TMA-2를 조사하기 전까지는. HAL 9000에 대한 묘사(기계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세계의 한계와 종말?), 60억 인구가 있지만 식량 문제로 조금씩 인류의 존망이 위협받는 상황 등은 2001년의 미래가 장밋빛이 아님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시점에서 아서 C 클라크가 묘사한 어떤 '외부적'인 터닝포인트에 의한 인류의 반강제적 진화는 어찌보면 고깝게도 보일 수 있는 시선이기도 하다. 몇몇은 백인 우월주의와 식민지 세계관의 발로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동생의 의견에 따르면) 기독교적인 메시아 사상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진화의 다양성(인간이 가장 진화한 생물이 아니라, 인간-바퀴벌레-원숭이 등 각자가 현시점에서 가장 진화되었기에 서로 동등하다 할 수 있는)을 무시하고, 진화에 방향성과 단계성을 부여하였다 할 수 있는 아서 C 클라크의 세계관은 전통적인 제국주의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모노리스를 만든 이 외계종족이 아서 C 클라크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의미의 '신'의 존재를 대리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물론 아서 C 클라크의 세계관에서는 이들은 '신에 가장 유사한' 존재기는 하다. 하지만,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인지범위를 아득히 뛰어넘는 무언가 라고 상정할 때, 이들의 존재는 오히려 '인류의 다음 단계' 혹은 '머나먼 인류의 미래'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이라는 개념이 종교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아서 C 클라크의 선지자 종족들은 유물론에서 시작해서 유물론을 아득하게 뛰어넘어버린 미래 그 자체라 표현할 수 있다. 결국 SF의 먼 미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칼 세이건이 이야기한 '우주에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외계인이 있거나, 외계인이 없거나. 어느쪽이든 우리에게는 끔찍한 일이다.'라는 유명한 격언과 아서 C 클라크의 세계관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아서 C 클라크는 신이라는 종교적인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은하 내에 얼마만큼의 지적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에 근거해서 보았을 때,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합리적으로(다른 표현으로는, 부정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0'에 수렴한다 할 수 있다.(물론 드레이크 방정식에 가장 긍정적인 상수를 대입하면 상당한 숫자가 도출된다고는 하지만) 한마디로, 우리와 같은 존재가 저 밖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종교적인 기적'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서 C 클라크는 여기에 종교적인 신비성이 아닌, 우리가 존재해야할 '과학적 당위성'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SF적 상상력의 결정체인 '모노리스'와 먼저 온 '선지자들'의 존재인 것이다. 선지자들은 은하를 떠돌아다니면서 지성을 지닌 종족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그 진화 과정을 옆에서 도와서 방향성을 잡는다. 어찌보면, 이 기적과도 같은 확률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그리고 SF적인) 설명'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면 선지자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실상 신의 자리에 선지자들과 과학을 대체한 것에 지나지 않는가 라는 비판이 존재할 수 있으며, 실제로 아서 C 클라크의 세계관(과 그 이후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SF 작품들)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SF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아서 C 클라크가 쓴 유년기의 끝, 낙원의 샘의 마이너 카피에 불과한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신념이 가득찬 확고한 예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아서 C 클라크가 보여준 인류 문명의 기원은 '과학적인'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종교적인 관점에 과학적인 가능성을 덧붙인 것이 아닌가 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는 아서 C 클라크 소설의 전반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으나, 사실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SF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기믹(인류의 기원과 선지자적인 외계인의 존재)이라는 점은 여전히 아서 C 클라크의 세계관을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했다 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아서 C 클라크가 만들어낸 이러한 사상은 먼훗날에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 깨지게 된다. 테드 창은 그전의 SF 작가들이 하지 못했던, 비과학적인 세계를 과학적인 시스템과 체계를 도입해서 과학적인 세계로 재정립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전에 앞서서 아서 C 클라크와 위대한 SF 작가들이 만들어낸 SF 세계가 밑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바로 그러한 밑바탕을 깔아둔 위대한 작품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