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어느정도 스포가 있습니다)

1.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모든게 끝나있었다. 삶이란 사람에 따라서 단순 복잡 미묘한 것인지라 뭐라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삶이란 공통적으로 '더럽게 빨리지나가는' 속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발을 헛디뎌서 추락할 때 '시-'라고 말하고 '-발!'이라고 하는 순간 나는 벌써 26을 찍고 내일 모레면 30을 내다보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의 청춘도 끝나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꽃답다는 청춘이란 시간에 나는 못해본 것만 잔뜩있어서(예를 들어 연애라던가, 연애라던가, 연애라던가...), 삶이란 불만과 후회의 얼룩으로 가득차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누가 '만족스러운' 청춘을 보내겠는가? 그 누가 하늘과 땅에 맹새코 한점 후회없는 청춘, 대학생활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청춘 역시 인생의 지나가는 지점에 불과한지라 사람은 자신의 청춘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후회할 수 밖에 없다.

2.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여기 가련한 한 대학생이 있다. 그리고 이 대학생은 자신의 대학 2년을 허투로 보낸다. 그리고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고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면 대학 1학년으로 돌아가있다. 다시 삽질한다. 이하 무한 반복. 포인트는 이거다:아무리 주인공이 발버둥을 쳐도, 결국은 주인공은 만족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주인공이 멍청한 것도, 어디 아내의 유혹에나 나올법한 막장 비극의 주인공이라서도 아니다. 해답은 단순하다. 그것이 바로 삶이니까.

다다미 넉장반이 보여주는 세계는 희화화 되어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대학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현실적인,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세계적인 공통이라고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 대학교란 의미심장한 상징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을 적어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바로 대학교뿐이다.(그마저도 취업 및 고시 준비 때문에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그런 학생들이 갖는 판타지란 무엇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동아리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동시에 동아리에서 청순가련한 퀸카 만나서 연애를 하는 것.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학생이 갖는 판타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은? 현실은 어떤가? 현실은 이미 작품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차피 여친은 생길놈은 생기는데, 근데 그건 이 글을 보고 있는 너한테 해당 안되는 사항. 오즈 같은 친구는 덤. 동아리나 대학 생활도 생각과 다르게 고난과 역경의 연속인지라(다행이 나는 해당사항 없지만), 후배들이나 신입은 이해할 수 없는 선배들의 알력다툼, 동아리 회장의 1인 독재체제, 대학을 뒤에서 지배하는 비밀 서클(다른데는 모르지만 우리 대학은 실제 존재한다. 나도 가입권유 전화 오기전에 소주 한병만 덜먹었으면 지금쯤 KKK두건 쓰고 하일 히드라-! 이러고 있었겠지.) 등등 산넘어 산이요, 물넘어 물이로다. 결국 동아리나 대학생활 역시 자기 뜻대로 생각대로 생기지 않는지라 대학 졸업까지 늘어나는 것은 한숨이요, 후회뿐이며, 미래에 대한 걱정뿐이다.

3.

그렇기에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판단한다:어차피 뭘해도 실망할 바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다다미 넉장반의 자취방-에 틀어박히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지가 될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각 에피소드마다 나오는 늙은 점쟁이는 주인공에게 이야기한다:호기는 눈앞에 있으니 놓치지 말라고(그리고 1화에서부터 마지막화까지 받는 복체도 점점 올라간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각 에피소드들의 주인공은 각기 다른 의미로 이 점괘를 해석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것은 마지막 에피소드, 무한한 다다미 넉장반 평행세계에 주인공이 빠지게 되었을 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겠다는 선택을 한 주인공에게 내려진 형벌은 바로 자신만의 세계로 만들어진 감옥에 빠지는 것이었다. 언뜻 보았을 때는 이는 그의 선택에 부합하는 완벽한 '해답'일수도 있다. 완벽하게 '자신'만 존재하는 세계이니까.

 4.

주인공은 그리고 이 다다미 넉장반 은하계를 탐험한다. 옆에 붙어있는 자신의 방의 카스테라를 먹고, 먹고, 또 먹으면서, 그리고 어딘가에 짱박혀 있었던 돈을 줍고, 줍고, 또 주으면서, 읽은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하지만 그런 생활을 지속할수록, 역설적으로 주인공은 무한한 평행세계의 다른 주인공들을 동경하게 된다. 왜일까? 해답은 명확하다. 無선택이란 선택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선택의 유보에 불과하며, 거기에는 '나'라는 존재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택을 통해서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완벽한 자신의 세계에 도착한 주인공은 그저 다른 주인공들의 삶을 훔쳐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주인공들은 어떤가? 동아리 독재체제를 유지하던 선배를 골탕먹인 주인공 1, 선배들 사이의 이상한 알력 다툼에 낀 주인공 2, 단백질 인형을 사랑한 주인공 3, 다단계 종교행사에 참여한 주인공 4 등등...물론 모든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한다. 하지만 여기서 마지막 주인공과 나머지 평행세계의 주인공들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스스로 의지로 청춘을 살았다는 점이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축복이자 저주를 내렸다. 인간은 스스로 끊임없이 선택하지만, 동시에 그 선택에 끊임없이 시달릴수 밖에 없으니까. 각 주인공들 역시 자신의 삶을 선택했고, 스스로의 선택에 실망할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 선택에 따라 인생을 살았다. 인생에 있어서 '호기', '좋은 때'란 그런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감독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은걸지도 모르겠다. 청춘이란 결국 인생에 있어서 자신이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선택해서 살 수 있는 최초의 시기고, 스스로를 누구의 간섭 없이 정의내릴 수 있는 축복의 시기라고. 그렇기에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든, 결과에 상관 없이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5.

무한한 다다미 넉장반의 우주를 해매던 마지막 주인공은 그 의미를 깨닫고 결국 대오각성하여서 무한한 다다미 넉장반의 방 밖으로 뛰쳐나온다. 청춘이란 그렇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개소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산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고, 그것이 청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독일놈이 쓴 시가 있다. '가지 못한 길은 왜 나는 가지 못했는가'. 이건 그저 개소리에 불과하다. 내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충실했다면 결과가 어찌되든 그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청춘이란 시기는 돌이켜봤을 때 결국 후회할 수 밖에 없는 시기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시간을 낭비했다고 좌절하지마라. 그렇다고 청춘을 살았던 시기의 자신의 선택까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니까. 자신이 부정하든 긍정하든, 청춘은 빛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6.

2년전에 나온 이 작품을 지금 리뷰를 쓴다는 것은, 아니 2년 가까이 미루었다가 리뷰를 썼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의미심장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이 리뷰를 내 청춘에 끝을 맺는 의미로 쓰고자 했다. 재작년에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듯이 쓸 기회가 날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이 리뷰를 뒤로 미루었다. 왜일까. 마음한편에서는 내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점은 어느 시점에서든 질질 끄는 것은 멈춰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이 글로서 내 청춘에 종말을 고한다.

이 글은 내 청춘에 받치는 장송곡이며, 마지막 조화다.

청춘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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