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들어가면서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80년대 후반 창작 집단인 '헤드 기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만화 및 TVA, 신 OVA와 구 OVA, 3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을 지칭합니다. 특히 89년에 나온 TVA와 신 OVA, 패트레이버 극장판 1기는 일반적으로 수많은 팬들과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에게서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특히 패트레이버 극장판 1기와 2기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 작품으로, 공각기동대 이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성향을 대표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패트레이버 극장판 2기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느낌이 강해서 '공각기동대 제로'라는 평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만, 사실 오시이 마모루 역시 '헤드 기어' 소속이었고 패트레이버 시리즈 자체에 공각기동대(특히 S.A.C.)의 테이스트가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패트레이버 시리즈가 80년대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패트레이버라는 작품 자체는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일단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질 이번 칼럼의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패트레이버 전 시리즈는 공각기동대 S.A.C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SF 장르라는 점에서부터 특차 2과 2소대와 공안 9과 사이의 유사점, 이야기의 전반적 구조까지 어떤 의미에서는 패트레이버 시리즈 자체가 '공각기동대 제로'라고 칭해질 수 있을 만큼 작품이 서로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일단 상편에서는 주로 TVA와 신 OVA를 기준으로 패트레이버 시리즈의 특징을 규정하고, 하편에서는 극장판 1기와 2기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편에서 덤으로 3기 극장판을 다룰 예정입니다.

패트레이버 TVA와 신 OVA

패트레이버 TVA는 1989년 선라이즈 제작의 4쿨 길이의 SF 애니메이션입니다. 경찰용 로봇과 경찰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 위주의 애니메이션 전개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물론 샤프트-그리폰 에피소드나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상당히 무게있는 내용을 다루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로봇이 일상생활에 들어오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라는 컨셉 하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개성 넘치는 특차 2과 2소대원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일상적인 드라마, 개그, 진지한 이야기, 전투 등의 다양한 요소를 완벽하게 융합시킨 작품으로서 패트레이버 TVA는 8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패트레이버 TVA의 뒷 이야기를 이은 작품이 바로 패트레이버 신 OVA입니다. 신 OVA는 기본적으로 TVA의 노선을 따르고 있으며, 샤프트-그리폰 에피소드의 종결 및 TVA 스토리의 정리를 맡은 작품입니다. 특히 신 OVA 같은 경우, 상당히 독특한 에피소드들이 산재되어 있는데, 특차 2과 정비원들의 파업과 투쟁(?), 고토-시노부 대장 사이의 연애(?) 에피소드 등이 있습니다.





Labor?

패트레이버라는 작품은 기존의 일본 애니메이션과 달리 상당히 독특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일반적인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은 메카닉 또는 로봇 자체가 전투용으로 개발되거나 그 기원 자체가 신비에 쌓여있는 오버 테크놀로지 적인 존재로 많이 등장합니다. 사실,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에서의 로봇 자체가 '보는 시청자(주로 소년)과 로봇 사이의 동화 감정'을 노리고 만든 상업적인 코드적인 성격이 강하죠.

패트레이버는 특이하게도, 경찰용 레이버인 패트레이버 자체가 '레이버'라는 작업용 도구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겁니다. 심지어 애니 내에서 군용 레이버 역시, '레이버'라는 도구의 군사적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설정이죠. 즉, 작품 내에서의 로봇, 즉 레이버란 존재는 기본적으로 '노동'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작품 전반에 전제로 깔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레이버(Labor, 노동)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죠.

사실, 이러한 패트레이버의 설정은 로봇 개념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카랄 차페크의 희곡 '로봇'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봇'이라는 단어 자체가 체코어로 노동을 의미하죠. 즉, 두 작품 모두 '로봇'이라는 개념을 노동하는 도구로 인지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작품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큰 차이점이 있다면, 카랄 차페크의 희곡 '로봇'은 공산주의와 계급투쟁에 관한 암울한 이야기인데 반해서 패트레이버는 도구의 도입으로 생활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거죠.

예를 한번 들어보죠. 패트레이버 첫 화의 도입부를 보면, 운전자가 술에 취해서 레이버를 음주운전 하는 것을 오오타와 아스마가 막죠. 그리고 전반적으로 애니메이션 내에서 나오는 레이버 범죄는 그 자체가 일반적인 범죄를 레이버라는 도구를 통해 확장시킨 형태-도난, 난동, 음주운전, 싸움 등등-로 나타납니다. 물론 샤프트-그리폰 에피소드에서 그리폰 같은 경우는 오버 테크놀로지를 이용해서 만든 실험용 레이버지만, 그리폰의 존재 의의 자체가 그러한 레이버를 개발할 수 있는 개발 인력을 팔기 위한 '도구'라는 점에서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도구와 과학을 통해서 생활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그려낸 전통적인 SF 장르라고 지칭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이전에 다루었던 공각기동대 SAC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과학을 통한 생활과 삶, 인식의 변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패트레이버와 공각기동대 SAC는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SF 장르가 갖는 무거운 분위기를 생활 드라마와 개그를 통해서 가볍게 만든다는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오늘도 그들은 도쿄를 말없이 지킨다.

'경찰'이란 존재는 상당히 독특한 존재입니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선에서 일상을 보호하는 것이 경찰입니다. 즉, 경찰은 이쪽과 저쪽 모두를 보면서 다양한 유혹에 시달리죠. 일반적으로 대중 문화 작품에서 경찰은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경찰의 본연의 임무는 수행하지만 저쪽의 유혹에 넘어가서 부패한 경우와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할 일을 수행하는 경우죠. 전자의 경우는 최근 악한 히어로의 득세로 자주 보이는데 비해서, 후자는 너무 식상하다는 평을 많이 받죠. 당연히 패트레이버에 나오는 특차 2과 2소대는 후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에서 경찰 경비부 소속 특차 2과는 상당히 독특한 존재입니다. 레이버를 이용하는 독특한 부대라는 점에 비해서 수도권에서 한참 벗어난 한지에 기지가 있다는 점, 전반적으로 경찰 내부의 권력 다툼에서 패한 사람들의 귀향지와 같은 성격이라는 점, 그리고 도저히 경찰 같지 않은 인간들이 경찰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 등에서 말이죠. 또한, 도쿄 등지에서 대활약을 하더라도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부대이기도 합니다.

특히 특차 2과 2소대는 상당히 독특한 존재입니다. 레이버에 빠진 소녀, 집을 나온 대기업 총수의 자식, 열혈 바보 경관, 너무 순한 나머지 존재감이 없는 사람, 툭하면 폭발하는 사무원, 완벽주의자, 어딘가 나사가 빠지고 귀차니즘으로 무장한 소대장으로 구성된 2소대는 어떤 의미에서는 2소대가 조직으로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2소대는 관료주의나 시스템으로 무장한 기존의 체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죠.

이는 2소대라는 존재 자체가 경직화된 시스템의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2소대가 움직이는 모습은 관료주의의 대안적 개념 중 하나인 '프로젝트 팀 제도'와 비슷합니다. 역할과 서열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형태죠. 특히 2소대는 서로 극명한 성격 대비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신뢰와 유대로 서로의 문제점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시너지 효과까지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쳐야 하는 제도와 절차를 뛰어넘어서 즉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점에서 관료주의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다만, 그 덕분에 애물단지 취급 받지만)

이와 같이 특차 2과 2소대의 개념은 공각기동대 SAC의 공안 9과의 그것과 많이 비슷합니다. 제도 밖에서 제도를 보완하는 대체적인 조직이라는 것이죠. 물론 패트레이버에서 2소대가 대처하는 상황은 많은 부분 일상적인 문제이지만, 몇몇 상황에서는 공안 9과의 활약과 많은 부분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외 기타-'땅 끝에서'

특차 2과의 존재는 그 외에 다양한 의미에서 독특하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공간적으로 수도권을 지키는 경찰의 본부가 수도권 외곽의 '한지'에 있다는 특징도 있지만, 일반적인 사회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인물들의 조합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독특합니다.

먼저 정비반을 보도록 하죠. 늙은 엔지니어를 대표하는 사카기 반장과 젊은 엔지니어를 대표하는 시게와 기타 정비원들은 큰 갈등 없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내내, 사카기 반장을 통해 드러나는 장인 정신과 젊은 세대의 정신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특히, 신 OVA의 에피소드에서는 사카기 반장과 젊은 정비원들 사이의 생각의 차이가 간접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대리전을 통해서 드러나는 점, 극장판과 전 시리즈 내내 사카기 반장이 컴퓨터를 배우려는 시도를 하는 점 등등을 통해서 말이죠. 즉, 작품 내내 특차 2과라는 공간은 신세대와 구세대가 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표현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작품은 SF라는 장르치고 특이하게 기계에 대한 애착, 수동이나 구식 기계의 우수성을 드러냅니다. 그 중 그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시리즈 진행 내내 특차 2과에 신형 레이버 도입을 두고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1화에 도입되었던 잉그람이 시간적으로 한참 지나고 기술적으로 발전한 수많은 신형 레이버를 제치고 계속 패트레이버로 자리매김하죠. 후에 AV-0 피스메이커가 정식으로 도입되도, 실질적으로 활약한 것은 잉그람이었구요. 심지어 시간적으로 한참 지난 2기 극장판에서는 구석에 쳐박아놓은 잉그람이 막판 대활약을 하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물론, 잉그람 자체가 패트레이버를 대표하는 메카닉이긴 하지만, 잉그람 내에 들어 있는 장인 정신이나 개개인에 따른 경험치의 축적, 기계에 대한 애착 등이 기술적으로 뛰어난 다른 매카닉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 타당한 결론이겠죠.

결과적으로, 작품은 상당히 독특한 시공간과 설정, 접근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일상적인 개그, 블랙 유머, 드라마, 케릭터 등에서도 엄청난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기본적으로 패트레이버 시리즈가 보여주는 특성은 후의 공각기동대 SAC나 공각기동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편에서 극장판 1, 2기를 통해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