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리메이크된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인피닛 워드는 이미 모던 워페어 3과 인피닛 워페어, 고스트 같은 프랜차이즈 내에서도 질 떨어지는 물건들을 만든 전력이 있다. 그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존에 했던 것을 재탕하거나(모던 워페어 3), 남이 한 것을 베끼거나(인피닛 워페어), 심지어 그것보다도 더 엉망인 물건을 만드는 것 정도다.(고스트) 모던 워페어의 리부트는 기존에 했던 것을 적당히 재탕한다는 의미에서 명약관화였다. 단지 그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일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모던 워페어의 리부트가 늦던 이르던 도달하는 결론은 단 하나뿐이다:콜 오브 듀티의 시대가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던 워페어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단 것이다.

 

한 때 역사를 풍미했던 작품이 리부트 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갓 오브 워도 리부트에 가까운 후속작으로 우리를 찾아왔고, 둠 2016년도 둠 3의 분위기를 쇄신하여 새롭게 등장한 전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새로운 리부트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모던 워페어가 만들어냈었던 역사의 터닝 포인트를?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할 것이다. 모던 워페어가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점은 영화적 연출을 싱글플레이에 도입하였다는 점과 킬 스트릭으로 대변되는 빠르게 죽고 죽이는 멀티플레이 사이클을 확립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던 워페어는 분명 이후 10년 간의 경향성을 결정한 중대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콜 오브 듀티가 1년 단위로 발매되는 사이클을 택하였을 때, 이미 이 프랜차이즈의 성패는 정해졌었다. 트리플 A 게임 치고는 다소 짧은 2년~3년 간의 개발 사이클 동안, 콜 오브 듀티는 반보 전진(슬레지해머, 트라이아크), 2보 후퇴(인피닛 워드)를 하며 제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그리고 팬들은 매년 나오는 콜옵에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다른 프랜차이즈들은 모던 워페어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연출이나 방법론들을 찾아냈고, 게임 시장과 소비자도 거기 맞춰서 변화하였다. 배틀필드뿐만 아니라 레인보우 식스 시즈의 등장, 배틀 로열 장르의 성립, 콜옵의 킬 스트릭 시스템을 한 단계 진화시킨 타이탄폴, 무료 플레이 게임을 재정의한 포트 나이트의 강세 등등을 통해 보았을 때, 이미 모던 워페어의 문법을 받아들인 제작자들은 그 노하우를 새로운 형태로 풀어내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요컨대, 콜 오브 듀티가 지금에 와서 모던 워페어의 리부트를 만든다는 것은 광활한 사막 위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더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빠진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이미 세상은 변해서 흘러가는데, 그 위에 인피닛 워드는 모두가 갖고 있는 기본 소양을 한 움큼 더한 물건을 시장에 출시하려 하고 있다. 그 물건이 바로 모던 워페어 리부트다. 그나마 슬렛지 해머와 트라이 아크가 조금씩 변주를 주면서 이 프랜차이즈의 생명선을 조금씩이라도 늘려보려 했었지만, 그 간의 노력들은 이번 모던 워페어 리부트로 모조리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남들은 10년 간 바뀌었는데 이 프랜차이즈는 다시 10년 전 원점으로 돌아가버리겠다고 선언한 꼴이 되었으니까.

 

물론,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매도나 폭언은 자제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모던 워페어 리부트는 외부적인 요인 측면에서도 불안하다. 일단은 기존 블옵 4와의 포지셔닝의 문제다. 블옵 4는 분명하게 멀티플레이만 존재하는 서비스로서의 게임이다. 멀티플레이로서 모든 것을 거머쥐겠다(코옵, 소규모 팀파이트, 그리고 배틀 로열까지)는 블옵 4의 실험은 분명 흥미로웠고, 많은 팬들에게 어필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모던 워페어 리부트는 본 작과 블옵 4 간의 동종 포식을 유발할 수도 있다. 기존 콜옵들도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서 새로운 작품을 하지 않고 이전 작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완전히 멀티플레이에 올인하고, 시리즈 최초로 새롭게 추가된 배틀 로열 모드까지 있는 블옵 4는 콜옵 내에서도 전례가 없는 작품이었고, 콜옵과 팀포 2/오버워치의 경계선상에 놓인 특이한 작품이었다. 거기에 구작으로의 회귀를 외치는 작품을 얹는다면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콜옵 팬덤 층을 반으로 쪼갤 여지가 있다. 즉, 블옵 4의 존재는 모던 워페어 4에게 있어서는 독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그것은 바로 액티비전의 이해가 안되는 행보다:액티비전은 슬렛지 해머-트라이 아크-인피닛 워드의 3년 개발 체계를 트라이 아크-인피닛 워드(+슬렛지 해머)라는 2년 개발 체계로 바꾸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인피닛 워페어나 고스트나 모던 워페어 3 같은 작품을 만드는 제작사를 죽이지 않고 살리고, 슬렛지 해머 같이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도 흥행도 성공한 회사를 역량이 후 달리는 제작사 밑에 붙여준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으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블옵 시리즈를 만드는 트레이아크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다시 2년 체계로 돌아가버렸으니 트레이아크의 운신 폭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블옵 4의 성공 이후 액티비전이 했어야 했었던 것은 새로운 작품을 더 빨리 더 적은 인원으로 뽑아내는 것이 아닌, 팬층이 그 게임을 오래도록 붙잡고 즐길 수 있게끔 지원해야 하는 것이었다. 팬들은 이미 1년 단위로 바뀌는 콜옵 멀티 환경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모드인 블랙아웃도 프랜차이즈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정과 노하우를 쌓아올리는 기간이 필요했었다. 하다 못해 1년 정도는 블옵 4에게 기회를 주고 지속적인 이벤트와 서비스 등을 개최했어야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낡아빠진 명작의 리부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번개처럼 달리는 자는, 천둥과도 같이 무너진다고. 물론, 모던 워페어 리부트는 분명 다른 프랜차이즈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작 블옵 4나 전전작 WW2 정도의 성공이 될 수 있을까? 시장은 점점 가혹해지고, 좋은 게임은 넘쳐나며, 콜옵식 데스매치 위주의 멀티플레이는 이제 구식이 되었다. 이건 이미 블옵 4도 인정한 부분이다. 거기에 탱크 몇대 추가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제 번개 같은 섬광이 천둥과도 같이 무너질 때가 오고 있다. 모던 워페어 리부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랜차이즈의 종말의 서곡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