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Sic Parvis Magna


-프란시스 드레이크


'위대한 것들은 작은 것들에서부터 비롯된다Thus great things from small things' 프란시스 드레이크이 남긴 격언이다. 해적에서 영국 해군의 부제독까지 오른 행운의 사나이. 이 프란시스 드레이크의 이야기로부터 세계의 게임 역사를 뒤흔든 언차티드 시리즈가 시작된다. 콜옵의 영화적 연출을 뛰어넘은 부드러우며 몰입감 넘치는 카메라 연출을 통해서 언차티드는 영화에 근접한 게임이라는 명성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위대한 것들은 작은 것들에서부터 비롯된다 라는 이 격언은 욥기의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라는 경구를 연상케하기도 한다:욥기의 이 경구는 욥을 비꼬는 내용(지금은 엉망인 주제에 나중에 정말 잘 되겠네, 라는 식의)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구 중 하나이다. 프란시스 드레이크의 Sic Parvis Magna와 욥기의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의 차이, 이 한 끝 차이야말로 언차티드 4를 관통하는 핵심 경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언차티드 4의 경우는 후자이다.


언차티드 4는 언차티드 3가 계획만 가지고 실현하지 못했었던 것들을 채워놓은 결과물이다:언차티드 3가 만들고자 했었던 것은 거대한 아레나 형식의 스테이지를 두고 게이머가 한 곳에서 엄폐하며 싸우는 것이 아닌 돌아다니면서 치고받고 하는 능동적인 게임 플레이였다. 그렇기에 언차티드 4에서는 맵은 거대해졌으며, 플랫포밍의 기제로 갈고리를 추가하였으며, 전반적으로 게임은 언차티드 3의 완성형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완성형에 너티독은 라스트 오브 어스의 색체를 뒤집어 씌운다. 문명이 시간과 자연에 파묻혀 사라지는 모습과 그 폐허를 거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등은 기존 언차티드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의 프랜차이즈와 라스트 오브 어스의 두 결합을 보여주는 언차티드 4는 결코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언차티드 프렌차이즈는 인디아나 존스로 대표될 수 있는 '보물 사냥꾼' 장르를 그대로 게임으로 옮겨놓은 시리즈다:역사 속에 파묻혀버린 장엄하도고 거대한 신비, 그리고 그 비밀을 차근차근 쫒아나가는 능숙한 보물 사냥꾼 네이트, 콜옵처럼 카메라를 고정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게이머의 동선과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카메라(동시에 편집증 걸린듯이 설계된 게임 내의 세계)와 그로 인한 몰입감 등등 언차티드 시리즈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게임에 집대성하였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언차티드 프렌차이즈는 언차티드 2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언차티드 2의 등장은 그당시 트렌드인 '영화 같은 게임'을 선도를 통해서 그야말로 시의적절하게 상징하였다. 게임 시스템으로서는 엄폐와 파쿠르를 섞은 단순한 TPS 슈터이지만, 그 단순하지만 분명한 매력이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서 언차티드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내었다.


언차티드 4 역시도 기본적인 골격은 언차티드 프랜차이즈의 전통을 따라간다. 파쿠르로 대변되는 플랫포밍과 적과 싸우는 엄폐형 슈팅을 함께 결합한 언차티드 4는 언차티드 3가 이루어내지 못한 적과 돌아다니면서 싸우는 거대한 스테이지를 구축한다. 물론 언차티드 3 역시도 그러한 특성을 보여주었긴 했었지만, 언차티드 4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완성된 아레나의 크기와 디테일함이다:체감상 여타 게임의 멀티플레이 맵의 1.5배 규모에 달하는 전투 스테이지는 게임 전체의 스테이지 분위기에 맞는 디테일을 보여주며, 간단한 잠입 기제를 도입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갈고리를 이용한 파쿠르를 플랫포밍 스테이지와 슈팅 스테이지 모두에 차용하여 전작들에 비해서 좀 더 '아찔한' 게임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차티드 4는 본질적으로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언차티드 프랜차이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언차티드 4는 사정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그리고 그것은 언차티드라는 게임프렌차이즈를 둘러싼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가 아닌 내부적인 알력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등장과 함께 언차티드를 만들었던 에이미 헤닉 등의 언차티드 제작진들은 모두 줄줄이 퇴사하고, 닐 드럭만으로 대표되는 라스트 오브 어스 파가 너티독을 이끌게 되었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성공은 너티독이 언차티드 시리즈를 통해서 거두었던 성공의 대척점에 있다:언차티드의 거대한 신비와 스펙타클은 라스트 오브 어스를 통해 오밀조밀한 일상과 빛바랜 문명이 되었으며, 드라마는 두명의 인물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었다. 물론 너티독의 전매특허인 자연스러운 연출을 향한 편집증적인 구성은 언차티드와 라스트 오브 어스 양쪽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 이 둘의 기술적인 결합은 불가능한 상극의 결합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너티독이 이 둘의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접합시켰다는데 있다.


기본적으로 언차티드의 내러티브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신비에 있으며, 그 신비를 둘러싸고 적대자와 네이트가 레이스를 벌이는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있으며 이를 최대한 단순하게 풀어내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언차티드는 스토리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게임을 하는데 있어서 몰입감을 줄 수 있는 단순하지만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끊임없이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대담한 이야기 구성으로 가득차 있다:언차티드 2의 오프닝 시퀸스를 보자, 네이트는 총을 맞은채로 누워있고 정신이 드는데, 이때 카메라는 네이트가 마치 열차에 멀쩡하게 앉아있는 것처럼 게이머를 속인다. 하지만 화물이 추락하는 장면과 함께 게이머는 열차가 탈선한 채로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게이머는 왜 네이트가 히말라야 산맥의 탈선한 기차에 매달려 있는지를 이후의 이야기 진행을 통해서 알아간다. 이와같이 언차티드 시리즈는 단순한 이야기를 '이 이후에 어떻게 될까?'라는 부분에 맞춰서 풀어나가는데 특화되었다.


하지만 언차티드 4는 기존의 언차티드 시리즈의 스토리텔링을 거부하고 라스트 오브 어스를 여기에 합치고자 한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언차티드 4는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게임은 이전과 사뭇 달라지게 된다:이 세상의 것이 아닌것처럼 느껴진 신비로운 유적들은 이제 사람이 만들었지만 종말적인 사건에 휘말린 이후 시간에 파묻혀버린 이끼 낀 폐허로 바뀐다. 그리고 보물사냥꾼을 은퇴한 네이트의 일상과 보물을 찾는 비일상이 대비되는 구조로 언차티드 4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론 기존의 언차티드 시리즈에서 나온 악역과의 보물 사냥 레이스나 특유의 자연스러운 롤러코스터 연출도 여전하기 때문에, 언차티드 4는 이전 작들에 비해서 미시적인 연출과 거시적인 연출 양쪽 모두를 잡아야하는 큰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거시적인 연출(파괴되는 장면이나 원거리에서 경관을 잡아내는 장면)은 여전히 언차티드 스러운 부분들이 있다:전작들이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 어떻게 카메라가 움직일 것인지 동선이 파악되었다면, 이번작은 스테이지나 연출되는 장면을 더욱 멀리서 잡아내어서 게이머를 스케일로 압도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케릭터의 감정을 잡아내는 미시적인 연출 장면에서는 언차티드 4는 실망스럽다:언차티드 4는 너무나 많은 시간 동안 말로써 감정과 정보를 전달하려 하고자 한다. 네이트의 형인 샘의 존재는 이러한 언차티드 4의 미시적 연출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케릭터이다:애시당초에 원 3부작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케릭터가 게임의 완벽한 종결을 위해서 급조되어 투입되었다는 느낌이 강한 샘은 네이트가 꿈꾸던 비일상을 대변하는 케릭터이자, 함께 모험을 떠나 나섰던 소중한 형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샘의 문제는 급조되어 투입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이 네이트와 함께 떠든다는데 있다:라스트 오브 어스가 문명이 멸망한 세계에서 조엘과 엘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다루었다면, 언차티드 4의 네이트와 샘(그리고 샘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여타 케릭터들까지)은 플레이 타임 내내 쓸모없는 농담을 따먹는데 주력한다. 함께 모험을 떠나는 소년의 흥분을 게임은 다루고 싶었던 것 같지만, 때로는 게임에 몰입되지 않을 정도로 의미없는 사소한 것들까지 이야기를 해버린다.


일상 파트는 이러한 문제점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엘레나와 네이트가 함께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초반 파트와 그들의 딸이 다시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에필로그 파트 부분은 분명 모험과 일상을 대비하기 위해서 삽입된 부분이다. 하지만 게임은 이 일상 파트를 너무나 디테일하고 길게 늘려버리고 말았다:게이머는 너티독의 크래시 벤티쿳 미니 게임을 일상 파트 두번에 걸쳐서 플레이를 하게 되는데,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즐기는 소소한 행복이란 측면을 너티독은 표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연출 의도와 별개로 이러한 디테일을 너무 빽빽하게 채워넣은 나머지 게이머가 너저분하게 느낄 여지가 다분히 있다. 오히려 이러한 디테일들을 최대한 처내고 집중할 부분에서 집중하여 보여주고, 게이머가 그 여운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면 언차티드 4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디테일'한 이야기가 훌륭하다 평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언차티드를 완성시킨 것은 언차티드 4가 아니라 언차티드 3이었다: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네이트의 집착과 결국은 그것을 털어내버리는 과정을 언차티드 3는 언차티드 특유의 단순함과 몰입감 있는 이야기로 다뤄내었다. 하지만 언차티드 4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대사로 풀어내려 하였고, 그것은 역으로 언차티드 시리즈가 갖고 있었던 단순한 매력을 죽여버리게 되었다. 언차티드 4는 계속해서 게이머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게이머가 게이머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 오히려 언차티드 4는 게이머가 침잠하고 음미할 수 있는 여운의 차원에서 자신이 기원을 두고 있는 라스트 오브 어스보다 더욱 퇴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언차티드 4를 소비하는 소위 게임 미디어들과 게이머들의 행태이다:언차티드 4는 분명하게도 이전보다 퇴보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이론이나 반론의 여지없이 최고의 게임으로 칭송받고 있다. 이는 라스트 오브 어스 때보다 더욱 심각하다 할 수 있는데, 라오어가 충분히 '이런 게임은 처음이다'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호감을 살만한 부분들이 있었다면, 언차티드 4는 명백하게도 라오어보다 덜떨어진 물건임에도 마치 게임의 역사를 새로 쓴것 마냥 칭송받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너티독 조차도 게임 내에서 보여주는 자만심을 통해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크래시 벤디쿳을 미니 게임으로 삽입한 것은 게이머와 게임 사이의 관계(심지어 플레이스테이션 2도 아니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비일상을 꿈꾸는 게이머의 욕망을 언차티드 4 내에서 샘과 네이트의 관계로 풀어내고자 한다는 자신들의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만함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듯이 거시적인 연출에서부터 미시적인 연출까지 죄다 디테일하게 쑤셔넣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며, 모든 것이 정리가 안되서 너저분하게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티독이나 게이머나 미디어나 죄다 언차티드 4를 최고의 게임으로 치켜세워주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물론, 언차티드 4가 돈 값을 전혀 못하는 최악의 게임이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언차티드 4는 즐길만한 작품이다:네이트와 샘이 사이코패스 만담을 하지 않는 도중에는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전작들이 갖고 있었던 매력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게임이고 하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너티독이 이런 실수를 또 한다면, 그때는 아마도 더 심각한 문제가 초래될 것이다. 슬프게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높다:너티독은 언차티드 4를 통해서 이미 자신이 거두고 있는 성공에 취해서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보여지며, 이러한 창작자의 나르시즘은 결국 거대한 재앙을 불러오는 전주곡이기 때문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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