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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전편 읽으러가기)는 죽은 자와 산 자의 화해, 그리고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그 사이의 희망에 대하여 다루었다면, 작품의 후반은 이렇게 삶을 부정하는 루아콘 교의 가르침과 삶을 긍정하는 나키아미의 가르침으로 나누어져서 대립하는 것이 주요 이야기다.





4.대립-나키아미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핍박받는 민족인 테시크 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히루코를 인도하는(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히루코를 시체에서 추출하는) 루아콘 교의 무녀로 선발되었다. 어느날 그녀는 시체 더미 속에서 한 소녀를 구하게 되고, 루아콘 교의 무녀의 의무를 포기하고 산노바의 곁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과 세상들과 만난다. 한 때 그녀의 이름은 '구름을 베는 자'였지만, 이제 그녀의 이름은 '나키아미'이다.

망념의 잠드라는 작품에서 나키아미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잠드들(라이교와 아키유키, 얀고)의 어머니이며, 아키유키와 더불어서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 내의 중요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루아콘 교의 무녀일 때 배운 지식을 토대로 잠드들에게 가르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공존과 화해를 가르친다.

전번 리뷰에서 다루었듯이, 잠드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있는 중간자적인 존재다. 일단 잠드라는 존재는 작품 내에 등장하는 루아콘 교적인 개념인데, 특이한 점은 잠드에 대한 나키아미의 가르침과 루아콘 교의 가르침이 서로 상반된다는 것이다. 루아콘 교 역시 잠드를 죽은 자와 산 자의 중재자로 본다. 하지만, 루아콘 교는 살아있는 것과 그 현제의 세계 그 자체를 고통이라 보고 이를 죽음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잠드는 산 자를 죽음이라는 영원한 평화로 인도하는 구원자인 것이다.

루아콘 교라는 종교 자체는 불교, 티벳 불교, 이슬람 교, 기독교 등등을 복합적으로 혼합한 종교이다. 루아콘 교의 교리 자체는 '일체는 고통(苦)이다'라는 불교적인 사고방식과 이슬람교의 성지 순례 개념, 기독교의 중보자적인 존재 잠드,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종교적 지도자 '황제'까지 다양한 종교 개념이 혼재되어있다. 이러한 루아콘 교의 교리는 인류 종교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루아콘 교는 인간이 현세적인 고통을 구원받기 위해서 만들어낸 극단적인 종교 개념이다. 즉, 인간은 극단적인 삶의 부정, 즉 죽음으로서 구원하고 새로운 삶은 창출하겠다는 것이다.(물론 현실 종교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유의하시길)

그런 루아콘 교를 표상하는 것이 '황제'라는 개념이다. '황제'는 죽은 자에게 히루코를 심어서 만들어진 잠드이다. 그리고 대순례의 때, 황제가 깨어나 태동굴에 있는 순례자들(요호로기)을 삶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좋은 말로 하면 이렇지, 하루의 표현을 빌리자면 때죽음이다), 다시 한번 삶을 만들어내는 대순환을 일으킨다.




하지만, 나키아미는 루아콘 교의 가르침에 반대로 가르친다. 살고 싶다면, 소원하라. 자신을 잃지 마라. 그녀가 가르치는 것은 명백히 루아콘 교의 '황제(잠드)'와는 다르다. 그녀는 죽은 자들의 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삶의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을 토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으면서 동시에 그 둘을 아우르는 존재인 잠드를 잉태한다.

나키아미는 자신의 여동생인 쿠지레이카와 한 때 자신을 이끌어 주었던 산노바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 끝에 쿠지레이카를 만났지만, 테시크 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잠드가 된 쿠지레이카를 본 나키아미는 더 이상 자신이 고향에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타는 고향을 뒤로한 그녀는 산노바를 만나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태동굴로 향한다. 동시에, 하루와 아키유키도 잠드가 모이는 태동굴로 향하고, 이슈와 라이교는 금강탑을 둘러싼 일전에서 승리하여 히루켄 황제를 쓰러뜨리는 듯 하지만, 오히려 황제를 깨우게 된다. 그리고 히루켄 황제가 깨어나면서, 이야기는 대단원으로 흐른다.




5.화해-대단원,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영웅들의 이야기는 막바지로 흘러 죽은 자와 산 자, 삶의 부정과 긍정이라는 극단적인 세계가 화해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인물은 바로 히루켄 황제다. 히루켄 황제는 누구인가? 그는 그 누구도 아니다(Nobody). 그는 죽은 아이며, 이름도 자아도 없는 존재다. 그는 대순례의 때, 태동굴에 모인 순례자들의 영혼을 삼켜 세계를 정화하고 세계를 유지한다(루아콘 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한 막중한 의무와 관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외로워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작품 내에서 황제는 삶에 대한 고통과 공허감, 일체의 삶의 부정적 모습을 환기시키는 존재다.

대순례의 의무에 얽메여, 누구인지도 모르는 히루코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그(혹은 그들? 아니면 모든 죽은 자들?)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자신의 존재의 소멸, 죽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제에게는 '대적자'가 필요하다. 자신과 대칭되는 존재. 황제는 아키유키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가 그의 '의무'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자아를 잃었을 때) 도움을 준다.

황제는 금강탑에서 풀려나(아이러니 하게도 이슈가 황제를 죽이기 위해 설치한 폭탄에 의해)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고, 태동굴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선택한 대적자 아키유키와 대결한다. 이 대결은 상징적인 싸움, 삶의 희망과 절망의 대리전이다. 아키유키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은 대단히 작다. 그러나 황제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부정, 고통은 엄청나게 크다. 아키유키와 황제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며, 거대한 슬픔과 작은 희망의 싸움이다.




나키아미는 산노바와 만난다. 거기서 그녀는 산노바에게 자신이 산노바를 떠나서 깨달은 것들ㅡ작은 희망과 삶에 대한 긍정ㅡ을 이야기 한다. 그녀의 삶에 대한 긍정은 대단히 지독한 긍정이다. 핍박받는 민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수많은 비극을 봐온 그녀가 산노바 앞에서 세상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노바는 나키아미의 의지와 소망을 받아들여, 나키아미가 천년 동안 태동굴을 봉인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키아미는 태동굴에 모인 수많은 히루코들을 정화하고 태동굴을 자신과 같이 봉인하면서 천년 동안의 긴 잠을 자게 된다.




나키아미가 태동굴을 봉인할 무렵, 아키유키와 히루켄 황제의 싸움도 막바지에 다다른다. 황제는 아키유키와의 싸움에서 스스로 사라지길 원했지만, 아키유키는 히루켄 황제에게 자신의 소중한 '이름'을 준다. 희망과 절망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승리하는 것이 아닌, 희망이 절망을 감싸 안으면서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의미('아키유키'라는 소중한 이름)를 부여한다. 결국 황제는 아키유키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아키유키는 다시 한번 자아를 잃고 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어둠은 물러가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게 된다.




6.귀환-Life Goes On.


그리고 영웅은 다시 한번 자신이 구했던 일상으로 귀환한다.




나키아미와 아키유키의 모험은 세상을 구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가? 아니다. 그들의 모험은 세계를 일시적으로 구했을 뿐, 세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남과 북은 그 이후 휴전을 했지만, 여전히 언제라도 다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본질적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언제라도 문제는 다시 생겨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모험은 무의미한 헛수고였을까? 아니다. 이들은 모험을 통해 그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희망'을 찾아냈다. 나키아미가 천년 동안 자신과 함께 태동굴의 히루코를 정화하고, 태동굴을 닫은 것도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소망, 그 소망이 있으면 언제든지 세상이 나아질 희망과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그리고 아키유키는 다시 한번 일상으로 귀환한다. 자신의 이름을 계속 불러주고,
계속해서 마음을 전해주려고 했던 소중한 사람, 하루에게로.



※후기


4개월이었다. 리뷰 하나 완성시키는데 걸린 시간이 4개월이었다. 사실, 리뷰 자체를 포기할 뻔도 했었다. 리뷰를 중간까지 썼다가 뒤엎기도 했었다. 사실 4개월만에 리뷰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쁘다기 보다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실상, 작품의 핵심만을 짚어서 리뷰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작품 속에 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향시편 에우레카 7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적어도 10년 안에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본즈는 그러한 나의 전망을 비웃듯이 약 3년만에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방영 당시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26화 하나 하나가 모두 몇 년간 공을 들인 극장판처럼 느껴졌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사실, 4~5개월 정도를 질질 끈 리뷰를 완성하고 나니까, 뭔가 시원 섭섭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드디어 끝냈으니까, 다른 리뷰를 쓰러 갈 수 있겠군'이라는 생각이 드는 자신을 보면서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끝까지 봐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글 솜씨가 좀 괜찮은 사람이라면 더 축약적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글 솜씨가 후달리는 관계로 글이 장황하게 길어진 점을 좀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 올리며, 부족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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