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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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세기 에반게리온 속에 나타난 신화 구조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있어서 ‘에반게리온’ 이라는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없었으면, 현재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존재할 수 없었다’라고 할 정도로, 에반게리온의 전과 후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대단히 뚜렷한 구분점을 가진다. 이는 1980년대부터 등장한 오타쿠 제 1 세대-안노 히데아키, 오시이 마모루, 카와모리 쇼지 등등-의 영향이 큰데, 기존의 마징가 Z와 같은 작품 등의 대중문화 코드를 즐기면서, 동시에 자신이 관심이 있는 다양한 학문적, 신화적, 철학적 코드에 박식한 다재다능한 세대였기 때문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바로 그러한 기존의 대중문화와 전문적인 신화 철학적 코드의 결합 형태로 볼 수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마징가 Z와 같은 기존의 슈퍼 로봇물의 구조를 많은 부분 그대로 따른다. 평범한 소년과 거대한 로봇, 도시 방어와 매주 일정 주기로 쳐들어오는 기괴한 적들 등은 기존의 마징가 Z 등의 슈퍼 로봇물의 코드가 많은 부분 삽입되어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에반게리온을 타는 정상 세계에서의 분리 과정, 그리고 신화적인 전투에 입문하고 그리고 원래 세계로 회귀하는 과정 등의 서사 구조나 내용은 기존의 슈퍼 로봇물과 현격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타는 로봇인 에반게리온을 살펴보도록 하자. 일단 에반게리온은 정확한 의미에서 ‘로봇’이 아니다. 정확한 명칭은 ‘대 사도 결전 병기 인조인간 에반게리온’이다. 즉, 에반게리온은 거대한 ‘로봇’이 아니라, 거대한 ‘인간’인 것이다. 이는 기존의 슈퍼 로봇들이 가지고 있는 ‘신체의 연장’이라는 코드를 악질적으로 꼬아놓은 것인데, 에반게리온은 ‘사람’이기 때문에 피도 흘리고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은 직접적으로 에반게리온과 연결된 파일럿, 주인공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에반게리온 같은 경우 기존의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로봇이 아닌, 의식이 존재하는 존재로서 에반게리온을 다루고 있다. 물론 에반게리온이 직접 말을 하거나, 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근저에 깔려있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인공이 타는 초호기가 과거 주인공의 어머니가 에반게리온의 탑승 실험을 하는 도중에 과도한 동화 현상으로 초호기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들인 주인공과 어머니인 에반게리온 초호기 사이에는 묘한 유대감이 작용하는데, 주인공이 항상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 되면 어머니인 에반게리온 초호기가 통제 불능의 폭주상태가 되어서 아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신화에서 흉포하면서 동시에 전지전능한 세계의 어머니 같은 존재와 이미지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코드는 동시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야기하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최고 사령관이자 아버지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고(물론 이는 직접적으로 어머니를 둘러싼 갈등은 아니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아내를 더 사랑했기에 사라진 아내를 대체할 클론(아야나미 레이)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아들은 어머니의 클론에 대해서 묘한 감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있어서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는 영웅이 겪는 분리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부한다. 그는 자신이 왜 인류를 지켜야 하는가,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필요한 때만 부르는 아버지와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느끼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자신의 소명을 억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오히려 그가 에반게리온을 타서 사도와 싸우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해서 바로 에반게리온을 타야 자신의 가치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중반부 이후의 입문의 과정에서는 주인공이 에반게리온에 타서 싸우게 되는데, 이는 소명의 적극적인 수용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자궁(에반게리온의 파일럿 석)으로의 도피라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즉, 에반게리온에 있어서 분리와 입문의 과정이 주인공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자신의 소명, 운명으로의 도피가 주인공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품 내에서는 인류 전반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이도 하다. 작품 내에서 도시를 공격하는 사도라는 존재의 목적은 도시 밑에 봉인된 최초의 인류 리리스와의 결합을 통해서 서드 임펙트를 일으키는데 있다. 이러한 인류와 사도의 만남, ‘임펙트’는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한 층 더 높은 단계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전 인류가 하나가 되는 이상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인류보완계획이란 바로 사도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 개인의 마음의 벽, AT필드를 무너뜨리고 하나 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사도의 침략을 적절히 통제하고 마지막 인류의 결합을 위해서 에반게리온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모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사도와 싸운다. 또 사도와 리리스 사이의 성스러운 결혼을 통해서 인류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모르므로, 이를 저지하여 전 인류적인 소명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화에 있어서 하나였던 세계가 다원적인 세계로 분리되었던 것이, 에반게리온에서 역순으로 진행된다. 즉, 다원적인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는 것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본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세계의 종말과 같다고 볼 수 있는데, 분화된 것이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나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순환론적인 우주관에 있어서 생성-발전-소멸 단계에서 소멸-생성의 단계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반게리온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는 AT 필드가 무너져서 인간이 모두 하나가 되는 장면을 종말의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회귀의 과정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다음 세계로 나아가길 거부하고 개개인의 인류로 남기를 선택한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의 논란이 많은데, 왜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그렇게 나누어진 인간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고도 개인으로 남고 싶어하느냐가 설득력이 없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인류가 인류일 수 있는 이유는 각 인류가 개인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이고, 인간은 개인일 때 비로소 인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결말을 정당화 시키기도 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기존의 슈퍼 로봇물과 또 다른 점은 바로 적극적인 신화 코드의 차용이다. 에반게리온 같은 경우에는 사도, 사해문서, 아담, 리리스, 에반게리온 등의 기독교적인 신화 코드를 차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신화 코드의 차용은 작품에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많은 부분 더 해주었다. 신화적 코드의 직접적인 차용은 기존의 슈퍼 로봇물이 단순히 쳐들어오는 적들로부터 도시를 방어하다가 마지막에 적들의 본거지를 박살내는 것과는 다른 다양성을 작품에 더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기존의 애니메이션 작품과 다르게 독백이나 사이코 드라마의 형식을 띄고 있는 부분이 많다. 이러한 부분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철학적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물론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보여주는 철학의 수준은 청소년이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고민하는 정도 수준의 기초적인 철학적 사색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기초적인 사색은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로 인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서사 구조에 있어서 그 상징성이나 내용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고뇌하는 주인공과 화려한 액션, 그리고 기독교적인 상징체계를 삽입함으로써 무언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각주*8)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이와 같이 기존의 슈퍼 로봇물의 공식을 차용하면서 동시에 이를 비틀고 왜곡하였고, 영웅 신화 구조에 있어서 분리-입문-회귀의 구조를 거부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화적인 코드와 기초적인 철학적 사색의 코드를 작품에 삽입하여서 작품의 의미심장함을 더하였고, 순환론적인 우주관에 있어서 종말의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에반게리온은 신화구조를 취하였으되, 신화구조를 벗어난 특이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재밌는 점은 에반게리온 이후의 작품들은 에반게리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구조 자체가 조셉 켐벨의 신화 구조에 딱 들어맞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이 신화 구조를 비튼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대단히 독보적이면서 유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5. 애니메이션의 서사 구조가 나아갈 길

마징가 Z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통해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서사 구조를 살펴보면, 일본 애니메이션도 조셉 켐벨이 이야기한 신화적인 서사 구조를 많은 부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서 전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서사 구조에 있어서 신화적인 서사 구조를 왜곡하거나 변형한 부분도 있으나, 이는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매체적 특성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은 과거의 신화적 구조나 새로운 신화적 혹은 철학적 코드의 차용을 통해서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성적 코드나 모에 코드(귀여운 것을 강조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조류)에 천착하는 제 살 깎아먹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지 않는 일반인이나 다른 부류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계층 사이의 엄청난 괴리가 발생하게 되고,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매력 포인트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다시 세계적으로 통하는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신화적 서사 구조와 이야기에 삽입된 코드에 대한 재정리와 고찰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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