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로베르 브레송은 자신의 저작들을 영화라는 시네마라고 부르기보다는 시네마토그래프라는 표현을 쓰기를 고집하였다. 시네마토그래프는 로베르 브레송이 창안한 단어로써, 적절한 번역을 찾기는 어렵지만 영화에 있어서 영상보다는 기록적 측면에 무게를 실어주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브레송의 일지가 보여주는 '기록'에 대한 강조와 '연극'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가 동시에 공전하는 것은 납득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브레송은 배우의 연기에 대한 어떠한 지시도 없이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만든 후, 그것을 촬영하여 편집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브레송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고양하기 보다는 관객이 배우와 영화를 관조하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브레송의 스타일은 지금까지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브레송의 미학은 벤야민이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서 논평하였던 내용들을 공유하고 있다:벤야민은 영화가 예술이 되는 것을 논하기보다 예술이 영화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기술이라는 형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의 내용을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벤야민이 영화라는 매체이자 기술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정의내렸을까? 벤야민은 영화의 다양한 부분에 주목하였지만, 그 중 핵심으로 꼽는 것은 '아우라'의 제거였다. 아우라의 특징은 바로 진품성이다:어떤 예술 작품이든 감상자가 진품을 마주할 때만 갖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그 진품성인 아우라를 대량생산을 통해 제거하는 것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다. 


연극과 영화의 차이는 이러한 아우라 유/무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브레히트는 뛰어난 연극은 하나의 '스포츠 경기'와도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그 어떤 연극도 동일하게 상연되지 않는다. 연기자의 컨디션, 느낌, 관객의 반응 등등 연극의 모든 부분들은 하나 하나 재현 불가능한 역동성을 띄고 있으며 뛰어난 연극 감상자는 그러한 배우의 근육, 움직임, 눈빛, 그날 무대의 분위기 등을 모두 감상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영화는 대량복제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진품성이 없으며, 또한 편집/촬영 프로세스로 인해 연극 배우가 몰입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단 한번의 신비로운 연기는 성립될 수 없다. 벤야민은 이러한 아우라의 거세가 영화라는 예술이 대중예술로 거듭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았다. 더이상 예술은 특수한 환경과 공간, 시간 내에서만 성립되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서 예술은 수많은 대중에게 배급되고 보급된다. 그렇기에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소비되는 과정까지 영화는 하나의 산업이 된다.


그렇다면 브레송과 벤야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벤야민은 영화 산업에 있어서 스타 시스템과 거짓된 아우라가 갖는 허구성을 비판하였다. 스타 시스템은 배우의 연기-방향성의 부여-감정의 고양-고양된 감정을 실제의 스타에 덧입혀 착각하는 것으로 성립되며 벤야민은 이것이 거짓된 아우라라 지적하였다. 흥미롭게도 이는 브레송의 연극과 영화 스타에 대한 혐오와도 일맥상통한다. 브레송에게 있어서 배우는 어떤 극적인 감정(연극과도 같은)을 이끌어내기 위한 연기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배우에게 대본을 읽게 하고, 그 어떤 연기지도 없이 여러번의 연기를 한 것을 촬영/편집하는 브레송의 영화 스타일은 관객에게 감정을 고취시키는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고자 하지 않는다. 브레송에게 있어서 모든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다큐멘터리였던 것이다. 그것은 사실의 기록이며, 관객들이 보는 것은 극적으로 고양되는 감정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 담담하게 표현되는 삶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브레송은 벤야민이 이야기했던 영화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감독이라 칭할 수 있으며, 삶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삶을 기록하는 영화로써 영화만이 갖고 있는 특징을 잘 포착해낸 거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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