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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데즈카 오사무 이후 지난 50년 동안 일본의 아니메는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 코드이자 조류로서 당당히 자리를 잡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건담, 미야자키 하야오, 도라에몽 등 이러한 아니메의 코드가 매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까지 잘 알려져 있을 정도니까요.

근 50년 동안의 역사는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장르 내의 관습이나 암묵적인 룰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시즌이나 쿨의 개념, 20분이라는 한정된 분량, 애니메이션의 세부적인 장르 마다의 특색 등등...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대중문화가 가지는 특색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특색들 중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치성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풀어내고자 합니다.

대중문화와 정치의 관계는 일종의 금단의 관계입니다. 초창기 대중문화 평론을 하였던 벤야민은 '대중문화는 정치의 프로파간다(선전)이며 우민을 양성해내는 도구에 불과하다'라는 극단적 평가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대중문화는 3S 정책(Screen, Sex, Sports)이라 하여, 대중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분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점차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를 표현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대중 문화에 나타나는 가장 큰 정치적 특색은 바로 '현실 정치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입니다. 6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정치적 소재나 주제의식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이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대단히 마이너한 하위 장르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존재하지 않는/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적이나 상황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마징가 Z를 예를 들어보죠. 마징가 Z는 우리 편과 악당은 명백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됩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떠한 정치적인 갈등은 존재하지 않죠. 또한 주인공이나 악역인 헬 박사가 어떠한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관을 대변한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오히려, 마징가 Z라는 작품에서 스토리나 설정은 철저하게 흥미위주이며 재미를 위한 내용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는 정치적인 갈등을 주된 테마로 삼고 있는 건담 시리즈에서도 나타나는 것인데, 지온-연방 사이의 정치적인 갈등과 무력 분쟁이 현실의 반영물이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타츠노코의 개벽 같은 작품은 제외하죠. 사실 그 작품은 지금 관점에서 봐도 정말 엄한 작품이라....)

사실, 이러한 과거 애니메이션의 무정치성은 일본의 정치사와 많은 부분 맥이 닿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정치사와 정치적 구조의 독특함은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 패망 이후 민주화된 일본 내각은 지난 60년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자민당이 집권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 내에서 정치가는 대부분 혈연이나 결혼으로 이어진 하나의 단단한 구조를 만들고 있죠. 심지어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면, 아버지의 선거구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아들이 선거에 출마하는 등의 사례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본 정치입니다.

일본 정치계는 하나의 단단한 상부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에, 기본적으로 국민이 현실 정치에 간섭할 수 있는 사안이 대단히 적습니다. 또한 정치적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의 전문 관료의 막강한 권위와 자존심, 과거 일본 재벌이나 회사에서의 평생 고용제나 입사 순서에 따른 승진제도, 일반 사회에서의 단단한 서열 구조 등은 현실 정치뿐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도 경직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과거 일본 국민에게 정치란 머나먼 현실입니다. 물론 일본 국민들도 이러한 정치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갖고, 현실 정치 구조에 대항하기도 하였습니다. 과거 일제 시대의 일본의 최초의 민주화 투쟁인 다이쇼 데모크라시, 우리나라 4.19 혁명의 영향을 받은 시민 운동이나 극좌 학생 운동권들의 급진적인 투쟁 등은 지난 100년간 일본 국민들이나 지식인들이 일본 민주주의의 탈권위화 및 탈집중화 등을 위한 노력한 사례이죠. 하지만, 하나 같이 실패하였기에 일본 국민에게 있어 정치란 먼나라 이야기 처럼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일본 대중문화에 있어서 정치성은 무정치성을 띌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공간도 없고, 피력해도 의미도 없기에 환상이나 과거의 미학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예외적인 작품들이 있었지만(예를 들어오시이 마모루가 그린 만화 '견랑전설' 같은), 파편적이고 추상적인 명제로 많이 다루어졌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오면서 사정은 달라지게 되죠. 일본 내의 세대 교체가 일어나면서 일본 정치나 시민운동은 과거의 침체된 분위기와 다른 활발함을 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발함은 후에 애니메이션에도 영향을 미쳐서 정치적 코드나 색체를 띈 작품들이 등장하게 만들기도 하였죠. 이는 다음 下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덧.원래는 한편으로 쓰려고 했는데,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더군요; 어째서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의 무정치성을 논하기 위해서 한 장 반 가까이 되는 글을 써야하는지 당췌 잘 모르겠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네타 혹은 스포일러, 반전 까발림 등에 대한 전설적인 에피소드들 중에서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아마 십중팔구 김영하의 영화 평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러 간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명의 범죄자가 나와서 '어떤 놈이 진범일까'를 두고 두뇌게임을 벌이는 것이 영화의 주요 내용인데, 그 사람은 그런 류의 영화를 대단히 좋아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많은 상상과 기대를 하고 영화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영화관 벽에 걸린 포스터ㅡ인물들이 일렬로 쭉 서있는ㅡ에 누군가 한 인물에 얼굴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이 새끼가 범인'이라고 써놓는 바람에 그 사람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흔히 네타는 리뷰나 리뷰를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금기시 되는 코드입니다. 그도 그렇죠. 이미 작품의 핵심 또는 중요 내용, 감상의 포인트를 미리 알게 해서 재미를 반감시키는 그런 부작용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연 네타가 작품 감상에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것일까? 라구요.

 사실, 네타는 작품에 있어서 결론을 까발리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기본적인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영화를 관람하겠죠. 만약 여러분이 네타를 당하고, 거기에 사전지식을 덧붙여서 가지고 있다면 과연 여러분들이 그 영화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결론 내릴수 있을까요? 물론, 여러분들은 전제(영화적인 사전 지식)와 결론(네타)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전제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일반적인 이성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구요. 어찌보면 여러분들은 그 작품에 대해서 보지 않고도 모든것을 파악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품을 보기전에 작품을 다 본것과 같은 느낌을 주어 작품 감상에 방해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는건 어떨까요? 여러분들이 미로를 풀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미로의 출구와 입구를 알고 있다고 해서 미로를 다 풀었다고 결론 내릴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직접 선을 그려 입구를 따라서 출구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 미로를 풀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화 또한 그렇습니다. 영화는 전제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어떤 이야기를 내포하는가 등의 과정을 통해 결론을 내게 됩니다. 즉, 영화 자체는 전제와 과정, 그리고 결론의 유기적인 결합체이고 단순히 전제와 결론을 알았다고 해서 영화 전체를 알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죠. 영화 '살인의 추억'은 명백히 우리가 영화적 전제와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실제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근거하고 있고, 범인은 잡힐 수 없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화의 전제와 결론을 다 알고 있으니까 이 영화를 다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영화는 결과적으로 절망적인 엔딩에 다다를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꾀합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저건 저런데서 빈틈이 있지 않을까? 이런식으로 영화는 관객을 영화 속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시키고, 우리가 익히 아는 결말ㅡ연쇄살인범은 잡히지 않는다ㅡ에 대해 극적인 긴장감과 분노ㅡ제발 그 놈이 범인이라고 말 해달란 말이야!ㅡ를 안겨줍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았다고 해서 여러분이 영화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은 할 수 없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그걸 풀어내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그렇다고 네타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라고 인정할 수 는 없습니다만(누군가 미리 내용을 말하는 거 만큼 김새는 건 없죠), 그렇다고 해서 네타 그 자체가 감상에 있어 항상 방해가 되거나 해가 되는 악질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언리얼 토너먼트 시리즈는 한 때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퀘이크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었던 게임입니다. 물론 시리즈의 시작인 언리얼은 발매 당시 크게 성공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퀘이크 3가 나올 때 멀티플레이에 초점을 언리얼 토너먼트를 발매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멀티플레이 FPS로 쌍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언리얼 토너먼트와 퀘이크 3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무기의 강력한 개성과 다양한 활용이었습니다. 벽에 튀기는 원반을 발사하는 리퍼, 바운드되는 산탄을 쏘는 플랙 케논, 모아쏘기와 유탄 발사기로 응용이 가능한 로켓런쳐, 2차 모드와 1차 모드의 조합으로 일명 'Shock Combo'가 가능한 쇼크 라이플 등 그 당시로서는 독특한 무기와 다양한 사용법 등으로 게임하는 재미가 쏠쏠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게임 모드에 있어서 기본적인 데스메치와 CTF 이외에 정복 모드, 미션 모드와 비슷한 어썰트 모드 등을 추가해서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내었구요. 여기에 게임의 구체적인 플레이를 변형시키는 '변형 모드'를 통해서 각 모드 마다의 게임 플레이를 다양하게 바꾸게 하였습니다.

이런 언리얼 토너먼트 만의 매력점은 퀘이크 중심의 FPS 계를 양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후에 에픽은 언리얼 토너먼트를 기반으로 탈 것과 화려한 미션 모드를 추가한 언리얼 토너먼트 2004를 발매하게 됩니다. 이는 비평적 상업적인 양쪽 다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FPS의 흐름이 CS 같은 게임으로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언리얼 토너먼트 2004는 기존의 FPS에 새로운 요소를 훌륭하게 접목시킨 작품으로 평가받은 것입니다.

이 쯤 되면, '이 사람이 왜 하려는 언리얼 토너먼트 3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예전 구작들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렇습니다. 제목을 버젓이 '[칼럼]언리얼 토너먼트3' 써놓고 실컷 구작 이야기만 하고 있군요.

근데 언리얼 토너먼트 3의 문제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바뀐 게 없다.





자칭 언토 팬이고, 언리얼 토너먼트, 언리얼 토너먼트 2004, 언리얼 토너먼트 3까지 모두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아 이건 아닌데'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픽적인 발전과 기존의 어썰트 모드 삭제, 워페어 모드(라 하고 변형된 CTF라 읽는다)의 추가 이외에는 도저히 예전 구작들과 차이를 못 느낄 정도이니까요. 무기가 참신한게 도입된게 아니고, 무기 발사 시스템이 바뀐 것도 아니고, 게임 모드가 혁신적으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이렇게 낼 거면, 언토 2004 RE-Birth라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언토 시리즈가 기존의 FPS 장르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이고, 2004에서는 이를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킨 건 사실입니다. 여기서 기존의 구작들을 넘기 위해서는 무언가 발전이 있으려면 대단히 혁신적이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귀찮다 나 몰라'하면서 대충 2004에서 그래픽적인 발전만 하고 게임 시스템을 그대로 옮기고 '이걸로 끝'이라고 하면 게이머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굳이 기존의 구작들과 차이점을 꼽으라면, 스토리 있는 싱글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정도군요. 다만 그 스토리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이라는 걸 제외하면요. 세상에, 여러분들이 사악한 외계인들과 어떤 행성에서 싸웁니다. 근데 전행성에 리스폰 장치들이 깔려 있어서 이 놈들을 죽여도 되살아나고, 우리가 죽어도 되살아 납니다. ...그러면 싸우는 의미가 없잖아;; 그래서 트레이닝 중 주인공과 여동생과 이런 정다운 대화가 오고 가는데...

여동생:오빠 실력이 녹슬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실탄으로 연습해보자고!
주인공:너는 한번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을 로켓런쳐로 다시 박살내는게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냐?
여동생:걱정마, 죽어도 리스폰 돼.
주인공:아.....




CTF 싱글 플레이 중에서 우리가 상대편의 리스폰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리스폰 통제 포인트를 빼앗아야 하는데, 생긴게 완벽하게 깃발입니다. 주인공이 이걸 보고 '이거 깃발 아니야?'라고 물어보니까, '뭐 생기기는 그렇게 생겼지'라고 얼버무리는 여동생과 팀원들에게 절망. 그 이후로도 이게 스토리가 있는건지, 아니면 WWE처럼 각본쓰고 언리얼 토너먼트를 진행하는건지 알 수 없을 지경입니다. 예전에 존카멕이 '게임에 있어서 스토리는 포르노에 있어서 스토리와 같은 맥락이야!'라고 이야기한 것을 다시 한번 게임에 고스란히 재현해놓고 있더군요;;

사실 2004하고의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언리얼 토너먼트 3는 대단히 재밌는 게임입니다. 전작의 장점들은 그대로 잘 계승하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최근 타이탄 팩이라는 무료 컨탠츠 확장팩이 적용되면서 게임이 전작들과 다른 모드, 다른 탬포를 지니게 되었으나...사실 게임을 하는 인구가 거의 빠져나간 상태에서 나온 때늦은 업데이트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타이탄 모드나 배신, 탐욕 모드는 잘 만든 모드이고 재미는 있습니다.

언리얼 토너먼트 3는 재미는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다만 문제는 2004를 하고 난 다음에 뭔가 혁신적인 것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추천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좀 뭔가 바뀌었으면 좋겠군요.

게임 이야기



퀘이크 워즈:에너미 테러토리(줄여서 ETQW)는 잘 만든 게임입니다. '퀘이크 워즈'라는 이름이 붙어있어서 이 게임이 퀘이크 시리즈으로 여겨지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정작 ETQW는 퀘이크의 후속작이 아니라 무료 멀티 FPS였던 울펜슈타인:에너미 테러토리의 정식 후속작입니다. 정확히는 '에너미 테러토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죠.

울펜슈타인 ET의 가장 큰 특징은 게임 내에서 경험치가 쌓여서 게임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돌격병 클래스를 선택해서 미션 오브젝트를 달성하거나 적들을 죽여서 경험치를 얻어서 진급하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탄창의 수가 증가한다던가 등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죠. 물론 베틀필드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경험치를 통한 언락 개념이 있었지만, 이는 게임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쌓이는 것이지 에너미 테러토리 같이 한 게임 끝나면 얻은 언락이 초기화 되는 시스템과는 달랐습니다.

ETQW는 전작의 경험치 시스템을 그대로 들고 왔습니다. 오브젝트 달성 시나 적들을 죽일때 경험치를 주고, 이를 통해서 언락을 해제합니다. ETQW에서 특기할 점은 게이머가 게임에서 미션 목표를 자유롭게 선택을 해서, 목표 달성을 통한 경험치 획득을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게임 목표가 '1.다리를 수리한다+10XP', '2.적의 레이더를 무력화 시킨다+5XP', '3.적의 MPC를 무력화 시킨다+20XP' 등이 있으면 게이머가 목표를 선택해서 경험치를 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목표를 설정하면 친절하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목표는 어디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 팀이 어떤 목표를 맡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서 게임에서 목표 분담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만듭니다. 강제적으로 분대를 설정해서 지휘관의 일괄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는 베틀필드 2142와는 매우 다른 시스템인 것이죠.

ETQW의 진영은 크게 지구 방위군 GDF와 외계생명체 스트로그로 나뉩니다. 이 둘은 베틀필드 시리즈처럼 스킨만 바꾸어놓은 것이 아니라, 아예 플레이 스타일에서부터 큰 차이가 납니다. 가령, 스트로그 같은 경우에는 GDF 병사의 시체에 노드를 지정해서 그 자리에서 스폰되게 합니다. 그리고 GDF가 탄창식의 무기를 쓴다면, 스트로그는 무기 과열이라는 개념을 집어넣구요. 이런 식으로 아예 다른 시스템과 아이템을 차용해서 각 진영사이의 플레이, 전략을 달리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ETQW는 객관적으로 잘 만들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게임이 하필 벤치마킹의 대상을 대규모 전장에서 탈 것을 이용해서 싸우는 베틀필드 시리즈로 정하지만 않았다면, 흥행에 문제는 크게 없었을 것입니다. 전작 ET는 게임의 진행방식이 소규모 국지전이 기반인 리턴 투 케슬 울펜슈타인에 경험치 시스템을 도입했었고, 이러한 급격한 변화로 인해서 당시 많은 RTCW 팬들이 ET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이제 ET에서 ETQW로 넘어올 때, 많은 ET팬들은 'ET가 베틀필드냐!'라면서 반감을 드러내죠. 덕분에 기존의 ET팬들을 고스란히 ETQW로 끌고 오지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ET팬들이 아닌 일반적인 게이머들은 ETQW를 좋게 평가했을까요? 꼭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습니다. ETQW는 게임 최대 수용 인원을 32인이었고, 당시 ETQW의 가장 큰 라이벌인 베틀필드 시리즈는 최대 수용 인원이 64인입니다. 사실 ETQW를 해보면 아시겠지만, 맵 구성 자체가 32인 기반에 맞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저는 인원수에 대한 문제는 크게 없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게이머들은 ETQW보다 베틀필드 시리즈가 전투 등의 측면에서 더 스케일이 크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결국, 모든 ET팬들을 끌고 오지 못한 점과 일반 게이머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ETQW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후에 나온 PS3, Xbox 360 버전은 버그 투성이로 완전하게 망작 취급 받았습니다. 덕분에 ETQW는 괜찮은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묻혔습니다. 물론 아직도 하는 사람들 있기는 하지만요.

게임 이야기


위쳐는 폴란드 게임 제작사인 CDprojekt에서 만든 RPG 게임입니다. 폴란드에서 유명한 동명의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위쳐는 발매 당시부터 놀라운 완성도와 분위기, 세계관으로 전세계의 많은 게이머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인터페이스, 더럽게 긴 로딩, 버그, 껄끄러운 영어 번역 등등은 게임의 평가를 많이 깎아먹었고, 후에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한 위쳐:인헨스드 에디션(Enhanced Edition)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헨스드 에디션은 문제점만 시정했을 뿐이지,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본작인 위쳐와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위쳐만 놓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쳐의 가장 큰 특징과 장점은 바로 세계관과 분위기입니다. 일반적으로 RPG 게임은 여러분의 여러분 자신의 케릭터를 만들고 그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중점입니다. 하지만, 위쳐는 이러한 요즘 RPG와 다른 컨셉을 취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일단, 게임 속에서 게이머는 유명한 위쳐인 게럴트(Geralt)를 조종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됩니다.

위쳐는 게임속 설정상 일반인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괴물들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면서, 부수적으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의 역할을 합니다. 즉, 게임 속의 게럴트는 돈을 위해서 일을 하는 해결사지, 세계를 구할 영웅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의 모험의 목적은 동료와 자기들의 영업 비밀(?)을 되찾기 위한 여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쳐에서 오로지 문제가 되는 것은 선과 악이 아닌 게이머의 행동과 그 결과이고, 의뢰 뒤에 숨어있는 진실뿐이죠.

이러한 컨셉을 기초로 위쳐는 비정하고 어두운 세계관을 연출합니다. 왕이 자기 딸을 강간해서 생긴 괴물(저주를 푸니까 아름다운 공주가 되지만), 겉으로는 착하고 근엄한 척하지만 뒤로는 마을의 어린아이들을 노예로 갖다 파는 성당 사제, 형을 죽이고 재산을 취한 주정뱅이, 자신의 죄악들을 마녀에게 뒤집어 씌우는 마을 사람들 등등 소돔과 고모라 뺨을 후려갈기는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게이머는 적당히 나쁜놈들하고 싸바싸바 하고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퀘스트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에 매달릴 것인가(그렇다고 그것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어두운 세계관과 해결사라는 게럴트의 입장은 위쳐를 다른 RPG와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게이머를 게임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위쳐의 전투시스템은 독특합니다. 게임 내내 무기는 2개(강철검과 은제검)만을 쓸 수 있으며, RPG의 정석(?)인 마법은 5개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적들의 개성, 적들과 무기 마법 사이의 상성관계, 전투에 있어서 약물이나 보조 아이템의 제조와 이용,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등을 통해서 전투라기 보다는 괴물을 사냥한다라는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쳐에서는 전투를 위해서 약이나 소모품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게임 속 설정상 위쳐들은 지속적인 훈련과 약물 복용을 통해서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초인이 되었지만, 약물의 부작용으로 불임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밤기술이 워낙이 뛰어난 나머지 여자들이 가는 곳 마다 필연적(?)으로 달라 붙습니다. 그래서 게임 속에서 게이머는 게럴트와 잔 여자들의 카드를 모을 수 있는데(절대 미연시의 CG 같은게 아니니 오해하시지 마시길), 은근히 모을 수 있는 카드 수가 많습니다.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데, 게임을 하면서 일정 퀘스트나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모을 수 있는 카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몇몇 카드는 황당한 상황에서 모을 수 있습니다. 가장 골 때렸던 이벤트는, 동굴 밖에 마녀를 불태우자는 성난 군중이 모여있는 위기상황에서 대화 선택지가...

1.일단 나갑시다. 내가 당신을 보호하겠소.
2.붕가합시다.
.
.
.
.
.


당연히 2번을 선택하면 붕가하는 시추에이션으로 들어갑니다(.....)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여러 가지로 독특한 시스템과 분위기, 높은 완성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쳐는 미국 시장 발매 당시 꽤 저평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고질적인 버그와 개적화, 길고 긴 로딩과 시도 때도 없이 게임의 흐름을 끊어먹는 자동 세이브 및 더럽게 불편한 인벤토리 및 인터페이스, 묘한 번역 등 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헨스드 에디션이 나오기 전까지는 좀 아쉽게 묻힌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요소들을 극복하고 플래이한 사람들은 위쳐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고, 문제점들을 해결한 인헨스드 에디션이 나오면서 평단의 호평을 받게 됩니다.

위쳐는 잘 만든 게임이고, 매력적인 게임이기도 합니다. 다만 언제나 이런 류의 게임들이 그렇듯이 뒷마무리가 아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인헨스드 에디션으로 그러한 단점을 보완하였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컨셉이나 완성도는 있지만, 마무리가 제대로 안되서 말린 게임'들 중 하나가 될 뻔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 그런데 '그렇게 망할 뻔한 게임'을 120만장 씩이나 팔아치웠으면, 앞뒤 말이 안 맞는군요;


게임 이야기/기획 기사

F.E.A.R. Combat(이하 피어 컴벳)은 모노리스 제작의 호러 FPS F.E.A.R.의 멀티 파트만을 따로 분리해서 내놓은 멀티 전용 게임입니다. 피어 컴뱃은 완전하게 무료로 서비스 되었으며, 원본 F.E.A.R를 가진 사람과 멀티를 할 수 있게 하여서 한 때 F.E.A.R. 멀티 붐을 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평가도 상당히 좋아서, 평균 평점이 90점에 육박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피어 컴뱃이 객관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과연 멀티 게임으로 좋은 게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피어의 멀티 파트는 재밌습니다. 비록 한 서버 정원이 16인이 최대이기는 하지만, 작은 맵에서의 피튀기는 근접전을 벌이는 건 나름 재밌는 경험입니다. F.E.A.R. 특유의 개념인 근접전(발차기와 슬라이딩)의 존재로 인해서 근접전에서 스릴 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거든요. 그 외에 피어 컴뱃은 싱글 플레이에서 멋진 연출을 보인 슬로우 모션을 도입한 슬로우 모션 데스/팀 데스매치라던가, 멀티 플래이의 정석이자 고전인 CTF전, 거점 장악 등등 다양한 게임 모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해서, 피어의 멀티플레이 부분은 기존의 게임들의 멀티플레이 파트를 많은 부분 차용했을 뿐, 자기만의 색체가 부족합니다. 데스/팀데스메치는 말할 것도 없이, CTF나 도미네이션 도 이미 언리얼 토너먼트 등에서 등장했던 모드입니다. 유일하게 자기만의 모드라고 할 수 있는 슬로우 모션 데스매치는 슬로우 모션 자체가 멋지기만 하고, 쓸만한 부분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별 의미가 없는 모드입니다.(그래서인지 가장 안하는 모드였을지도)

게임 모드 자체는 그렇다쳐도, 피어의 멀티 플레이 자체가 다른 게임과 차별점이 생기는가? 라는 의문점이 생깁니다. 사실, 피어가 다른 게임의 멀티 부분과 다른 특징적인 부분 2가지를 꼽으라면, 하나는 발차기 등의 근접전이고, 나머지 하나는 각 무기마다의 데미지 차이가 거의 없어서 자기 입맛대로 무기를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가지 를 제외하면 피어의 멀티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형식의 밀리터리 느낌에 퀘이크와 같은 빠른 게임 진행을 보여줍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게임이 멀티 전용 게임의 양대 산맥에게서 좋은 점만 취했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자기만의 개성이 부족한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F.E.A.R. 시리즈에서 멀티의 의미는 '싱글만 팔면 미안하니까 끼워준다'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멀티만 놓고 본다면 총격전의 박력은 뛰어나지만, 그걸 빼면 그저 그런 작품이 되어버립니다. 아마도 모노리스도 그렇게 느꼈는지 F.E.A.R.의 멀티부분만을 따로 때어내서 무료 게임으로 만들었고, 나름대로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피어 컴뱃이 공짜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걸 돈주고 살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많은 의문점이 드는군요.

덧.피어2도 조만간 멀티 띄우기를 위해서 피어 컴뱃 비슷한 것을 만들거 같은 예감이...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저번에 [잊혀진 게임을 찾아서라]는 긴 이름을 썼었는데, 그냥 짧게 칼럼이라고 하겠습니다.

문명류의 4X 게임류 중 우주 테마인 작품이 꽤 많기는 합니다. 생각보다 우주 테마로 만든 문명류 게임이 많거든요. 그중 가장 잘만들어진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 StarDock의 Galactic Civiazation 시리즈를 꼽을 수 있습니다. 메타 크리틱, 게임 랭킹스 등의 게임 평균을 내는 곳에서 평균 90점 이상을 받을 정도로(Galactic Civilazation 2:Twilight of Arnor와 Dark Avata 기준)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우주 문명류를 좋아하는 고전 팬들도 과거 작품의 훌륭한 계승작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Galactic Civilization2의 기본 골격과 개념은 문명 시리즈를 이어 받았습니다. 전반적인 맵구성, 내정 관리창, 외교 교섭창 등은 문명 3편과 거의 똑같고, 행성 개발이나 운영도 문명 시리즈에게서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문명 시리즈를 즐기던 사람들은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GalCiv2는 문명 시리즈의 괜찮은 인터페이스를 이어받아서, 게이머가 전반적으로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저번에 악평을 잔뜩 써놓은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3편과 다르게요.

거기에 Galciv2는 문명과의 차별성을 독특한 시스템을 통해서 구축합니다. 문명에 있어서 선악 개념을 도입하고, 우주연방 및 고유한 우주선 커스터마이징, 우주 기지, 행성 파괴 시스템 등 SF 매니아라면 한번씩 '있었으면 좋겠는데...'하는 요소를 대부분 집어넣었습니다. 결과적으로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우주 전략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다른 시스템들과 어울리게 구성이 되어있기 때문에, 완성도는 훌륭합니다.

그리고, GalCiv2는 여태까지 나온 문명류 전략 게임 중에서 커스터마이징 할 수있는 부분이 가장 많습니다. 자기만의 전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점이라던가, 자기만의 문명 테크트리를 만들 수 있는 점, 맵은 물론 시나리오까지 만들 수 있는 점들은 다른 문명류의 게임과 차별성을 둡니다. 거기에 다양한 게임 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에 다양한 게임 패턴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Galciv2의 단점은 바로 AI가 떨어진다는 점. 게이머의 입장에서 '이건 좀 AI가 이런 식으로 행동해주어야 하는데'라는 부분에서 AI가 바보짓을 일삼는 바람에 게임이 더 어려워지거나 쉬워져버리는 말그대로 난이도가 들쭉날쭉 해지게 됩니다. 물론 난이도 조절 창에서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그것은 AI에게 얼마나 인센티브/디센티브를 주는가를 결정하는 정도입니다. 물론 확장팩이 거듭나오면서 점점 좋아지고는 있지만, 게이머를 만족 시키는 모자른 감이 없지 않아 있죠.

결과적으로 GalCiv2는 좋은 작품입니다. 문명 시리즈를 즐겨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군요.



다음엔 뭘할까나 음냐~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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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앞서서

 워낙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보니까,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는군요. 사실, 건그레이브는 과장 좀 보태서 제 인생에 있어서 뛰어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이거 보다 더 좋은 작품도 많죠. 하지만, 뭐랄까 지금봐도 참 여러생각이 드는 애니입니다. 쓸쓸한 분위기, 친구, 인생 등등...뭐, 단순한 애니를 보면서 별의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하면서 본다고 비웃을 분들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당시 재수 시작 당시 뇌리에 박히는 내용을 보여준 것이 바로 건 그레이브였습니다.(그러고 보니 재수 할때 본 것들은 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군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건그레이브를 죄악업 칼럼에서 다루려하니까, 심경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안그래도 재수 시절보다 어려운 한해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이런 글을 쓰려니까 여러 잡상들이 들었구요. 뭐, 결과적으로 그러한 요소들을 배제하고, 애니 자체에 대한 글을 쓰려 노력했고, 장장 A4 5장에 걸친 칼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결론을 내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2부 건그레이브:순수의 비가

과거 PS2 시절 캡콤이 만들었던 스타일리쉬 액션 게임이 2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Devil May Cry 시리즈였고, 나머지 하나는 건그레이브였죠. 사실 DMC 같은 경우에는 성공을 거두어서 지금까지도 그 시리즈가 나오고 있지만, 건그레이브는 PS2 때 후속작 O.D(Over Dose)까지만 나오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니판 건그레이브는 그러한 PS2 게임인 1편이 나오고 Over Dose가 나오기 이전 그 사이에 나온 매드하우스 제작의 애니입니다.

사실, 원작 게임을 해보고 애니를 본 사람들은 이 애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이 감상한다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애시당초부터 원작 게임이 지향했던 게임의 컨셉은 '스타일리쉬하게 총을 쏘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이라는 것이었고, 게임 제작자도 '그레이브가 탄창을 갈아끼지 않는 이유는 탄창을 갈아끼면 멋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힐 정도로 과도한 파괴와 살상의 미학을 추구하던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애니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원작 게임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한 것입니다. 애니의 내용의 절반 이상은 비욘드 더 그레이브의 인간 시절의 이야기 브랜든 히트의 이야기 분량이고, 그레이브는 폼난다기 보다는 구질구질하고 우울해졌으며, 애니 내에서는 총알이 다 떨어져서 탄창까지 갈아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본다면 원작 게임에서 큰 인상을 받은 사람들은 당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건그레이브는 원작보다 더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원작이 과거 친구였던 그레이브와 해리의 현재의 싸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애니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선택의 과정을 대단히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암흑가 사람들의 우정과 배신 등을 다룬 장르를 우리는 흔히 '느와르'라고 칭하는데, 느와르 장르가 인물의 감정묘사 등에 약한 애니 장르에서는 힘듭니다. 그러나 건그레이브는 그러한 애니라는 매체적인 한계를 뛰어넘어서 애니에서 보기 힘든 느와르 장르로 대단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흔히 보통 느와르 장르에 있어서 악은 배신입니다. 암흑가는 언제 어디서 누군가의 손에 죽을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배신이라는 행위는 오로지 죽음으로서 밖에 속죄할 수 없습니다. 느와르 장르에 있어서 믿음과 배신이라는 코드는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있어서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건그레이브의 독특한 점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동력이 배신에 대한 응징인 복수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질문과 대답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는가’, ‘왜 우리는 이러고 있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사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브랜든과 해리는 서로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해리는 브랜든과 빅데디를 위시한 밀레니엄의 믿음을 배신하였고, 브랜든은 해리와 자신과 함께한 동지들-특히 쿠가시라 분지-의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입장에서 본다면, 해리와 브랜든은 각자의 신념에 충실했습니다. 해리는 자신의 ‘자유’라는 신념에, 브랜든은 밀레니엄의 신조에 말이죠. 그렇게 본다면, 그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레이브가 애니 첫화에서 읇조리듯이, ‘어디서...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라는 것처럼 어떻게 본다면, 이 죄와 악은 처음도 끝도 없는, 머리와 꼬리가 물린 우로보로스와 같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해리 맥도웰이란 인물은 건그레이브에서 브랜든 히트에 대항하는 일종의 악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가 악인일까요? 일단 해리의 역할은 극중에서는 악역이 맞습니다. 애니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미카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기에게 대항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고 억누르며, 살아있는 인간을 잡아서 괴물로 만드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과연 그가 단순한 악인으로 그레이브에 반대되는 역할이라고 보기는 대단히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는 애니 초반부, 해리가 브랜든에게 했던 대사 '자유롭게 되자, 브랜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그는 그냥 머리가 대단히 잘 돌아가는 3류 양아치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고, 그러한 자유를 위한 힘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친구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버린 충격에서부터 가속화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는 밀레니엄에 들어간 후,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위로 올라가길 원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밀레니엄의 이념과 신조보다는 자신에게 열린 자유의 가능성을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를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브랜든과 함께 나누길 원하죠. 하지만, 그의 무차별적인 팽창과 조직의 이념과 신조에 반하는 행동들은 결국 조직의 창립자이자 수장인 빅 데디에게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해리는 결국 빅 데디의 명령에 따라 자신을 죽이려 했던 브랜든을 죽이고, 빅 데디를 죽임으로서 밀레니엄이라는 조직의 최상부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게 됩니다.

사실, 기존의 악역이나 악인들이 처음에는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다가 후에는 변절하거나 망가지는(예를 들어서, 건X소드의 갈고리 손톱 남자의 마지막이라던가) 케이스가 많았습니다만, 해리 같은 경우는 거의 끝까지 자기 원칙에 대해서 일관됩니다. 그가 후에 밀레니엄의 보스가 된 후에, 그의 자유의 대원칙인 ‘원하는 만큼 빼앗고, 원하는 만큼 나누어 주겠다.’에 충실합니다. 경쟁자들이나 자신에게 대항하는 판사를 눈하나 깜작하지 않고 죽이는 동시에, 고아원에 가서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모습은 해리의 가식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그가 추구한 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는 브랜든의 배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설였던 브랜든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그에게 조직의 배신자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웁니다. 해리에게 있어서, 브랜든의 배신은 곧 자신과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레이브가 등장했을 때, 그를 과거의 망령 취급합니다. 그레이브는 해리에게 있어서 그저 지나가버린 과거이고, 그러한 과거가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십 몇 년 가까이 쌓아올린 부와 권력은 과거의 망령의 등장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해리는 스스로가 배신했던 과거에 의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비유가 마음에 듭니다. 사실, 해리의 파멸을 불러온 것은 다름아닌 해리 그 자신이니까요. 결과적으로 그가 죽였던 브랜든이 망령으로 돌아와서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립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모든 것이 결국은 너무나 쉽게 허망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브랜든은 어떨까요? 브랜든은 동네 양아치 시절 절친했던 친구들이 죽고, 그 후 해리를 따라서 밀레니엄에 들어갑니다. 사실, 해리는 밀레니엄을 통해서 자신의 가능성과 자유를 보았다면, 브랜든은 역으로 조직의 신념을 깨달아갑니다. 빅 데디가 조직을 세우면서 삼았던 이상, 그것은 바로 ‘지킨다’(守る)입니다. 자신과 자신을 믿는 가족(Family)들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키는 것, 그것이 빅 데디의 밀레니엄이었고, 브랜든이 이해한 밀레니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빅 데디와 해리, 그리고 마리아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밀레니엄의 스위퍼, 즉 살수(殺手)가 됩니다.

하지만, 그도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밀레니엄에 깊이 발담그면 발을 담글수록, 역설적으로 지키려는 자들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는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온갖 더러운 일을 맡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순수하지 못하다고 특히, 그를 사랑한 마리아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순수를 버렸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이는 자신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자괴감과 함께, 자신과 관련되면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그의 신념도 해리의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해리가 역으로 자신의 신념인 조직을 그 근간서부터 문란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빅 데디가 만약 해리가 조직을 배신하는 행위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물었을때 가차없이 제거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하지만,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을 때 브랜든은 해리를 쏘지 못합니다. 분명히 자신의 신념과 기대를 배신한 것은 해리였고, 해리로 인해서 조직이 흔들리게 되는 것을 뻔히 잘 알면서 말이죠. 결국 브랜든은 자신에게 총을 겨눈 브랜든이 자신을 배신하였다고 생각하는 해리의 손에 죽게 됩니다.

그 후의 브랜든의 네크로라이즈화 된 모습인 비욘드 더 그레이브는 닥터 T가 이야기 하듯이, 브랜든이라는 사람은 죽고, 여기 있는 사람은 무덤에서 일어난 망령(Beyond The Grave, 무덤을 넘어선 자)입니다. 해리가 자신을 죽일 것을 미리 예견한 브랜든이 해리를 다시 원래 조직의 신념 체계내로 끌어들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초 강경수이지요. 하지만, 해리의 배신 이후 죽어서까지 조직에 충성하려는 브랜든의 유지를 본 빅 데디는 그러한 브랜든의 모습에 가슴 아파하면서 닥터 T에게 더 이상 브랜든을 깨우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원히 잠들뻔한 브랜든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해리였습니다.

오랫동안 잠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혼선을 겪는 그레이브에게 남은 것은 조직의 신념, '지킨다'와 그 지킬 대상인 마리아와 빅 데디의 딸 미카였습니다. 그는 차례로 밀려오는 조직과 과거의 자신의 친우들-해리를 위시한 발라드버드 리, 밥 파운드멕스, 베어 워큰, 쿠가시라 분지-을 차례로 묻어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조직의 신념을 배신한 죄를 과거의 망령인 그레이브가 과거를 대신해서 처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니에서 비추어지는 그들의 싸움은 악과 선의 대립이 아닌, 뭔가 다른 것입니다. 떠오르는 희미한 햇빛을 받으면서 폐허 속에서 죽어간 밥 파운드맥스, 아무도 없는 철로에서 석양을 받아가면서 죽었던 발라드버드 리, 눈 오는 폐허에 죽은 베어 워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도 없는 폐허가 된 밀레니엄 본사에서 쓸쓸히 죽은 쿠가시라 분지. 이들의 죽음은 전형적인 악인의 죽음과 질서의 회복의 이미지보다는 허무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그 중 브랜든에게 가장 의지했던 쿠가시라 분지는 그레이브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해리를 배신했느냐? 당신은 해리와 함께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었느냐?

결국은 브랜든 시절의 기억이 싸움을 통해서 돌아오기 시작한 그레이브도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조직의 신념, 그리고 지킬 것을 지킨다는 자신의 신념에 의해서 행동한 그였지만, 그러한 복수와 처벌의 과정에서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낍니다. 아니, 사실 그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애니의 첫부분의 그레이브의 독백)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무엇이 잘못된걸까? 그는 마지막 복수의 대상인 해리를 남겨두고 갈등합니다.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조직과 이상은 이런식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레이브가 그의 복수를 거의 끝내가고 있을 무렵, 해리는 자신이 이루어낸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엄청난 양의 재산과 권력,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아내까지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발악으로 오그맨을 이용해서 자신을 배신한 조직을 향해서 공격을 가하지만, 그 공격조차 내부의 배신자(해리 입장에서 본다면)에 의해서 허망하게 무화되어버리고 맙니다. 해리는 도망치면서 생각합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걸까? 그는 도주중 그레이브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시작되었던 시작점, 최초의 장소로 되돌아갑니다. 저는 이 비유가 마음에 들어요. 목숨을 걸고 언제나 함께 해왔지만, 결국은 해어지게 된 두 친구가 다시 자신들의 첫 시작점으로 돌아와서 서로를 대면하는 것, 서로의 마지막 장소를 처음 시작한 장소에서 맞이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니까요. 해리가 묻습니다. 그때 왜 쏘지 않았냐?

왜 쏘지 않았는가? 네가 나를 쏘았으면, 자신의 신념과 조직을 지킬 수 있었는데 왜 쏘지 않았는가? 결국 네가 이야기 하고 싶은게 뭐냐? 그 질문의 끝에 브랜든이 이야기 합니다.


너를 쏠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몇 십년만에 망령이 되어서 돌아온 브랜든이, 자신의 신념, 조직,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까지 해리에게 내놓은 대답은 자신의 친우를 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죠. 조직은 해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집을 포위합니다. 결국, 그들은 마지막으로 내몰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위해서,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눕니다. 다시, 다시 한번 원점으로 회귀하자. 조직, 신념, 자유 등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서로에게 순수했던 옛날로.

결론적으로 건그레이브에 있어서 죄와 악은 순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서로에게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파에 너무 찌들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죠. 그러한 잘못들에 대해서, 건그레이브가 내놓은 결말은 처음, 순수로의 회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니 마지막에 브랜든과 해리가 만났던 첫 시점으로 돌아가는 점은 여러 가지로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둘이 세상에게서 버림받았을지언정, 마지막에 진정한 우정이라는 순수를 되찾은 것이니까요. 그들이 저 세상에 가서 평화롭기를 빕니다.


Rest In Peace, Brandon & Harry



덧. 작년에 마지막화만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덧.첫화 제목이 '황혼의 파괴자들',
 그리고 마지막화 제목이 '파괴자들의 황혼'입니다.
제목 정한 센스가 멋지더군요.

덧.이건 그냥 제 망상일수도 있지만,
건그레이브가 일종의 인생에 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지더군요.

덧.진짜, 원래 대사는 '해리를 쏠 수 있을리가 없잖아?'인데,
머릿속에 그 대사가 박히더군요.  

게임 이야기/게임 Life
편의상 존댓말은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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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좆됐다.)

혹시 트로이카 게임즈를 아는가? 왠만한 코어 게이머가 아니라면 트로이카 게임즈가 뭐하는 회사인지 감도 안 올것이다. 솔직히 필자도 그렇다. 원래 필자도 그런 회사가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처음에는 폴아웃 2를 하다가 몇몇 사람들이 아케넘을 언급하면서, 트로이카 게임즈의 존재와 이 아케넘이라는 희대의 괴작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솔직히 본인도 해보기 전까지는 이 괴작을 평가 절하 했다. 왜냐?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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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위 게임(아케넘)과 아래 게임(폴아웃 2)의 제작 기간의 차이가 3년이 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뭔가 스샷만으로 보기에는 폴아웃 2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게임을 해보고 나서, 본인은 이 게임이 폴아웃 2만한, 아니 어쩌면 더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고, 트로이카 게임즈라는 인간들은 완전히 맛이 간 놈들이라고 단정을 하게 되었다.

일단 트로이카 게임즈는 어떤 회사인가? 원래 트로이카 게임즈는 폴아웃을 만들었던(주의:폴아웃 2를 만든 팀이 아니다.) 3명의 개발자-팀 케인, 레오나드 보야스키, 제이슨 엔더슨-가 인터 플레이에서 빠져나와서 98년 경에 만든 회사이다. 그리고 2001년 처녀작인 아케넘을 릴리즈, 이어서 2003년에 템플 오브 엘레멘탈 이블, 2004년에는 벰파이어:블러드라인을 냈다. 솔직히, 트로이카 게임즈가 낸 위의 3개의 게임은 그 코어성이나 불친절함, 극악의 최적화, 많은 버그 등으로 악명이 높다. 본인은 3개 다 해보았고, 각 게임을 할 때마다 그들의 불친절 성과 극악함에 놀랐다. 그 후에 2005년, 재정적 적자에 시달리던 트로이카 게임즈는 파산을 하였고, 전 멤버들은 옵시디언 소프트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솔직히 트로이카의 모든 게임을 해본 본인으로서는 트로이카의 비극적인 결말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된다. 이 친구들 게임을 해보면, 망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포스가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아케넘의 컨셉은 '마법과 기술이 동시에 공존하는 산업시대'라는 컨셉이다. 뭐, 흔히 하는 이야기로 스팀 펑크라는 컨셉이고, 큰 거대한 스토리 틀도 그 때 당시의 RPG 치고는 너무 평범한 감이 적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아케넘의 무서움은 그런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는 두가지 타입의 케릭터를 키울 수 있다. 활과 칼 등의 중세 무기를 쓰며 마법을 쓰는 마법형과 총과 기계 장비를 쓰는 기술형이 있다. 그러나 스팀 펑크 분위기를 내는 게임은 거의 대부분이 한쪽 테크를 타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케넘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양쪽을 혼합해서 키울 수 있다. 즉, 총을 만들면서, 파이어 볼을 쓰는 그런 케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게이머는 케릭터 육성의 폭이 엄청 넓어지는 동시에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지면서 사람의 골빡을 아프게 만든다.

물론 그런 식으로 케릭터 육성의 폭이 무한정 넓어진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는 동시에 기술/마법 게이지에 의해서 제약을 받게 된다. 케릭터를 어떤 방향으로 육성하느냐에 따라, 혹은 특정 퀘스트나 행동을 통해서 그 행동에 걸맞게 게이지가 차게 되는데, 이에 따라서 주변 NPC와의 관계, 특정 스킬이 케릭터에게 미치는 영향등이 달라지게 됩니다. 간단한 예로, 주인공 파트너가 마법쪽이고 주인공이 기술쪽이면, 파트너가 죽어라고 힐을 쓰더라도 힐이 안 먹힌다. 그리고 주인공이 기술쪽인데 마법상점이나 마법 장비 상점에 들어가면, '너 이 ㅅㅂ ㅎㄹ 시키야 여기는 왜와'라는 투로 주인공을 갈군다. 거기서 말 한번 잘못하면 곧바로 주위사람들이 주인공을 다굴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데는 절대 안들어가는 게 좋다. 반대로 주인공이 마법 계열이면, 기차를 탈 수가 없다.(그러나 주인공은 텔포 타고 다른데 가면 된다, 고로 필요 없다...왠지 기술쪽으로 키운 본인이 병신 같이 느껴진다;;) 이런식으로 주변 세계, 케릭터, 퀘스트가 주인공의 육성, 행동 방식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할 때마다 다른 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지만,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정형화된 게임 플레이 방식이 잘 안먹힌다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다가 폴아웃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자유도와 선악 개념이 거기에 포함이 되면서...상황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아케넘의 장점(...이라고 보기에는 미묘한;;)을 살펴 보았으니, 이제는 단점을 살피도록 하겠다. 아케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래픽이라고 할 수있는데, 좀 심한말 보태서 폴아웃 2에서 어떠한 발전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마법 효과로 보여주는 그래픽은 거의...뭐...좀 그렇다. 뭐, 그냥 그렇다고만 해 두겠다. 그리고 전체적인 케릭터나 몬스터의 움직임이...움직임이...차마 내입으로는 말 못하겠다. 아케넘은 2001년 게임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부분들이 많다. 본인은 이에 대해서 이런 가설을 세우고 있는데, 트로이카는 이 게임을 99년 정도에 발매할 계획이었는데, 달력을 안보고 게임을 만들다가 2001년이 되어버렸고(.....), '아 ㅅㅂ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게임을 발매한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게임의 최적화는 거의...엉망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솔직히 과거 본인의 컴퓨터 였던 펜3-500, 512램에서는 그냥 저냥 돌렸다. 그러나 나왔을 당시에는 최적화에 관해서는 거의 C&C:타이베리움 선 정도의 욕을 처먹었는데, 로딩 시간이 너무 길어서 게임 하는게 힘들다는 이야기와, 도대체 그래픽이 이 모양이면서(.....) 게임에 뭔짓을 했길래 게임이 이렇게 느리냐 라는 평을 동시에 들은 게임이다. 솔직히 본인도 게임에 뭔짓을 했길래, 게임 돌아가는게 이 모양이지? 라는 의문을 품어본게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적이 무한으로 기어나오는 퀘스트에서는 권장사양 정도였던 본인의 옛 컴으로도 게임이 엄청나게 끊길 정도였으니, 최적화 문제는 말 다한 것이다.

그외 엄청나게 많았던 자잘한 버그와 인터페이스 문제 등, 아케넘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괴작이 되고 말았다. 물론 RPG에 있어서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보다 게이머의 자유도를 중시하는 몇몇 코어 게이머들에게 매우 멋진 게임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케릭터를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주변 세계가 반응 하는 것이 달라지는 놀라운 자유도를 보여준다. 이 정도만으로 아케넘이 가지는 '자잘한 문제들'은 극복할만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거에 잼병이거나 전혀 하드 코어 하지 않은 게이머는 아케넘은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지옥이다. 즐기자고 하는 게임이 게임에 대한 머리 아픈 연구와 버그와 최적화 문제등으로 게이머의 머리를 아프게 하니, 할 말은 다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많은 게이머들에게 어필하지 못했으며, 판매고는 부실하였다.

아케넘은 트로이카 게임즈의 성향과 사상이 집약된 게임이었고, 그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이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코어에, 코어에 의한, 코어를 위한'이라는 모토 아래 그들의 모든 게임을 설명할 수 있으며, 후에 나오는 벰파이어:블러드라인은 그들의 사상이 극도로 집약되어 나타난 걸작이었으나, 극악의 최적화 문제 덕분에 트로이카 게임즈에게 치명타를 입히게 되었다.(이는 후에 다루게 될 것이다.)

덧 1. 아케넘은 무려 멀티플레이가 된다(......)이게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는 본인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덧 2. 한국에 정발되었다....어떤 용자가 이걸 수입할 생각을 했지?        
게임 이야기/게임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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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제정신입니다.)

요즘 별 신통한 뉴스가 없어서, 예전부터 기획하고 있었던 칼럼을 연재 해볼까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건 아니고요, 게임 자체는 매우 재밌지만 버그, 최적화, 지원 문제 등을 포함해서 망해버린 게임이나, 여기저기서 엄청난 기대를 모았지만, 실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을 안겨준 게임, 그냥 욕이 나올 정도로 존나 어려운 게임 등 왠만한 사람들이 하지 않았을 법한 게임들만 모아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뭐 그게 얼마나 연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위해서 고전 게임을 찾아 용산을 돌 의향도 충분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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