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이번 슈로대 K 발매 기념으로 보고 있는 작품들이 3개 있습니다. 일전에 보고 있던 창성의 아쿠에리온, 그리고 창궁의 파프너와 신혼합체 고단나, 이렇게 3개입니다. 이 3개중에서 가장 병신 같은 작품을 꼽으라면 창성의 아쿠에리온이고, 가장 잘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고르라면 창궁의 파프너겠군요.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다가 보니까 평이 더 좋은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객관적으로도 잘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 자체는 전형적인 포스트 에바(Post Eva, 에반게리온 이후의 나온 비슷한 컨셉의 작품들)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적과 완전히 수세에 몰린 인류,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인간형 최종 병기, 이를 조종하는 소년 소녀들, 그리고 특유의 존재론적 혹은 인간관계론적 고민까지, 창궁의 파프너는 에반게리온의 코드를 많은 부분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첫 1, 2화만 놓고 본다면 '이거 에반게리온 판박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주요한 비판 중 하나가 바로 에반게리온의 복제품이며 아류고 그렇기 때문에 에반게리온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런식으로 에반게리온의 아류작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전에 나온 작품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새로운 작품도 나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이런식의 논리를 확대하면 마징가 Z 이후로는 어떠한 메카닉물도 나와서는 안되며, 퍼스트 건담 이후로 나온 일명 리얼계 로봇물들은 죄다 건담의 아류이고, 데즈카 오사무 이후의 만화가는 다 사이비라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일단 작품을 놓고 작품 자체가 어떤지를 본 다음에 그 작품의 좋은 점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궁의 파프너는 잘 만든 작품입니다. 포스트 에바가 가지는 코드를 넘어서 자기만의 색체가 있는 작품이니까요. 에반게리온이 주된 테마를 '소통'에 초점을 맞추어 놓았다면, 창궁의 파프너는 '생존'에 초점을 맞춥니다. 평온했던 섬의 일상이 단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소년 소녀들이 알고 있던 현실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평온해보이던 타츠미야 섬은 사실 대 페스튬 요격 요새였고, 믿었던(?) 친구는 자신의 친구보다 파프너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자신들은 알고 보니 인공 자궁에서 만들어져서 길러지는 새로운 인류였으며, 타츠미야 섬은 전세계를 등진 존재라는 것,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는 이미 멸망한 것 등등 주인공들에게 있어 일상은 순식간에 비일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창궁의 파프너는 살아남기 위해서 전세계를 등지고, 아이들에게 파프너를 타고 싸움을 강요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싸움에 내몰린 아이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예전의 자신들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또한 싸움에서 이기고 살아남는 것, 그것이 언제나 살아남는 사람에게 있어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애니는 적절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이야기 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음악이나 컷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상황에서는 대단히 찌질해 보일수도 있는 주인공들의 행동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 일단 페스튬이라는 적도 흥미로운 적이기는 합니다만, 현재까지 제가 감상한 분량(~14화 까지)에서는 별다른 특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쭉 보아온 애니의 적들과 다르게 '당신은 거기 있습니까?'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다니더군요. 다만 문제는 멘트가 그거 하나 밖에 없어서, 나중에는 듣는 사람이 지겨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창궁의 파프너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북구 신화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브륜힐데 시스템, 발키리의 바위굴, 그리고 파프너 뒤의 넘버링이 독어인 점은 창궁의 파프너가 독일 및 북구 신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성경 및 기독교적인 부분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라제폰은 이집트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점을 생각하면 나중에 '신화라는 텍스트로 본 포스트 에바'라는 분석도 가능하겠군요.

-이 애니 감상에 있어서 유일하게 거슬리는 부분은 바로 케릭터 디자인과 작화입니다. 건담 시드, 시드 데스티니의 히라이 히사시, 이걸로 게임 셋입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케릭터가 3종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해어 스타일만 바꾼 키라 클론, 여자, 그리고 보통 사람(.......)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좀 개성있게 그릴 것이지, 생겨먹은 게 죄다 그놈이 그놈같고 저놈이 저놈같으니 문제입니다. 물론 최근작 히로익 에이지는 좀 나은거 같습니다만, 저는 지금 히로익 에이지를 보는게 아니라 창궁의 파프너를 보고 있는 것이거든요(......)

작화는 붕괴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경계에 있습니다. Xebec이 뭐 그렇게 작화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창궁의 파프너는 객관적으로 좋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무너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선은 유지해주고 있으니 감지덕지 하고 보고 있는 중.

잘하면 罪惡業에서 다룰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