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위쳐는 폴란드 게임 제작사인 CDprojekt에서 만든 RPG 게임입니다. 폴란드에서 유명한 동명의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위쳐는 발매 당시부터 놀라운 완성도와 분위기, 세계관으로 전세계의 많은 게이머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인터페이스, 더럽게 긴 로딩, 버그, 껄끄러운 영어 번역 등등은 게임의 평가를 많이 깎아먹었고, 후에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한 위쳐:인헨스드 에디션(Enhanced Edition)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헨스드 에디션은 문제점만 시정했을 뿐이지,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본작인 위쳐와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위쳐만 놓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쳐의 가장 큰 특징과 장점은 바로 세계관과 분위기입니다. 일반적으로 RPG 게임은 여러분의 여러분 자신의 케릭터를 만들고 그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중점입니다. 하지만, 위쳐는 이러한 요즘 RPG와 다른 컨셉을 취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일단, 게임 속에서 게이머는 유명한 위쳐인 게럴트(Geralt)를 조종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됩니다.

위쳐는 게임속 설정상 일반인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괴물들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면서, 부수적으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의 역할을 합니다. 즉, 게임 속의 게럴트는 돈을 위해서 일을 하는 해결사지, 세계를 구할 영웅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의 모험의 목적은 동료와 자기들의 영업 비밀(?)을 되찾기 위한 여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쳐에서 오로지 문제가 되는 것은 선과 악이 아닌 게이머의 행동과 그 결과이고, 의뢰 뒤에 숨어있는 진실뿐이죠.

이러한 컨셉을 기초로 위쳐는 비정하고 어두운 세계관을 연출합니다. 왕이 자기 딸을 강간해서 생긴 괴물(저주를 푸니까 아름다운 공주가 되지만), 겉으로는 착하고 근엄한 척하지만 뒤로는 마을의 어린아이들을 노예로 갖다 파는 성당 사제, 형을 죽이고 재산을 취한 주정뱅이, 자신의 죄악들을 마녀에게 뒤집어 씌우는 마을 사람들 등등 소돔과 고모라 뺨을 후려갈기는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게이머는 적당히 나쁜놈들하고 싸바싸바 하고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퀘스트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에 매달릴 것인가(그렇다고 그것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어두운 세계관과 해결사라는 게럴트의 입장은 위쳐를 다른 RPG와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게이머를 게임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위쳐의 전투시스템은 독특합니다. 게임 내내 무기는 2개(강철검과 은제검)만을 쓸 수 있으며, RPG의 정석(?)인 마법은 5개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적들의 개성, 적들과 무기 마법 사이의 상성관계, 전투에 있어서 약물이나 보조 아이템의 제조와 이용,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등을 통해서 전투라기 보다는 괴물을 사냥한다라는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쳐에서는 전투를 위해서 약이나 소모품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게임 속 설정상 위쳐들은 지속적인 훈련과 약물 복용을 통해서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초인이 되었지만, 약물의 부작용으로 불임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밤기술이 워낙이 뛰어난 나머지 여자들이 가는 곳 마다 필연적(?)으로 달라 붙습니다. 그래서 게임 속에서 게이머는 게럴트와 잔 여자들의 카드를 모을 수 있는데(절대 미연시의 CG 같은게 아니니 오해하시지 마시길), 은근히 모을 수 있는 카드 수가 많습니다.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데, 게임을 하면서 일정 퀘스트나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모을 수 있는 카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몇몇 카드는 황당한 상황에서 모을 수 있습니다. 가장 골 때렸던 이벤트는, 동굴 밖에 마녀를 불태우자는 성난 군중이 모여있는 위기상황에서 대화 선택지가...

1.일단 나갑시다. 내가 당신을 보호하겠소.
2.붕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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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2번을 선택하면 붕가하는 시추에이션으로 들어갑니다(.....)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여러 가지로 독특한 시스템과 분위기, 높은 완성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쳐는 미국 시장 발매 당시 꽤 저평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고질적인 버그와 개적화, 길고 긴 로딩과 시도 때도 없이 게임의 흐름을 끊어먹는 자동 세이브 및 더럽게 불편한 인벤토리 및 인터페이스, 묘한 번역 등 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헨스드 에디션이 나오기 전까지는 좀 아쉽게 묻힌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요소들을 극복하고 플래이한 사람들은 위쳐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고, 문제점들을 해결한 인헨스드 에디션이 나오면서 평단의 호평을 받게 됩니다.

위쳐는 잘 만든 게임이고, 매력적인 게임이기도 합니다. 다만 언제나 이런 류의 게임들이 그렇듯이 뒷마무리가 아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인헨스드 에디션으로 그러한 단점을 보완하였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컨셉이나 완성도는 있지만, 마무리가 제대로 안되서 말린 게임'들 중 하나가 될 뻔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 그런데 '그렇게 망할 뻔한 게임'을 120만장 씩이나 팔아치웠으면, 앞뒤 말이 안 맞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