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사실, '300' 감독인 잭 스나이더가 신작인 왓치맨의 메가폰을 잡았다고 들었을 때, 저는 이번작 왓치맨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왓치맨이라는 원작 자체가 대단히 다원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고, 분위기 자체가 300이라는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저번 시사회에서 원작자인 알랜 무어가 영화에 대해서 심한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점과 메타 크리틱에서 100점 만점에 50점을 웃도는 평균도 또 다른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래도 백문이불여일견.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 작품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이고, 국내 시사회 이후 나온 평론들도 생각보다 괜찮았기 때문에(듀나 같은 경우에는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너무 원작 그 자체를 옮겨놓아서 영화적인 맛이 떨어진다고 불평을 했죠), 오늘 친구들과 함께 용산 아이맥스 개봉 레이드를 뛰었습니다.

일단, 영화 자체는 원작에 충실합니다. 아니 풀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왓치맨이라는 중층적 의미를 가진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고, 그 결과 원작을 충실히 구현해 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원작이 가지는 묘한 느낌이나 다의성 등의 많은 장점들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적절한 선에서 원작 구현을 해내는데 성공합니다.

영화는 원작의 가장 큰 스토리 흐름을 따라갑니다. 그것은 코미디언의 죽음과 함께 시작과 함께 드러나는 음모이죠. 이러한 스토리는 '과연 슈퍼 히어로 등의 개인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악한데, 도대체 슈퍼 히어로가 할 수 있는게 뭔가? 영화 왓치맨은 이러한 과정을 은퇴한 히어로들(몇몇은 현역이기도 했지만)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무력감과 히어로 코스튬 중독·도착증(나이트 아울과 미스 주피터가 충동적으로 히어로 코스튬을 입고 사람을 구한 뒤에 격렬한 관계를 가지는 장면, 혹은 로어셰크의 마스크 집착증 등)을 보여주고, 마지막 애드리언 바이트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한 게 뭐지?

아무 것도 없죠. 세상은 여전히 개판 5분전이고, 인간들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슈퍼 히어로는 정부의 꼭두각시이며(닥터 맨하탄과 코미디언),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절대 주류 세상에 낄 수 없습니다. 자기 인생과 모든 것을 갖다 받쳐서 세상을 구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거죠. 역설적이게도, 바이트는 인류의 공동의 적(원작에서는 외계인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닥터 맨하탄)을 설정함으로써 인류를 공동의 적 앞에서 뭉치게 만듭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보여줍니다. 그러한 군더더기를 많이 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2시간 40분 가까이 되는 건 원작이 좀 대단하다고도 할 수 있죠. 그래도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영화는 잘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각각의 케릭터를 살리는데는 실패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원작에서만큼의 깊은 케릭터성을 가진 케릭터를 만드는데 실패합니다. 물론 영화는 케릭터성을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분히 합니다. 적절한 플래시백과 독백 등등 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기법들을 다 동원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 만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에 비해서는 썩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원작의 포스가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각각의 챕터 사이에 작품 내의 초대 나이트 아울이 쓴 자서전이나 인터뷰 자료 등을 첨부해서 이야기의 흐름과 또 다른 객관적인 시점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케릭터의 깊이를 부여합니다. 그러한 작품내의 자료 또한 왓치맨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키포인트인 것이죠.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를 제대로 살릴 길이 없습니다. 아예 나레이션으로 처리하거나, 뭐 영화와 다른 흐름을 지닌 이야기를 삽입을 해야하는데...이는 영화의 통일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또한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는 이야기들-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나 정신과 의사 이야기 등-도 개봉버전에서는 짤렸더군요. 이 부분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왓치맨은 괜찮은 영화입니다. 다만 원작이 워낙이 대단한 나머지 영화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더군요. 잭 스나이더가 원작에 되도록 충실하게 하려고 많이 애를 쓴 거 같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영화 그 자체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니 기회가 되시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