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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는 한국 스키점프 국가 대표팀에 대한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무주 동계 올림픽을 위해서 동계 올림픽 개최지 후보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급조한 스키 점프 국가대표 팀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동계 올림픽에 나갔는지, 그리고 그들이 국내에서 국제 대회에서 어떻게 질시를 받았는지와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스토리 구조는 전형적인 신파물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친부모에 대한 애증을 가지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해외 입양아, 바보 동생에 귀머거리 할머니를 부양해야하는 소년 가장, 약 때문에 선수 자격을 박탈당한 나이트클럽 웨이터, 특기도 없이 아버지 음식점 중국인 여종업원을 사랑하는 중졸 학력 보유자 등 전형적으로 세상이 갖다 버린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말도 안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동계 올림픽 대비를 하고, 무주가 개최지 선정에서 탈락하자 곧바로 대표팀이 해채되어 자비로 올림픽 출전까지 하는 등 많은 고난을 겪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고난을 극복하고 스키점프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섭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영화의 주제이자 핵심인 '국가대표'라는 명예입니다. '국가대표'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국가대표란 사람들이 중졸학력자, 약물중독자 양아치, 소년가장, 수출 입양아[각주:1]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이용 당하고, 이용가치가 사라지자 버려진 존재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한 국가를 대표해서 세계로 나선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국가대표로써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영화 마지막 나가노 올림픽 이후에도 그들은 국가대표가 아닌 찐따 취급을 받습니다. 원래부터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급조되고 사용가치가 다 되면 갖다 버릴 존재들이었으니까요. 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아니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서민들은 윗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사용되는 소비재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이들의 명예이자 멍에인 '국가대표'는 다시 한번 재해석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국가'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선 것이 아닌, '우리'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선 것이라구요. 따라서 그들이 심판의 편파판정, 미국의 텃세, 한국 올림픽 위원회의 미지원, 세상의 질시를 극복하고 세계 사람들 앞에서 박수를 받는 장면은 동시에 우리를 위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고 세상의 멸시를 받아가면서 단물 쪽쪽 빨아먹고 사람을 헌신짝처럼 갖다버리는 인간들을 넘어서서 우리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무명의 사람들에 대한 찬사인 것입니다.

솔직히, 국가대표는 한국판 블록버스터의 전형입니다. 일반적이거나 덜 떨어진 인간이 영웅이 된다는 너무나 전형적인 구도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영화의 완급이나 적절한 개그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 긴장감 있는 스키 점프 장면 등을 통해서 영화에 완성도를 높이는데 성공합니다. 영화 마지막의 자막은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구요. 따라서 국가대표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영화의 클라이맥스, 형의 부상으로 바보 동생이 스키 점프를 해야하는 상황이 옵니다. 그러나 동생은 점프대에서 내려다 본 올림픽 경기장에 압박감을 느끼고 안으로 들어오죠. 그러자 형이 동생을 붙잡고 소리치는 한 마디.

"니가 뛰어야 내가 군대를 안 간단 말이야!"

....대한민국 영화의 금기(?)가 하나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 자체는 정말 웃기다기 보다는 대단히 진지해서 그닥 문제될 게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엄청나게 공감이 되더군요(......)



  1. 해외 입양아는 돈받고 팔려가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영화속에서도 그런식으로 표현이 되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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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켐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인류 보편의 신화구조를 있다고 규정하고, 그것이 인간의 욕망이나 무의식이 투영된 스토리로 봅니다. 이러한 영웅 신화의 구조는 신화-이미지-언어라는 삼각 구도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신화같은 경우 Psyche라는 단어가 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에로스의 아내인 프쉬케에 대한 신화와도 연결이 됩니다. 이와 같이 추상적인 단어에서 이미지(프쉬케)와 스토리(프쉬케에 대한 신화)를 연관지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구조와 이미지는 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에 많이 차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구조와 이미지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미지 및 반응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헐리웃 상업 영화가 시장을 독점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문화권에 근저에 깔려있는 신화구조를 잘 이용한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영화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신화-이미지-언어의 상호보완적인 구조가 없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 겪은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의 논리에 의해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몰려 사라진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현대로 계승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추상적인 주제나 논지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감독들이 각기 다른 방식을 쓰고, 그것들 모두가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정서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는 흥행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성과를 한국영화가 드디어 한국 관객들에게 먹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미지 구조를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소위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은 소시민과 무력한 가장과 가족, 위기상황, 그리고 헝그리 정신 등으로 표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공식은 한국적인 사실성과 이미지를 통해서 묘사되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맞딱트릴 수 있는 당면 과제나 경험, 감정을 표현해서 이미지와 이야기 구조, 주제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확보합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론이 대단히 길었지만, '거북이 달린다'는 일련의 한국영화 흥행 공식을 잘 따르고 있는 영화입니다. 무력한 가장, 바가지 긁는 아내, 몰려오는 생활고, 구질구질한 일상, 실직의 위험 등등 이러한 요소들을 짜임새 있게 정렬 배치하여 영화를 완성합니다. 재밌는 점은 김윤석의 작년 출연작인 '추격자'와 많은 부분에서 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지독한 악덕 포주로 나오지만,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무기력한 가장으로 나오더군요. 이는 배우 김윤석의 연기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김윤석이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끝냈으면 영화 완성도가 더 올랐을 거라고 아쉬워 하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훌륭하고 긴장의 완급도 좋습니다. 현재 관객 100만을 넘어선 상태이며, 잘하면 제 2의 과속스캔들도 노릴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한국영화에 있어서 흥행은 사실 돈이나 CG, 액션을 쳐바르는 게 아니라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각색하고 완성시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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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스타트렉 팬도 아니고, 스타트렉 시리즈에 대해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스타트렉 설정이나 인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리뷰는 영화 더 비기닝에 나온 이야기와 각종 언론 매체에서 나온 단평들을 토대로 리뷰를 진행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스토리 진행에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타트렉은 미국의 유명한 SF 드라마 시리즈입니다.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서 수많은 팬들이 있고, 수많은 파생작들(ex.베틀스타 겔럭티카 등)과 패러디(ex.겔럭시 퀘스트 등)를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그러한 스타트렉의 시리즈의 처음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단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훌륭한 SF 영화입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기존의 드라마 시리즈에 대해 가지는 입장입니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기존의 트레커(스타트렉의 팬들을 지칭하는 말)들에게는 분노를 살만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더 비기닝'의 시작은 전설적인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 제임스 커크 함장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초반 출생부분 및 오프닝 시퀸스 이후로 사람들(트레커를 포함해서 스타트렉이라는 시리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은 '그 대머리 함장'이 나오기를 기대하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완숙하고 노련미 넘치는 중년의 제임스 커크가 아닌, 젊은 풋내기 제임스 커크입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낌세를 보입니다. 물론 젊고 반항적인 제임스 커크를 등장시킨 것은 커크가 어떻게 위대한 함장이 되어가는가의 과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의도한 바는 기존의 스타트렉 시리즈와 영화 사이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기 위해서는 젊은 커크를 보여주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뭔가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죠. 여기서 감독 J.J. 에이브람스는 영화에 아주 골 때린 설정(동시에 기존의 팬들을 완전히 열받게 만들만한)을 집어넣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 여행과 평행세계 이론입니다.

미래에서 온 악역인 네로는 처음 연방과의 접촉에서 커크의 아버지를 죽입니다. 기존의 시리즈의 역사를 따르면, 커크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스타 플레트에 들어오고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이 되죠. 하지만 여기에 네로가 개입하면서 영화는 스타트렉 세계관의 평행세계가 됩니다. 여기서 커크의 케릭터나 사고관이 바뀌고, 그리고 스타트렉 내의 역사와 사건들도 다 뒤죽박죽으로 섞이고 심지어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까지 바뀝니다.

저는 원작 드라마를 안봐서 뭐라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의 이미지는 사려깊으면서 노련한 지휘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더 비기닝의 커크 선장은 천재적이긴 하지만 반항적이고 문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스팍과 대립하고 갈등하죠. 하지만, 커크와 스팍이 케릭터적으로 서로 맞닿아있다는 것을 영화 말미에 보여주어서 기존의 시리즈와 다른(?) 스팍과 커크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서 작품은 기존의 시리즈와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과거 스타트렉이 서로 다른 종족 간의 생각 차이로 생기는 문제, 그리고 특이한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 모험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면, 이번 더 비기닝에서는 모험이나 조우보다는 각각의 케릭터에 더 집중하고, 케릭터성 또한 대단히 현대적입니다(ex.반항아적인 커크, 머리는 차갑지만 가슴은 따뜻한 스팍 등). 즉, 이와 같이 더 비기닝은 예전의 시리즈 보다는 최근의 영화의 흐름을 반영했습니다.

영화에서 전투나 함대전은 대단히 화려하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는 과거 클로버필드를 감독한 J.J. 에이브람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러한 아슬아슬한 전투나 액션 연출과 함께, 위에서 언급한 케릭터성의 재해석(이라기보다는 재창조)은 영화 스타트렉:더 비기닝을 잘 만든 SF 블록버스터로 만듭니다.

이런 특징 덕분에, 더 비기닝에는 한가지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팬들은 대단히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J.J. 에이브람스가 기존의 시리즈를 재창조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재창조는 기존의 스타트렉 세계관이나 분위기를 무너뜨리고, 극단적으로 기존의 스타트렉의 세계는 평행세계화 시켜버립니다. 이렇게 과격한 영화를 팬들이 썩 좋아할 리는 없죠. 저도 스타트렉은 잘 모르지만, 보는 내내 스타트렉 정도가 되면 전통과 역사가 있는 시리즈인데 이렇게 함부로 막 바꾸어도 되는지는 의문이더군요.

일단 스타트렉:더 비기닝은 SF 블록버스터로써는 중간 이상은 하는 영화입니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들로 영화 내내 관객을 쥐었다 폈다 하니까요. 다만 기존의 드라마의 펜이라면 썩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가 완전히 J.J. 에이브람스 식으로 재창조되서 나왔는데, 보고나서 기분이 좋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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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짤방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장난은 그만두고...영화 푸시는 참 뭐랄까, 모호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목표는 초능력자 배틀물인데, 정작 내용은 스릴러(?)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그 스릴러도 제대로 된 스릴러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로인해서 영화는 하나의 구심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덕분에 스릴러와 배틀물 사이의 어정쩡한 위치를 차지해서, 어중간한 내용이 되어버리죠.

푸시는 크게 9종류의 초능력자가 있습니다. 미래를 보는 워쳐, 물건을 움직이는 무버, 기억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푸셔 등등...이렇게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능력을 이용해서 숨 막히는 추격전과 두뇌 싸움을 벌인다.....가 영화가 지향하는 컨셉입니다. 근데 이것이 영화 푸시의 첫 번째 실수입니다. 일단 푸시에서 나오는 9종류의 초능력자들은 죄다 어디선가 나온 능력자들이거든요. 대단히 식상한 소재일뿐더러, 이미 다른 영화에서는 소재에 대한 장르적인 깊은 고찰이 된 상태(ex.엑스멘 등)입니다. 단지 종합 선물 세트처럼 어디서 나온 놈들을 죄다 모아놓고 특수효과 좀 넣었다고 해서 재밌는 액션 영화가 만들어지는게 아니죠.

그 다음으로 영화가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과연 주인공이 워쳐에 의해 예지된대로 죽지 않고, 히로인을 구할 수 있을까?’ 입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머리를 막 굴리죠. 어떡하면 워쳐에 의해서 결정된 예지를 고칠 수 있을까? 영화 내내 악역들은 ‘난 니네의 죽음을 알고 있지 메롱’하면서 약을 올리고, 주인공들의 행동범위도 적들의 워쳐들이나 주인공들이 예지하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영화는 여기서 두 번째 실수를 하는데, 주인공들은 적들이 그냥 '메롱'하는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하면 피할까'를 열심히 궁리를 합니다. 뭐, 궁리하는 거 까지는 좋은데, 여태까지 주사위 도박이나 하면서 양아치처럼 살아온 주인공이 어떠한 초능력자도 하지 못한 '워쳐의 예지를 깨뜨린다'라는 난제를 너무나 쉽게 해결합니다. 그냥 '워쳐의 예지는 불확정성에 의해 깨지니까, 계획을 세우고 기억을 지운다.'라는 것만으로요. 감독은 이러한 명제에 대해서 대단히 심취한 나머지 이 부분을 대단히 강조합니다. 주인공들이 적들을 속이는 부분을요. 근데 솔직히 그 부분을 보는 제 입장에서는 '알겠으니까, 극장에서 보는 보람이 있게 좀 두드려 부수고 싸우라고!'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한 두가지 실수 덕분에 영화 푸시는 이도 저도 아닌 묘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초능력자물다운 능력자들의 힘겨루기나 대결도 제대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이 영화를 뭐하러 보러 가야하나요? 사실 이 영화의 가치는 다코타 패닝이 아역이 아니라 청소년의 역할을 맡은 감격스러운(?) 첫 번째 영화라는 점입니다. 뭐, 연기도 무난하게 그럭저럭 하는 편이고, 나름 귀엽다고도 할 수 있으니 다코타 패닝을 위해서 콜라와 돈을 소비할 수 있다는 열성 팬들은 보셔도 상관 없을거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푸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덕분에 망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뒤에 감독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군요. '제발 부탁인데,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가 플롯 짜놓고 자아도취하는 짓거리 좀 하지말고 하나만 확실히 해!'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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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레슬러는 퇴물 레슬러 랜디와 그의 변두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 한 때 프로레슬링이 유행할 때 그는 잘 나가는 레슬러였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프로레슬링이 쇠퇴하면서 같이 퇴물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랜디는 심장에 문제가 오게 되고, 이를 계기로 레슬링을 관두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반추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으려 합니다. 하지만 랜디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링으로 돌아가고, 그의 생애 마지막 경기를 벌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레슬러는 구태의연한 신파물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 때 잘나갔지만 이제는 완전히 퇴물이 된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이 걸린 고칠 수 없는 병. 어릴 때 버리고 떠났던 자식. 프로레슬링의 세계 바깥에서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여인 등등...이와 같이 전형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파적인 코드를 기저에 깔고 있다고 해서 더 레슬러가 평범한 3류 신파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식상한 스토리와 소재를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더 레슬러는 관객들에게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쥐고 흔듭니다.


더 레슬러와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저는 패배자 3부작 이라고 부르지만)ㅡ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신파 코드를 끌어오면서도 동시에 신파 코드 그 자체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파와 인생에 대한 철학, 혹은 이들에 대한 따뜻한 감성이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태의연한 소재를 끌어오면서도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죠.


더 레슬러와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랜디가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철저히 소외당했다는 것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에서는 적어도 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 일탈 같은 부분을 남겨두었지만, 더 레슬러에서 데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주인공인 랜디를 세상에서 소외시킵니다. 몇 년만에 찾은 딸과는 좋지 않게 해어지게 되고, 클럽에서 서로 좋아하던 스트리퍼 댄서와는 이어지지 못했으며, 은퇴한 뒤에 동네 샐러드 바에서 일하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 때문에 상처 받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서 랜디는 자신이 있을 곳이 링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링 위로 올라섭니다.


이러한 과정을 감독인 데런 아르노프스키는 대단히 저자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몇몇 극적인 사건들도 일말의 호들갑 없이 담담한 시점으로 보여주고 있고, 일상생활 등을 거친 핸드핼드의 카메라를 통해서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그의 예전 작품이었던 레퀴엠(2000, 관련 리뷰는 여기)과 극단적으로 대조됩니다. 레퀴엠에서는 온갖 MTV 스타일의 자극적인 카메라 기법을 동원해서 현대 사회의 중독에 대한 고찰을 드러내었지만, 더 레슬러에서는 그러한 촬영 기법을 핸드헬드 이외에 거의 쓰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데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현실적인 영화 분위기에 랜디와 세상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영화적인 장치를 적절하게 삽입합니다. 이는 그가 그리워하는 그의 전성기인 1980년대와 현대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면서 완성됩니다. 일례로 랜디가 자신의 이름을 딴 NES(혹은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서는 FC로 알려진) 게임을 동네 꼬마를 불러서 할 때, 동네 꼬마는 콜 오브 듀티 4 이야기를 하죠. 어찌보면 80년대를 풍미했던 NES가 현재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완전히 퇴물이 된 것이고, 랜디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랜디의 트레일러의 붙어있던 영 엥거스의 AC/DC 포스터와 딸의 집에 붙어있던 Vampire Weekend(2008년에 유행한 밴드 중 하나) 포스터 등등 랜디와 현재 세상의 간극을 잘 보여주는 영화적 소품이 많습니다. 그리고 미장센 또한 이러한 랜디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데 일조하죠.


그러나 감독의 적절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키 루크의 연기입니다. 원래 주인공 역에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니콜라스 케이지를 후보로 두었지만, 결과적으로 미키 루크가 주인공으로 정해졌죠. 만약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인공을 맡았으면, 이 영화는 절대로 지금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할 겁니다. 한 때, 1980년대의 나인 하프 위크 등에 출연, 색스 심볼로서 느끼함과 근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키 루크.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마약과 문란한 사생활 문제로 완벽하게 망가지게 되었고, 더 이상 배우로써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2000년대 이후로 신시티에 등장해서 배우로서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만화적 이미지가 주된 영화인 신시티에서는 연기의 완성도를 논할 부분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레슬러에서 미키 루크는 말 그대로 퇴물입니다. 80년대의 탄탄한 근육과 매끈한 피부, 잘생긴 얼굴, 말총머리 등 한 때 섹스 심볼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망가져서 나옵니다. 축축 늘어진 근육과 주름 잡힌 얼굴, 푸석푸석한 머리까지, 물론 어느정도 분장은 한 것이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과거의 미키 루크가 망가졌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망가진 모습이야 말로 랜디 역에 어울리는(미키 루크 본인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내에서 미키 루크는 완벽한 망가진 중년 퇴물 레슬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죠. 덤덤하게 저자극적인,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성격을 스크린에 서있는 것만으로 드러낼 수 있는 놀라운 경지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는 더 레슬러의 랜디와 미키 루크 본인이 걸어온 삶이 결과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기에, 미키 루크가 자신의 인생경험을 이입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키 루크=랜디'의 공식은 영화의 마지막 랜디가 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할 때, 가장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자신이 한때 젊어서는 뭣도 모르고 설쳤고 좀 더 순탄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이제 완전히 퇴물이 되었고 더 이상 갈 데도 없게 되었지만 결국 링 위에서 관객들의 받은 환호를 잊지 못해 돌아온 랜디. 이는 랜디의 자기 고백이자 동시에 미키 루크의 자기 고백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이야 말로, 이 영화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링 위에서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뛰어내리는 랜디의 모습을 끝으로 스텝롤이 오르고, 브루스 스프링턴의 'The Wrestler'가 흘러나옵니다. 이 노래를 끝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합니다.

 

Bruce Springsteen "The Wrestler" - Official Video



Have you ever seen a one trick pony in the field so happy and free?
-당신은 벌판 위에서 묘기 부리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조랑말을 본 적이 있나요?
If you've ever seen a one trick pony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묘기 부리는 조랑말을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것입니다.
Have you ever seen a one-legged dog making its way down the street?
-당신이 외발인 개가 거리를 내려가는 것을 본 적 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legged dog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발 개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것입니다.

Then you've seen me, I come and stand at every d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와서 모든 문 앞에 섰죠.
Then you've seen me, I always leave with less than I had before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항상 잃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Then you've seen me, bet I can make you smile when the blood, it hits the fl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당신을 미소짓게 할 수 있죠.
Tell me, fan,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더 이상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ell me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Have you ever seen a scarecrow filled with nothing but dust and wheat?
-당신은 먼지와 밀짚단 밖에 없는 허수아비를 본 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that scarecrow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허수아비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Have you ever seen a one-armed man punching at nothing but the breeze?
-당신은 항상 헛손질하는 외팔이 복서를 본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armed man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팔이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Then you've seen me, I come and stand at every d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와서 모든 문 앞에 섰죠.
Then you've seen me, I always leave with less than I had before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항상 잃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Then you've seen me, bet I can make you smile when the blood, it hits the floor
-당신은 나를 보았고, 나는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당신을 미소짓게 할 수 있죠.
Tell me, friend,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더 이상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ell me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야기해보세요, 당신이 뭘 더 물어볼 수 있죠?

These things that have comforted me, I drive away
-나를 안락한 것들을 모두 갖다 버렸네.
This place that is my home I cannot pay
-내 집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내게 더 이상 감당이 안되네.
My only faith's in the broken bones and bruises I display
-내 유일한 신념은 내가 보여주는 부러진 뼈와 멍에 있다네.

Have you ever seen a one-legged man trying to dance his way free?
-당신은 한 다리로 자유롭게 춤추려는 외다리 사나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
If you've ever seen a one-legged man then you've seen me
-당신이 그 외다리를 보았다면, 당신은 나를 본 겁니다.


덧1.아.. 가사 번역 뭔가 어색해ㅠㅠㅠㅠ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안녕 소년! 난 간지 브래드라고 한다!)

에...'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오늘 친구와 함께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참 복잡 미묘한 작품이더군요. 주된 내용은 80세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점점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밴자민 버튼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밴자민 버튼의 일생 을 그려내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죠.

사실, 영화 티저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저는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은 기대를 했었습니다. 일단 세븐, 조디악 감독인 데이빗 핀처의 신작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그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인생에 대한 깊은 우화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에서는 그러한 상황 자체가 제가 기대한 것과 반대로 다가오더군요.

벤자민 버튼은 80세의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정신은 평범한 사람의 정신과 똑같습니다. 나이를 역으로 먹는다는 상황을 제외 한다면요. 즉, 일반적인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벤자민 버튼이 젊어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그 상황에서 오는 메리트를 잃어버리고 평범한 인생 역정극이 됩니다. 비유를 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가 사실 정방향으로 필름을 찍은 것을 역순으로 배열해서 특이한 효과를 도출해놓은 사실을 알고, 이를 머릿속에서 다시 재편집을 해서 정방향으로 놓았을 때 슬픈 블랙 코미디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 처럼요. 뭐, 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코미디 영화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의 상황이 가지는 특징은 그의 인생이 의외로 평범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 빛을 바랩니다.

물론 벤자민 버튼이 그가 가지는 특수한 상황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특수한 상황은 그에게 인생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의외로 벤자민 버튼이 그의 특징으로 인해서 바깥 세상과 갈등하는 부분은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주변 사람들을 잘 둔 탓도 있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이나 고난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의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대단히 축복받은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벤자민 버튼의 인생이 그의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늙어지는데, 자기 혼자만 젊어지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젊어지는 대상이 브래드 피트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연기를 잘 합니다. 인생 경험이 많은 눈빛을 보여준다던가 등은 좋았는데, 이 사람이 뭘 하면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문제입니다(......) 20대를 넘어서면서(겉 나이로는 50~60), 이 사람이 옷을 입고 다니는게 완전히 어디 광고에 나올법한 이미지와 포스를 풍기면서 나오기 시작하면 '아 이거 좀 아닌데?' 싶더군요. 즉, 브레드 피트의 연기 보다는 그가 풍기는 오라가 작품에 안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밴자민 버튼이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밴자민 버튼'이 아니라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광고 선전에 나올 법한 브레드 피트'로 보여진다는 거죠(안젤리나 졸리는 '체인즐링'에서 자기 이미지를 죽이는데 성공했는데, 반성해라 브레드 피트!)

영화 내의 화면 구성이나 이미지 등은 적절합니다. 담담하고 차분하며 현실적인 분위기죠. 다만 문제는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그의 독특한 상황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합니다. 상황도 상황인데, 좀 초현실적인 이미지나 분위기로 나가도 솔직히 좀 상관없지 않았나 싶을 정도니까요. 동화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 그 양쪽 경계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묘한 위치에 서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참 보는 사람도 복잡 미묘한 느낌을 들게 만들더군요. 인생에 대한 이미지나 동화적인 느낌을 잔뜩 집어넣고 벤자민 버튼의 특수한 상황을 잘 살려서 동화적인 작품을 만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특수한 상황이 고난과 역경이 되어서 이를 넘어서는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비교적 축복받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니, 이 둘 중 하나를 기대하고 본 사람으로써는 미묘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영화가 완전히 망쳐졌다던가 이상한 작품이 된건 아닙니다. 영화는 '당신의 상황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의 삶을 살아라'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었겠죠.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과정이 별다른 감흥이 없게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극심히 갈릴 영화라고 생각은 됩니다만, 일단 저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잡담/사색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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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is Zodiac speaking

'조디악'(2007)은 지난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일어난 조디악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여기서 조디악이란 이름은 범인이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이름을 조디악이라 밝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실제 조디악 연쇄 살인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로 사건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입니다.    

 영화 '조디악'은 이러한 실제 수사기록과 조디악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류의 영화들은 대부분, 실제 수사 기록 등을 사용하여서 최대한 영화를 객관적으로 만들고, 그리고 그런 객관적인 사실과 사실 사이에 영화적인 상상력을 덧붙입니다. 물론 '조디악' 또한 그러한 영화 공식을 충분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조디악' 이전의 영화들과 '조디악' 사이에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과거, '조디악'과 같은 영화들은 그 사건의 연관된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따라가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는 영화적인 상상력을 덧붙이는 형식을 띄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살인의 추억'을 들 수가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는 이러한 영화 중에서 아주 잘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가장 범인이라고 의심이 되는 용의자를 잡고 '진짜 네가 아니란 말이야?'라고 묻을 때, 관객들은 바로 그 상황에서 송강호와 같은 입장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조디악'은 '살인의 추억과는 정반대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관객의 감정이입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물론 '조디악'에서도 물론 가장 유력한 용의자(그리고 실제 사건에서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고, 살인범에 대한 추리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어느것 하나도 영화 내에서는 지지 받지를 못합니다. 즉, 주인공(조디악 관련 책을 쓴 작가)이 거의 마지막에 그 사건 담당 형사에게 자신의 추리를 보여주며 '이 놈이 범인인 것 같다.'라는 순간, 형사는 곧바로 '당신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증거가 없다'라고 반박합니다. 계속 이런식으로 누군가가 증거나 그 추리를 내고 살인 사건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라는 믿음을 등장인물과 관객이 공유하게 되는 순간, 곧바로 누군가에게 반박 당하게 되고, 현실(아직도 조디악 관련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고, 사건에 관련된 정황 증거들이 불확실하다는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와 자기 자신을 동화 시킬 수 없게 되고, 영화 밖에 관찰자로서 남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사람들은 어떤 살인사건에 대한 추억을 본다기 보다는, 살인 사건에 관한 기억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게 바로 영화 '조디악'의 가장 큰 미덕이자 장점입니다. 애시당초부터 관객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생각을, 추리를 강요하지 않고 오로지 사실만을 덤덤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서 조디악 사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디악'은 확실히 잘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봐도 나쁘지 않을 영화입니다. 그러나 보실 때, 주의 하셔야 하는 점은 이 영화를 그냥 평범한 '스릴러'라고 보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영화라기 보다는 조디악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로서 영화를 이해하시고 보는 게, 영화를 감상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을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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