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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가장 특이한 작품들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 리스트 중에는 꼭 스컬맨이 들어갈 것입니다. 복고적인 애니메이션 스타일에 반제국주의적 성향과 의뭉스러운 스토리와 충격적인 결말로 시청자를 당혹하게 만든 작품이니까요. 특히 마지막의 주인공이 개조되어서 악의 총수가 되었다는 황당하고도 암울한 결말은 엔딩 이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주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작품의 스타일은 스컬맨의 원작자인 故 이시노모리 쇼타로 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가이 고 보다 전세대의 활동한 분으로, 가면 라이더 블랙과 사이보그 009, 그리고 인조인간 키카이더 등의 작품을 만들고 특유의 암울한 세계관과 스토리 라인을 구축한 작가로 유명합니다. 실제 스컬맨은 그의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가면 라이더 블랙의 결말[각주:1], 사이보그 009의 케릭터[각주:2]나 기믹[각주:3], 심지어 스토리적으로 연결되는 듯한 암시까지[각주:4], 작품의 거의 대부분을 원작자인 이시노모리 쇼타로에게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스컬맨 작품 자체는 숙명적인 악인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건의 조사자이자 관찰자였던 주인공이 모든 사건의 핵심이자 원흉인 사람의 아들이었고,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업적을 그가 뒤집어쓰고(해골 가면) 자신의 여동생을 죽인다는 점과 머나먼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순환론적인 구성으로 인해 악인 탄생에 대한 숙명론적인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결말부를 전까지는, 스컬맨은 과거의 죄악을 청산하는 존재와 과거의 망령들 사이의 초자연적인 싸움,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탐문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스컬맨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스컬맨과 가호 계획(신인류 개발계획)이 만들어낸 산물 사이의 사투가 아닌, 주인공이 그들 사이의 싸움과 그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과거 탐정물의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산물들을 추적해나가고, 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의 또다른 핵심 축이자 주인공의 친구이자 신부, 그리고 前 스컬맨인 칸자키 요시오란 인물은 실상 그 가면의 정당한 주인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에서 세상의 끝을 보고 좌절해서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마야(주인공의 여동생)로 부터 가면을 받습니다. 그리고 가면을 받은 뒤 그는 과거 전쟁에서 보았던 개조 인간들, 즉 가호 계획의 산물들을 처단하기 시작합니다. 실상, '처단'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가 행한 것은 가호 계획으로 인해서 괴물이 된 인간들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들이 보았을 때는 무차별 엽기 연쇄살인에 불과했지만요.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명을 포기하지 않은 채,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가호 계획의 산물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호 계획의 핵심이자 모든 일의 원흉인 백령회의 교주, 동시에 이 모든 죄악에서 순수한 마야를 죽여서 이 비극을 끝내려 합니다.

 또한 모든 일의 원흉이자 발단인 가호 계획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발견한 유적에서 인간 개조를 통해 우수한 개조 병사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실전에 투입된 것이 칸자키가 참전한 전쟁에서부터였죠.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호 계획을 끊임 없이 저지하고 처단하려 했던 것은 일종의 과거 청산이자 단죄와도 같은 것입니다. 즉, 칸자키는 과거 전쟁의 되풀이되는 과오와 전쟁을 일으킨 악에 대한 분노로 가면을 쓰고 스컬맨이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컬맨은 세상의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쓴 악인이기도 한 것입니다.

 재밌는 점은 스컬맨이라는 작품 자체가 가지는 정치적인 성향입니다. 이야기에서 조금 마이너한 축을 차지하고 있지만,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과거의 영광'(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대동아공영권 이나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을 되찾으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가호 계획이나 전쟁처럼 과거의 망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내에서 제국주의자들은 여전히 뒤틀린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과거 일본에 대한 풍자이자 비판입니다. 웃기는 점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인간들이 과거 자신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준 원자폭탄을 탈취하면서 '이제 저 코큰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앙증맞은(?) 제국주의자들은 결과적으로 진정한 악에 의해서 괴멸되고 맙니다. 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난 뒤에 초 미래적인 4족 보행 전차와 개조 인간들에 의해서 말이죠. 사실상 그들의 정체는 외국인이면서 동시에 무기상이었고 작품 내의 모든 사건의 흑막이었습니다. 즉, 제국주의자들도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악(무기상, 외세, 아니면 진정한 악?)의 꼭두각시였으며, 작품의 마지막에 일본은 그들의 손아래서 놀아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원작자의 작품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복고적인 분위기의 작화와 내용, 일본 애니메이션치고 독특한 정치색을 띄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정작 13화 끝나고 나서도 이해가 힘든 스토리[각주:5]와 정말 찝찝한 결말, 보통 애니메이션과 다른 특이한 템포(나쁜 말로는 늘어지는 이야기 전개)로 아직까지도 괴작 취급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복장에 하얀 해골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중후한 목소리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를 읊는 스컬맨이라는 존재 하나 만으로도 이 애니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1. 주인공이 악의 총수가 된다 [본문으로]
  2. 실제 작품의 최고 악역이 이 작품의 모티브를 준 '스컬'입니다 [본문으로]
  3. 마지막 화에서 스컬맨이 어금니를 깨물자 초음속으로 움직인 것은 사이보그 009의 주인공, 009의 능력입니다 [본문으로]
  4. 원작은 그렇지 않지만, 스컬맨에서는 009의 아버지가 스컬맨인 것 처럼 나옵니다. [본문으로]
  5. 사실 라제폰의 각본가가 참여한 만큼 스토리가 쉽게 이해될거라는 편견은 버리시는게 좋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