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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만한 사진이 암굴왕 말고는 없더군요...)




"여기 한 남자, 에드몽 당테스가 있었다. 그는 성실하고 착한 청년이었으며, 유능한 뱃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아리따운 약혼자가 있었으며, 1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큰 범선의 일등 항해사였고 곧 있으면 선장이 될 예정이었다. 세상의 불행과 전혀 관계없어 보였던 그는 인생의 정점에서 자신이 친구들이라 믿었던 자들의 손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14년 간의 감금과 형용할 수 없는 고통, 기적적인 탈출, 그리고 비정한 복수에의 맹세. 그리고 과거의 에드몽 당테스는 죽고 여기에 비정한 신의 대리인, 복수의 천사, 광기의 화신,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등장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프랑스 낭만주의 시기의 대표적 소설가 중 하나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이자, 지금까지도 대중문학의 고전으로 취급받고 있는 이 작품은 후대의 수많은 대중문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케릭터는 현대의 대중문학에 있어서 많은 의미를 가지는 케릭터입니다. 완벽하지만 어딘가 뒤틀린 남자, 선의라는 가면 아래 완벽한 복수를 계획하는 인간, 초인적인 의지와 집요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나약한 인간 등등...이런 관념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행복한 인생을 살던 남자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리고 그 나락 속에서 기사회생한 뒤의 처절한 복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백작의 복수는 일반적인 숙적의 죽음이 아닌, 숙적에 대한 완벽한 파멸입니다. 그 파멸은 자신의 목전에 이르기 전까지는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숙적들은 파멸이 눈앞에 닥치자, 절규합니다. 오 신이시여,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인과응보이며 사필귀정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복수를 끝내고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자신의 연인과 함께 프랑스를 뜹니다.

이야기는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에드몽 당테스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되기까지의 과정, 후반부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완벽한 복수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의 백미인 후반부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극은 추리극의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리극에 있어서 탐정은 극중의 인물이 아닌, 바로 독자 자신이죠. 독자들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할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매 장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행동과 말, 그리고 언뜻 지나가는 단상들을 통해서 그의 복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결과를 맺게 되는지를 추리할 수 밖에 없죠.

이는 독자의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입니다. 복수의 계획을 보여주지 않고,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만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복수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킬 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 능동적으로 추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독자가 작품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또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치밀하고도 완벽한 계획 아래서 서서히 무너져 내려가는 숙적들과 복수, 그리고 감동적인 화해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킵니다.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또한 당연하게도) 몬테크리스토 백작 그 자신입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 다단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비정한 복수자입니다. 하지만, 총이나 칼로 하는 복수와 다른 형태의 복수를 지향하죠. 그것은 숙적들의 완벽한 파멸입니다. 단순한 죽음, 치욕, 불명예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숙적들의 인생 자체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 백작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숨기고, 14년 동안 자신의 스승인 파리아 신부에게서 배운 귀족적인 교양과 지식으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하지만, 14년 간의 고난은 백작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불신, 염세, 그리고 14년 동안의 복수에의 갈망과 숙적들에 대한 증오입니다. 이로인해 백작은 뒤틀린 내면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문학적인 지식과 교양으로 우아하게 포장을 하죠. 그래서 겉으로 그는 괴팍하고 오만한 동방의 귀족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기에, 그 이면에 숨어있는 백작의 복수심과 집요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선의와 무지를 가장하고 자신의 숙적들을 서로 이간질하고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백작의 모습은 소름끼치면서 매혹적인 것입니다.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백작은 자주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으로 칭합니다. 물론 이는 백작의 세상에 대한 염세와 경멸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내용에 있어서도 적절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는 백작은 남을 배신하고 악행으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막강한 지위에 오른 악인들에게 완벽한 파멸을 선사하는가 하면, 선하게 살아왔지만 그 보답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보답을 주죠. 이와 같이 어긋난 세상의 이치(악한 놈은 잘 살고, 착한 놈은 고생한다)를 바로잡는 역할을 백작이 수행한 것입니다. 또한 직설적이긴 하지만, 백작의 이름에서도 드러납니다.(Monte-Cristo, '그리스도의 산'이라는 의미)

이러한 독특한 백작의 케릭터는 소설이 쓰여질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살았던,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중반은 프랑스에 있어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과격한 프랑스 혁명이 지난 이후 나폴레옹의 집권, 나폴레옹의 몰락과 부르봉 왕가의 재집권, 부르봉 왕가의 몰락과 입헌군주제의 도래, 또다시 혁명...이렇게 격동의 시기를 겪는 당시 프랑스 문단은 봉건적인 과거와 귀족중심적인 문학 사조를 탈피해서 새로운 격변의 시대에 알맞은 흐름을 만들었어야 했죠. 이렇게 격변의 시기를 이끈 유명한 작가들, 발자크,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등의 작가들을 가르켜 '낭만주의 사조'라고 칭합니다.

그렇기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따라 탄생했습니다. 굳은 의지로 고난을 해쳐나가고, 과학과 문학, 예술, 철학 등에 박식하며, 정의를 관철하고, 자신을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 인, 스페인 인이 아닌 세계인이라 칭하는 이 인간이야 말로 프랑스 혁명 이후 격변의 혼란기라는 역사가 원했던 철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대중이 원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원래 극작가였으나, 돈을 벌기 위해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합니다. 당시 신문은 거의 최초의 대중매체라고 할 수 있었죠. 즉,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소설이 성공한 것은 당시 대중의 수요에 맞았던 것입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대중문학사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란 케릭터가 가지는 매력,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기법, 당시 대중과 대중문학 사이의 관계 등등 지금까지도 분석 및 재해석 되고 있으며, 이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나 전개 및 묘사에 있어서 흠잡을 때가 없지만, 지금으로서도 부담되는 소설의 분량(두꺼운 양장본으로 총 5권)은 이 소설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죠. "몬테크리스토 백작! 그 감미로우면서 우아한 광기의 이름이여!" 저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는 과거의 독자, 현재의 독자, 미래의 독자,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이와 같이 모든 시대에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고전이며 불후의 명작이죠. 이 글을 끝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백작의 대사를 인용하겠습니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다음 리뷰는 암굴왕으로 이어집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19세기 유럽은 역사적으로 대격동의 시기였습니다. 루이 16세 때, 프랑스 혁명을 시발점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변혁의 바람이 불고, 오랜 기간 지속해 되었던 절대왕정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완전하게 붕괴되었으니까요. 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과정은 많은 작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였고, 그 결과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수많은 문학작품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크나큰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혹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그 초점을 맞춥니다. 슈발리에 또한 이러한 문학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슈발리에는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이하게 프랑스 혁명 직전의 시기인 루이 15세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애니의 내용 자체는 프랑스 혁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충성심 깊은 4명의 기사들의 여정을 통해서 그들의 왕과 국가에 대한 충정을 시험받고, 결과적으로 '변혁기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의 누나인 리아 드 보몽이 시체가 되어서 파리 센느강변에서 발견되고, 그 동생인 데온 드 보몽은 충직한 왕의 신하였던 누이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데온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서 누이를 영접(흔히 이야기하는 빙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데온은 그 동료들과 함께 누이의 원수를 찾기 위해, 그리고 프랑스 왕조를 위협하는 적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납니다.

재밌는 점은 슈발리에는 많은 부분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의 등극, 루이 15세 때의 오를레앙 공의 반역과 진압, 귀족에 의해서 변두리로 밀려난 영국의 왕조들 등의 유럽 역사에 있어서 절대왕정의 막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절대 왕정의 막바지에서는 다양한 계층(농민, 부르주아, 시민 등)의 계층 의식이 성장하고, 이러한 계층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고 기존의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왕이나 귀족 세력에 대해서 반기를 들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떄문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이르러서 왕들이 기존의 귀족 세대를 대체하고 새로운 사회 체제를 새우려하고 이에 귀족 체제가 반역하는 과정이 있기도 하거나(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의 에피소드), 이미 귀족에 의해서 내몰린 왕이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부흥하여 다시 절대 왕정을 확립하려는(영국의 왕조의 에피소드) 모습 또한 보여줍니다.

이러한 절대 왕정의 말기에 있어서 기사(혹은 귀족) 계급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대변해서 일해야 하는가? 자신이 섬기던 국가? 혹은 국가를 대변하는왕? 국가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민중 계급인가, 혹은 자기 귀족계급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가? 데온 일행은 이러한 혼란기에 처하게 됩니다. 충실한 기사 계급인 그들은 가장 정석적인 답, 바로 '왕과 국가를 위해서'라는 일반적인 답을 택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여행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신념은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왕이 자신에게 충성했던 충실한 귀족계층을 희생하려는 모습, 혹은 힘없는 왕이 잘 운영되는 국가 체계를 뒤엎고 다시 절대적인 왕을 중심으로 국가를 재편하려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대 왕정을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하려는 왕조와 대면하게 되죠.

작품의 구조는 데온 일행의 기나긴 여정ㅡ오딧세이아ㅡ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데온 일행은 진실(누나를 죽인 원수, 혹은 왕정을 위협하는 적들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원래 자신들이 속해있던 안정적인 프랑스(루이 15세의 시기가 프랑스 혁명 전의 폭풍전야로서 조용한 시기였습니다.)에서 벗어나서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를 들여다 보고, 자신들의 역사적인 위치를 자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여정은 대단히 가혹하기 때문에, 그들의 왕조에 대한 믿음을 시험받고, 혹은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슈발리에에서 핵심되는 키워드는 '왕가의 시'입니다. 프랑스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이 신비한 힘을 가진 시집은 왕의 미래를 예언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하며, 심지어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절대 왕정 시기의 왕권을 은유적으로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절대적이면서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시대 정신 같은 개념이지요. 하지만, 이는 역으로 개개인의 자유와 인간성을 옭아매는 폭압적인 존재기도 합니다. 데온의 누이 리아 같은 경우에는 왕가의 시와 관계되었다는 이유로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막시밀리안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로부터 배격당했으며, 루이 15세는 스스로의 의지로 죽을 수도 없는 가련한 상황으로 이끕니다.

데온 일행의 여정은 이러한 가혹한 시대 정신과 흐름을 직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혹한 시대 정신과 조우한 기사들은 국가와 왕에 대한 충성을 끝까지 유지하거나, 다른 충성의 대상을 찾거나, 충성보다 기사 사이의 신의를 지키거나, 혹은 이 모든 걸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로의 변혁을 꾀합니다. 슈발리에의 가장 뛰어난 점은 여정의 과정에서 변혁기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역사의 흐름은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바뀌게 되고,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왕가의 시편을 찾으려 했던 기사들의 여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초라하게 늙은 데온이 '프랑스여, 영원하라!'라는 글을 바닥에 쓰고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는 제가 여태까지 본 애니메이션의 엔딩 중에서 가장 씁쓸한 느낌을 주는 엔딩인데, 더 이상 지켜야할 가치도 신념도 국가도 없는 상태에서 과거 시대의 망령에 사로잡힌 가련한 노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슈발리에는 06년도에 했던 애니메이션의 숨은 걸작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구조, 미려한 작화, 독특한 소재 등 근래 찾아보기 힘든 걸작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사극이라는 마이너한 분야와 탄탄한 드라마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코드 등은 이 작품을 묻히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프로덕션 IG 20주년 기념 작품(맞나?)으로 나온 거 치고는 대단히 조용하게 막을 내린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발리에는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며, 기회가 된다면 한번 꼭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작년인가 제작년에 한국 국적의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서 납치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사람들 반응은 '아직도 해적이 있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현제까지도 태평양 및 인도양 등지에서는 작은 소형 쾌속정을 이용해서 대형선박을 나포, 몸값을 요구하거나 물건을 갈취하는 해적질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형선박을 운행할 때는 해적에 대비하기 위해서 무기를 비치하거나, 혹은 대단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합니다.

사실, 이러한 '해적'이라는 존재나 노예제, 스너프, 마약 등등은 아직도 이 지구 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세계에 있어서 어두운 면은 없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구 위에 존재하였지만, 막상 우리가 그것을 마주칠 때는 대단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우리가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역을 우리가 사는 정상 세계와 떨어뜨려서 생각하게 됩니다.

블랙 라군은 이러한 '정상과 비정상, 두 세계'라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만화에서는 현대판 해적과 깡패, 온갖 인간 쓰래기들이 나오고, 그러한 인간 쓰레기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소돔과 고모라를 능가하는 로아나프라로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온갖 막장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고, 주인공 록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목격자로써 목격하게 됩니다.

블랙 라군의 공간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하나는 정상적인 삶과 논리가 통하는 빛의 세계, 또 하나는 인간의 광기, 변태성, 탐욕 등에 의해서 돌아가는 어둠의 세계 로아나프라로 나뉘어집니다. 하지만 만화 내에서 이러한 두가지 공간은 완전히 별개의 공간이 아닌, 하나의 공간입니다. 현실의 정상세계에서 실패 하거나 버려진 존재들, 혹은 정상 세계가 숨기고 싶어하는 사건이나 존재나 정상 세계에 있어서 안되는 존재들이 로아나프라에 모이는 것입니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낙태 금지 정책으로 생겨나고 스너프 필름에 등장한 전력이 있었던 킬러 고아들, 전직 경찰, 버려진 전공투 세대, 버려진 퇴역 아프간 참전 군인, 네오 나치, 남미 카르텔, 게릴라 등등 소위 정상세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정상세계에는 존재해서 안되는 존재들이 로아나프라로 쫒겨오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정상세계는 자신들의 어두운 욕망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로아나프라를 이용하고, 그 곳에 존재의 의의를 부가합니다. 미국 CIA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로아나프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 모니터링하고, 일본의 대기업은 자신이 벌인 경영상의 미스를 매꾸기 위해서 비밀리에 로아나프라에서 해적을 고용합니다. 또한 포르노, 마약 등등 정상세계에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못하는 물건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로아나프라가 떠맡기도 하죠.

재밌는 점은 로아나프라나 정상세계나 결과적으로 운영되는 원리는 같습니다. 그것은 '돈'이라는 것이죠.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고,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고, 상대방 앞에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것은 로아나프라나 정상세계나 똑같습니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로아나프라는 그러한 '돈이면 뭐든지 된다'라는 논리가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록은 이러한 어둠과 빛의 세계에서 진실을 보고 그 목격자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한 때 속했던 정상세계는 만화의 처음 레비와 더치에게 얻어맞으면서 끝나버렸고, 후에 자신은 그저 회사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장기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정상세계의 정체성(오카지마 로쿠로)을 버리고 로아나프라(록)를 선택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속한 정상 세계와 이 쪽ㅡ로아나프라ㅡ이 같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하지만, 그가 로아나프라에 들어왔다고 해도, 그는 정상인의 사고와 도덕관을 버릴 수 없습니다. 여기서 록은 로아나프라에서 중재자 혹은 협상가로 일하게 됩니다.

이러한 중재자나 협상가로서의 록의 역할은 만화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록이라는 인물이 로아나프라라는 어둠의 세계에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정상적인 빛의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과 빛의 어스름 사이에서 사건을 관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거의 모든 사건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지만, 동시에 작품 내에서 인물들에 대해서 쓴소리를 내뱉고 그에 대한 단평을 하는 인물이죠.

이러한 록의 케릭터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블랙라군의 최고의 에피소드라 할 수 있는 일본 에피소드의 유키오가 큰 역할을 합니다. 일본 야쿠자 집안의 여식으로 태어나서, 주변 인물들이 철저하게 그녀를 어둠의 세계에 닿지 않도록 보호하지만, 아버지의 조직이 위험해지자 유키오는 스스로 조직의 대표가 되어서 자신을 지켜주었던 야쿠자들을 보호하려 합니다. 그리고 록에게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주사위와 같이 자신을 끊임없이 내던져야 합니다. 당신과 같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하지만, 록은 빛과 어둠, 어느쪽도 선택하지 않고 경계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어느쪽의 세계이든 간에 결과적으로 같고, 자신은 그러한 세계의 진실과 양면성을 바라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블랙 라군은 만화와 애니 장르를 포함해서 보기 드물게 잘 만들어진 느와르 작품입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분석이 없어도 강렬하고 농후한 그림체, 흡인력 있는 스토리, 인물들의 걸쭉한 입담(속어도 시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은건 처음입니다) 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단히 재밌다고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대단히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덧1.애니판도 대단히 훌륭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 120% 초월 애니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마지막 작붕이;;)
덧2.다음은 슈발리에 입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스트레인져:무황인담은 2007년 본즈 오리지날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전국 시대의 사무라이 물입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일본 전국시대, 명나라 황제가 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서 모월 모일에 태어난 아이의 피를 얻으려 하고, 모월 모일에 태어난 코타로를 죽여 그 피를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코타로가 고향인 일본으로 도망가게 되자, 명나라 황제는 코타로를 잡기 위해서 추격대를 파견합니다. 한편 코타로는 나나시(名無し, 이름 없는 사람)를 만나고 그를 보디 가드로 고용하고, 자신을 시라토의 만각사로 데려가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스트레인져:무황인담은 전형적인 장르물의 공식을 따릅니다. 아무런 죄없이 쫒기는 어린아이, 그와 관련된 음모,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뭉친 사람들, 그리고 능력은 좋지만 과거를 알 수 없는 수수깨끼의 보디가드 등 서부 영화나 기타 대중 문화를 표방하는 작품에서 많이 보이는 클리셰들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대단히 뻔한 스토리 구조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인져:무황인담은 여기에 ‘욕망’이라는 코드를 삽입하게 되면서 일반적인 장르 영화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스트레인져는 애니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의 행동의 동기의 기반에 ‘욕망’이라는 코드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물론 작품에서 인물들이 행동의 동기로서 많은 부분 욕망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나오기도 하지만, 스트레인져에서는 이러한 욕망이라는 물질적이며 사람을 파멸시키는 위험한 것으로 비추어집니다. 이는 애니의 배경인 전국 시대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전국시대에는 전국 통일 혹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자신의 주군이나 동료들을 죽이고 배신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등의 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인져는 이러한 배경의 성격을 전면에 부각합니다. 애니의 처음서부터 끝까지 케릭터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배신합니다. 애니의 처음 라로우 일행에게 덤비는 산도적들,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어린아이의 생피를 마시려는 명의 황제, 자기도 거기에 어떻게든 껴보려는 명의 추격대 대장, 명의 속셈을 알아체고 더 많은 황금을 요구하려는 성주, 언젠가 명령 받는 자리가 아니라 명령하는 자리에 올라 천하를 통일하려는 야심을 가진 장수 등등...이와 같이 전국 시대는 욕망과 욕망의 물고 물리는 아수라장입니다.

또한, 그러한 욕망들은 다 부질없고 헛된 것들입니다. 대표적으로 황제가 추구했던 불사라던가, 성주나 장수가 추구했던 전국통일이나 부귀영화 등은 하나같이 말도 안되게 허황되거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이는 황제가 코타로의 피를 얻기 위해서 정확한 시간에 피를 뽑아서 그 피를 마셔야만 불사를 얻는다는 것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두 주인공은 '이방인'입니다. 라로우는 서역인, 나나시는 남만인이죠. 이렇게 둘은 욕망으로 인해서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기는 했어도, 그 자신의 순수를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나나시 같은 경우, 원래 남만인이었지만 자신을 키워주었던 주군에 의해서 훌륭한 무장으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후에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자, 자신의 손으로 주군을 베어버리게 되죠. 그러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는 세상에서 떨어져서 스스로 주류사회의 이름을 버리고 이름없는 자(名無し)를 자청한 것입니다(거기에 검을 봉하기까지) 그러다가 코타로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자신이 예전에 했던 과오를 뉘우치고자 합니다. 이는 나나시가 비록 과오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라로우 같은 경우는....나나시와 많이 다릅니다. 그는 애시당초부터 나나시 같이 착하지 않으니까요. 그는 한 마리 야수입니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찾아다니는 야수. 하지만 아편류의 약을 복용해서 통증을 없애고 힘을 비약적으로 증진시키는 다른 추격대원들과 달리 그는 순수하게 육체적인 힘과 무술을 추구합니다(나나시가 약을 거부하자 '좋아, 매우 좋아'라고 한 부분) 또한 황제가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것이나, 주류사회의 욕망이나 문제를 대단히 하찮은 것으로 여깁니다. 이건 그 나름대로의 '순수'의 개념입니다. 순수한 강함이야말로 라로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제이며, 그 외의 세속적인 문제는 중요하지 않죠.

애니가 막바지로 다다를수록 각자의 욕망에 이끌린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들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애니에 나온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죽고, 피를 뽑기 위한 재단은 다 부숴지게 되죠. 그러한 아수라장 위에서 나나시와 라로우, 코타로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애니의 클라이막스인 나나시와 라로우의 대결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나나시와 라로우, 이 둘 모두 이 세상에 있어 순수한 자들이었고 힘 또한 호각이었지만, 나나시가 코타로에게 배푼 선업이라는 작은 차이로 대결은 나나시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스트레인져:무황인담 은 기존의 장르영화의 코드에 '욕망'이라는 단어를 삽입함으로써 나름대로의 독특한 작품성을 가진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물론 애니는 기본적으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요. 이와 같이 재미와 내용, 두가지 측면을 다 충족시키는 재밌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작년 SICAF에 온 감독의 코멘트에 따르면 나나시는 죽는다고 합니다.
덧2.동생놈이 가서 감독 사인을 받았더군요. 근데 거기서
스트레인져 초회 한정 블루레이 디스크 박스에 사인 받아가는
인간도 있었다고 합니다 흠좀무...

다음은 망념의 잠드...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이 화면을 다시 보게 될줄이야) 

 DOS 시절에서부터 우주 관련 전략 시뮬레이션을 좋아하신 분들이라면, 분명 Master Of Orions 시리즈나 어센던시, 스타 컨트롤, 알파 센타우리 등을 기억하실겁니다. 저는 그 중에서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2와 어센던시를 가장 재밌게 했었습니다. 특히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2는 대단히 독특한 작품이었는데, 각 종족들의 특징들이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죠. 보통 인간에서부터 공룡족, 광물에 붙어서 자라나는 종족까지 독특한 종족이 많았었죠. 그리고 자유로운 기함 커스터마이징과 그 당시 나름대로 화려했던 그래픽과 사운드 등은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2는 그 당시 게이머들에게는 일종의 추억과도 같은 명작이었습니다. 그런 게임이 후속편이 나온다면, 당연히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처음 미국에서 발매가 되었을때 게임 평이 완전히 떡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2의 후속작이잖아. 그래도 평작 이상은 하겠지.'라면서 참았고, 한국에 정식으로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3가 나올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한국에는 메뉴얼 없이 주얼로만 나오더군요. 그래서 메뉴얼은 무시하고,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을 플레이 했고, 그리고.....



욕설이 절로 튀어나오더군요.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한도 끝도 없이 많습니다만, 가장 큰 문제점을 꼽으라면 그것은


게임에 문자가 너무 많습니다.


간략하게 이야기 해서, 게임에서 도표까지 포함,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체 항성 지도, 항성, 함선. 이렇게 3개 밖에 없습니다. 더 심각한 건, 보통 게임과 다른 개념을 도입하는데 그러한 개념을 모조리 다 문자로 표시하기 때문에 게임의 대부분을 글만 읽다가 보내게 됩니다. 한번 스샷을 보면서 설명하도록 하죠.




위 스샷을 봅시다. 이런 문명류의 게임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연구 부분인데...지금 보시고 있는 부분이 바로 전체 연구 스킬 트리입니다. 저는 이게 기술 테크 트리라는 걸 깨닫는데 첫게임 하면서 1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뭐, 그거까지는 좋은데, 왜 스킬 트리하고 연구부분하고 연계가 안되는 겁니까? 그건 둘째 치더라도 왜 내가 다음 연구를 선택할 수 없는 거죠? 게다가 왜 연구가 진행되기 전까지 다음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거죠? 사실, 제 추측으로는 게이머는 연구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조장할 수 있지만(각부분의 예산을 결정할 수는 있지만), 어떤 것을 연구하는가를 직접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식의 이상한 조합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내가 행성을 운영해서 돈을 벌고 있는지, 잃고 있는지를 기나긴 수식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함대 생성 방식도 이상하고(함대를 자기 마음대로 생성 불가능, 오로지 기준에 맞추어서 생성해야함), 외교는 더더욱이 이해가 안되며, 행성 자동화 관리 시스템은 도대체 왜 붙어있는지 모르겠는 등등....

사실, 여러가지로 독특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리더 시스템이라던가, 연구에 있어서 방향성 설정으로 기본 인프라나 예산 분배를 적절히 해야 하며, 국민을 억압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정부 관리 시스템, 편지 송수신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외교 시스템 등 파고 든다면 괜찮은 부분도 많습니다. 근데, 문제는 그 좋은 부분을 다 파악하고 자유자재로 써먹는데 까지는 적어도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즉, MOO3는 여러가지 실험을 많이 했고, 뭔가 나름대로의 게임성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는 유저 인터페이스가 엉망이라서 완전히 실패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드 오타쿠로 분류되는 영미권 게이머들의 대부분이 '이게임은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다'라고 포기한 게임입니다. 유저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보면 도스 시절 게임보다도 못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옛날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이 어렵고 불편할 수 있다'라는 변명은 여기에 통하지 않는게, 이 게임은 2003년작이고 이런 문명류 걸작인 문명 3편이 2001년에 나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MOO3는 온갖 게이머들과 평단으로부터 외면을 받았습니다. 평단 평점 62, 유저 평균 평점 40점대(!)라는 재기 불능의 점수를 받게 됩니다. 그 후, 마스터 오브 오리온즈 2와 도스 시절 우주 전략 시뮬레이션의 계보를 이어가는 게임은 Galactic Civilazation 시리즈로 넘어가게 됩니다.

2부는 겔럭틱 시빌라제이션 2 시리즈입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들어가기 앞서서

이 작품은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나는 것을 더듬거리면서 완성한 칼럼입니다. 은근히 시간이 많이 걸리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지적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罪惡業 3부: 위치헌터 로빈-그것의 이름은 원죄(原罪)

위치헌터 로빈은 2002년에 나온 선라이즈 제작 애니메이션입니다. 위치헌터 로빈은 선라이즈 작품 치고는 대단히 독특한 아우라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심지어 혹자는 '앞에 선라이즈 로고만 없으면, 이걸 어떻게 선라이즈 작품으로 알 수 있겠느냐?'라고 하더군요. 정갈하고 깔끔한 그림체, 조용한 음악, 차분한 성우들의 연기, 도회적인 분위기 등 일본 애니에서는 보기 드문 분위기를 지향하는 작품입니다.

위치헌터 로빈의 구도는 일견 단순하게 보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일반인과 초능력자, 쫒기는 사람과 쫒겨지는 사람 등 이분적인 구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로빈은 엄밀하게 그 어느쪽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애니는 그러한 로빈이 어떻게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는지, 그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서 독특한 심리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위치헌터 로빈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위치(Witch)'입니다. 위치헌터 로빈에서의 위치는 단어 그대로의 마녀(Witch)를 지목하는 게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위치는 철저하게 유전적으로 그 능력을 이어받는데, 이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위치의 가계에 속한 사람이면 위치의 능력을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는 원죄(原罪)입니다. 더러운 피, 태어날 때 부터 순수하지 못한 인간, 인간의 탈을 쓴 괴물. 위치는 애니 내에서 그런 취급을 받습니다. 과거 조상이 위치였으면, 자신이 능력이 있던 없던 감시받게 되고, 의심받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위치를 사냥(Hunt)하는 집단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그들은 역사시대가 도래한 이후로 지속적으로 이러한 위치를 사냥해서 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은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어떤 능력도 없는 나약한 인간들이고, 위치는 엄청난 초능력을 지닌 인간들입니다. 과학과 기술을 써서 밀어붙인다고 해도, 솔로몬이 많이 후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위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그것은 똑같이 위치의 힘을 빌어서 위치를 사냥하는 것입니다. 위치의 가계를 이어받은 사람들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서 위치헌터로 키워내는 것입니다. 주인공 로빈처럼요.

사실, 이런 설정은 이제 거의 클리셰가 되다시피한 설정입니다. 인간이 비일상적인 적들과 싸우기 위해서 그들의 기술이나 능력을 쓰지만, 정작 이들 역시 적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고 정체성의 혼란이 오게 되는 내용 말입니다. 하지만 위치헌터 로빈은 철저하게 로빈이라는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세세한 감정묘사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클리셰적인 설정을 써도 '너무 흔한 이야기다'라는 평가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시작, 로빈은 솔로몬 일본 지부인 STN-J에 새로운 헌터로 도착하게 됩니다. 로빈이 STN-J에 온 것은 본부가 STN-J를 지원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STN-J에서 위치의 능력을 상쇄시키는 오르보에 대한 감시와 견제, 그리고 STN-J의 위치를 죽이지 않는 헌트 정책에 대한 견제 등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STN-J의 헌터들이나, 본부에서 온 로빈이나 서로에 대해서 썩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처음 만남에서 지부장에게 인사를 한 로빈이 '오르보는 기분이 나쁘니까 쓰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 장면 등에서 암시적으로(하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STN-J에 도착할 시점의 로빈은 대단히 완고해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위태로와 보이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솔로몬 본부에서 철저하게 위치를 사냥하는 법에 대해서만 교육을 받고, '좋은 위치는 죽은 위치 뿐이다'등의 사고방식(물론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으로 무장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본부와 다른 STN-J만의 마취탄으로 위치를 잠재워서 헌트하는 방식과 오르보의 사용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구요. 하지만, 크래프트 사용자(Craft使い)라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녀 역시 위치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을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그녀의 능력 사용 방법인데, 애니 초반 그녀의 크래프트는...뭐랄까 대단히 ‘위태롭습니다’. 헌트 대상인 위치에게 불을 붙이려고 하는 것이 주변일대를 완전히 불바다로 만든다던가, 조준이 안되서 딴 데 불붙이기 일쑤이지 않나, 옆에 있는 사람을 대단히 위태롭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로빈도 STN-J에서 아몬, 사카키, 카라스마 등의 동료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처음 대단히 완고해 보였지만, 같이 생활하고 헌트를 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됩니다. 이는 그녀가 점점 소녀적인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죄ㅡ자신이 위치라는 것ㅡ에 대해서 많은 부분 긍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계기가 되는 것이 아몬이 건내 준 안경ㅡ아마도 능력 사용에 있어서 초점이 안 맞는다고 본 것이겠죠?ㅡ인데, 안경을 통해서 그녀는 애니에서 처음으로 능력을 똑바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로빈은 이에 대해서 대단히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데,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능력을 쓰거나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사고를 당하자 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로빈이 자신의 능력이나 임무에 상관없는 자기 자신의 자아를 확립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로빈의 평화로운 시간도 STN-J의 산하 기관인 팩토리가 그녀를 헌트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깨지게 됩니다.

물론 팩토리가 로빈을 헌트하려는 것은 본부가 그녀에게 내린 임무도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위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녀가 좋은 일을 하고, 사람과 소통하면서 사람 속에서 섞여지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위치'라는 주홍글씨는 지울수 없는 것이지요. 즉, 로빈은 지울 수 없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로빈은 자기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본부를 위해서 위치를 사냥했지만 역으로 이제 자신이 솔로몬에 의해서 헌트당할 위험에 놓였다면,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로빈은 STN-J에서 도망간 이후, 아몬의 친구인 나기라의 사무실에 몸을 숨깁니다. STN-J에 있으면 동료들과 자신이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펙토리가 STN-J 본부를 습격하고 난 뒤, 로빈을 헌트하기 위해서 본부에서 헌터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로빈은 어쩔 수 없이 본부의 헌터들을 죽이게 됩니다. 또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위치'들이 단지 선조 위치와 혈통이 이어졌다는 이유로 헌트당하는 광경도 목격하게 되죠. 이러한 과정에서 로빈은 극심한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로빈의 꿈ㅡ아몬이 로빈에게 총을 겨누면서, '위치는 헌트해야만 한다'라고 하고 로빈이 아몬을 불태우는 내용ㅡ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로빈의 고민은 점진적으로, 극적인 전개없이 해결됩니다. 그것은 그녀가 나기사의 사무소에서 다른 위치들을 만나고, 자신을 헌트하러 온 헌터들에게 저항하는 등의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다시 로빈과 재회한 아몬이 로빈에게 총을 겨누지만 쏘지 않은 것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헌터였다는 것, 그리고 위치라는 사실에 얽메이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다가오는 적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그냥 쉽게 이야기하면 벌려놓은 이야기는 마무리 짓기 위해서), STN-J의 동료들과 함께 펙토리를 습격합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여러 작품에서 많이 보였거나 변용된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로빈의 정체성 혼란과 자아 찾기 과정이 대단히 식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지요. 하지만 애니는 철저하게 로빈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일인극의 모습과 대사의 자제, 음악의 적절한 사용, 절제된 그림체 등을 통해 그러한 원죄에 대한 인물의 심리와 그 변화를 효과적으로 잘 다루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다시 만나게 된 아몬과 로빈, 그리고 STN-J의 맴버들은 팩토리에서 오르보의 정체ㅡ살아있는 위치로부터 뽑아내는 물질ㅡ와 로빈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로빈은 로빈의 아버지가 인공적으로 실험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해서 만든 위치이며, 그 능력은 다른 위치에 비해 대단히 월등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STN-J의 지부장은 로빈의 아버지의 기록과 로빈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이구요. 이는 일반적인 애니에서는 후속작을 예고하는 대단한 떡밥이 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로빈은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이나 원죄에 얽메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빈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게, 고작 그런거였나' 라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결국 로빈은 자신의 출생과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홀가분해진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로빈과 아몬은 잠적하게 됩니다.

위치헌터 로빈은 클리셰와 진부함으로 가득찬 작품이지만, 그러한 클리셰와 진부함을 분위기와 절제된 감정묘사, 연출로 커버하고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무라세 슈코의 다음작인 에르고 프록시를 본 것이죠.

...네, 다음 작품은 에르고 프록시입니다. 아마 반쯤은 욕설로 도배를 한 칼럼이 될 것이라 봅니다.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기획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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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전 어둡고 진지하거나 혹은 매력적인 악역이 나오는 작품이 좋습니다. 이 기획 리뷰를 쓰게되는 계기도 거기있죠. 저는 애니나 영화를 볼 때 혹은 게임을 할 때 얼마나 설득력이나 매력있는 상대역, 악역이 나오는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주인공을 어떻게 짓누르고 그걸 어떤식으로 주인공들이 대처하는가 등을 보면서 여러가지 영감(?)을 얻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작품내에서 악이 무엇인지, 주인공들의 처한 상황, 즉 업과 죄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것이 제 애니 감상작을 선별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에 입각해서 기획 리뷰를 한번 써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조금 오버해서 이번 칼럼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서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죠. 지난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은 수많은 노력을 통해 선과 신, 미덕이 무엇인지를 정의내리려 하였습니다. 물론 각자 나름대로의 철학과 신념체계 통해서 이를 정의내리려 했지만, 그 어느 것도 명답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역으로 악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거꾸로 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번 알아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구체적인 상황에서 악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사람들이 이에 대해 대처하고 극복하는 모습이야 말로 하나의 '선'이 아닌가 하구요.(그래서인지, 저는 악이 최후에 승리하는 내용의 작품들이 싫습니다. 그건 그저 여태까지 선한 편이 승리하던 것을 입장역전만 시켜 놓은 단순한 형태의 구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뭐, 거창하게 시작하는 듯 하지만, 그냥 두번째 단락은 무시(......)하시고 가볍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첫 시작이라고 하는데 세문단은 체워야 할 거 같아서 일부러 뻘소리 넣은 거에요;;


1.소울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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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슈팅 게임 시리즈와 겹쳐 보일수도 있지만 상관 없다는 기분이 들어!)

 소울이터는 현재 원작 만화와 본즈가 만든 TVA, 그리고 DS와 Wii로 나온 게임까지 현재 다양한 파생상품들을 구사하고 있는 소년 만화입니다. 일단 DS와 Wii로 나온 게임에 대해서는 제가 안해보았으니까 여기서는 다루지 않도록하고, 만화와 애니를 중심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소울이터는 기존의 소년 학원 능력자 배틀물 과는 다른 미묘한 갈등의 구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과 악, 내 편과 상대편 등의 구분의 틀이 매우 모호할 뿐만 아니라 상호 밀접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소년 만화에서도 그러한 경계의 모호성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블리치의 이치고 같은 경우는 사신과 호로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소울이터와 같이 내 편과 상대편, 선과 악의 관계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떨어질수 없는,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다른 한쪽도 존재할 수 없는 그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선과 악의 구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본적으로 소울이터는 '사신 VS 마녀, 늑대인간 등의 비정상적 괴물들'의 대립 구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신측의 사무전은 귀신이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영혼과 마녀의 영혼을 회수해서 사신의 무기 데스사이즈를 만듭니다. 그리고 데스사이즈는 세계 각지에 파견되서 마녀 등을 토벌하거나 견제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번 이러한 힘의 균형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진짜 마녀와 그러한 비정상적 존재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절대적인 악이라면, 사신은 왜 그들을 친히 나서서 없애지 않을까요? 과거 귀신과 사신의 데스시티 공방전에서 보여 주었듯, 사신의 그러한 막강한 힘이라면 마녀들이나 그러한 '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을 쓸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사신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신이 그들을 소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소거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녀, 괴물들로 대표되는 광기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제거 될 수 없는 동전의 뒷면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사신은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광기에 대한 태도는 애니 내의 여러군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무전 내에서의 슈타인의 존재(사실 그는 사신 쪽이라기 보다는 마녀쪽에 가깝죠), 광기와 관련된 물건을 보관하는 사신의 비밀 창고, 사신조차 제어 못했던 귀신의 존재, 그리고 귀신이 봉인된 곳이 바로 데스 시티의 지하라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광기가 세상에 넘쳐나지 않도록 견제하고 관리하는 것, 이성과 광기 사이의 벨런스를 맞추는 것 뿐입니다. 이는 키드가 예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중요한 것은 광기와 이성, 그 사이의 벨런스라고.

그렇기 때문에, 사신은 그러한 사실을 숨기려 무던히 애를 쓰는것 같습니다. 그의 비밀창고도 그렇고, 데스 시티 아래에 귀신이 봉인 되었다는 점 등을 숨기려는 것은 일상과 평화 자체가 매우 아슬아슬한 줄 위에 서 있고,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사실(실제로도 귀신이 풀려나는 것은 한순간이었죠)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면 오히려 더 큰 혼란과 광기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이 그의 판단인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성과 질서를 대표하는 사신 측은 현상태 유지가 모든 행위의 최우선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대방인 마녀측은 어떨까요? 마녀측은 일종의 광기의 대변자, 혹은 사신이라는 질서의 안티 테제로서 혼돈을 지향하는 괴물 같은 존재들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아쉽게도 사신측이 우리편이고, 마녀측이 상대편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언급이나 해석할 만한 근거 자료는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몇몇 장면을 통해서 본다면ㅡ예를 들어 에루카가 '우린 그저 사신의 눈을 피해서 장난이나 치면서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라던가ㅡ, 사실 마녀측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굳이 광기로 대표되는 귀신을 깨운다던가, 아라크네 처럼 사신에게 정면으로 대항하던가 등의 극단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죠. 결국은 마녀측도 '더이상 사신에게 방해 받지 않을 정도로만'의 선에서 현상태 유지가 최우선 목표인 듯 싶습니다.

양측은 이렇게 현상 유지, 혹은 현재 관계의 지속이 최대의 목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소울이터에서 사신과 마녀의 갈등 관계는 일종의 정상적인 관계인 것이죠. 재밌는 점은 사신의 무기 데스 사이즈는 99개의 귀신의 알과 하나의 마녀의 영혼으로 만들어진 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신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 자체가 광기를 먹어치움으로서 존재한다는 다소 역설적인 관계입니다. 사무전은 데스사이즈를 만들기 위해서 귀신의 영혼을 모으고, 귀신의 알을 모으면서 이 세상에 늘어난 광기를 줄이고,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이성과 광기의 균형은 유지됩니다.

하지만, 모든 만화가 그러하듯이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 이러한 균형을 깨뜨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바로 메두사와 아라크네 라는 마녀 자매인 것이지요. 일단 아라크네는 사신과 마녀 사이의 벨런스를 무시하고, 자신이 헤게모니아를 잡는 것을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무기를 연구하고, 귀신 부활 후에는 수백년 동안 숨어있는 동안 만든 아라크네포비아라는 거대한 조직의 네트워크(Network)를 구축 그 그물(Net) 위에 군림하는 거미로 군림하는 것이지요. 후에 BREW나, 마도구의 연구 등도 사신과의 싸움에서 우위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는 아라크네의 전술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라크네의 권력 지향적인 모습과 달리 메두사는 독특한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목적이나 동기, 그런 것은 어떠한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순수한 욕망, 욕구를 추구합니다. 애시당초부터 이 세상의 균형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라크네와 같은 권력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귀신의 부활을 보고 싶다', '자신의 연구의 성과를 보고 싶다'라는 순수한 욕망,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메두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베트맨의 조커와 그 맥락이 맞닿아 있는 케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1)도저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성, 2)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는 점, 3)그리고 케릭터들을 타락시키는 악마적인 성격(베트맨에서는 조커가 고담의 검사 하비 덴트를 투페이스로 만들듯이, 소울이터에서는 메두사가 슈타인을 궁지로 몰아넣지요) 등은 조커와 비슷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한 귀신이나 강력한 조직을 지닌 아라크네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바로 메두사인 것입니다.

어찌 본다면, 메두사-슈타인의 관계에서 팜므파탈, 즉 남자를 타락시키고 파괴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악녀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메두사의 모습이 많은 부분에서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보여주고는 있습니다만, 메두사의 이미지는 단순한 팜므파탈의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마녀들은 각자를 대표하는 동물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메두사와 같은 경우에는 그것은 뱀이었습니다. 뱀은 고대로부터, 지혜라는 미덕과 동시에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유혹해서 타락시키는 존재라는 상징적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는 데스시티 공방전에서 죽었다가 다시 아이의 몸을 빌어서 부활한 후, 꼬마아이가 보는 TV에서 사과를 따는 사람 옆에 있는 뱀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점 등에서 그러한 부분을 뒷받침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두사는 광기에 대한 유혹의 원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두사의 악역으로서의 존재감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혼돈으로의 유혹, 최소한의 균형조차 무시하고 인물들을 광기로 이끄는 일종의 사도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소울이터라는 만화 내에서 가장 이단적이면서 강력한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물들은 메두사라는 마녀의 존재로 인해서 문제와 갈등에 빠진다고 할 수 있는데, 가장 많은 유혹을 받고 있는 슈타인에서부터 흑혈의 마무기 크로나, 흑혈로 인해서 생긴 광기의 상징 도깨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소울과 마카 등을 비롯해서 소울이터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메두사라는 존재로 인해서 골치를 썩힙니다. 이는 메두사라는 존재 자체가 균형을 무시하는 순수한 광기의 사도와 유혹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어찌본다면 소울이터는 메두사라는 절대악에 의해서 인물들이 시험을 받는 그러한 구도를 취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울이터는 소년 능력자 학원 배틀물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통 만화에서 지향하는 액션이나 파괴의 미학이 아니라, 관계와 균형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이라는 측면에서는 조커의 먼 후계자정도 되는 메두사라는 존재가 애니와 만화 진행 내내 군림하고 있는 측면에서는 멋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소울이터에서의 악이라는 것은 벨런스를 붕괴시키는 혼돈으로의 유혹이고, 앞으로 주인공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덧1.사실 원작 만화를 보았을 때, 이런 느낌을 많이 받지 못했는데, 본즈가 만든 애니를 보니까 '아, 이런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원작 만화도 만화이지만, 아직까지 본즈 오리지날의 스토리가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이정도로 원작의 내용을 끌어내는 본즈도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군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배트맨 비긴즈(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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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것은 다시 시작으로)

배트맨 비긴즈는 1989년 배트맨이 다루지 않았던, '배트맨은 어떻게, 어떤 식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원래 만화에서는 브루스의 부모가 범죄자의 총을 맞아서 죽은 뒤, 브루스 웨인이 독학으로 범죄학, 심리학, 무도 등의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배트맨으로 데뷔하였다, 이것이 바로 배트맨의 기원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거기에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악과 싸우는데, 그들과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공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황하는 브루스를 히말라야 산맥까지 보내서 악을 처단하는 닌자들의 비밀 결사단(히말라야에는 닌자가 삽니다...도대체 닌자가 살지 않는 동네는 어디야!)에 들어서 그들의 방식, 악에 대해 공포를 심어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그 후, 브루스는 다시 악과 부패의 고향인 고담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악과 싸우기 위해 배트맨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기존의 슈퍼 히어로 물에서는 히어로가 악과 싸우는 것을 하나의 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기존 대중문화에서 전투 장면은 슈퍼 히어로의 막강한 힘과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무대며, 동시에 대중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위한 일종의 흥행요소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배트맨 코믹스는 좀 다릅니다. 일단, 브루스 웨인은 돈만 썩어나게 넘치는 억만장자지만, 그 외에는 어렸을 적 부모가 범죄자 손에 죽은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악과 싸우기 위해서 사용해야 할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정보와 두뇌, 그리고 상징과 적을 속이고 두려움에 떨게 하기위한 쇼 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실제,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은 거의 괴물 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움직입니다. 검은 그림자가 휙하고 지나가고, 적들을 엄청난 화력으로 제압하기 보다는 하나 하나 조용히 처리합니다. 그것은 적들에게 일종의 자신을 괴물처럼 보이게 하여, 공포심을 심게 하는 일종의 전략입니다.

그러면 왜 박쥐를 자신의 심볼로 사용하게 된 걸까요? 그것은 브루스의 어린 시절 공포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박쥐 동굴에 빠졌을 때, 어린시절의 개인적인 공포가 악을 공포로 몰아 넣게 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어렸을 적 공포에 대한 기억과 부모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정의에 대한 갈망 등이 어우러져서 어둠의 기사, 배트맨이라는 복합적인 존재가 됩니다.

배트맨 비긴즈는 과거 89년작 배트맨과는 다르게 현대의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과거 89년 작이 경제 대공황기의 음울한 분위기를 냈다면, 비긴즈는 현대의 뉴욕과 같은 분위기를 내면서, 동시에 주인공의 케릭터와 악역 케릭터를 동시에 현실적인 모습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마피아나 갱단이 초반에 배트맨이 싸우는 주요 대상으로 나오고, 영화속의 악역 허수아비는 원작의 허수아비의 광기에 찬 모습 보다는 뭔가 현실적인 모습의 악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전의 만화적인 배트맨과는 많이 다른 현실적인 배트맨이 나오게 되었고, 현실적이면서 현대적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이전의 배트맨 영화들과는 다른 아우라를 풍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배트맨의 상대역의 설정과 배트맨의에 있어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적당한 악역을 설정하지 못하고, 그러한 비긴즈의 컨셉은 영화 후반의 죽었던 것으로 알았던 자신의 스승, 라스 알 굴의 등장으로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이것은 배트맨의 시작이라는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생기는 필연적인 문제입니다. 영화는 2시간 안에 모든 스토리와 플롯을 해결해야합니다. 브루스의 부모의 죽음을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다룬 비긴즈는 이와 관련된 갈등을 영화 내에서 끝내야 한다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무너지게 되는데, 브루스의 부모의 죽음을 브루스의 스승인 라스 알 굴과 연관을 지어버리므로서 다원적이라 할 수 있는 배트맨의 창조와 부모의 죽음, 이 두가지 문제점을 동시에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복합적인 이미지의 배트맨을 단순한 사적인 복수자로 깎아내리게 되었으며, 동시에 악역인 라스 알 굴에 대한 관객들의 이미지도 같이 깍아 내리게 된 것이며, 영화의 결말이 너무나 맥없어 진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사실 라스 알 굴이라는 악역 자체가 현실적인 컨셉을 추구하는 비긴즈에서 뭔가 핀트가 잔뜩 어긋난 케릭터입니다. 고대서부터 세계가 타락하면, 세계를 멸함으로서 세계의 정화를 한다는 비밀결사단 자체가 이미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마지막 대결에서 '너희 아버지는 죽어도 싼 인물이다.'라는 식의 대사를 내뱉는 등, 너무나도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맥빠지게 하는 악역이었습니다. 원래 코믹스에서는 불사자로 다른 악역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포스를 보여주는 악역인데, 이를 다빈치 코드에서도 나오지 않을 거 같은 비밀 결사단에다가 찌질한 모습까지 보여주는 3류 악역으로 만들었다는 시점부터가 이미 핀트가 어긋났지요. 그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식 배트맨은 다크 나이트에 와서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배트맨:다크 나이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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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역작)

현재 개봉한 배트맨:다크 나이트는 거의 모든 영화 사이트와 평론가, 관객들에게서 잘 만들어진 영화 중 하나로 뽑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배트맨:다크 나이트가 여태까지의 배트맨 영화화 중 배트맨에 대한 훌륭한 재해석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여타 블록버스터에 비해서 액션장면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해서 관객들을 쥐락 펴락하고, 또한 배트맨-조커라는 갈등과 이야기 구조 또한 매우 훌륭해서 마지막 엔딩에야 뜨는 제목 'Batman: Dark Knight'를 보면서 전체적인 영화의 의미를 한번에 꿰뚫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심지어 이 장면을 보면서 'There Will Be Blood'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보이더군요.) 저는 현재까지 나온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구조적으로 가장 완벽한 영화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놀란 감독의 전작 비긴즈는 영화의 현실적이며 현대적인 컨셉과 배트맨에 대한 재해석을 훌륭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실적이면서 매력적인, 또한 파괴적인 악역의 부재로 영화의 갈등을 너무 느슨하게 만들었고, 더불어서 배트맨이라는 케릭터 자체도 같이 느슨하게 표현 되었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다크 나이트에서 지난 70년간 배트맨의 최대 숙적인 조커를 영화로 끌어오게 된 것이죠. 그러나 이미 1989년의 배트맨에서 유쾌한 살인 광대인 조커의 이미지가 관객들과 사람들의 뇌리에 너무 강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놀란 감독은 기존의 유쾌한 살인광대의 이미지를 섣불리 차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현대적이면서 현실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는 놀란 감독의 배트맨에는 어울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놀란 감독은 89년작의 조커와 다른 조커를 만들었어야 했었습니다.

혹자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89년작의 조커가 너무 행복한 조커였으면, 이번 조커는 너무 음울한 조커이다.'라고 평가합니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영화 내에서 케릭터로 등장하기 보다는 인간의 파괴욕와 광기, 귀기가 확대 재생산 된 존재입니다. 그는 그 기원을 아무도 모르며ㅡ그가 자신의 입에 흉터가 왜 생겼는가를 설명하는데, 그 이유가 매번 달라지는 점ㅡ, 고담시 시민들을 가지고 놀았으며, 하비 덴트를 파멸 시켜서 투페이스로 만들어 버리는 등 영화 내내 그의 존재는 일종의 재앙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는 킬링조크 이후 현재까지의 배트맨 코믹스에서 조커가 자신의 정체와 기원을 계속 바꾸어 나가다가, 결국은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존재, 그러나 동시에 위험한 광기를 지닌 존재로 탈바꿈한데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믹스에서도 배트맨이 어떤 짓을 할 지 모르는 조커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것이고, 영화 속에서도 조커는 배트맨에게 재앙이자 시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영화라는 매채의 특성상, 아주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주인공이나 케릭터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가 없으면, 그 케릭터는 영화 내내 영화와 겉돌게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다크 나이트는 히스 레저라는 배우의 열연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를 찍고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뜬 故 히스 레저는 '내가 너를 사랑하면 안되는 10가지 이유', '몬스터 볼' 등에서 조연으로 출연, 그리고 재작년 이안 감독의 '브로큰백 마운틴'에서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이번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로 케스팅 됩니다. 개봉 전까지는 히스 레저의 잘 생긴 외모나 유약한 이미지 때문에 이번 작의 조커는 배트맨에게 압도되는 거 아닌가 라는 많은 불안을 야기 하였으나, 실제 영화가 개봉하자 역으로 조커가 배트맨을 압도하는 연기력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히스 레저는 조커를 연기하면서, 아니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영화 내에서 조커 그 자체로 화하면서 배트맨과 고담시, 그리고 관객들까지 압도합니다. 그렇게 나온 조커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태연하게 'Why So Serious?'라는 대사를 이야기하며 고담시, 배트맨,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 '이 모든 걸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마, 이 모든 건 단지 놀이이자 혼돈이잖아?'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며, 그의 치밀하면서 동시에 파괴적인 계획과 악마적인 카리스마를 연기한 히스 레저는 '브로큰벡 마운틴에서 나왔던 그 배우였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연기변신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관객들 또한 조커의 과거, 조커의 기원 같은 문제는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현재의 조커에게 집중하게 되며, 동시에 그의 악마적인 광기와 파괴력에 매료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최대의 강적을 만난 배트맨은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번 작에서 배트맨이 조커의 카리스마에 눌렸다고 평을 하고 있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는 이미 비긴즈 때부터 예상이 된 것이었습니다. 비긴즈에서 이미 브루스의 부모에 대한 복수의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가 고담시에서 배트맨임을 자청하는 것은 부패와 어둠이 만연한 고담시의 악을 막는 마지막 보루, 마지노선이라는 일종의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인해서이구요. 그러나 하비 덴트라는 유능한 검사의 등장으로 고담시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고, 자신의 정체성과 문제점-사적인 힘이 사회가 정한 질서보다 더 위에 있을수는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던 브루스는 결국 배트맨을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전작 비긴즈서부터 배트맨을 연기한 크리스쳔 베일은 이번 작에서 배트맨 연기의 정점에 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서, 동시에 남들에게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서 역으로 개념없는 억만장자인 척하고, 동시에 자신의 배트맨이라는 또다른 정체성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갈등하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89년도의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히키코모리 편집광 배트맨 보다는 관객들에게 더 크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키트의 배트맨이 배트맨의 편집광적인 부분을 확대 재생산한 팀버튼 식의 배트맨이라면, 크리스쳔 베일의 배트맨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현실적이면서, 놀란 감독의 컨셉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자는 '크리스쳔 베일이 배트맨이 아닌 배트맨은 더 이상 상상 할 수없다.'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그의 배트맨은 관객들에게 조커 못지 않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조커와 배트맨, 그리고 하비 덴트라는 정의감 넘치는 검사의 삼각 구도를 이루어서 영화는 전개됩니다.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조커라는 엄청난 재앙을 만난 고담시는 패닉상태로 몰리게 되고, 브루스의 옛 애인인 레이첼은 조커의 계략에 걸려 죽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배트맨의 대안이며 고담시의 백 기사-White Knight-이자 희망으로 추앙 받는 하비 덴트마저 조커가 타락시켜서 투페이스로 만들게 됩니다. 영화는 이렇게 배트맨에게 시련을 계속 안겨줍니다. 과연 브루스가 고담시의 구원자로, 정의의 수호자로 남을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그 과정에서 배트맨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 자신은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한 때는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고 사람들을 살리겠다고 결심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커가 잡히고, 투페이스가 자신의 약혼녀와 자신의 얼굴과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자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그 원흉인 부패 경찰들을 쏴죽인 뒤에, 약혼녀를 구하는데 실패한 고든 경찰청장을 죽이려는 것 배트맨이 막게 되고, 그 후 배트맨은 선택에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과연 온갖 누명과 오명을 뒤집어 써가면서까지 자신이 계속 고담의 구원자로 남아 고담을 구원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짐에서 해방되어서 평범한 삶을 살 것인지 라는 기로 말입니다. 결국 배트맨은 하비를 투페이스가 아닌 고담의 백기사, 고담시의 희망으로 남게 하고, 자신이 투페이스가 저지른 범죄를 모두 뒤집어 쓰게 됩니다. 그리고 배트맨은 경찰의 추격을 받으면서 도주하게 됩니다. 원래는 모든 찬사와 명예를 받아야 하는 그가 범죄를 저지른 악당처럼 도주하고 있는 장면은 너무나 쓸쓸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가 어두운 밤 한줄기 빛을 향해서 바이크를 몰고 달려가면서 사라지는 동시에 나타나는 영화의 제목, Batman: Dark Knight는 그가 고담을 지키는 어둠의 기사, 다크 나이트며, 그의 선택은 고결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다크 나이트는 '어떻게 배트맨이 시작되었는가?'라는 비긴즈의 질문을 이어서, '그럼 그 후에 왜 계속 배트맨을 자처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내놓은 작품입니다. 조커의 농간에 온 고담시가 좌지우지 되고, 고담시의 희망이라 할 수 있는 하비 검사가 타락하는 가운데, 배트맨이 내린 결정은 자신을 희생해서 고담을 지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크 나이트는 전작에서의 사적 복수자에서 진정으로 고담을 지키는 수호자로 거듭나는 일련의 재탄생의 과정이며, 그 과정을 음울하지만 장엄하게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구조와 케릭터 등 모든 요소는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였으며, 그 완성도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다크 나이트는 블록 버스터 영화들 중에서는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배트맨이라는 케릭터가 어떻게 고담의 수호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멋진 답변입니다. 앞으로 헐리우드에서 이런 영화를 다시 찾아보기 힘들거라는 평도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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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o Serious?

배트맨은 1930년대에 처음 등장한 DC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중 한명입니다. 1930년 처음 나온 이후, 지금까지 배트맨은 수많은 파생작과 재해석을 통해서 독특한 오오라를 지닌 작품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개성있고 매력적인 케릭터들과 악역들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토대로, 최근 배트맨: 다크 나이트(2008)는 배트맨이라는 케릭터와 작품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헐리우드 오락 영화사에 커다란 한획을 긋게되었습니다. 이 글은 팀버튼의 배트맨, 배트맨 리턴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 그리고 최근작 다크 나이트를 비교 정리하는 글입니다.

베트맨(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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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악마와 춤춰 본적이 있나?)

배트맨의 첫 영화화는 그 당시의 최고의 흥행영화 감독이 아닌, 희대의 괴감독 팀 버튼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미국 영화계의 크기나 규모, 흥행 성적들을 고려하였을 때, 지금과 같은 개념의 블록버스터 감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팀 버튼이라는 자기 색깔이 매우 뚜렷하면서 액션 영화 보다는 판타지나 기괴한 이미지의 영화에 특화된 감독을 배트맨이라는 유명 코믹스의 영화 감독으로 기용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배트맨에 대해서 팀 버튼이 그 나름대로의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감독을 맡은 것이 가능했지만 그 당시에 조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던 알란 무어의 ‘킬링 조크’나 1930~40년대의 편집광적인 배트맨에 대한 재해석과 재발견이 그의 배트맨을 뒷받침하고 지지하게 된 것입니다. 배트맨 첫 영화가 개봉 하였을 때, 기존의 배트맨의 팬들은 분노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배트맨이라기 보단, 팀 버튼의 영화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 입장에서 본다면 1989년도의 배트맨은 그 당시 불고 있었던 배트맨과 그 세계관, 케릭터들의 재해석을 팀버튼 식으로 옮겨놓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팀 버튼이 발견한 배트맨은 편집광적이고 사회 부적응자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입니다. 백만장자이면서 고담시의 안전을 지키는 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은 거대한 자신의 저택에서 알프래드와 단 둘이 살고 친구는 없고, 자신의 저택에 감시 카메라를 잔뜩 설치해서 전 저택을 감시하고, 아무도 없는 그의 은신처에서 혼자 앉아서 밥을 먹고, 그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어디 출장간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주변 환경과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존재입니다. 그런 그가 배트맨이 되는 이유는 어렸을 때, 자신의 부모가 길거리에서 잭 네피어, 즉 조커에게 총을 맞아 죽은 것이 어린 브루스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해서 그는 의무감이 아닌 편집증적으로 사회의 안전과 보안, 기성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게 됩니다.

물론 그런 그가 그의 재력과 능력을 이용해서 가면을 쓴 어둠의 수호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고담시의 안정을 지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어릴적 트라우마로 인해서 그러한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즉 스스로, 그만의 방식으로 고담의 정의를 세우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가치에 동조되지 못하는 자들-마피아, 건달, 악당 등-을 자신만의 방법-공포와 두려움-으로 처단합니다. 하지만, 영화 내에서 제가 봤을 때, 그의 악에 대한 처단은 그의 어렸을 적 경험과 트라우마에서 나온 보복심리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은 고담이라는 사회의 한 사회의 질서에 대한 욕망과 비극이 낳은 기괴한 영웅이며, 자신의 트라우마와 보복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광기어린 편집증 환자-이는 그가 조커를 두들겨 패면서, ‘네가 우리 부모를 죽였어!’라고 외친 부분에서 보여 집니다.-인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조커는 독특합니다. 그는 스스로가 조커가 된 것이 아니라 배트맨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괴한 존재입니다. 조커의 전신인 잭 네피어가 브루스의 부모를 죽여서 배트맨을 만들어낸 것을 생각하면, 이는 정말 멋진 역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서에 대한 편집증이 역으로 질서를 붕괴시키는 또 다른 광기와 위협을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이것은 조커의 기원을 다루었다는 의미에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조커가 되었는가?’라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알란 무어의 ‘킬링 조크’에서 그 조커의 기원에 대한 모티브를 차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팀 버튼의 조커는 배트맨에 의해서 만들어진, 질서에 대한 편집증적 욕구가 만들어낸 질서와 가치에 대한 안티 테제(반대 명제)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일단 그는 배트맨과 다르게 유쾌합니다. 킴 베이싱어가 있는 박물관에 쳐들어가서 독가스를 뿌려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프린스의 노래를 틀면서 박물관의 모든 미술품을 작살 내는 장면은 무섭다거나 괴기스럽다기 보다는 유쾌하다는 느낌입니다. 그의 센스는 전체적으로 대공황기의 분위기를 지향하는 영화의 대척점에 놓여있습니다. 자신을 세계 최초의 살인 예술가로 표현하거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마피아 두목을 전기 통구이로 만들고 나서는 시체와 노는 장면, 고담 시민들을 모두 웃음 가스에 중독 시켜서 죽이려는 장면-‘외과의사가 그러듯, 가려거든 웃으면서 가라고.’- 등 영화내내 칙칙한 고담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치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제멋대로 뛰어 노는 막내같은 느낌으로요. 그의 앞에서는 고담의 질서, 가치, 그 모든 것들이 가지고 놀 소재이며 동시에 파괴해야할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집(질서)나간 천방지축 막내(조커)를 다시 집으로 끌고 들어가기 위해서, 엄격하고 편집증 걸린 아버지(배트맨)가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며 편집증 걸린 배트맨이 조커를 이기고, 그를 파멸 시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 조커의 시체가 계속 웃는 장면은 배트맨이 이긴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배트맨은 살아남은 승자가 아니라, 계속 그 편집증과 질서에 얽메여서 살 수 밖에 없는 패자에 불과하니까요. 이러한 해석은 후에 배트맨 리턴즈에서도 계속 되게 됩니다.

베트맨 리턴즈(1993, a.k.a 베트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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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귄, 박쥐, 그리고 고양이)

베트맨 리턴즈는 전편과 다른 구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편에서는 질서와 그 질서가 만들어낸 광기, 그 둘 사이의 대결과 파국을 그려내었다면, 리턴즈에서는 출생은 서로 다르지만 맥락적으로 같은 괴물-배트맨, 팽귄, 켓우먼-들이, 고담시라는 거대한 서커스 무대에서 벌이는 하나의 프릭쇼(기형아들을 모아놓고 벌이는 쇼)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여기서 팀 버튼은 배트맨과 팽귄, 켓우먼이라는 세 명의 동물 인간들의 케릭터들과 함께 기존 질서의 기득권, 보수 세력들의 추악한 점-막스 슈렉이라던가-까지 물려들어가면서, 기존 질서와 그 기괴한 산물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먼저 이 작품의 주인공들, 배트맨, 팽귄, 켓우먼들은 기존 질서의 추악함과 괴기함이 만들어낸 괴물들입니다. 팽귄은 선천적인 기형으로 인해서 부모에게 버림 받아서 만들어진 괴물이고, 켓우먼은 막스 슈렉이라는 악덕 자본주의 음모를 알게되었다는 이유로 창문밖으로 던져진 어벙한 비서의 뒤틀린 분신이며, 배트맨은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자신의 편집증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기괴한 질서의 산물입니다. 그러한 그들은 막스 슈렉이라는 전형적인 선량한 척하는 악덕 자본주에 의해서 모이고 싸우게 됩니다.

고담시민들은 이러한 프릭쇼의 관중입니다. 처음 팽귄이 세상으로 나왔을 때, 팽귄은 고담 시민들의 자의에 의해 해석된 광대가 됩니다. 그러나 후로 가면 갈수록 고담 시민들은 그러한 팽귄의 이미지-불쌍하고 가련한 괴물-에 속아서 그를 시장으로 밀게 됩니다.(물론 여기에는 막스 슈렉이라는 악덕 자본주도 한 몫하지만)즉, 시민들이 광대를 보고 웃다가 광대가 시민들을 엿먹이는 그러한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팽귄의 본질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적인 배트맨입니다. 처음 세상으로 나온 팽귄을 보면서, 경계를 하는 브루스에게 알프래드가 '그건 주인님의 감인가요, 아니면 같은 동지로서 그런 느낌을 받으신건가요?"라고 비꼬는 부분은 배트맨과 팽귄의 동질성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그에 비해서 켓우먼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그들과 다른 아우라를 풍기는 존재입니다. 일각에서 켓우먼을 패미니즘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켓우먼은 그저 고양이입니다. 자기 내키는데로 살아가는 고양이와 같은 느낌이지요. 그녀의 행동은 파괴적이고 동시에 충동적입니다. 그녀는 배트맨과 팽귄 사이를 오가면서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본작 배트맨 리턴즈에서의 긴장감을 더 높이는 역할이지요.

결과적으로 리턴즈는 고담시라는 도시가 만들어낸 기형아들의 쇼이고, 이는 고담시가 끝나지 않는 한 끝날 수 없는 무간지옥과 다름 없습니다. 마지막에 동물원에서의 일전에서 배트맨이 팽귄을 제거하고 고담시를 지켜내지만, 정작 그 자신은 마음의 평안이나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처지에 있는 셀리나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구원을 얻으려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게 됩니다. 결국 배트맨은 고담을 구원했지만, 고담에 예속된 기형아로 남게 됩니다. 엔딩 크레딧 전에 켓우먼이 '고양이는 목숨이 9개 있지.'라는 대사를 이야기 하는 것도 결국은 리턴즈에서의 갈등 관계가 정상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소결론

배트맨과 배트맨 리턴즈는 결과적으로 그 당시 새롭게 제기된 배트맨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다거나, 팀버튼이 아예 처음부터 배트맨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두 작품은 배트맨이라는 히어로를 편집광적으로 몰고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렸을 적 트라우마가 행동의 동기가 충분히 될 수 있고, 그러한 트라우마가 케릭터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결의를 하게 하였는지 등의 과정을 다루지 않고, 원인-결과의 구조만 보여줌으로써 배트맨이라는 케릭터를 편집증에 걸린 것같은 느낌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팀버튼이라는 감독의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보는데, 이성적인 구조보다는 환상과 몽환, 광기, 뒤틀림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광기의 아름다움과 이성의 추함을 강조하는 그런 성향이 강한 감독이 바로 팀버튼 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과 리턴즈는 그 당시 액션 영화면서 액션은 적고, 정신병동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긴다는 평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팀 버튼식의 배트맨의 해석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해석이고, 영화 자체도 팀 버튼의 영화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본다면 훌륭한 영화입니다. 다만, 배트맨의 영화화로 보기에는 아쉬운 점들이 많았지요.(특히 너무 팀버튼 식으로 재해석한 점) 후에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포에버나 배트맨 엔 로빈은 그러한 부족한 점을 매꾸고자, 블록버스터 영화를 지향했지만 결과적으로 평이나 팬들에게서는 엄청나게 냉대받게 됩니다. 포에버나 배트맨 엔 로빈의 문제점은 바로 배트맨의 매력적인 부분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새로운 해석은 없었으며, 그저 만화적으로 꾸미기에 급급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라는 것이지요. 역설적이게도, 비록 그 두 작품이 흥행에서 배트맨(1989)을 능가했을지는 몰라도, 팀 버튼식의 어두운 우화 같은 배트맨이 대중들이 보기에도 완성도가 더 높았고, 더 배트맨 해석에 있어서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지요.

결국, 배트맨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정의는 후에 메멘토, 인섬니악을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게 됩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끊습니다;)

게임 이야기/게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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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노아~!)


 악마성 드라큘라:빼앗긴 각인(a.k.a Order of Eccelia-북미권)의 정보가 속속들이 공개가 되면서, 잠시 놓고 있었던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들을 전체적으로 흩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은 메트로베니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월하의 야상곡을 하고 있으며, GBA 버전 게임인 효월의 원무곡, 서클 오브 더 문은 현재 플레이 중, DS로 나온 창월의 십자가와 폐허의 화랑은 클리어 하였습니다. 원래는 개개의 리뷰를 쓰려고 했지만, 한번에 비교하면서 다루는 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 비교하는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上편에서는 GBA 버전까지 다루겠습니다.)

덧1. 이 글은 월하의 야상곡에서 시작, DS 폐허의 화랑으로 끝나는 메트로베니아에 대한 리뷰 겸 칼럼입니다. 월하 이전의 악마성과 PS2, Xbox로 나온 3D 악마성은 다루지 않습니다.

악마성 드라큘라 X:월하의 야상곡(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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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게이머들이 악마성 시리즈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흔히들 이야기 하는 메트로베니아식의 악마성의 시초이며, 월하의 야상곡 이후의 악마성들은 고딕 풍의 일러스트와 분위기를 지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악마성 시리즈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 실제 게임도 이후에 나왔던 DS 작품이나 GBA 작품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많은 유사점-엄밀히 이야기 해서 계승되었다고 하겠지만-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 같은 경우에는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를 DS에서 처음 접하였기 때문에, 월하의 야상곡 자체로는 크게 쇼크를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분위기로만 따진다면 월하의 야상곡이 후에 나온 GBA, DS 게임보다 더 좋다고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코지마 아야미의 일러스트와 음악,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게임의 분위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IGA도 자신이 월하 이후로 만든 악마성이 월하를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는데(실제 metacritic이나 Game rankings를 가도 월하의 야상곡이 가장 평점이 높습니다.), 이건 게임의 시스템이나 벨런스 문제가 아니라 게임의 분위기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GBA야 PS와 스펙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PS와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없다고 해도, DS에서 월하를 능가하는 작품이 없는 것은 순전히 일러스트와 분위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타당한데, 특히 DS 때의 일러스트는 거의 최악을 달려줍니다. 월하의 야상곡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이 바로 분위기였을 정도이니까요. 그러므로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가 월하를 뛰어 넘지 못하는 것은 분위기의 문제이고, 일러하고 분위기만 잘 잡으면 월하를 뛰어넘는 작품은 언제든지 나올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미 시스템적인 면에서는 월하보다 뛰어난 두 작품-서클 오브 더 문, 창월의 십자가-이 있으니까요.

 월하에서 특기할 사항은 아카드의 필살기를 커멘드로 입력해야 한다는 점이군요(.......) 이게 좀 짜증나는데, 가뜩이나 ePSxe돌리면서 패드가 아니라 키보드로 입력하려니 조작이 미묘하게 되던데, 거기에다가 필살기가 빡빡하게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반회전 이나 저축형 커멘드 같은걸 키보드로 입력하는데 매우 고생스럽습니다. 게다가 판정도 미묘하게 빡빡해서 잘 안들어가는 느낌이고, 소울스틸같이 아날로그 스틱 아니면 잘 들어가지도 않을 필살기를 키보드로 입력하면서 계속 삑사리를 내는 것은 혈압을 올리는 주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냥 간편하게 서브 웨폰 처럼 버튼 조합으로 가면 될 것을 괜시리 커멘드 입력을 넣어서 처리해야한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하더군요. 그걸 적게 사용하면 그래도 좀 나은데, 이걸 사용해야 처리 할 수 있는 적이나 난관이 은근히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아쉽더군요.

 나머지 사항은 다른 악마성과 동일. 처음에는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있다가, 보스전을 겪고 능력을 얻은 다음에 성을 탐색해서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찾고, 그 과정에서 레벨업 하고, 숨겨진 방을 찾고 장비를 얻은 다음에, 다시 보스전을 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원 악마성 팬들이 본다면 매우 획기적이었겠지만, 월하 이후의 악마성을 하다가 월하를 해보면 그만큼의 쇼크를 못 느끼는 것도 사실. 그래도 분위기나 게임 자체가 가지는 재미는 뛰어나기 때문에, 한번쯤 악마성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경험하고 싶으신 분들은 해도 나쁘지 않은 작품입니다.

덧.미묘하게 알카드의 2단 점프가
DS나 GBA 때와 점프 타이밍이나 높이가 다르더군요. 은근히 이점도 짜증이 난다는;



PS->GBA->PS2->DS->Wii?

 물론 악마성 시리즈는 월하의 야상곡 이후 여러 플랫폼으로 나왔습니다. 월하의 야상곡 이후로 나온 악마성은 N64 로 나온 악마성 드라큘라:묵시룩과 레전드 오브 코넬-시리즈 최초 3D입니다.-이고, 그 이후에 GBA 버전 악마성 삼부작이 나오게 됩니다.(평이 참 안 좋더군요;) GBA 악마성 삼부작 까지 월하의 야상곡을 표방한 악마성 시리즈는 PS2로 플랫폼을 바꾸어서 3D게임 액션 게임을 내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까지 월하의 야상곡식의 메트로베니아를 우려먹을수 없는 노릇이고, 기존의 악마성 팬층을 유지, 새로운 팬을 이끌어들이기 위해서 거치대형 콘솔로 메인 플랫폼을 옮겨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악마성 드라큘라:순수의 비가. 벰파이어 헌터 벨몬드 가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서 악마성 시리즈의 역사를 확립하고, 새로운 악마성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작품이었으나, 노가다 스런 채찍 액션과 일러와 정 딴판인 3D 모델링 때문에 욕을 들어먹고 기존 팬들이 '역시 악마성은 2D가 좋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물론 그 후에 PS2와 Xbox로 3D 악마성-암흑의 저주-을 하나 더 내게 됩니다.(시기상으로는 DS 악마성 드라큘라: 창월의 십자가 이후) 평은 전작보다 나아졌지만, 역시 2D 악마성보다 못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월하의 이펙트가 강했다는 것이죠. 뭐, 결과적으로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는 2D다!'라는 팬들의 고정관념은 점점 더 강화되었으며, IGA 측에서는 그러한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 이번 2008년에 엄청나게 충격적인 뉴스를 악마성 팬들에게 전달합니다. 그것은 바로 악마성의 대전 게임화. 혹자는 2008년 중 가장 깼던 뉴스 중 하나라고 정했지만, 이미 Wii로 악마성을 낸다고 했을때 부터 기존의 월하식의 메트로베니아 악마성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거의 도박에 가깝다 싶을 정도의 모험인데, 기존의 악마성 드라큘라 3D 액션 게임도 실패하는 와중에 3D 대전 게임은 성공할 가능성은 더 낳다고 보아야 하니까요. 다만 IGA 측도 바보는 아니니까 그정도는 충분히 알 것이고, 그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놓았을 것이라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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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동시에 IGA는 메트로베니아식의 신작을 DS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팬층을 붙잡아두기 위한 전략인데, 이번 신작 빼앗긴 각인(a.k.a 케슬베니아:Order of Eccelia)은 여러가지 의미로 IGA의 월하식의 메트로베니아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더군요. 게다가 전작 DS 악마성 시리즈들의 최대의 문제점이었던 일러스트 문제를 보완, 그래픽적으로 DS 악마성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이펙트, 효월과 창월 때의 격찬을 받은 소울 시스템의 변용 시스템으로 보이는 Glyph(주.상형문자라는 의미입니다.) 시스템, 폐허의 화랑 때의 퀘스트 시스템을 차용하는 등, 전작에서 좋았다고 호평을 받은 점은 싸그리 다 긁어 모아 합친거 같은 느낌의 작품입니다. 나중에 下편에서 자세히 프리뷰 하겠지만, 지금 공개된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기존의 악마성 팬들에게 어필할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일단은 밑에서 메트로베니아 식 GBA 3부작 중 서클 오브 더 문과 효월의 원무곡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백야의 협주곡도 있지만, 이것은 제가 플레이 하지 못한 관계로 리뷰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솔직히 백야의 협주곡 보다는 서클 오브 더 문이나 효월의 원무곡이 시스템적으로 더 살펴볼게 많기 때문에, 이 두개만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GBA 악마성 3부작은 다 보았다고 할 정도로 중요도나 완성도는 이 두개가 백야의 협주곡 보다 더 뛰어납니다.

악마성 드라큘라:서클 오브 더 문(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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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A로 나온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 세개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작품. 특이하게도 IGA가 이끄는 코나미 도쿄 지부가 아니라 고베 지부에서 만들어져서 설정들이 미묘하게 다르고, 악마성 사가에서는 페러럴 월드로 분류 되는 작품입니다. 그 덕분에 드라큐라 백작이 아니라 마왕 드라큐라, 뱀파이어 킬러는 헌터의 채찍 등으로 바뀌어져서 참 분위기 미묘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정작 게임하는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유일하게 월야의 야상곡의 판매량을 뛰어넘은 작품이며, metacritic에서는 월하 다음으로 점수가 높은 게임입니다.(이와 반대로 game rankings에서는 효월의 원무곡이 월하의 야상곡 다음으로 점수가 높은 게임;;)

이전작들과 다른 시스템을 차용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인데, DSS(Duel Set up System)이라고, 몬스터들이 떨구는 카드를 착용하여 채찍에 속성을 부여하거나, 방어막을 치거나 경직을 줄이거나 무적시간을 늘리거나 소환수를 부르는 등의 다양한 액션을 취할 수 있습니다. 카드의 종류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지는데, 크게 어떠한 액션이 일어날 것인가를 결정하는 액션 카드와 그 액션을 통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인가를 결정하는 속성 카드로 나뉘어 집니다. 예를 들어서 채찍에 속성을 부여하는 머큐리 카드와 불 속성을 의미하는 살라맨더 카드를 같이 세팅을 하고 L버튼을 누르면 채찍에 불속성이 추가된 공격을 하게 되고, 살라맨더 카드 대신에 서팬트 카드를 대신 세팅을 하고 공격을 하면 물 속성의 공격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카드를 세팅하고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쓰는 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몇몇 가지 요소로 참 짜증났던 작품이 바로 서클 오브 더 문입니다. 일단은 이거, 상점이 없습니다. 포션이나 마나 포션 등은 모조리 다 악마성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극악함-게다가 악마성에서 적이 아이템 떨구는 확률은 디아블로 2에서 세트 아이템 한 세트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확률과 비등하다고 봐야 합니다; 뭐, 이번작에서는 떨어지는 확률이 조금 높지만- 때문에 짜증나더군요. 또한 그 뭣한 채찍 말고는 무기를 바꿀 수 없다는 점, 미묘한 점프 타이밍, 상점이 없어서 쌓여만 가는 아이템, 극악한 포션 회복량 등이 게임하면서 짜증 났던 점들에 포함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자신이 원하는 DSS 카드를 어떤 몬스터가 떨구는 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랜덤으로 몬스터들이 DSS 카드를 떨구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냥 떨어져 있는 카드 주워서 조합하는 수 말고는 전혀 답이 없더군요. 결과적으로 DSS 카드를 조합해서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은 거의 게임 후반부에나 가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게임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게임하면서 꽤 많이 죽었습니다. 난이도가 높은건 나쁜게 아니지만, 적어도 체력이라도 회복 할 수 있는 방법만 충분히 있었으면 괜찮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어떤 의미에서는 월하의 야상곡 이후로 새로운 시도를 한 악마성이고, DSS라는 시스템은 획기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제기하는 문제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괜찮은 게임. 다만 문제는 월하의 야상곡을 능가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2%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기기 성능 탓도 있지만, 아쉽게도 미묘한 점-상점의 부제, 처절한 포션 회복량, 랜덤으로 떨어지는 DSS 카드 등-이 발목을 잡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좀 아쉬운 작품이더군요.

덧.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비기가 있으니, DSS 발동하고 주인공이 반짝거리는 순간, DSS 카드 선택 창으로 들어가서 자기가 원하는 조합의 카드를 순서대로 조합을 하고 나오면 그 카드가 있던 없던 간에 DSS 카드 조합이 발동이 되는 버그가 있습니다.

덧2.악마성 시리즈에서 가장 높게 점프할 수 있는 주인공이더군요; 대쉬+이단 점프면 거의 다른 악마성 주인공들 2단 점프의 1.5배는 가볍게 뛰어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진짜 육상이라도 했나;


 
악마성 드라큘라; 효월의 원무곡(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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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시스템적으로 완성된 악마성 시리즈가 아닐까라고 생각되는 작품입니다. GBA로 나온 악마성 3부작 중에서 가장 대중화에 성공한 작품이며, 스케일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방대한 작품이며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game rankings에서는 월하의 야상곡 다음으로 평점이 높은 작품입니다. 특히 적에게서 능력을 카피하는 소울 시스템, 타임어텍 형식으로 보스들만 격파하는 보스 러쉬 모드와 다른 사람과 소울을 바꿀 수 있는 소울 트레이드 시스템 등 악마성 시리즈 중에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스템을 개편한 작품입니다. 또한 그 당시로서 GBA의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그래픽, 시리즈 사상 가장 많은 출연 케릭터수 보유, 굿 엔딩, 베드 엔딩의 반전 등 여러 의미로 게임이 대단했습니다.

소울 시스템은 말그대로 적의 능력이나 특성을 캐치, 이를 사용하는 시스템. 원리상으로는 게임 내에 나오는 모든 적은 소울을 가지고 있으므로 수집할 수 있는 소울의 개수는 총 합해서 100여개 이상입니다. 즉, 주인공 소마가 쓸 수 있는 기술의 가지수가 적어도 100개 이상이나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악마성 시리즈 사상 최고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게임 내에서 나오는 소울들이 모두 공격형이 아니라 장착을 통해서 능력을 올리는 소울 등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장착하는 소울을 달리하여 전투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100여개 이상의 소울을 수집한다는 의미에서 게이머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등의 요소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울 시스템은 악마성의 대중화를 일구어 냈는데, 그것은 기존의 악마성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 지나치게 코어 하다는 점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악마성 같은 경우에는 어떤 몬스터가 어떤 아이템을 떨구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몬스터가 아이템을 떨굴때까지 죽어라고 패면서 노가다를 뛸 수밖에 없었지요. 결과적으로 공략집을 참조하면서 몬스터가 자기가 원하는 아이템을 떨굴때 까지 죽어라고 두들겨 패거나, 아니면 그냥 죽어라고 노가다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효월의 소울 시스템으로 넘어가면서 '아, 이놈은 대충 이런 능력의 소울을 주겠구나.'라는 감이 오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싶은 소울만 적당히 골라서 공략하면 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물론 효월에서는 무기나 방어구 같은 것들은 여전히 적이 떨구거나 성을 조사해서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만, 창월에서는 이를 weapon synthesis 시스템으로 훌륭히 보완을 합니다.

다만 DS 창월을 먼저하고 GBA버전을 하니까 미묘하게 신경이 거슬리는 점이 많더군요. 물론 서클 오브 더 문도 그랬지만, DS보다 프레임이 떨어지고 타격 판정이나 점프 타이밍이 미묘하게 달라서 게임 하는 동안 좀 껄끄러웠던 것은 사실. 전체적인 완성도의 측면에서도 미묘하게 게임이 떨어진다는 느낌. GBA라는 기기의 한계가 게임 전반적인 완성도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성 드라큘라: 효월의 원무곡은 DS 창월의 십자가가 나올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였고, 이러한 효월의 실험은 창월의 십자가에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덧. 리히터 벨몬트를 능가하는 사기 벨몬트, 율리어스 벨몬트가 나옵니다. 그 사기성은 창월이나 효월을 직접해보시면 아시게 됩니다(.......)

덧2.효월과 창월에서 나오는 최종 보스는 드라큘라가 아닙니다. 드라큘라는 이미 1999년에 끝장이 났거든요(뭐?) 그래서 현재 많은 악마성 팬들이 예측하는 악마성 작품이 두개가 있는데, 1.마지막 벨몬트 리히터 벨몬트가 분가인 모리스 가에게 벰파이어 킬러를 전수하는 내용을 가진 작품, 2.율리어스가 1999년에 일본에서 드라큘라를 완벽하게 끝내버리는 내용을 가진 작품 이런 내용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덧3.소울 시스템은 마왕 드라큘라의 반신이라는 소마의 상태가 만들어낸 일종의 축복이자 저주입니다. 배드 엔딩에서는 소마가....(이하 생략)



다음에는 DS 악마성인 창월의 십자가와 폐허의 화랑,
그리고 빼앗긴 각인에 대한 프리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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