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리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인 체인질링을 보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어느 블로그에서 '밀양의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고 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는 어렸을 때 본 용서받지 못할 자(The Unforgiven)의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본적이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뭐, 같이 간 가족들은 또다른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타일의 영화라고 평을 합니다만, 저는 그 차분한 분위기가 좋더군요.

영화는 실종되었던 자신의 아이가 실종된지 몇달만에 다른 아이로 바뀌어져 돌아온 싱글맘 크리스틴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영화는 주인공인 크리스틴이 자기 자식을 되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여타 영화들과는 달리 이 과정이 대단히 담담하게 표현됩니다. 크리스티는 대단히 극한의 상황ㅡ경찰은 그녀, 경찰에게 대들었다고 정신병원도 가고, 실종된 아들은 사실 연쇄살인범이 납치해서 죽이기 까지ㅡ에서의 감정은 담담하면서 마음에 와닿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어머니 VS 온 세상'의 대립구도를 보여주는데, 온 세상이 '그 놈이 니 아들이다 or 아들은 죽었다 받아들여라'라고 어머니에게 압박을 가하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단히 답답한(혹은 애처로운)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심정을 신파적이지 않으면서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또다른 특징은 당연 섹시 스타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 변신입니다. 솔직히 작년의 원티드(Wanted, 2008)를 생각하면 '이사람이 그사람인가?'라고 느껴질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1930년대의 능력있는 싱글맘의 모습이더군요. 부모님은 영화속 크리스틴 '안젤리나 졸리 많이 늙었네'라고 하셨지만, 저는 '안젤리나 졸리가 배우로서의 관록이 붙었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군요. 영화 내에서 드러나는 배우의 오라는 단순한 분장이나 특수효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경험과 몰입에서 우러나옵니다. 체인질링에서 안젤리나 졸리는 그러한 크리스틴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었습니다. 특히 정신병원에서 겨우 나오고 난 뒤 자신의 자식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쯤 넉이 나간 모습을 단지 버스 차장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는 부분은 압권이더군요.

하여간, 대단히 좋은 작품입니다. 2시간 2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지루하지 않으면서 자극적이지 않고, 드라마도 좋으니까요. 원래 처음 미국에 나왔을 때 꽤나 악평을 들었는데, 왜 그런 평이 나왔는지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이런 잔잔한 드라마를 보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