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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라스트 오브 어스:파트 2가 코로나로 인한 무기한 발매 연기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라스트 오브 어스:파트 2의 모든 스토리와 엔딩 컷씬이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스토리의 내용 역시 충격적이긴 하지만, 게임의 엔딩 영상이 발매전에 유출되는 사태는 2003년에 있었던 하프라이프2 스토리 유출 이후 처음이라는 점이 더 충격적이다. 대부분의 게임 엔딩 영상 유출이 게임 리테일판이 유통중에 유출되어 공개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심지어 하프라이프 2 유출이 해커라는 외부 인원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었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파트 2의 유출은 내부 인원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유출했는지로 많은 설왕설래가 오고 가고 있지만, 소니는 공식적으로 너티독과 너티독 제휴사에서의 유출을 부정하고 있다(기사) 별도의 취재나 공식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느 한쪽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일은 자제해야겠지만, 개발자 프롬프트가 찍힌 영상이 유출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공식 발표에 대한 신빙성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너티독이나 제휴사가 아니더라도, 개발 중인 게임의 엔딩, 그것도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높은 보안 접근 권한을 요하는 영상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적을 뿐더러 그에 걸맞는 직책과 권한을 가지고 있을만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파트 2의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금 떠오르는 것은 너티독의 크런치 모드 문화다. 결국 유출을 한 범인이 그만한 직책과 권한을 가졌을 텐데, 그에 걸맞는 동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즉, 너티독에 원한을 가질만한 내부자가 원한을 가질 이유가 바로 내부적으로 가혹한 크런치 문화 때문이 아니었냐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미 너티독은 레드 데드 리뎀션 2 발매 전후로 불거진 크런치 사태 때, 가장 최악의 크런치 문화를 가진 회사로 잘 알려졌다. 게임 발매 전 게임 질을 향상하기 위해 장기간 초과 근무를 하는 크런치 문화는 국내외 게임 회사를 막론하고 게임 개발자들의 삶의 질을 상당히 저하하는 요인이었다. 물론 프로젝트 단위로 돌아가는 산업 특성상, 납기 직전에 프로젝트 전반을 점검하는 크런치 문화 자체가 없기는 힘들겠지만 게임 산업의 경우 이러한 크런치가 상식적인 선을 넘어서는(게임 발매 6개월 전, 심지어는 1년 전부터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너티독의 크런치 문화(심지어 '2020년 3월'에 나온 기사다)는 상당히 악명 높다. "아무도 크런치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어쨌든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일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습니다."나 "놀랍고도 창의적인 환경입니다. 하지만 집에는 갈 수 없습니다." 같은 주옥같은 증언들은 너티독의 크런치 문화가 이 업계 내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세신 크리드 오딧세이 같은 작품은 대규모 크런치 모드 없이 만들어졌다(해당 기사)를 고려한다면, 너티독의 크런치 문화는 상당히 기이한 것이다. 물론 너티독이 영화와 같은 카메라 워크와 디테일을 따내기 위해서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고 그 때문에 크런치 모드는 불가피했다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모방하고 따르고 싶었던 영화의 관점에서 봐도 표준 근로 계약서나 노동법을 준수하면서 만들어진 명작이 많기에 이런 반론은 타당치 않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다시 위의 기사로 돌아오면, 가장 큰 문제는 프로젝트를 지탱하는 허리인 중간 스태프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로 보여진다. 닐 드럭만이 전권을 잡고 그의 판단 아래 프로젝트 내에서 수많은 요소들이 번복되고 수정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비효율의 발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결정의 번복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되, 신입 스태프들이 이러한 프로세스를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것이 뛰어난 중간 스태프의 역량이다. 하지만 위 기사에서 언급되는 많은 사례들은 '신규 스태프와 최고 결정자 사이에서 중간 스태프가 조율하여 사전에 방지되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비효율'이란 인상이 강하다.

 

이러한 비효율은 너티독이 몇몇 재능있는 창작자에 의해서 거둔 성공에 안착하여 조직과 인프라를 정비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열정있고 재능있는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야근하고 초과근무하는 문화에 안주하다 보니, 허리를 받쳐주는 사람들은 피로감으로 나가버리고, 새로운 인력은 충원되기 힘드니 최고 결정자에게 모든 힘이 쏠리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너티독은 눈에 뻔히 보이는 비효율을 막지 못하고, '오래 일하는 것이 최고의 효율'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에 조직 전체가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과 초과 근무 문화는 당장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암세포와 같이 회사를 사로잡는다. 조직은 점점 사람 하나 둘에 크게 좌우되어, '사람이 빠지게 되어 업무가 마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결정자의 지시를 기다린답시고 의미없이 대기하는 일들이 생기는 등 개발자들의 노동 의지와 효율을 떨어뜨리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심지어 이것들이 심화되면 자기가 만드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망했으면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가 되니(심지어 이 비슷한 이야기가 바이오웨어가 4년전 인퀴지션을 만들 때 나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독소 같은 문화라 할 수 있다. 너티독이 이번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지 여부는 상당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위 같은 이유들이다.

 

 

게임 이야기

 

3D 프린터가 보드게임이라는 취미 기준에서 불러온 혁명은 엄청나다. 보드 게임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드게임에서 게임을 구성하는 콤포넌트들을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콤포넌트 정리를 위한 수요는 존재해왔고, 정리를 위한 보드게임용 악세사리를 제작해서 파는 소규모 브랜드들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콤포넌트 정리 악세사리의 기능은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게임에 따라서 콤포넌트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정리 및 수납 수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에 필요한 다양한 계산과 게임 요소 관리가 사람이 직접 해야하는 만큼, 이런 것들을 정리해서 관리하는 것의 보드 게임 플레이어의 수요는 항상 존재해왔었다. 그러나 이런 세부적인 수요들을 하나 하나 따라주기에는 보드 게임 시장의 수요는 다양하지만 한정되었고, 수율은 당연히 맞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3D 프린터 이전의 보드게임 플레이어들은 대체품과 자가 제작의 대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3D 프린터의 등장으로 게임에 필요한 주변 악세사리들의 제작이 매우 쉬워졌다. 게임 플레이 중에 카드를 꽂거나, 박스 안에 콤포넌트를 정리하거나 등의 편의성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쓰는 지형 지물의 제작에 활용하는 등의 다양한 활용처가 발견되면서, 보드 게임 플레이어들은 때 아닌 4차 산업의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3D 프린터의 한계는 명확하다: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기존의 공산품 만큼의 품질을 확보하기 힘들다. 산업용으로 쓰는 3D 프린터 수준이 아니면 시장에 유통되는 공장 생산 미니어처 수준을 맞추기 힘들다. 또한 그만한 퀄리티의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관리해야하는 부분이 늘어난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3D 프린터는 3D 모델링 파일을 만드는 단계, 그리고 3D 모델링을 3D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게 공정을 분해하여 관리하는 슬라이싱, 마지막으로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실출력 단계로 나뉘어진다. 3D 프린터가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기존 제품 생산에서 필요했던 많은 시행착오와 설정 과정을 자동화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동화된 영역을 벗어나면 3D 프린터는 공산품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려준다. 물론 다양한 걸 시도하는 3D 프린터 유저들이 많아진 만큼, 출력물의 결과물을 올리는 법이나 제품을 관리하는 방법이 인터넷을 통해서 공유되는 중이고 고난도 작업에 도전하는 허들은 그만큼 낮아졌다.

 

3D 프린터의 등장은 한계와 가능성이 분명하다. 기업 관점에서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길을 열었고, 일반 개인의 관점에서는 자잘한 생활 물품이나 공예품을 뽑아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품질이 높은 미니어처나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데 있어서 3D 프린터는 많은 제약 사항들이 존재하기에, 기존의 공산품 제품들을 완벽하게 대체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3D 프린터가 공산품과 수공예의 틈새를 매꾸어주면서 여지껏 드러나지 않았던 수요와 가능성을 충족시켰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3D 프린팅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1983년까지 올라간다는 점이다. 3D 프린팅이 산업계에 등장한지 근 40년이 지났지만, 왜 이제서야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3D 프린터가 대중화될 수 있을만큼 기기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딥러닝과 인공지능 기술이 거슬러 올라가면 컴퓨터 과학 태동기부터 존재해왔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기술의 축적과 판단(3D 프린팅을 움직이는 동선을 짜고 기기를 제어하는 로직을 만들어주는 슬라이서 같은)을 대신 처리해주는 알고리즘의 발달이 3D 프린팅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대중화를 불러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의 대중화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수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테스트 하고, 자발적으로 개선점을 찾아서 기여하였기 때문에 이런 기술들은 찻잔 속의 폭풍이 아닌 대중화가 될 수 있었다.

 

3D 프린팅의 사례는 게임 시장과 산업에도 똑같이 대입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3D 프린팅이 보여주는 혁신은 뚜렷한 특징들을 보여준다:1)개념 자체는 이미 과거에도 존재한다. 2)혁신이 불러오는 결과는 생각보다 그 한계와 성과가 명확하다. 3)혁신이 만들어낸 파장은 과거에 보이지 않던 틈새 수요를 드러내는 집중되었다. 4)인터넷이라는 공간이 혁신의 베이스가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모드'일 것이다. 기존 게임을 개조해서 게임의 개조된 버전을 만든다는 모드의 개념은 오랫동안 존재해왔었다. 기존 게임에 이미지를 덮어서 불법 카피판을 만들던 시절까지 치면 더 오래되었겠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모드의 태동이 모드가 배포될 수 있는 인프라(PC통신이든 인터넷이든)가 깔리면서 부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3D 프린팅의 사례와 많이 유사한 부분을 보인다. 하지만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같이 모드에서 출발한 게임들이 게임 시장의 구조와 근간을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생각하면 그 질감을 동일하게 보기는 힘들 것이다. 어찌보면, '무주공산'과 같은 게임 시장에 모드가 도입되면서 그 공백을 빠르게 채워나갔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모드가 일으킨 혁신의 사례는 배틀로얄 모드의 사례일 것이다. 배틀로얄 자체는 ARMA의 모든 DAYZ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며, H1Z1의 배틀로얄 모드를 거쳐서 PUBG와 포트나이트 배틀로얄 모드를 통해서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 이후, 이들의 거둔 파장을 고려해 보았을 때 배틀로얄의 성공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분명 배틀로얄 모드의 등장은 기존 데스매치 등에 대해 매너리즘을 느끼던 플레이어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완벽한 대체품이 아닌 '대안 선택지 중 하나'라는 점에서 정해진 파이를 놓고 싸우고 있다.

 

하지만 배틀로얄의 존재는 기존 시장이 드러내지 못했었던 영역에 조명을 비춤으로써, 기존 게임들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콜 오브 듀티 워존의 사례일 것이다. 콜 오브 듀티 워존은 오랫동안 데스매치와 킬스트릭에 얽메여 있었던 콜옵의 멀티플레이를 배틀로얄로 재해석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강탈 모드를 통해 배틀로얄 역시 새로운 양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워존을 통해서 등장한 혁신의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질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매년 나오는 콜옵의 특수성 상 게임 수명이 매우 짧기 때문에), 배틀로얄 모드가 성공을 위해 단순히 똑같은 모드를 배끼는 것을 넘어서 기존 게임을 재해석하고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단 점에서 콜옵 워존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게임이다.

 

게임 이야기

 

모던 워페어가 처음 나왔을 때 콜 오브 듀티는 트렌드보다도 앞서나가는 프랜차이즈라 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모던 워페어 3 이후부터 콜 오브 듀티는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게임이라 할 수 없었다. 2년 마다 신작이 개발되는 개발 사이클 덕분에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앞서나가는 트렌드를 발굴하여 벤치마킹하고, 프랜차이즈의 힘을 빌려서 그것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전략을 주로 구사하였다. 예를 들어 재작년에 나왔던 블옵 4의 경우 오버워치와 팀포 2로부터 영향을 받은 팀 및 특수능력 중심의 난전을, 그 당시 포트나이트와 PUBG라는 성공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배틀로얄 장르를 모두 인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배경에 비추어 보았을 때, 콜옵 워존이 처음 나왔을 때의 반응은 싸늘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게임 발매 당시 야심차게 등장하였던 콜옵 버전의 배틀필드 모드였던 그라운드 워페어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컸을 것이다:콜옵 모던 워페어 리부트의 멀티플레이는 기본적으로 그라운드 워페어가 호환될 것을 전제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억지로 팀플레이를 강제하는 부분들이나 교전 거리의 증가 등은 게임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는 인피닛 워드가 콜옵이라는 프랜차이즈와 게임이 갖고 있는 특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콜옵 워존은 에이펙스 레전드 이후로 나온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들 중 가장 뚜렷한 개성과 장점을 가진, 쉽게 이야기하자면 배틀로얄 2세대라 불릴만한 작품이다. 포트나이트와 PUBG의 성공 이후, 배틀로얄 장르는 정형화된 양식을 갖추기 시작했다:초기 배치, 아이템 파밍, 경기 구역의 축소 등등. 하지만 배틀로얄 장르 공식의 성립은 필연적으로 '서로 비슷해보이는' 문제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배틀로얄 장르가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플레이어 풀을 늘리지 못하고 정체 상태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을 타파하기 위해서 수많은 게임들이 나름대로 노력을 하였지만, 그 중에서 워존 이전에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게임은 에이펙스 레전드일 것이다. 기존의 배틀로얄 장르의 흐름이 '배치 - 파밍 - 이동/전투 - ... - 최종 생존 및 승리'로 구성되어 있다면, 에이펙스 레전드는 전개 속도를 과격하게 끌어 올리고 여기에 주요한 변수로 부활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에이팩스 레전드의 장점들은 대부분 기존 타이탄폴 시리즈의 기조를 배틀로얄 식으로 재해석한 부분이었다. 즉, 기존 배틀로얄의 공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원 프랜차이즈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배틀로얄을 구성한 점이 에이펙스 레전드의 성공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에이팩스 레전드의 성공처럼, 워존의 성공은 콜옵식 배틀로얄을 추구하기 보다는 배틀로얄식 콜옵을 추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배틀로얄 게임들의 상당수가 '배치 - 파밍 - 이동/전투 - ... - 최종 생존 및 승리'라는 구조를 따르고 있다. 여기에 어느정도 변수를 추가하더라도, 이 흐름 자체를 깨는 것은 기존 배틀로얄 장르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장 변화한 배틀로얄 게임이라 할 수 있었던 에이팩스 레전드의 경우도 이러한 큰 흐름에 유저의 부활이라는 와일드 카드를 집어넣는 정도에 그쳤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배틀로얄 장르의 구조는 장르를 규정짓는 특성인 동시에 새로운 요소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제약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워존은 이러한 흐름을 부수는데 성공하였다:플레이어는 배치 후, 파밍 이외에 부가적인 임무를 선택해서 진행할 수 있고, 죽었을 시 다른 플레이어가 살려줘서 재배치 되거나 굴라그에서 스스로 재기할 수 있는 등 배틀로얄의 일방향적인 게임 흐름을 넘어서서 게임에 다양성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게임의 흐름과 플레이어의 선택 분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현금'이다. 여타 배틀로얄 장르에서의 탄약과 장비(+부착물)과 다르게 현금은 자신의 총기 및 장비 로드아웃을 불러오거나 죽은 동료(굴라그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료도 포함)를 살리거나 심지어는 멀티플레이의 일부 킬스트릭(콜옵 전통의 사기 스트릭인 UAV가 격추되지 않는 버전으로 등장한다!)을 불러올 수 있는 등 막강한 선택지들을 제공해주는 자원이다. 하지만 그만큼 현금은 게임 내에서 소모가 되기 때문에 많이 모을 각오를 해야한다. 물론 상자나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는 것은 물론, 상대를 죽여서 상대의 돈을 일정량 강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임무'라는 요소를 통해서 돈을 모을 것을 권장한다:임무는 현상금 사냥(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유저를 죽일 것), 재보급(제한 시간 내에서 상자를 모두 열어서 보급품을 확보할 것), 정찰(특정 지역을 일정 시간 장악할 것)로 구성되어 있으며 임무를 연속해서 성공할 시 보상으로 주는 현금에 보너스가 가산된다. 

 

이러한 현금의 존재는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 게임 플레이의 선택지를 대폭 늘려준다. 계속해서 파밍을 할지, 아니면 재보급 미션을 쭉 진행하면서 안전하게 아이템과 현금을 확보할 지, 아니면 현상금 사냥을 진행하면서 상대 위치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킬 파밍을 진행할 지 등 플레이어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과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게임 플레이를 구성할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플레이하든 게임은 돈을 확보하기 쉽게끔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의 정답은 없다는 것도 특기할만한 점이다.

 

 

 

워존이 현금이라는 독특한 게임 요소와 흐름을 끌어들인 것은 콜옵의 멀티플레이 강점을 온전히 끌어오기 위해서이다. 워존은 개인 장비 로드아웃이나 킬스트릭을 끌어오기 위한 요소로 현금을 만들고, 그러한 현금이란 요소를 모으기 위해서 다양한 보조 기제를 덧붙였다. 하지만 워존이 끌어온 것은 현금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현금은 수많은 새로운 장치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콜옵 특유의 빠른 TTK와 빠른 교전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워존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화점들을 게임에 넣어두었다. 부활을 건 굴라그 1:1 건매치(원본에도 비슷한 양식의 대전이 존재한다)도 있지만, 타 배틀로얄 장르 대비하여 투입 인원수가 1.5배에 달한다는 점(150명, 3인 스쿼드 50개 투입), 총기 사격 시 미니맵에 위치가 표시되는 점, 시작할 때부터 권총을 주고 시작한다는 점 등은 여타 배틀로얄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수들이다.

 

이렇게 해서 워존이 얻어내는 것은 '배틀로얄 스러운 콜 오브 듀티' 게임이다. 상당히 좁은 맵에서 수많은 적들과 복작거리면서 싸우고, 쉽게 킬을 따고 빠르게 죽되, 굴라그 매치와 부활을 통해서 재기의 기회를 노릴 수 있으며, 킬스트릭 등의 변수로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이 워존이다. 워존은 배틀로얄 장르가 다들 고만고만하다는 한계를 뛰어넘어서 콜 오브 듀티의 게임 플레이 매력을 게임에 접목시키는데 성공했고, 더 나아가서 '다양한 변종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었다.

 

'약탈'은 그 가능성을 그대로 드러낸 게임이다:현금 자원을 둘러싸고 누가 일정 금액의 현금을 가장 빨리 확보하느냐의 싸움을 벌이는 약탈은 워존 버전의 바운티 헌트(타이탄폴 2의 현금 쟁탈전)다. 하지만 워존의 약탈은 단순하게 바운티 헌트를 배낀 게임이라 할 수 없다. 바운티 헌트와 달리, 약탈의 베이스는 여전히 '배틀로얄'에 가깝다. 리스폰이 가능하다는 점과 로드아웃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총알이 날아와서 죽을지 모르는 살벌한 전장이 약탈 모드에서 그대로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약탈 모드는 현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헬기 포인트를 중심으로 전투가 치열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배틀로얄 모드와 달리 전투 양상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과거 포트나이트에서 있었던 기간한정 모드인 '하이스트'와 유사하다 할 수 있는데, 두 게임 모두 현금을 확보해서 안전한 포인트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하이스트 모드가 공중에 떠있는 벤에 보석을 전달하는 건설의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약탈은 상대가 돈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헬기를 부르는 순간에 기습을 가하여 돈을 빼앗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콜옵 워존은 약탈과 배틀로얄, 두 모드를 통해서 배틀로얄 기반의 게임이 앞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게임 자체의 장기적인 성공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콜옵 시리즈가 서비스하는 게임보다는 매년 게임을 팔아먹는 상품으로서의 속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매년 콜옵이 발매되다 보니까 이전에 나왔던 콜옵은 플레이어 층이 얇아지고 서비스가 소홀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상당수의 게임이 장기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꾸준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점과 비교하여 본다면 워존의 장기 흥행에 있어서 콜옵의 존재는 매우 치명적인 독이라 할 수 있다. 레인보우 식스 시즈를 예로 들어보자:초창기 수많은 핵과 버그 등으로 인해서 좋은 게임 기반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시즈의 초기 서비스에서 UBI는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콘탠츠 추가, 핵 방지 툴 추가 등을 통해서 게임을 롱런 시킨 적이 있었다. 닌텐도도 스플래툰의 초창기 부족한 콘탠츠를 업데이트와 페스를 통해서 극복하여 게임을 롱런 시킨 경험이 있다. 워존의 직접적인 경쟁자라 할 수 있는 포트나이트도 엄청난 업데이트와 콘탠츠 추가, 게임 내 이벤트 등을 통해서 세계 최고의 배틀로얄 게임 타이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서비스 측면으로서 게임은 점점 플레이어를 장기적인 고객으로 인지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워존은 매년 발매하는 콜옵의 발매 주기 때문에 서비스 관리 측면에서 타 게임에 비해서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아주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올 10월에 새로운 콜옵이 나온다는 가정 하에 콜옵 워존은 고작 수명이 8개월 짜리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게임에 돈을 쓰고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많겠는가? 이 부분은 게임의 완성도와 별개로 아주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결론을 내리자면, 워존은 배틀로얄 장르의 새로운 방점을 찍은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은 매우 재밌다. 콜 오브 듀티 멀티플레이가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게임이 바로 워존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게 얼마나 게임을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 관리가 되고 유지가 될지는 매우 부정적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 게임에 돈을 되도록 쓰지 않기를 권장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런 부분을 액티비전이 개선하지 않는다면, 콜옵 시리즈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야기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게임큐브, 3DS, 그리고 최근작이 스위치로 나오면서 근 20년 가까이 3번 플랫폼이 바뀌면서 나온 작품이다.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시리즈이긴 하지만, 장르 관점에서 본다면 이 게임을 정의내리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일단은 닌텐도 플랫포밍 게임과 궤를 달리하는 부분도 있지만, 여타 트리플 A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유령의 집을 지향하는 게임이다:플레이어는 유령의 집을 탐험하고 비밀을 파해치며, 유령과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게임의 구성이 유원지나 테마파크에서 찾아볼 수 있은 놀이기구로서 유령의 집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카메라 부분이다.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3D 게임임에도 대다수의 게임과 달리 플레이어의 등 뒤에 카메라가 배치된 게임이 아니다. 보통의 게임들, 특히 공포를 소재로 하는 호러 장르 게임들이 케릭터와 플레이어의 경험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가까운 시점을 설정하지만, 루이지 맨션은 게임 내의 캐릭터와 시선을 맞추기 보다는 방 전체를 조망하는 원거리의 카메라를 설정해두었다. 즉, 루이지 맨션 시리즈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루이지가 느끼는 공포감이 아닌 '방이라는 공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루이지 맨션에서 유령의 집이란 공포스런 공간이 아닌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겁에 떠는 루이지나 희화화되고 우스꽝스러운 유령들, 으스스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스테이지와 별개로 전반적으로 빍은 색감을 지향하는 그래픽 등 공포라는 테마가 게임 내에서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는 부분이 그 근거다. 이는 위에서 다룬 '카메라'의 시점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은 방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카메라 시점을 활용하여 다양한 곳에 숨어있는 '비밀'이라는 요소를 강조한다. 

 

비밀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 장르와 맥이 닿아있다. 게임은 곳곳에 퍼즐과 비밀, 보물들을 배치하고 플레이어가 이것을 직접 조작하면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이 점은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과 루이지 맨션의 카메라 시점이 유사한 이유를 설명한다:스테이지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 게임의 핵심이기 때문에, 케릭터가 중심에 서있는 것이 아닌 '스테이지' 그 자체가 중심에 서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호작용 측면에서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과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큰 차이가 있다.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들(특히 PC 게임)은 마우스와 키보드라는 수단을 사용하면서 명령어를 조합하거나 스테이지에 숨겨진 요소들을 세밀하게 찾아내는데 집중하였다면,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과거 어드벤처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게임 내의 비밀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루이지 맨션 시리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청소기 '유령싹싹'의 기능인 빨아들이기/내뱉기를 이용하여 게임 내의 다양한 요소들과 상호작용한다. 고전 어드벤처들이 플레이어의 행동을 명령어의 조합이나 픽셀헌팅이라 불리는 상호작용 지점 찾기 등 다소 비직관적인 상호작용 체계를 채용했다면,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유령싹싹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상호작용 방식을 일원화 시키고 직관적으로 구성하는데 성공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루이지 맨션 시리즈에서 유령싹싹이 스테이지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뛰어넘어 유령과의 전투에서도 동일한 논리와 기제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유령싹싹이라는 도구 자체가 고전 대중 영화인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모티브를 따온 물건인 만큼, 루이지 맨션은 유령을 빨아들여서 제압한다는 단순하지만 독특한 전투 시스템을 보여준다. 즉,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유령 싹싹이라는 하나의 도구 아래에서 모든 게임 시스템이 통일시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고전 어드벤처 게임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상호작용 방식과 비직관성 때문에 간략화 되어 주류 게임 장르로 편입되고 마이너한 장르로 전락한 것을 고려한다면, 루이지 맨션 시리즈는 고전 어드벤처 게임의 재미를 이어받으면서 발전 계승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루이지 맨션 3는 스테이지 디자인 관점에서 루이지 맨션 시리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루이지 맨션 3는 호텔이라는 복층의 공간을 이용해서 다양한 '테마'를 가진 스테이지를 층층이 쌓아올리고 있는데, 각각 층마다 스테이지와 상호작용하는 독특한 기믹들을 추가하였다. 예를 들어 이집트 테마의 층에서 플레이어는 쌓여있는 모래를 빨아들여서 모래 밑에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거나 바람을 내뱉어서 모래를 이용한 발판을 만들 수 있다. 각각의 층은 예로 들은 이집트 테마의 층처럼 독특한 방식의 상호작용 방식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단순히 빨아들이고 내뱉고하는 상호작용의 반복이 아닌 변칙성을 지니게 된다.

 

루이지 맨션 3는 게임의 정형성(뱉고/빨아들이고 하는 상호작용 방식)과 의외성(스테이지 별로 달라지는 상호작용 기믹)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게임이고, 이 덕분에 시리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게임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스위치로 넘어오면서 3DS나 게임 큐브와 다르게 두 개의 스틱을 사용하는 조작 방식을 채택하였는데, 전작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직관적이지 않아 처음 익숙해지기 어려운 부분이 조금 있다. 물론 루이지 맨션 3가 취하고 있는 카메라 시점과 조작 방법이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구조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루이지 맨션 3는 고전 어드벤처 장르를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3편으로 넘어오면서 스테이지의 디테일과 기믹이 늘어나서 상호작용이 늘어난 것은 높게 평가할만하다. 스위치를 가지고 있다면 구매하여 즐길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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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데메크 류의 액션 게임에서 복수의 케릭터를 동시에 조작하여 액션을 전개하는 시도는 생각보다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기억할만한 사례는 약 20년 전의 카오스 레기온의 사례일 것이다:카오스 레기온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레기온들을 소환하면서 적과 맞서 싸웠다. 그야말로 레기온(군단)이라는 말에 걸맞게 수많은 소환물들을 소환했던 카오스 레기온은 겉으로 보인 컨셉의 참신함과 별개로,  플레이스테이션 2 초기 장르 정체성이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은 과도기적 작품이었다. 게임은 ai 문제나 맥빠지는 액션 매커니즘 등으로 당시 게임을 플레이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별로 평이 좋지 않았었다. 액션 게임에서 두명의 케릭터를 조작한다, 라는 명제는 상당히 흥미롭긴 하였지만 카오스 레기온 이후로 이러한 계보를 잇는 게임은 등장하지 않았다.

 

2019년작 아스트랄 체인은 카오스 레기온의 두 명 이상의 케릭터를 동시에 조작한다는 발상을 다시 꺼낸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2019년 초반에 발매한 데메크 5에서도 2명 이상의 케릭터(신 케릭터 V)를 조작하는 액션을 선보인 적이 있다는 것이다:어떤 게임이 어떤 게임에 영향을 줬다고 이야기를 할 수 없겠지만, 데메크 5의 V는 4편에서 네로와 같이 실험적으로 정립한 액션 스타일(참신하지만 다소 단순한)인데 비하여 아스트랄 체인의 전투는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심지어 데메크 5가 스타일(단테) - 데빌 암(네로) - 소환물 통제(V) 라는 다양한 액션 스타일을 끌고 오는 백화점 형태의 게임이었다면, 아스트랄 체인은 오로지 2인 이상의 케릭터를 조작하여 전투를 이끌어가기 위해 액션 게임 장르의 특징들을 재정립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아스트랄 체인은 주인공과 레기온의 조작으로 구성된다. 주인공 조작은 여타 액션게임과 유사하나 레기온은 여타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당히 독특한 개념이다. 플레이어가 레기온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은 '거시적'인 위치 선정, 회수, 스킬 뿐이다. 언제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방어적인 행동을 취할 것인지 등은 전적으로 레기온의 AI에 달려있다. 이런 점에서 레기온은 플레이어에게 종속되어 있는 동시에 독립되어 있는 독특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게임은 주인공과 플레이어를 서로 결속하는 '선'의 개념을 들고 오면서 주인공과 레기온의 조작을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 시도한다. 설정상 레기온은 플레이어에게 결속되어 있는 '사냥개' 같은 존재로,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없기 때문에 레기온과 주인공을 연결하는 아스트랄 체인이라는 사슬을 이용하여 플레이어가 조작해야한다. 게임 상에서는 플레이어가 사슬을 이용해서 적에게 레기온을 배치하고, 위험할 때는 회수하거나 소환을 해제하여 레기온을 보호해야 한다. 그대신 레기온은 레기온 타입에 따라서 적에게 자동공격을 하거나 공격을 튕겨내는 등의 행동을 한다. 플레이어는 아스트랄 체인을 사용해 레기온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적당한 위치에 배치를 하거나 레기온의 위치로 이동을 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보여지는 점은 전반적으로 화려한 공격을 적에게 쏟아붓기 보다는 적절한 위치에 레기온과 주인공이 올 수 있게끔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주목해야하는 점은 아스트랄 체인이 플래티넘 게임즈의 이전 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한 콤보' 위주의 액션 게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스트랄 체인에서 공격은 패드 버튼이 아닌 '트리거'에 놓여있고, 콤보는 ZR-ZR-ZR 이라는 단순한 형태다. 주인공의 공격이 메인이라기 보다는 '레기온'을 보조하면서 레기온 - 선 - 주인공의 이인삼각의 구도를 지향하기 때문에 주인공 중심으로 조작을 한다고 생각하면 게임이 제대로 플레이하기 힘들 것이다. 즉, 플레이어는 적재적소에 레기온을 배치하고 스킬을 사용하고, 주인공을 레기온을 보호하면서 딜을 넣어야 한다. 게임은 액션 게임 장르가 오랫동안 걸어왔던 '화려한 액션을 단순한 버튼 조합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벗어나서 새로운 형태의 장르 문법을 다졌다. 

 

그렇기에 보통의 액션 게임과 다르게 아스트랄 체인은 스코어링 및 랭크 평가 기준이 다르다. 기존 액션 게임의 랭크 평가 기준은 얼마나 많은 데미지를 끊임없이 적에게 주는가이다. 베요네타의 예를 들어보자:베요네타에서 스코어링은 각 공격의 점수와 콤보 배율로 합산되어 들어오는데, 여기에 이 모든 점수에 피격 회수와 클리어 타임을 함께 놓고 평가한다. 아스트랄 체인도 큰 틀에서는 비슷하나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레기온을 활용하고 다양한 액션을 하느냐에 따라서 점수를 계산한다. 잘 하면 계속해서 점수를 쌓아올릴 수 있는 베요네타와 달리, 아스트랄 체인의 경우 각각 조건을 달성할 경우 그 달성한 조건에 대해서 점수 항목이 체크되고 점수를 최종적으로 합산하는 방식이 되는데 이 때문에 최대한 조건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레기온들을 조작하거나 다양한 액션을 취해야 한다.

 

아스트랄 체임의 게임 플레이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생각보다 본격적인 롤플레이(경찰/수사극 등)에 방점을 찍은 게임'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은 미래의 신참 경찰이라는 설정으로 대민지원이나 수사, 탐문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 각각의 활동들은 본격적이라 하기에는 소소하긴 하지만 상당한 퀄리티로 제작이 되었다. 이는 전투와 전투 사이의 롤플레이를 강화하고, 플레이어가 전투 이외에도 다시 게임을 플레이하게끔 유도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아스트랄 체인의 그래픽은 스위치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그래픽이다. PS4나 트리플 A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그래픽은 아니지만, 스위치의 제한된 성능 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아웃풋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래픽을 끊김없이 30프레임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줄 만한 부분이다. 성우의 연기나 BGM 등에서도 흠잡없을 데 없이 깔끔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아스트랄 체인은 닌텐도 스위치를 빛내주는 독점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게임이 독특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지는 점은 플레이어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만한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아스트랄 체인은 그만한 가치를 갖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이야기

 

바이오하자드 2는 시대의 명작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하드웨어를 견인하였고 b급 영화 장르인 좀비 호러 영화에 저택을 탐험하고 살아남는다는 서바이벌과 어드밴처 장르를 결합하여 트리플 A 게임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작품이었다. 바이오하자드 2는 여기에 쐐기를 박는 작품이었다:케릭터를 바꾸어가면서 진행하는 재핑 시스템과 발전한 그래픽, 커진 스케일 등은 바이오하자드를 프랜차이즈로 발돋움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은 바이오하자드 2의 리메이크를 요구했었다. 일찍이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1편을 리버스로 리메이크하면서 훌륭한 리메이크 실력을 과시한 적이 있었기에 팬들의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에 대한 기대는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RE2의 등장 이전까지 바이오하자드 2의 리메이크는 요원한 소식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했다:과연 기존 바이오하자드 2에서 무엇을 리메이크할 것인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계속해서 미래로 나아가고 있었다. 3편에서는 긴급회피 등의 요소를 집어넣어서 전투를 긴박하게 만들었고, 4편에서는 현대적인 3인칭 숄더뷰 어드벤처 게임을 정의 내렸다. 심지어 가장 망했다고 평가받는 6편 조차도 게임에 다양한 요소들을 집어넣는 실험을 보여주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안주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에 걸맞는 리메이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전작의 재탕을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오하자드 2:RE는 기존 바이오하자드 2편에서 모티브를 따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게임이 되었다. 과거의 매력적인 부분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지만,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지속되면서 쌓아올린 노하우가 많은 부분 접목된 게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바이오하자드 2는 트리플 A 게임 답지 않은 타이트한 예산과 게임 콘탠츠가 더욱 눈에 띄는 게임이란 것이다.

 

바이오하자드 2:RE의 베이스가 된 것은 명백히고 리벨레이션과 바이오하자드 7이다. 리벨레이션의 무빙샷은 일반적인 3인칭 숄더뷰 게임의 무빙샷과는 사뭇 다르다:기본적인 숄더뷰 게임에서 무빙샷은 조준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인다면, 바하 리벨레이션의 무빙샷은 쏘는 것 자체가 패널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준선이 흔들린다. 대신 게임은 서있을 때 더 정밀한 조준을 할 수 있게끔 보정을 걸어두는데, 기존 시리즈와의 연속성을 감안하였을 때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조준해야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빙샷 자체가 의미없는 것은 아니라서 기존 시리즈에서는 '조준을 풀고 -> 이동을 하고 -> 다시 조준을 하는' 과정을 '조준을 당긴 상태에서 이동을 하고 멈춰서서 정밀하게 조준을 하는' 단계를 거쳐 편리하게 한다는 측면이 있다.

 

바하 2 리메이크는 리메이크라는 이름을 두고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기 보다는 과거의 요소를 재조명하여 부각하는데 집중한다. 이 재조명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죽지않는 좀비'다. 바하 2 리메이크에서 좀비는 헤드샷을 맞아 일정확률로 머리가 터지지 않는한 '다시 부활한다':데미지를 입으면 죽은것 처럼 눕게 되는데, 맵을 탐색 후 다시 좀비를 죽인 위치로 돌아오면 이 좀비가 다시 살아나 플레이어를 덥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드 스페이스 같은 게임에서 시체인척 위장하고 있는 네크로모프와 유사한 요소라 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와서 맵을 체크해야하는 상황이 많은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에서는 이들은 1회성 이벤트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또 이들이 진짜 죽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탄약과 나이프, 양쪽 모두 게임 내에서 획득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는 자원이기에 플레이어는 항상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좀비의 존재감을 강하게 만드는 요소다.

 

기본적으로 바하 2의 게임 구조는 제한된 공간의 스테이지를 두고 퍼즐을 풀기 위해서 방-경로-방 형태로 이동하는 구조다.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처럼 하나의 공간을 마련해두고 플레이어가 방과 방을 돌아다니면서 단서들을 이용해 퍼즐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하 2의 리메이크는 '과거의 스테이지 구성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플레이어가 '답을 찾아 해매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목을 잡는 좀비'다. 게임이 퍼즐을 풀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방에서 방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플레이어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다:좀비는 끊임없이 자원을 소비하면서 플레이어를 압박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퍼즐을 푸는 동시에 좀비를 피해가는 최적의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더해주는 것이 타이런트다:나오자마자 밈이 된 이 몬스터는 죽지 않는다+플레이어를 계속해서 추적한다는 두가지 특징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크나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좀비와 경로를 모두 파악해도 계속해서 쫒아오기 때문에 게임은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완벽한 풀이방법과 동선을 파훼한다. 또한 이러한 변칙성 덕분에 서바이벌 장르답게 게임은 게임 내에서 자원을 관리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오하자드 RE2라는 게임이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뼈대와 콘탠츠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게임은 2편의 요소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며, 좀비 모델링이나 부위 파손 같은 것을 제외하면 게임의 디테일이나 모션은 다양하거나 섬세하지 않다. 그래픽이 좋아진 부분이 있지만, 그러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트리플 A 게임과는 다른 상당히 타이트한 예산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런 속에서 스피드런과 같은 게임 소비 문화와 바하 시리즈 전통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시리즈 전통에서 핵심적인 재미를 도출하는 모습'은 캡콤이 지난 몇년간의 부진을 딛고 일어선 원동력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바이오하자드 RE2는 훌륭한 게임이다. 리메이크라는 요소를 그냥 날로 먹지 않고, 그 속에 시리즈의 전통에 대한 고민과 고전적인 재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추적자+긴급회피 등의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어 액션 쪽으로 무게가 기운 바이오하자드 RE3는 어떤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게임 이야기

 

둠 이터널은 둠 2016의 정식 후속작이다. 둠 2016이 둠 3 이후 오랜 기간 동안의 침묵을 깨고 돌아 왔을 때, 처음 걱정과 다르게 팬들과 평단,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과거의 둠이 갖고 있던 속도감과 과격함이 둠 2016에 그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밀리터리 fps 위주로 흘러가던 기존 트리플 A 게임 FPS와 다르게, 쉴세 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적을 압도적인 화력과 폭력으로 제압하는 둠 2016은 프랜차이즈의 성공적인 리부트와 함께 다음 작품을 위한 탄탄한 기반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2020년에 나오는 둠 이터널이다.

 

보통의 트리플 A 게임들이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듯, 1편의 성공은 2편의 확장을 위한 단단한 기반이 된다. 그리고 1편이 만들어질 때 아이디어만 존재했었던 것들과 실제 1편에는 등장하지 못했었던 새로운 시스템들을 2편에 도입함으로써 질적 양적 확장을 꾀하는 것이 일반적인 트리플 A 게임 프랜차이즈에서의 2편이다. 둠 이터널은 그런 의미에서 정석적인 트리플 A 게임이다. 공개된 영상을 통해 보았을 때 둠 이터널은 기존의 빠른 게임 플레이 리듬을 유지하면서, 플랫포밍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무기와 적들과의 상호작용을 대폭 추가하였다.

 

둠 이터널의 큰 흐름은 전작과 비슷하다:끊임없이 움직이며 적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글로리 킬로 체력을 회복하고 전기톱으로 총알을 보충하는 게임의 구조는 플레이어에게 절대로 멈추지 말라고 한다. 둠 이터널은 이러한 2016의 기조에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더 보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어깨에 달린 화염방사기로 적을 불태울 때 추가 공격이 들어가게 되면 적들이 아머를 드롭하게 되었고, 방패를 든 적들이 플라즈마 라이플로 공격받을 시에 폭발한다든가, 폭탄 드럼통 같이 투척되는 용도로만 적이 존재한다든가, 전기톱이 자동충전 방식으로 바뀌었다든가 등은 2016에 있었던 제약 사항들을 대폭 제거하는 방향의 변화점이다. 

 

하지만 가장 눈여겨 봐야할 점은 둠 이터널에 플랫포밍 게임 요소가 대거 들어갔다는 점이다:이제 플레이어는 두 번의 대시를 할 수 있고, 봉을 잡고 반동으로 더 멀리 점프하거나, 슈퍼샷건의 모드를 이용해 공중에 있는 적들에게 갈고리를 걸고 날아다니는 등 입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점을 통해 둠 이터널은 기존의 2016에서 보여준 아레나 구성에서 좀 더 수직적인 높낮이를 가진 방향으로 아레나와 스테이지를 구성하였다. 몇몇 전투 장면에서 둠 이터널은 둠 2016에서 볼 수 없었던 탁 트이고 넓은 시야로 스테이지 전체를 파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전작에 대비하여 더 막힘없는 게임 플레이를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요컨대 둠 이터널의 변화점들은 플레이어를 더 빠르고 잔인한 무언가로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되, 거기서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최대한 늘리고자 한다. 물론 2016의 단순한 아름다움에 비교하면, 둠 이터널은 뭔가 엄청나게 눌러야하는 버튼이 많은 게임처럼 보인다. 이 모든 버튼들(무기 사격, 2차 사격 모드, 점프, 대시, 전기톱, BFG, 얼음 수류탄, 화염방사기 등등)이 적재적소에 활용될 수 있게끔 플레이어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몰아붙일 수 있다면 둠 이터널은 전작에 비교하여 더 뛰어난 게임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렇지 못하다면 상당히 손가락이 꼬이고 피곤한 게임이 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뤄야 하는 점은 둠 이터널 배틀 모드로 보여준 둠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이다. PC 게임 멀티플레이의 태동기부터 둠은 멀티플레이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랜파티나 모뎀을 통한 넷대전 등 둠의 멀티플레이는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그런 둠의 멀티플레이가 퀘이크로, 퀘이크의 멀티플레이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의 모드 게임으로, 콜옵으로, 시대가 지나면서 둠의 멀티플레이는 영광을 잃고 빛을 바래갈 뿐이었다. 둠 2016의 멀티플레이에 대한 애매한 평가(둠의 빠른 게임 플레이에 콜옵을 섞은 듯한)는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분명 싱글플레이로서 둠 2016은 여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쉴틈 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연속으로 분명한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멀티플레이에서 둠 2016은 그러한 방향성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둠 이터널의 배틀모드는 싱글플레이의 경험을 멀티플레이에서도 그대로 이어나가겠다는 프랜차이즈의 포부가 느껴지는 멀티플레이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2:1 비대칭 멀티플레이에서, 한 플레이어는 둠 슬레이어를, 다른 두 플레이어는 악마들을 조작해 다른 한쪽을 전멸시켜야 한다. 캐치프레이즈인 '전략(악마) 대 기술(둠 슬레이어)'은 이러한 비대칭 멀티플레이의 특징을 잘 잡아내었다. 물론 둠의 배틀모드가 대세를 타기에는 여러 제약조건들이 있겠지만(비대칭 멀티플레이가 흥한 경우를 찾기가 힘든걸 고려한다면), 적절한 완성도로 나왔을 시에 앞으로 둠 프랜차이즈의 방향성을 싱글플레이와 함께 쌍끌이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게임 이야기

 

콘트라 로그 콥스는 2019년에 발매된 콘트라의 최신작이다. 그리고 판매량과 평점 양 측면 모두에서 게임은 처참하게 실패하였고, 수많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게임이다. 사실, 코나미가 자사 프랜차이즈로 팬층을 실망시키는 일은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었다. 러브플러스 에브리데이의 상태나 메탈기어 서바이브 등의 사례들을 찾아보면, 코나미가 코지마 히데오의 퇴사 이후 콘솔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 개발에서 감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러한 경우는 매우 희귀한 경우다:'스타 제작자가 제작사를 떠나 실패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했어도, '스타 제작자가 제작사를 떠나 제작사가 망하는 경우'는 2000년대 이후로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콘트라 로그 콥스의 실패는 곱씹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로그 콥스의 게임 플레이 구조는 추상화시켜서 접근 했을 때는 헛점이 없어보이며, 시장 및 팬층 공략 측면에서 오히려 근사하게 보일 수도 있다. 로그 콥스에서 플레이어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서 다양한 무기를 모으고, 더 강한 적들과 어려운 스테이지에 도전한다. 게임에서 오른쪽 스틱은 조준, 왼쪽 스틱은 이동을 맡는다는 점은 로그 콥스이 기반으로 삼는 장르가 트윈 스틱 슈터라는 것을 보여준다. 콘트라 로그 콥스가 선택한 트윈 스틱 슈터 장르는 FPS만큼 대중적이지 않지만, 확실한 팬층을 갖고 있다:최근 엔터 더 건전은 누적 3백만장을 돌파하였고, 핫라인 마이애미나 뉴클리어 쓰론, 신테틱, 매지카 등 트윈 스틱 슈터류 장르 게임은 꾸준하게 명맥을 이어왔다.

 

물론 트윈 스틱 장르는 지금 게임 시장에서 분명하게 장르 한계가 있기도 하다. 영화와도 같은 게임 연출이 불가능하고, 그래픽 등으로 여타 게임 프랜차이즈와 차별화가 어려운 점은 이 게임 장르를 풀 프라이스($59.99)가 아닌 하프 프라이스($29.99) 이하의 가격에 매여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역으로 트윈 스틱 장르는 이 가격 차별화 측면에서 풀프라이스 트리플 A게임들이 치고들어오기 힘든 경계선을 갖고 있기도 하다:왼쪽 스틱으로 움직이고, 오른쪽 스틱으로 조준한다는 명제만 지켜진다면 아이디어로 다양한 차별화가 가능하며, 이는 참신한 아이디어+소자본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매력적이다.  

 

이런 장르의 특수성 때문에, 트윈 스틱 장르에는 수많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로 승부를 보는 게임들이 많았다. 원소의 조합으로 마법을 쓰는 매지카나, 총알 걸림과 탄환의 반사 등의 세부 상황들을 살린 신테틱, 고전 2D 아케이드 게임과 80년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뒤섞은 핫라인 마이애미 등등 이미 이 장르에는 '장르의 교범'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임들이 많다. 트윈 스틱 장르를 선택한 게임들은 트리플 A 게임들 처럼 세부적인 디테일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닌, 참신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반복 플레이했을 때의 쾌감에 집중하였다. 

 

그런 점에서 로그 콥스는 자신의 포지션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게임이었다. 콘트라 프랜차이즈는 수많은 팬들이 있지만,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더이상 새로움을 만들어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2D 아케이드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시장에서는 크나큰 반향을 차지하기 힘들었고, 콘트라 프랜차이즈의 매력은 3D 게임에서 재해석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트윈 스틱 슈터로 장르를 노선을 갈아타는 것은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심지어는 동종 업계(?) 경쟁자들에게는 규격외의 반칙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 콘트라는 30년이 다되어가는 프랜차이즈의 힘을 빌려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무명의 경쟁자들보다 훨씬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 로그 콥스는 트윈 스틱 장르 선배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반복 플레이(게임 스테이지의 일정 구간을 반복해서 클리어하는 탐색 모드 같은)나 협력 플레이 요소, 멀티플레이 요소 등 다양한 요소들을 차용하였다. 아이디어, 프랜차이즈, 밴치마킹. 로그 콥스는 겉으로 보기에 이 3가지가 분명하게 맞물려 들어가는 게임이었다.

 

그렇기에 로그 콥스의 실패는 어떤 의미에서 경이롭다. 이 게임은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잘못되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이야기하기 힘든 게임이다:고정 카메라 시점과 우 스틱 조준의 삐걱거리는 결합, 의미없는 것을 넘어서 쓸모없는 무기 체계, 수치로만 표현되는 케릭터 강화 요소, 정신나간 파밍 난이도, 최악의 최적화, 혐오스러운 적들과 더 혐오스러운 주인공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연출 요소들 등등. 콘트라 로그 콥스는 마치 30년전 AVGN이 리뷰하던 초창기 게임 시장에 풀릴법한 엉망진창의 실패작을 보는 느낌이다. 왜 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개념 정립이 모호하고 품질 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게임들 말이다. 최소한 30년전의 AVGN이 리뷰하던 게임들은 역사의 초기작들이라고 변호해줄 수 있다. 하지만, 콘트라 로그 콥스는 자신이 타겟으로 삼고 들어가야 하는 시장이나 프랜차이즈에 대한 분석과 포지셔닝을 잘 했고, 트윈 스틱 장르에서 밴치마킹할 상대들도 많은 상황이었다. 즉, 실패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로그 콥스의 총체적인 실패ㅡ게임의 퀄리티에서부터 이 게임을 세상에 공개한 정신나간 코나미까지ㅡ는 코나미 내부의 게임 개발 인력이 모두 증발했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일례로 카메라 문제를 보자:콘트라 로그 콥스의 시점은 전통적인 콘트라의 사이드 뷰 카메라와 트윈 스틱 슈터의 탑다운 뷰 방식의 카메라를 섞어놓은 시점이다. 전통적인 콘트라의 시점을 오마주하겠다는 의도로 보여지는데, 어디까지나 의도는 좋았다. 사이드 뷰의 카메라와 탑다운 뷰의 카메라 양쪽 모두에서 탑다운 뷰 기준으로 오른쪽 스틱 조준을 해야하는 점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글로는 참으로 표현하기 힘든데, 콘트라 로그 콥스는 마치 플레이어가 지표면으로부터 90도 직각 위의 위치에서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전제에서 모든 조준과 움직임을 설정하였다. 문제는 게임 내내 대부분 카메라 세팅이 90도 직각 위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카메라를 살짝 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조준은 하나같이 묘할 정도로 짜증나고 섬세한 경향성을 보인다. 3D 액션에서 2D 슈팅, 탑다운 슈팅, 아케이드 까지 모든 게임의 시점을 뒤섞은 니어 오토마타와 비교해보면 로그 콥스의 거지 같음은 더 명확해진다. 니어 오토마타의 경우, 카메라를 돌릴 때와 고정할 때를 분명하게 정해놓고 조작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카메라의 시점이 변화할 때, 플레이어는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조작을 거기 맞출 수 있었다.

 

로그 콥스의 카메라 조작은 게임 제작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실수이자, QA 단계에서도 쉽게 잡아낼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이것이 기획 단계에서 통과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실제 트윈 스틱 슈터 게임에서도 기교를 부리는 게임들은 이런 식의 시점 조작을 하기도 한다. 즉, 이미 검증된 아이디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그 콥스는 그러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실제 플레이어에게 하라고 던져주는 시점에서 그 어떠한 필터링도 하지 않았다. 혹자는 대학생 졸업작품 같은 게임이라고 까기도 하지만, 대학생 졸업작품도 적어도 교수나 동료의 손에 필터링 된다는 점에서는 로그 콥스보다 나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로그 콥스의 모든 요소들은 순수하게 머릿속으로, 초기 기획서로만 존재했을 때만 말이 된다:트윈 스틱 슈터라는 장르 선택, 가격 선정, 파밍 요소, 케릭터의 장비 및 성장 등의 모든 요소들은 그럴듯해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 개발하고 퀄리티를 관리하는 단계에서는 관리자가 통제를 하지 못하였다. 카메라와 조준의 미세한 거지같음은 장르를 이해하고 있는 개발자, 아니 플레이어라면 금방 지적할 수 있는 문제였다. 즉, 코나미에 개발진을 지휘하는 관리자 급 스테프들은 게임 장르, 아니 게임이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로그 콥스의 문제만이 아니다. 재작년 초에 나온 메탈기어 서바이브가 그랬고, 작년 말에 나왔던 러브플러스 에브리가 그러하다. DS라는 기기라는 기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상으로써의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도를 보여준 게임이 바로 러브플러스였다. 그런 러브플러스에 일상과는 거리가 먼 가챠 요소를 집어넣고, 선택지를 가챠로 해금한다는 가챠 지상주의(?)적인 발상을 넣은 것이 러브플러스 에브리데이였다. 원작의 강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선택이었지만, 러브플러스 에브리는 여기에 원작의 리소스를 재활용하는 모습과 이야기를 기존 히로인 3명에게 국한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챠의 수익 구조라면 더 악랄하게 수많은 케릭터를 집어넣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는 점은 러브플러스라는 프랜차이즈를 이해하고 있냐를 넘어서 '가챠라는 수익구조를 이해하고 있냐'라는, 요즘 게임 관점에서는 다소 황당한 의문까지 들 정도다.

 

IGA나 러브플러스 개발진, 코지마의 퇴사 등으로 유명 개발자들이 사라진 것은 오래된 게임 개발사라면 한번씩은 겪는 산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사들이 그러한 빈 공간을 '조직'의 힘으로 매꾸었다. 캡콤이 그러했고, 스퀘어 에닉스가 그랬고, 코에이 테크모가 그랬다. 하지만 코나미가 보여준 러브플러스 에브리나 로그 콥스 등의 기록적인 실패는 그 빈 공간을 조직의 힘으로 매꾸지 못하였을 때를 여실히 보여준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는 코나미의 임원 이상의 경영진이 자사의 핵심 가치가 어디서 오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캡콤은 부침이 있을지언정, 어떻게든 개발이라는 자사의 핵심 역량을 놓지 않았고 그 역량을 바이오하자드 2 리메이크나 몬스터 헌터 월드로 끌어올 수 있었다. 즉, 캡콤의 사례에 비추어본다면 코나미는 자사의 핵심역량을 개발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코지마 히데오가 임원직을 내려놓고 코나미를 떠난 것은 대표적인 사례였을 뿐, 내부적인 조직문화나 2차 창작을 대하는 태도, 특허권 분쟁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 씨앗은 이미 코지마가 떠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샘이다.

 

결론적으로 로그 콥스라는 작품은 코나미가 게임 산업에서 얼마나 형편없어졌는지,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희귀한 사례인지를 동시에 보여준 게임이다. 물론 러브플러스 에브리 같은 게임도 있지만, 그건 코나미라는 회사가 그렇게 좋아하는 영리 추구에서 얼마나 엇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행위예술 같은 작품이기 때문에 로그 콥스라는 그냥 못만든 쓰레기하고는 1대1로 비교하기는 힘들 것이다.

 

 

 

 

 

게임 이야기

 

포켓몬스터는 통상적인 MMORPG 장르라고는 할 수 없다. MMORPG에 있어서 거대함Massive이란 미학적인 풍광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협동하거나 경쟁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풍경의 거대함을 넘어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구성도 매우 중요하다. 와우의 레이드가 이러한 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에버퀘스트 같은 게임들도 언급해야겠지만) 레이드는 10명에서 25명의 사람들이 보스 클리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일사분란하게 전술을 맞춰서 움직이는 게임 플레이로 현재 MMORPG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대표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요컨대, MMORPG에서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포켓몬스터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포켓몬스터 6세대부터 PSS라는 기능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게임 플레이 요소를 넣었고, 이는 7세대와 8세대의 YY통신의 형태로 이어졌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항상 게임 내의 콘탠츠가 변화하는 프랜차이즈였지만, 6세대에서 8세대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멀티플래이 요소를 집어넣은 것은 이것이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주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켓몬스터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MMORPG의 발상과는 달랐다. MMORPG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레이드의 개념일 것이다: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협동하는 레이드는 분업과 신뢰라는 측면을 깊이있게 파고든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탱커-딜러-힐러와 같은 역할의 3분할도 각 역할을 전문화 및 분업화한 하나의 사례이다. 탱커는 적의 어그로를 끌고, 힐러는 파티가 전멸하지 않게 체력을 관리하며, 딜러는 적을 분쇄한다. 각자가 맡은 파트에 대해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고 끌어낼 때, 레이드를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켓몬스터에는 이러한 요소가 없다:심지어 본격적인 레이드 배틀을 표방한 맥스레이드 배틀에서도 역할 분담의 중요성 보다는 한 사람이 다이맥스화 해서 베리어를 깨고,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딜을 꾸준하게 넣어서 다이맥스화된 적을 격파하는 것이 기본적인 공략방식이다. 여기에는 전략이고 분업이고 협업이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다른 PSS 통신에서의 요소도 그러하다. 플레이어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버프를 걸거나, 교환을 신청하는 것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대1의 관계 맺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대체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지나가게 만드는 게임 플레이 방식을 MMO라 볼 수 있을까. 흥미로운 점은 포켓몬스터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트위터 타임라인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PSS나 비동기 멀티플레이 같이 잔상의 형태로 지나가는 소드/실드의 와일드에리어 처럼, 포켓몬스터는 포켓몬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은 포켓몬스터 게임 플레이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기본적으로 포켓몬스터의 게임 플레이는 TCG 장르와 맥락을 같이한다. 실제 사람과의 대전에서 포켓몬스터는 자신이 원하는 카드(=포켓몬)를 만들고, 이것을 드래프트해서, 서로 가지고 있는 선택지에서 최대 효과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에 입문하기 위해서 중요한 점은 '게임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재화'인 포켓몬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PSS와 같은 멀티플레이 요소가 추가된 6세대부터 대전에 필수적이라 여겨진 고개체 포켓몬을 교배 및 육성하는 난이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교배 및 육성이 편해진 6세대 이후, 플레이어는 한 마리의 완벽한 포켓몬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실패작' 포켓몬들(V값이 올바르게 배분되지 않았거나, 성격이 다르거나)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 수많은 실패작들은 말이 실패작일 뿐이지 실상은 4V 이상의 고개체거나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즉, 누군가의 쓰레기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교배 및 육성에 뛰어들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담없이 내가 필요없는 포켓몬과 무작위의 상대방이 필요없는 포켓몬을 교환하는' 미라클 교환의 존재는 일종의 재화의 재분배 창구를 하였다. 즉, PSS가 단순히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스쳐지나가는 기믹으로만 묶은 것이 아닌, 실제로 인게임 내의 재화를 재분배하는 창구로 기능한 셈이다.

 

요컨데 앞으로도 포켓몬스터가 생각하는 MMO는 우리가 아는 MMO와는 다를 것이다. 한 게임 세션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역할 분담이나 고도의 전략 전술을 요하는 게임 플레이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같이 한다는 감각과 함께 재화의 재분배 창구로서 포켓몬스터의 MMO는 계속해서 그 명맥과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게임 이야기

*멀티플레이, 최종 게임 내용 구성에 대한 글입니다.

 

*상편 리뷰는 여기에 있습니다(https://leviathan.tistory.com/2454)

 

포켓몬스터 게임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이라 생각한다:어떤 사람은 포켓몬 수집을, 어떤 사람은 대전을, 어떤 사람은 스토리와 모험을 즐기는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이 논의를 출발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 있다:기념비적인 첫 작품을 만든 타지리 사토시는 '어렸을 적, 채집했던 곤충과 동물들을 게임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으로 포켓몬스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프랜차이즈가 20년이 지나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프랜차이즈 중 하나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는 '수집'이 밑바탕이 된다. 다양한 포켓몬스터들을 만나고, 이들을 잡아서 도감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것이 포켓몬 수집의 재미다. 그리고 이러한 달성 지표는 포켓몬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는 도감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도감과 수집 요소는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를 다양한 연령에 어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게임을 처음 접하는 어린 플레이어들도 야생의 포켓몬스터와 조우하고, 현실의 동물에 영향을 받은 포켓몬의 디자인과 생태에 관심을 갖고 포켓몬을 하나씩 잡아나가면서 게임을 익혀나간다. 즉, 포켓몬의 수집이라는 요소가 게임 내용을 구성하는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집'이라는 요소는 한 때 포켓몬을 바짝 뒤따랐던 요괴워치의 성공 요인과도 맞닿아 있다. 요괴워치 역시도 다양한 요괴들을 만나면서 이들을 친구로 만들어 요괴 대백과를 채워나가는 것이 게임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야생과 포획에 집중했던 포켓몬스터와 달리, 요괴워치는 정말로 다양한 곳, 다양한 환경에서 요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 구성에 깊이가 더해지는 부분에서 이 두 프랜차이즈는 분명하게 갈린다. 우선 요괴워치 시리즈는 RPG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게임 구성, 특히 전투에 깊이가 있다고 보기는 힘든 구조였다. 회전판을 돌려서 요괴의 배치를 바꾸는 전투 방식은 요괴워치 완구와 맥을 함께하는 방식이었다. 저연령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 자체의 깊이는 얕았다. 레벨 파이브는 이후 요괴워치 3과 4에서 이러한 전투방식을 개선해서 다양한 전투 시스템을 선보였는데(3의 3X3 빙고 게임판 같은 전투 플레이와 4의 요괴워치 버스터즈를 응용한 전투 방식), 오히려 이러한 변화가 게임으로서 요괴워치의 일관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1편인 적녹 버전에서부터 지금까지 큰 틀에서의 시스템을 유지하였다:각 포켓몬들의 능력치=(종족값+개체값+노력치+성격 보정 값)이라는 공식(정확한 공식은 곱셈에 덧셈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여기서는 단순하게 이렇게 표현하겠다)은 최초의 1세대와 2세대부터 큰 틀을 구성하였고, 이 위에 새로운 포켓몬과 새로운 타입들을 추가하면서 게임 전투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 지금의 포켓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관성은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서 '포켓몬의 전승'이라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개념을 확립하였다.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는 각 버전별, 세대별로 포켓몬을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기능을 플레이어는 이용해서 이번 세대에 나오지 않은 포켓몬을 도감에 등록시키거나 실전에서 활용하거나 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은 단순히 게임 플레이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이론적으로, 플레이어는 1세대 게임보이 포켓몬을 8세대인 소드 실드까지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단순한 게임 내의 데이터에 불과하지만, 플레이어가 정성들여 수집하고 기른 포켓몬둘운 세대가 끝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유지되고 전승된다. 이러한 역사성은 포켓몬스터의 팬층을 청소년 계층을 넘어서 어른들에게 어필하거나 추억에 잠기게끔 만드는 포켓몬 프랜차이즈의 강점이다.

 

물론 소드/실드의 경우, 전국도감을 삭제함으로써 게임에 등장하는 포켓몬을 반토막(400마리)내버리는 프랜차이즈 사상 유례없는 일을 벌였다. 이로인해서 많은 포켓몬 팬덤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면서, 프랜차이즈 역사중 발매전 가장 논란에 휩싸인 작품이란 오명을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소드/실드는 와일드에리어나 맥스레이드 배틀 등의 시스템을 통해서 다양한 포켓몬들을 만나게 함으로써, 이전작들에 비해서 체감상 더 많은 포켓몬을 만난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후술할 대전환경에서도 지나치게 강력한 포켓몬들을 대전 환경에서 분리함으로써 대전환경의 다양성을 넓히는데 성공하였다.

 

소드/실드의 등장 포켓몬이 반토막 났다고 해서 서운할 필요는 없다. 2020년 초, 게임 프리크는 기존 포켓몬 뱅크와 레츠고 이브이/피카츄, 포켓몬 GO를 연동하는 포켓몬 홈이라는 서비스를 런칭할 계획이다. 포켓몬 홈에서는 모든 포켓몬을 옮길 수 있고, 차후 발매되는 포켓몬스터 작품으로도 옮길 수 있게 만들 예정이다. 즉, 다양한 플랫폼으로 분리되어 있는 포켓몬스터의 포켓몬들을 한 군데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발상 자체는 좋아보이나, 과연 어떤 내용으로 구성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포켓몬의 전투 시스템은 '수치가 고정되어 있는' 턴제 RPG 시스템이다:스피드가 높은 포켓몬이 먼저 행동하고, 그 다음 포켓몬이 행동한다. 전투에 들어간 포켓몬들의 능력치는 특정한 변수가 없으면 고정이기 때문에, 공격의 선후와 받는 데미지, 주는 데미지는 모두 정해져있는 상태다. 즉, 전투에 들어가는 그 시점에서 플레이 양상은 이미 결정된 것과 다름 없는 것이 포켓몬의 전투 시스템이다. 하지만 포켓몬의 이런 전투 시스템은 스토리를 플레이하는 순간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부분 플레이어 포켓몬들은 NPC 트레이너나 보스들을 레벨로 크게 압도하는 상황이고, 상성 이외에는 능력치나 이런 부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클리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전이라 불리는 대전환경이다:플레이어의 포켓몬 레벨은 50 또는 100으로 맞춰지기 때문에 레벨에 따른 능력치의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게임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레벨이 동일하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를 압도적으로 순살하는 플레이가 불가능해지고, 한 마리의 포켓몬을 기절시키기 위해서 평균적으로 두 턴 이상이 소비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여분의 턴'이 발생함으로써 포켓몬스터는 여타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게임 플레이를 만들었다.

 

포켓몬스터의 실전 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두가지다:첫번째는 포켓몬의 육성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능력치는 고정이고, 난수가 개입될 여지가 극히 적기 때문에(심지어 대부분 기술의 적중률은 90~100%이다) 포켓몬의 능력치를 어떻게 맞추느냐가 핵심 변수가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포켓몬의 능력치는 (종족값+개체값+노력치+성격 보정 값)이며, 종족값을 제외한 개체값, 노력치, 그리고 성격은 플레이어의 재량에 따라서 조절이 가능한 요소들이다. 즉, 같은 포켓몬이라도 개체값, 노력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포켓몬 로스터의 선택이다:싱글 배틀 기준에서, 플레이어는 6마리의 포켓몬 중 3마리를 골라서 로스터를 구성하고, 상대와 대전을 하게 된다. 재밌는 점은 플레이어가 볼 수 있는 건 상대가 갖고 있는 6마리의 로스터 뿐이라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상대의 로스터와 자신의 로스터를 비교해보고,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알맞을 지를 고민하여서 3마리를 선택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포켓몬은 마치 'TCG'와 유사한 게임이 된다는 것이다:어느 포켓몬을 쓰고, 어떤 순서로 내보낼지는 일종의 카드 드래프트 개념으로 볼 수 있으며, 능력치가 고정되어 있다는 것과 결과가 이미 정해져있다는 점에서는 TCG의 문법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육성을 통해 플레이어가 하나의 카드를 '만들어나가는' 요소를 도입하였다. 즉, 플레이어의 아이디어와 전략, 센스가 있다면 무한히 다른 카드(=포켓몬)를 만들 수 있는게 포켓몬스터의 묘미인 것이다.

 

이렇게 포켓몬을 육성하고 다음 세대로 넘기는 과정을 통해서 포켓몬스터는 게임 내에만 존재하는 데이터 덩어리에 플레이어가 애착을 갖게끔 만들었다. 대전을 넘어서 포켓몬을 교배하고 키우고 성격을 맞추고 하는 이런 모든 과정들이 플레이어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드/실드는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대로 두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들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포켓몬스터는 역대 최대로 실전 입문 난이도가 낮은 포켓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소드/실드는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와일드 에리어는 때때로 텅비어 보이는 광경을 보여주며, 와일드 에리어 내의 다른 플레이어들의 움직임도 뻣뻣하다. 포켓몬 대전을 제외하고 포켓몬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전 작들에 비해서 이번 작은 그런 요소가 적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스위치로 내는 첫번째 포켓몬스터 작품이라는 것이 역력하게 눈에 띄며, 게임 프리크의 기술력이 한세대 뒤떨어져있다는 인상도 강하다. 

 

하지만, 포켓몬스터 소드/실드는 여전히 포켓몬스터이다. 여전히 게임 프리크는 다양한 포켓몬을 수집하고, 내 방식대로 육성하며, 세계의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겨루는 포켓몬스터의 핵심 정체성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비록 모든 팬들과 플레이어들이 꿈꾸왔던 완벽한 작품은 아니지만, 소드/실드는 여전히 프랜차이즈의 핵심 매력을 다양한 계층의 플레이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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