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에 해당되는 글 3건

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니지만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불행한 배우일 뿐.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도다.

 

-맥베스 5막 5장, 셰익스피어

 

개인적으로 드라마라는 대중 문화 장르에 대한 감상평은 꺼리는 편이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유기적인 짜임새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작품이다:초기에 짜여진 콘셉트와 각본들은 해가 바뀌고 이야기가 진행되면 폐기되고 변질되기 십상이고, 배우들의 계약 문제와 인기로 인한 급작스러운 종영과 원치 않게 늘어나는 이야기 분량들 등등은 이야기의 구심점을 흐트려뜨리고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되게 만드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장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핵심적인 테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욕망'일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이 관철되기를,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욕망의 해소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를 희망한다. 아무리 이야기가 망가지고, 배우가 바뀌고, 갑작스러운 종영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드라마라는 대중 문화 장르가 나름의 일관성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브레이킹 배드는 본인을 놀라게 만든 드라마였다. 일반적인 드라마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이야기가 너무 커져서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지거나, 원래 갖고 있었던 결함이 두드러지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는 시즌 1에서 시즌 5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일관된 테마와 주제(욕망과 도덕)를 갖고 있고, 더 나아가서 이야기와 사건의 흐름에 따라서 인물들의 변화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기 떄문이다. 

브레이킹 배드는 여러 의미에서 프란시스 코폴라의 '대부'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범죄와 가족, 도덕, 관계의 파국 등등의 테마를 두 작품은 서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눈여겨 봐야할 점은 두 작품의 공통점이 아니라 '차이점'일 것이다. 

대부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왕국의 흥망성쇠와 맥을 같이 한다. 어떻게 왕이 왕위에 등극하였는지(대부 1편), 왕국을 지켜냈는지(대부 2편), 그리고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러주었는지(대부 3편)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대부의 서사다. 그리고 대부의 이야기에서 가족은 중의적 의미(실제의 가족과 범죄 조직으로서의 패밀리, 가족)를 띄고 있기 때문에, 영화 속 가정사(결혼식, 문제를 일으키는 형제, 별거, 세례식 등)는 이야기의 외연과 내연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대부는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거대한 고전 서사의 일부가 된다:원치 않게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의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왕위를 이어받은 왕자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에게 상처입히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인생사에서 접하는 이야기의 연장선이자 왕위를 지키기 위한 폭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대부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유는 사람이 살면서 접하는 삶의 변곡점들이 범죄와 도덕이라는 테마 아래 고전적인 서사와 결합하여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서사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는 범죄와 도덕, 가족이 함께 결합되었기는 했지만 그것이 거대한 서사의 일부(범죄 왕국의 운영)가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초점이 잡혀있다. 대부에서 마이클이 아버지의 자리를 원치않았지만 억지로 떠맡고 그 과정에서 서서히 도덕적으로 망가져갔다면, 브레이킹 배드에서 월터는 전적으로 자신의 욕망에 따라 나락으로 떨어진다. 브레이킹 배드의 이야기는 그 욕망이 어떻게 더 거대해지고, 더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모든 것을 망가뜨려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서 알레고리와 연결되어 있던 대부와 달리, 브레이킹 배드의 욕망들은 전적으로 '현실적'이다:브레이킹 배드는 월터가 가족을 위해 돈을 남겨주기 위해 시작되었고, 매 시즌마다 그 욕망이 구체적인 숫자(자식의 대학 자금, 가족의 병원비, 차의 구매 등등)으로 거대해진다. 브레이킹 배드의 이야기가 일견 허무맹랑한 흐름처럼 보일지라도,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손에 잡힐만한 욕망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욕망에 따라서 마주하는 도덕적 딜레마들도 마약과 범죄라는 소재를 때어놓고 본다면 일상생활에서 접할만한 이야기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가 대부의 마이클과 서로 대척점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월터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동인이 욕망에 놓여있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충동적으로 행동(예를 들자면, 제시를 구하기 위해 거스의 부하 마약상 둘을 차로 받아버리고 쏴죽인다던가)함으로써 일을 더 꼬이게 만든다. 거스가 월터를 평가하였듯이, 그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치밀하지 못하다. 오히려 20년 동안 마약 제국을 운영해왔고 스스로를 절제하며 살아온 거스가 대부의 마이클에 가깝다 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거스가 죽는 순간이 그의 억눌러온 '욕망'-자신의 친구를 죽인 자에 대한 복수-이 가장 두드러진 순간이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브레이킹 배드와 대부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인 맥베스와 리어왕에 맞닿아있다. 둘다 비극이지만, 그 비극의 스케일과 초점이 다르다. 리어왕은 가족으로 인해서 고통 받고 파멸한다는 점에서 대부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는 관계망에 의해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서 광기에 빠지고 파멸한다는 점에서 맥베스에 맞닿아있다:맥베스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간이었지만, 제왕의 능력을 지니지 못했고, 왕이 되고자하는 스스로의 욕망에 짓눌려서 비극을 만들어내었다.

브레이킹 배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월터 화이트를 이해해야 한다. 월터라는 인물은 욕망이라는 동인에 의해서 움직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월터는 단순히 죽음의 앞에서 돈이 급해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월터의 욕망은 가족에게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고, 가족에게 무언가(존경받는 아버지, 좋은 동서, 좋은 남편 등)가 되고자 하고, 무엇보다 잘 하는 것을 하며 최고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월터 화이트 본인의 관점에서 관철되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욕망들이다. 거스가 죽은 후, 스카일러에게 월터가 정상적인 가족을 요구하는 모습들이나 자신의 계획을 위해 어린아이에게 독을 먹이는 모습 등은 월터라는 인물의 이기적이고 잔인함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월터 화이트가 이기적인 욕망을 내려놓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 때는 조력자인 제시 핑크맨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자신의 제자이자 동업자인 제시 핑크맨은 월터 화이트의 악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위기의 순간에 서로를 돕지만, 이들의 관계는 점점 나락으로 빠진다. 흥미로운 점은 제시가 생각하는 월터와의 관계, 월터가 생각하는 제시와의 관계는 서로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제시를 월터가 이용한다는 점은 전제는 공통이다. 하지만 월터가 자신을 단순하게 조종하고 착취한다고 생각하는 제시와 달리, 월터는 제시와의 관계에서 유사 부자 관계를 느낀다. 그러나 가족에게 자신의 범죄를 숨겨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나 잘하는 것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월터는 제시와의 관계를 더 특별하게 생각한다. 

월터와 제시의 관계는 일종의 '나르시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월터는 자신의 특기를 살리는 모습, 성공해서 돈을 버는 모습, 생존하기 위해 동고동락 모습 등등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에게 투영하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에서 제시에게 최선을 선택하여 제시를 조종하려 한다. 하지만 제시가 자신의 예측과 다른 형태로 행동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특히 마지막 시즌에서 제시가 행크와 협력해서 월터를 몰아붙이는 걸 알아채는 부분), 가족과의 관계보다 월터와 제시의 관계가 더 깊은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브레이킹 배드가 훌륭한 점은 이야기의 흐름 속에 중산층이 맞딱뜨리는 일상적인 장면들과 엮어서 영상을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견 무의미해보이는 도입부의 영상들이 그 화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요한 소재라는 점, 그리고 현란하거나 자극적인 요소들 없이 극을 끌어가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만하다. 이러한 강점이 두드러지는 부분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못느끼고 공허함을 느끼는 제시의 방탕한 삶을 파티 문화나 게임, 음악 등의 다양한 대중문화와 교차하여 직조하는 부분이다. 단순히 피상적인 인용이 아닌 피폐해져가는 인물들의 심리와 대중문화를 엮어내는 장면에서 브레이킹 배드는 서사 뿐만 아니라 영상과 연출 측면에서도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결론적으로 브레이킹 배드는 드라마라는 매체에서 얻을 수 있는 높은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즌 5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나의 짜임새 있는 모양새로 드라마를 만든 것도 충분히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지만,  그 짜임새가 범죄와 도덕, 중산층, 대중문화, 사회의 흐름을 모두 함께 엮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렇기에 브레이킹 배드는 드라마를 본다면 꼭 봐야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0 0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그어어...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05  (0) 2020.09.13
200905  (0) 2020.09.05
200820  (0) 2020.08.20
200802  (0) 2020.08.02
200719  (0) 2020.07.19
200708  (0) 2020.07.08
0 0

잡담/개인적인 이야기

 

으어...

'잡담 > 개인적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05  (0) 2020.09.05
200820  (0) 2020.08.20
200802  (0) 2020.08.02
200719  (0) 2020.07.19
200708  (0) 2020.07.08
200701  (0) 2020.07.01
0 0

1
블로그 이미지

IT'S BUSINESS TIME!-PUG PUG PUG

Leviat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