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잊을 수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You can't forgive what you can't forget"

-Arcade Fire, Windowsill

할로윈 밤의 살아 있는 공포이자 레전드로 불리는 ‘마이클 마이어스’, 존재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가 40년 전 그를 유일하게 기억하는 그녀 ‘로리 스트로드’와 다시 마주하게 되는데…(네이버 영화 소개)


할로윈 1978은 호러 영화에 있어서 슬래셔 하위 장르를 정의내린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할로윈1978이 살인마를 소재로 다룬 첫번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살인마를 다루는 공포 영화가 있었다. 그러나 할로윈1978이 특별한 이유는 살인마 공포라는 장르 자체의 문법을 확립한 데 있다. 살인마의 존재,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희생자들, 그리고 살인마와 주인공의 사투 등 할로윈은 슬래셔 장르 서사 요소들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살인마의 등장과 살해 장면, 섹스와 고어를 한 영화 아래 뒤섞는 것도 할로윈을 통해 확립되었다. 하지만 서사 요소나 연출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펜터가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미국 중산층이었다. 조용하지만 어딘가 텅비어있고, 어른은 존재하지 않으며 청소년들이 방탕하게 섹스를 하는 모습을 통해 카펜터는 미국 중산층의 풍경을 마치 종말을 맞이한 폐허처럼 다루었다. 이런 성적 방종을 통해 드러나는 도덕의 붕괴, 기성세대를 대변하여 징벌하는 듯한 살인마, 살아남는 주인공의 순수함 같은 시선은 살인마와 희생자의 관계에 대한 장르적 표본이었다. 그리고 할로윈의 통찰 이후로, 수많은 영화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장르를 따라갔다. 과거를 넘어서 미래에 일어날 장르적 특색을 먼저 정리한 작품이 할로윈이었다.

할로윈1978의 영화적 의미 이외에도 영화는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수많은 속편과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영화는 원본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하였고, 영화는 주기적으로 리부트를 반복하면서 설정을 뒤집고 과거의 영광을 되세김질 할 뿐이었다. 그리고 여기 할로윈 레저렉션(2018)이 등장하였다.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프랜차이즈가 걸어온 모든 역사를 부정하고 자신이 할로윈 1편 이후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직계혈통임을 자처하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영화는 그만한 성공과 평단의 호응을 끌어냈다.

유념해야하는 점은 할로윈 레저렉션은 애시당초에 원작을 뛰어넘고자 하는 작품이 아니다. 영화의 큰 서사 구조인 '마이클의 탈출 - 살인 - 로리 스트로드와의 마지막 결전'은 이미 1978에 완성된 구조였다. 또한 영화의 많은 컷들과 소품의 배치, 이야기의 전개, 심지어 살인 방식까지 할로윈 프랜차이즈 전체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마치 더 씽2011과 같이 큰 구조와 컷 등을 가져오면서 그 속에다 감독 자신만의 영화적인 해석을 붙이는, 속된 말로 하면 팬메이드 무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씽 2011이 더 씽1982의 안주하여 프리퀼이란 지루한 아이디어에 사로잡혔다면, 할로윈 레저렉션은 원작에서 보지 못했었던 새로운 맥락과 인물들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할로윈의 특이성은 모든 슬래셔 영화의 원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점에는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인물이 있다. 요즘같이 살인마들에게 구구절절한 사연과 슈퍼스타나 가질법한 개성이 붙어서 따라다니는 시대에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살인마는 대단히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할로윈1978에서 마이클 마이어스는 순수한 악이다. 그는 기원도 없다, 동기도 없다, 심지어 말조차도 하지 않는다. 하얀색 가면 밑에서 후욱 거리는 숨소리만 낼 뿐인 마이클 마이어스는 불가해하며 순수한 악의 존재를 그려낸다. 하지만 이렇게 '추상적인 악역'은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 극에서 붕 뜨거나 난잡한 설정이 붙기 쉽다. 그러나 존 카펜터는 그러한 불가해한 악을 훌륭하게 스크린으로 옮겼다:어딘가 폐허를 연상시키는 미국 중산층 주택가의 어두운 그림자 처럼 스며들어간 마이클의 존재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 존재했었던 것 같은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렇기에 '거기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악'을 카메라 연출과 음악으로 잡아낸 존 카펜터는 순수한 악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렇다면 레저렉션2018은 어떠한가? 큰 틀에서 레저렉션은 1978에 대한 데칼코나미다: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카메라 워크, 연출, 음악 사용(존 카펜터 본인이 직접 참여한) 등이 원작에 참조를 두고 있다. 하지만 2018은 여기에 '40년의 시간'이란 맥락을 배치한다. 그리고 영화는 영리하게도 '순수한 악으로부터 살아남은 피해자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라는 가해자-피해자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마이클 마이어스가 순수한 악이었다면, 그로부터 살아남은 로리 스트로드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이 시대에 순수한 악이란 개념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는 변화한 시대상과 생존자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서사를 이끌어낸다.

먼저 주목할만한 부분은 '순수한 악이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프로파일링과 과학적 수사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살인마가 그저 순수한 악이나 공포가 아닌 뒤틀린 모티브를 가진 퇴행적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제 살인마는 슈퍼스타인 것처럼 팬들을 갖고 있고 하나의 가십거리 처럼 소비된다.(첫 시퀸스에 등장하는 영국인 팟캐스트 방송자 둘을 보라) 마이클은 이제 평범한 고등학생 총기 난사범의 킬카운트도 못따라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째서 사틴 박사나 저널리스트들은 마이클에 매료될까. 그것은 바로 마이클이 순수한 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모든 살인마는 동기를, 자신만의 수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마이클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자신을 대변하려 하지도 않고, 변호하려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거기 있고, 살인을 할 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마이클의 살인 장면을 연출하는 방법일 것이다:영화는 슬래셔 영화에서 자주 보여지는 과장된 살인 방법이나 생존자의 사투같은 장면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마이클이 어떻게 평범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평범한 일상의 도구로 인간들을 참살하는가를 롱테이크로 다뤄내고 있다. 일상의 삶이 존재하는 동시에, 그 삶이 드리우는 그림자에 조용히 침입하여 삶을 파괴하는 마이클의 존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악의 존재를 다룬다. 이런 점에서 2018년 버전은 1978의 종말론적인 풍경과는 다르지만,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모습을 드러낸 점에서 마이클의 무서움을 잘 다루었다.

그 다음으로 봐야하는 것은 생존자에 대한 재해석이다. 악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는 악에 메일 수 밖에 없다:악에 대한 공포, 그로 인해 파괴되는 삶. 악과 생존자는 강력한 인과관계로 묶여있다. 그렇기에 마이클은 로리 스트로드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다. 로리는 마이클에게 있어서 완성시키지 못한 하나의 퍼즐 조각이다. 그 완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40년의 집착을, 순수하고 완벽한 악 그 자체를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그 때 그 장소에 있었던 노인들만 이해할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순수한 악에 대한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타협할 수 없는 악이 있기에 그것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악이 있다는 것을 목도한 로리 스트로드의 삶은 망가졌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에 상흔을 남긴 마이클에 없애고자 한다. 희생자는 더이상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악이 있다면, 그것은 파괴해야 한다. 구세대적인 이분법이지만, 1978년 할로윈과 2018년의 할로윈은 40년이란 시간의 간극을 통해서 이 당위성에 무게감을 실어주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해방과 역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악이 존재하더라도, 생존자는 더이상 무력하게 당하지 않는다. 생존자는 공포에 사로잡혀있지만, 동시에 사명감으로 함께 준비되었다. 최근 슬래셔 영화에서 피해자가 역으로 살인마를 떄려눕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할로윈 2018는 무려 40년을 기다리고 준비해왔던 생존자의 복수극이다. 살인마가 언제 무력한 생존자를 덮칠 지를 보는 것이 아닌, 준비된 주인공과 살인마 사이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을 할로윈 2018은 다루고 있다:마이클이 목을 조르면 로리는 산탄총으로 마이클의 손가락을 날려버리고, 붙잡히면 칼로 찌르는 등등 40년 전 똑같은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이(물론 마이클은 대역을 쓰긴 했지만, 진짜 마이클 역을 맡은 배우도 영화에 출현하긴 하였다) 다시 엎치락 뒤치락하는 장면들은 장르의 팬으로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최고의 절정은 로리가 시리즈의 역사를 그대로 마이클에게 되갚아 주는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마이클과 로리가 싸우다가 로리가 창밖으로 떨어지고, 마이클이 한 눈을 판 사이 사라지는 장면은 할로윈1978의 엔딩 장면을 역할만 그대로 바꿔서 되갚은 것이다. 더 나아가 마이클의 뒤 그림자 속에 숨은 로리가 스팟라이트를 받으면서 튀어나오는 장면은 1978년 작품의 마이클 등장 장면을 역전한 것이다. 더이상 생존자가 무기력하게 당하고 생존 '당하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악을 처단하는 도식을 만들어낸다. 과잉이긴 하지만 살인마가 살인을 벌이는 공간인 집에 대한 재해석도 눈에 띈다. 쇠창살 등으로 막혀있는 로리의 집은 마치 맹수인 살인마와 주인공을 한데 가둬놓는 우리cage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그것은 살인마를 유인하고 가둬서 끝장내기 위한 준비된 함정trap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모든 것은 살인마에게 되갚아주기 위한 것들이었다.

결론적으로 할로윈 레저렉션은 원작에 대한 존경과 함께, 40년의 간극을 자기만의 재해석으로 채워넣은 훌륭한 작품이다. 가장 아쉬운 점은 이 영화가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닌, 2편의 속편을 더 만들겠다는 영화사의 발표다. 할로윈 레저렉션은 그 자체로 완결된 영화였다. 거기다 새로운 무언가를 붙이는 건 사족이다. 하지만 사족이 붙더라도, 이 영화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빛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