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언제부터 파이널 판타지가 우리가 알던 파이널 판타지가 되었을까. 마지막 작품이라는 마음 가짐으로 만들자는 의미(마지막 판타지Final Fantasy)에서 출발한 게임은 어느덧 일본식 RPG를 대표하는 거대한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이렇게 거대한 프랜차이즈가 된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7편의 성공에서부터 이어지는 파이널 판타지의 기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시리즈 최초의 1000만장 돌파와 함께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하드를 견인하였던 파이널 판타지 7은 지금까지 이전까지 보지 못했었던 프랜차이즈의 비전을 제시한 작품이었다. 

 

7편 이후, 파이널 판타지의 기조는 크게 바뀌게 되었다:물론 이전부터 사내 공모를 통해서 가장 우수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어내어 시리즈간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7편의 성공은 "파이널 판타지란 이런 것이다" 라는 하나의 명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이 아닌 새롭고 완전한 세계'다. 요즘에 와서 보았을 때 대다수 RPG나 여타 게임들이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환상 속의 공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는 새로운 세계에서의 경험을 '전체'로써 다루고 있다. 

 

파이널 판타지 9을 예로 들어보자:오랜만에 구작들(1~6편, 크리스탈에 대한 이야기)의 향취를 살리겠다고 등장한 9편은 파판 7 이후로 이어지는 기조에서 상당히 엇나간 특이한 게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9편은 7편의 성공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작품이었으며, 이단아 취급 받은 8편과 함께 9편은 여타 작품들과 다르게 세계관 확장이나 외전 등의 푸시를 크게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판타지 9편에는 7편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파이널 판타지의 기조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무언가가 있다. 8편에서는 그것이 용병 학원과 용병 랭크를 올려가면서 돈을 번다는 기믹이었다면, 9편은 다양한 케릭터들이 등장하는 군상극으로서의 무언가가 강조된다.

 

파판 9에서는 ATE라는 시스템이 있다. Active Time Event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조작하는 케릭터 외의 다른 케릭터가 '동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 매체였다면 자연스럽게 컷 인으로 다루었을 수 있는 요소를 게임에 도입한 것이다. 게임 플레이 관점에서 본다면 상당히 귀찮은 요소이긴 하지만, ATE는 각 동료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동료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ATE는 이전 파판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미니 게임들이나 기믹들과 다르게 뭔가 새롭고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 9이 과거로 회귀를 선언하면서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인물들의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군상극으로 회귀하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ATE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체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다양한 인물들이 펼쳐내는 이야기가 엮여가면서 하나로 승화되어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라는 관점에서 파이널 판타지 7편 이후의 기조를 따른다 할 수 있다. 물론 전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소한 미니 게임들(카드 게임이나 축제 미니 게임, 유명한 초반 연극 시퀸스 같은)도 9편에서 등장하며, 이는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장치라 할 수 있다.

 

9편의 이러한 기조는 10편 이후로도 꾸준하게 이어진다. 7편 이후 두번째로 1000만장을 돌파하였던 10편은 파이널 판타지 최고의 전성기라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게임 내에서 그 게임의 내적 완결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다양한 미니 게임들과 이벤트들을 배치하는 모습은 단순히 RPG 특유의 '전투 - 서사 - 전투 - ....' 의 반복을 피하고 거대하고 완전한 세계로서의 파이널 판타지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가 점점 커질수록 파이널 판타지라는 프랜차이즈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거대하고 완전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도중, 그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설정과 복선들을 게임 메인 서사에서 회수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10-2의 등장은 그러한 문제가 최초로 드러난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 끝난 이후에 마무리 되지 못한 것들을 회수하기 위한 외전 등을 전개하는 파이널판타지 특유의 기조가 이때부터 드러났다. 이후 12에서는 게임 메인 서사를 마무리도 짓지 못했었고, 13은 이야기를 3편의 별개의 작품으로 쪼개더니, 심지어 15는 장대한 DLC 계획을 내놓고서는 모든 DLC를 내지 않고 급하게 마무리 지어버리기도 하였다. 즉,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완전한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게임 개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편에 완결된 콘텐츠를 제공한다'라는 기본 전제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자가 당착에 빠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