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콜 오브 듀티 시리즈 리뷰를 쓰는 것은 게임 리뷰를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단한 고역이다:이 게임의 핵심은 바꾸는 척 하면서 바꾸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이질적인 콜옵인 어드벤스드 워페어나 블랙옵스 3 같은 물건도 다양한 실험에도 불구하고 콜옵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았었다:레일로드 형식의 싱글플레이에서부터 얼기설기 얽혀있는 전장에서 빠르게 죽고 죽이는 형태의 멀티플레이, 월드 앳 워 이후로 정식 모드가 된 좀비 디펜스 코옵 모드까지. 콜옵의 강점은 프랜차이즈의 통일성을 유지하되, 최소한으로 시스템을 더하고 빼는 것으로 게임 자체가 질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인피닛 워페어의 등장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최악의 콜옵이었던 고스트를 만든 신생 인피닛 워드는 인피닛 워페어라는 콜옵 사상 가장 미적지근 한 게임을 만들었다. 경쟁자들은 두 발자국 전진할 동안, 인피닛 워페어는 제자리 정지를 선택해버렸다. 인피닛 워페어가 블랙 옵스 3에 비해서 판매량이 반토막나는 대참사(그래도 1000만장은 찍었지만)가 나버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콜옵 WWII와 슬렛지해머의 어깨에는 이전보다 더 무거운 짐이 들리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최악의 콜옵인 고스트의 실패를 과격한 변화를 시도한 어드벤스드 워페어로 극복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들이 내놓을 카드는 무엇일까. 역사상 가장 미적지근한 콜옵에 대해서 슬렛지해머가 내놓은 대답은 과거로의 회귀였다. WWII는 월드 엣 워 이후 처음으로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콜옵이다. 월드 엣 워가 9년전에 나온 작품인 것을 감안한다면, 트리플 A 게임에서 2차 세계대전이 나온 것도 정말로 오랫만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WWII는 단순한 회귀가 아닌 배틀필드 1이 그랬듯이 '비워냄으로써 발전시킨다' 라는 명제를 실현시키고자 한다. 그 결과, WWII는 다시 콜옵을 침체의 수렁에서 끌어내었다.


콜옵 WWII의 싱글플레이는 좋은 의미와 10년전 콜옵의 재림이다. 10년 사이에 퓨리나 퍼시픽 같은 좋은 레퍼런스들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WWII가 선택하는 레퍼런스는 철저하게 근 20년 전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다. 존경할만한 리더와 살짝 정신나간 고문관 보좌, 믿을만한 전우들이 노르망디에서부터 벌지 전투, 라인강 까지 진격한다는 이야기를 연출적으로 좀 더 세련되게 풀어냈을 뿐이다. 물론, 너무 짧다는 점과 캐캐묵었다는 점을 빼면 WWII의 싱글플레이 스토리에 대해서는 크게 흠잡을 부분이 없다. 블랙옵스 3의 극단적인 스토리텔링(SF와 음모론, 반전 등)이나 인피닛 워페어의 동료를 학살하여 얻어낸 스토리텔링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이라면 WWII의 스토리 텔링이 더 마음에 들 것이다.


WWII의 싱글플레이 미션 구성이나 플레이 스타일마저도 과거로 돌아갔다는 점이다:노르망디 해변은 메달 오브 아너 1편이나 콜옵 기존 작품에 대한 데자뷰를 느끼게 만들기 충분하다. 블랙옵스 3같은 아레나 식의 전투는 없어졌으며, 인피닛 워페어가 복도식 전투에도 불구하고 SF 도구를 사용해서 플레이의 다양성을 늘렸던 점을 생각해본다면 WWII는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기보다는 과거를 되살리는데 주력한다. 눈여겨 볼 점은 본작에서 플레이어는 콜옵 특유의 자동회복 시스템을 차용하지 않고, 회복약을 들고 있다 쓰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신에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적들을 죽이면 동료들의 특수능력 게이지를 채우고 이를 회복약이나 폭격 요청 등으로 바꾸어 쓰는 시스템을 탑재햐였다. 이는 동료와 유대감을 강화하게끔 하기 위해서(결국 게임을 진행하려면 다른 동료의 도움을 빌려야 하니까)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동료 시스템이 고색창연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이야기에 몰입감을 부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WII에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바로 멀티플레이다. 고스트의 실패 이후, 전작들의 멀티플레이 경험은 프랜차이즈 전통에 자신만의 개성을 새겨넣는데 주력하였다. 어드벤스드 워페어는 엑소 수츠를 통해서 공중 대쉬 등의 현란한 움직임을 재현하는데 주력하였고, 블랙옵스 3는 월런을 통한 우회 기습이나 킬스트릭과 별개로 운영되는 파워 웨폰 개념을 탑재하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이러한 급진적인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WWII는 고전적인 콜옵, 적어도 킬스트릭이 있었던 모던 워페어 1이나 월드 앳 워 시절로 회귀하려 한다. 게임은 여전히 엄폐물로 가득차 있는 맵들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일어나는 난전이 중심이다.


하지만 WWII는 전작들과 다르게 퍽이나 커스터마이즈 옵션을 대폭 가지치기 한다. WWII는 블랙옵스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일정 슬롯 내에서 자유롭게 퍽이나 부착물을 갈아끼던 시스템을 탈피하여 사단 시스템으로 큰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결정하는 대신 퍽의 가지수와 부착물 선택의 폭을 대폭 줄여버렸다:WWII의 사단 시스템은 커스터마이즈 옵션을 줄이는 대신 각 사단을 선택할 시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결정하는 패시브 퍽을 4개 자동으로 장착하게끔 만들고, 플레이어가 나머지 하나의 퍽(대신 전작들과 비교하였을 때, 적어도 두개 정도의 퍽이 하나로 합쳐졌거나 성능적으로 보강을 받았다)을 설정하여 커스터마이즈를 끝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너무나 많은 퍽이 난무하였던 고스트 때나 부착물이 사실상 퍽의 역할을 계승하였던 블랙옵스 시리즈가 커스터마이즈를 다소간 어렵게 만들었다면, WWII는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크게 5가지로 구분하고 플레이어가 선택하게끔 만들어 게임의 커스터마이즈를 집중력있게 만들었다. 즉, WWII는 커스터마이즈의 본질을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것보다,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규정하는 것이라 보았고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WWII의 퍽 시스템은 매우 잘 작동된다 할 수 있다.


맵 디자인 역시 구세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 과거 콜옵식의 오밀조밀한 맵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인피닛 워페어가 몰개성하게 블랙옵스 3의 디자인을 답습하는 동안, 슬렛지해머의 맵디자인은 구세대의 좋은 점을 갖고 오되, 자신이 만들어놓은 사단 시스템과 연동되어 게임이 플레이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구스타프 캐논 같은 거대한 맵은 가운데 구스타프 열차포가 맵을 양분하고, 개활지와 엄폐물들, 우회로들을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저격총에 특화된 산악사단의 경우, 저격총을 들고 열차포 위에 올라가서 저격을 할 수 있고, 기관단총을 쓰는 공수사단은 특유의 기동력으로 상대가 있는 곳까지 깊숙히 침투한 후 소음기를 사용하여 상대를 한명 한명 끊어낼 수 있다. 모든 맵들은 각각의 플레이스타일들이 자신만의 전술로 돌파할 수 있게끔 세밀하게 조정되었다. 


이는 고스트의 실패사례와 비교하였을 때 명확해진다:고스트의 몇몇 맵디자인은 복도가 쓸데없이 길거나 개활지가 황당할 정도로 넓어서 교전을 할 때 스나이퍼 라이플 같은 캠핑 무기가 유리하게끔 되었다. 이렇게 실패했던 고스트와 비교하여 보았을 때, WWII는 콜옵의 강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하였다. 이렇게 디자인된 결과, 콜옵 WWII는 전작들에 비해서는 다소 느려졌지만 여전히 콜옵다운 빠른 템포와 긴장감 넘치는 게임 플레이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즉, WWII는 콜옵이 무엇인가라는 치열한 탐구 끝에 콜옵 프랜차이즈의 핵심만을 남겨놓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고, 그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두었다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콜옵 WWII는 인피닛 워페어의 실패를 충분히 만회할만한 작품이었다. 단순히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 작품의 강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고, 전작들의 좋은 점을 가지치기 하면서 게임을 응축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WWII는 여전히 정진정명한 콜옵이고, 이번 작품에 대해서 피로감을 느낄 사람들도 충분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WWII는 재밌는 콜옵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구매가치가 있다고 본인은 본다.



덧. 그와 별개로 글을 쓰는 현재 서버 문제가 좀 심각하다. 

자랑스럽게 내새웠던 온라인 로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느낌. 이 부분은 좀더 장기적으로 지켜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