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씬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기관총에 갈려나가는 신체들, 불타고 비명소리가 메아리 치며, 사람들은 무의미하게 죽어간다. 스필버그는 이 장면을 통해서 전쟁의 참혹함과 무정함을 보여주고 동시에 거기서 의미없는 명령(라이언 일병을 집으로 돌려보내라)과 그것이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을 다루는 영화 스펙타클의 변화라 할 수 있었고, 후대의 전쟁 영화와 대중 문화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게임 프랜차이즈들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보여주었던 전쟁의 스펙타클(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의 현장감 같은)에 매료되었다. 메달 오브 아너의 시작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미션으로 재현하였던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이 속한 레퍼런스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던 워페어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한다:현대전의 화려함과 다양한 도구들, 특수부대의 로망 등이 고색창연한 2차 세계대전의 스펙타클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2차세계대전 특유의 '선악구도'의 한계도 맞물려 있다:나치라는 시대적 거악을 처부수고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구대륙과 신대륙이 연합하여 싸운다는 2차세계대전의 서사는 전장을 확대하고 이야기를 뒤틀어도 그 서사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콜옵 시리즈도 그러했다. 아마도 콜옵 시리즈가 2차 대전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었던 것도 서사적인 부분에서 확장할 여지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콜옵의 성공 모티브는 '영화와 같은' 게임이라는 테제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고, 그 '영화 같음'을 정의내리는 것은 바로 현장감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보여주었던 현장감의 연장선에 들어가있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씬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전장의 전체를 관조하는 시점의 카메라가 아닌, 철저하게 인물의 입장에서 보여지고 벌어지는 스펙타클을 정해져있는 스크립트를 따라서 진행되고 이는 콜옵 시리즈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콜옵 시리즈는 내용을 넘어서 형식적인 측면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빚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던 워페어는 그런 점에서 처음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계승하면서 서사와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자신만의 독자성을 만들어내고자 시도한 콜옵이라 할 수 있었으며, 모던 워페어를 수많은 게임들이 뒤따르면서 게임 업계는 바야흐로 밀리터리 FPS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트렌드를 주도한 모던 워페어도 결국은 소진되기 시작했다:레일로드 형태의 게임 플레이는 첫 플레이 이후에는 스크립트를 외운 플레이어들에게 그 매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고, 연출은 세련되어지지만 정작 게임 플레이는 구태의연하다는 점에서 플레이어들을 질리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다. 어드벤스드 워페어나 블랙옵스 3는 콜옵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시도한 독특한 작품들이었다:점프와 월런을 통한 기습, 고속 기동 등등은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 모두를 풍족하게 만들었다. 게이머들은 항상 콜옵 시리즈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콜옵 시리즈만큼 남들보다 '반발자국' 앞서서 업계 트렌드 세터 역할을 꾸준하게 고수하는 프랜차이즈는 여지껏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시 원점인 2차 세계 대전으로 콜옵은 돌아온 것일까. 물론 그 동안 2차세계대전에 대한 새로운 레퍼런스들(퓨리나 퍼시픽 같은)이 생겨났고, 2차 세계대전을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난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배틀필드 1이 1차세계대전을 선택한 것과 동일한 이유였을 것이다:콜옵 시리즈는 지속적으로 변하고 또 변화해왔다. 하지만 그 변화속에서 프랜차이즈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게임에 덧붙였고, 게임은 진입장벽이 높아지게 되었다. 배틀필드 1은 그런 점에서 프랜차이즈의 본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것을 과감하게 가지치기 하였다. WWII도 마찬가지다:이제 더이상 악세사리나 와일드 카드 퍽 시스템 같은 복잡한 시스템은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좋은 시도다:많은 프랜차이즈들이 좋은 것에 좋은 것을 더하면 더 좋아진다(마치 쉐도우 오브 워가 그랬듯이)라는 집착에 사로잡혀 전작만도 못한 작품을 양산했다면, 콜옵 WWII은 '프랜차이즈의 본연으로 돌아가자'라는 트렌드를 주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콜옵 WWII는 11월 3일 발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