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애니에 대한 잡생각



1.드디어 감상을 미루고 있던 막말기관설을 재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도 오랜만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래도 다시 보니까, 분석할 부분이나 구조적으로 재밌는 부분이 많더군요.

2.일단 애니메이션이란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역사극이란 장르를 선택한 점이 대단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실상, 역사를 테마로 다루는 애니메이션 작품 대부분이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고 아예 역사와 관련없는 내용을 전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을 고려하면, 막말기관설 같이 정통적인 사극(?)을 표방하는 작품도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이 판타지적인 요소를 통해서 전개된 것이 어떻게 전통 사극이냐?'라고 반문하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역사의 흐름'을 작품내에서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사극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작품은 구조적으로 '겉과 안'이라는 이중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큰 구조에서는 역사적인 사건(겉)과 그 뒤에서 사건을 조종하는 초자연적인 힘과 배후 세력들(안), 구체적인 세부 구조에서는 극단의 연극(겉, 바깥 사람이 보기에는 허구)과 연극 안에 감추어진 진실(안, 그러나 실제하는 진실), 그리고 각 케릭터들의 이중적인 모습까지 애니메이션 곳곳에서 이런 구조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막말기관설 뿐만 아니라 막부말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취하는 주제 의식, '시대는 왜 바뀌어야 했는가'에 대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헤겔의 역사관을 따르면, 역사는 항상 진보하는 방향성(민주화, 자본주의화, 공업화 등)을 지닌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방향성을 가리켜 헤겔은 '시대정신'이라 표현을 했습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철학의 극치를 달리는 헤겔 철학으로서는 이러한 시대정신의 존재를 원인이 아닌 결과로서(전세계 전반에 자리잡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공업사회 등의 서구화 전반) 증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막말기관설에서는 막부말의 혼란스럽고 개개를 놓고 보면 이를 관통하는 의미나 방향성이 없어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안', 즉 초자연적인 힘과 배후세력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무작위로 일어난 사건들이 초자연적인 힘(패자의 목)을 통해 방향성을 얻고, 이러한 방향성은 헤겔의 '시대정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왜 시대가 그렇게 바뀌었어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초자연적인 힘과 이를 둘러싼 케릭터들 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러 이러했기에 시대는 바뀌어야 했었다'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4.물론 아직 1/3 정도 밖에 감상이 안되었지만 작품에 대한 불만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는 비단 막말기관설 뿐만이 아니라, 일본 막부말을 다루는 시대극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입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결과적으로 막부말을 대표하는 케릭터들이 시대의 변화를 수긍하고, 새로운 시대와 세대에 대한 축복 혹은 희생을 통해 이들을 정당화 시켜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막부말 이후의 일본이란 국가는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왜곡되고 뒤틀린 제국주의, 군국주의 국가였습니다. 그렇다면, 시대정신이 그러한 일본의 방향성이 옳다고 긍정한 것인가요?

 사실상, 결과만 놓고 따졌을 때, 일본은 1945년 패전을 통해 그 방향성에서 한참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작가들은 막부말, 시대가 교차되는 그 순간에 매료되고 시대가 바뀌는 그 역사를 미화시키는 걸까요? 이는 어떻게 보면 막부말을 통해 일제 시기를 미화하고 그 때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잘 드러낸걸까요? 아니면, 막부말에 드러났던 사무라이 정신을 찬양하고 싶은 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 이러한 논점 덕분에 감상 내내 껄끄러운 느낌이 들더군요.

5.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지만, 작품 자체로는 흥미로운 작품이고 분석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감상 후에 자세한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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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ddle 2009.07.28 05:00    

    헤겔주의는 결국 뭐가 언제 어떻게 됐든 역사의 종언을 장식하는 것이 절대정신이고 그거슨 바로 신의 뜻이다!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라는 결론이 나기 때문에 답이 없는 것 같습ㄴ디ㅏ. ㅋ.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일제도 새로운 정반합을 통해 다음 시대로 넘어갔기 때문에 세계정신의 실현이라고는 보기 힘들거고... 사실 제가 공부를 뒷구멍으로 해서 뭔 말을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ㅇㅇ
    다만 확실한건 막부말에서 개항과 유신, 장기적으로는 타이쇼 데모크라시로 이어지는 대일본제국 리즈시절ㅋ의 이면에 식민 착취(와 국내에서도 벌어진 민중 탄압)가 있었을지언정, 바다 건너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낭만과 향수의 대상이라는 거죠. 하기야 이게 워낙 드라마틱한 역사기도 하고, 어찌보면 왕년의 식민종주국치고 안 그런 나라가 있긴 한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이게 무슨 극우주의 이런 거창한 거라기보다는 그냥 정치/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봅니다. 혹은, 굳이 우리으 아름다운 낭만과 향수에 그림자를 드리울 필요는 없다 뭐 이런 (무)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르죠.
    근데 이 작품이 그런 스토리였군요. 제목만 보고 안 땡겨서 버렸는데 ㅠㅠ

    • Leviathan 2009.07.30 01:10 신고  

      saddle//사실상 헤겔 철학은 고도의 관념성에 근거하고 있고, 헤겔 자신도 종교라는 개념(시민종교)이나 신이란 개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대정신=신'이란 결론은 크게 문제될게 없다고 봅니다. 다만, 현대에 들어서는 '시대정신=Not 신'이라는 느낌으로 쓰고 있더군요. 뭐 그런 의미에서 정반합을 통한 역사의 흐름상 일제는 시대정신의 '반'으로서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 저도 교양이나 종교학 수업으로만 배운거라서;)

      사실, 그 친구들 입장에서는 낭만이고 멋이란건 이해가 되는데, 옆에 있는 친구들도 생각을 해줘야죠. 하다 못해 좀 미안하기라도 하면, 그런 미안한 구석이라도 좀 보여주던가, 이 친구들은 그런 구석이 코딱지 만큼도 없습니다. 극우주의가 아니라 역사 의식의 부재라는건 잘 알지만, 이런 정치 역사의식의 부재가 거대한 재앙을 일으킨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만히 냅둬서는 안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생각해보니 옆나라에서 애니 쳐보는 주제에 말이 너무 많군요;

      작품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 2009.07.28 17:42    

    비밀댓글입니다

  • muhootsaver 2009.08.01 00:59 신고    

    막말기관설이라... 저도 보다 말았었는데 말이죠. 이건 북미에도 들어올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더군요. 생각해보니 방영한지도 꽤 되었군요.

    작품에 따라서 좀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막부말의 이야기가 자주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그때의 드라마틱한 상황이 써먹기 딱 좋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이 패배하는 영웅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

    • Leviathan 2009.08.04 04:35 신고  

      muhootsaver//아마 안될겁니다. 사실 돈이 되는 작품이라 보기에는 힘들어서...

      패배한 영웅은 누구나가 다 끌리는 소재죠. 사실 저도 그 점에 매료되어 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