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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박스 매거진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링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게임 프랜차이즈를 꼽는다면 당연 콜 오브 듀티가 될 것이다. 매년 북미 최대의 게임 판매고를 올리는 게임, 매년 나오는데도 1000만 장 넘게 팔리는 게임, 2차 대전에서 시작해서 현대전 미래전을 오가는 게임, 전통적인 팀 데스매치류의 게임에서 워존이라는 배틀로얄 양식의 게임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콜옵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왕국이다.   
 
그러나 여타 트리플 A 게임들과 조금 다르게 판매량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애증을 한몸에 받는 프랜차이즈이며, '가장 많이 팔리면서 가장 싸게 만들어지는 트리플 A 게임'이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는 유명한 사례는 블옵 1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블옵 1편에 대한 포스트 모템(개발 이후에 개발 뒷 이야기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개발자들은 첫 미션인 쿠바 미션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버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개발자들은 NPC들이 특정 경로로 이동한 경우 계속해서 게임이 튕기는 치명적인 버그를 발견하였는데, 여기서 제시된 해결책은 버그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버그가 발생하는 경로에 NPC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탁자를 놓아서 버그 발생 조건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론은 언뜻 보기에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는 참신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점에서 단지 '눈속임'에 불과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때워버리는 방법론이야말로 콜옵 시리즈의 본질을 드러내는 근본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콜옵 시리즈는 2007년 전설적인 모던 워페어 1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고, '아직도' 2007년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빠른 TTK, 자극적인 연출과 장면에만 집중하는 시나리오, 킬스트릭과 같이 승자가 모든걸 취하는 구조의 멀티 플레이 구조, 바뀌지 않는 게임 플레이 등등은 07년도 모던 워페어에서 21년 뱅가드까지 모두 비슷하다. 심지어 중간에 미래전을 다뤘던 외도기에도 이러한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트리플 A 게임이 잘 팔리는 이유와 콜옵 시리즈가 잘 팔리는 이유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게임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잘 만든 게임이 잘 팔린다’는 명제를 믿는다. 그러나 콜옵은 잘 만들었기 때문에 팔리는 게임이 절대 아니다. 가장 엉망이었던 콜옵인 고스트나 인피닛 워페어의 요소들(거대하고 복잡한 맵 등)은 계속해서 모던 워페어 리부트를 통해 콜옵에 숨쉬고 있고, 모던 워페어 리부트의 총기 업그레이드 시스템이나 무기 판매 BM 등 역시도 콜드 워와 뱅가드에 계속해서 살아 있다. 콜옵 프랜차이즈의 성공과 실패는 각각 작품들의 성공과 실패가 아닌 프랜차이즈 전체의 것이었다. 
 
그리고 콜옵 프랜차이즈 전체로 놓고 보았을 때 콜옵이 팔리는 핵심은 '모든 것은 콜옵이 된다'이다. 한 때 현대전에 사로잡혀 있을 때, 콜옵은 새로운 트랜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미래전을 받아들이고, 배틀로얄 장르가 흥행하고 있었을 때는 배틀로얄 장르를 도입하며, 배틀로얄 장르에 배틀 패스를 도입하고, 싱글플레이를 없애는 실험과 좀비 코옵 모드를 넣는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테스트했다. 심지어는 타르코프 스타일의 멀티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는 루머도 있다. 콜옵은 장르를 리딩하진 않지만, 장르의 성실한 팔로워로써 베낄 수 있는 것들을 성실하게 베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콜옵은 하드코어한 게임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프랜차이즈다. 이미 콜옵의 대체제들은 수도 없이 많다. 콜옵을 만들었던 제작자들의 타이탄폴은 콜옵식 킬스트릭 중심의 데스매치를 완벽하게 재창조시켰다. 워존이 콜옵식으로 재해석한 뛰어난 배틀로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장르적 분화를 거치고 있는 배틀로얄들을 생각한다면 유일무이한 배틀로얄 게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무리가 있다. 분명 콜옵 좀비 모드는 적당히 즐길만한 게임이긴 하지만, 동시에 단독으로 구성된 코옵 멀티플레이 게임만하진 않다. 뭐 하나만을 놓고 구매하기에는 콜옵은 확실히 부족하다. 
 
그러나 하드코어한 게임 소비자가 아닌 일반적인 대중들을 상대로 한다면, 콜옵은 분명 매력적인 장르다. 이런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게임 정보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도 않고, 1년에 게임을 여러개 구매하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극적이며 익숙하며, 적당히 작동하고 다양한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이다. 이는 동시에 콜옵이 매년 동일한 구매 고객들을 상대로 판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의 게임 구매 템포는 그렇게 짧지 않다. 이들은 한달에 두 세개 이상의 게임을 구매하며 게임을 서로 갈아치우면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의 게임을 질릴 때까지 플레이하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하드코어 게임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할만한 부분들이 생긴다. 상당수의 멀티플레이 게임들은 게임 발매 후 한달에서 두달 사이에 상당수의 활성 유저들이 빠져나가고 그 게임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소위 고인물들의 게임들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게임 매칭 텀은 점점 길어지고 매칭의 질은 점점 극단적으로 변하게 된다. 게임의 완성도와 별개로 게임의 매칭 환경은 더 나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콜옵의 경우, 유저 풀들이 넓어서 매칭의 질이 금방 떨어지지 않고, 매칭도 빠르게 잡히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에 괜찮다. 아무리 리스폰 구조가 엉망이고, 맵이 복잡해서 장거리 저격에 당하기 쉽고, TTK가 짧아서 파리목숨마냥 픽픽 죽어나가도, 여전히 콜옵은 자극적이고 재밌는 멀티플레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콜옵을 구매하는 이유는 그저 '잘 만든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콜옵은 잘 만든 게임이 아니다. 그저 그럭저럭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게임을 구성한 과거의 게임이다. 액티비전은 이미 존재하는 트렌드를 섞어서 마치 새로운 것을 제공하는 것처럼 마케팅하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으며, 콜옵은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에게 잘 포장되어 내어지는 상품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마케팅과 포장 방법론들은 현대 게임 산업에 있어서 무너지지 않는 절대 강자를 만들어내었으며, 결과적으로 캐주얼 게이머에게는 물론이고 하드코어 게이머에게도 어느 정도 매력적인 게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들이 콜옵을 구매하는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