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리뷰]유희왕 마스터 듀얼
출시: 2022년 2월 3일
개발: 코나미
유통: 코나미
※ 엑박 메거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링크)

들어가며 –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간략한 역사

유희왕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를 토대로 한 TCG(Trading Card Game)이며, 199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중인 TCG 프랜차이즈이다. 96년 첫 연재된 만화 유희왕 속에서 1993년 최초의 TCG인 매직 더 개더링의 오마주인 듀얼 몬스터즈라는 TCG로 묘사된 것이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모티브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작 만화에서의 실물 카드 게임은 만화의 테마와 서사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독립적으로 완성된 게임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크리보의 숨겨진 효과(기뢰화)라던가, 크리보가 증식한다던가 등의 원작 만화 자체의 카드 효과들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TCG와 원작 간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고, 만화의 재미와 별개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룰들은 '그래서 유희왕 내의 카드 게임이라는게 뭔데?' 라는 의문을 자아냈다. 그렇기에 초기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만화 원작을 게임으로 옮겨놓는 재현에 가까웠고, 아직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잡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의 역사가 뒤로 갈수록 처음 매직 더 게더링을 오마주했던 원작과 달리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전개된 작품들은 원작과 다르게 '유희왕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룰과 콘셉트를 홍보하기 위한 홍보 작품'으로 기능하기 시작했고, 매 새로운 작품마다 실물 카드 게임에 대격변을 일으키며 작품과 상품들을 동시에 운영하였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DM에서부터 GX → 5Ds → ZEXAL → ARC-V → VRains 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카드들과 소환 방법들(싱크로 소환, 엑시즈 소환, 펜듈럼 소환, 링크 소환) 등이 추가되었고, 룰이나 금지/제한 카드에 대한 규칙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단순히 만화의 사이드 프로젝트 수준을 넘어섰는데, 발매된 카드의 수나 판매된 카드의 매수 등이 매직 더 게더링에 버금갈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유희왕 프랜차이즈가 한계를 맞이한 것도 프랜차이즈의 역사 동안 다양한 소환 방법의 추가와 룰의 복잡화에 기반했다. 서로 다른 룰을 적용받는 특수 소환만 총 6개(융합/의식/싱크로/엑시즈/펜듈럼/링크)였고, 프랜차이즈 전개 동안 극심한 카드 파워 인플레이션, 이전의 카드가 현 환경을 파괴하는 문제, 한 카드 내에 복잡하고 끔찍하게 긴 텍스트가 들어가 가독성과 난해함의 문제 등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결국 애니메이션과 실물 카드 게임을 함께 운영하던 유희왕 프랜차이즈의 전략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신규 유입은 끌어들이지 못하고 새로운 테마와 룰을 소개하기에 실물 카드 게임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희왕 프랜차이즈는 신규 유저들은 기존 스피드 듀얼의 포맷을 명료하게 다듬은 러시 듀얼이라는 새로운 룰과 유희왕 세븐즈라는 애니메이션으로 관리를, 기존 카드 군과 유저들은 마스터 듀얼이라는 포맷으로 재정립하여 관리하는 투 트랙 전략을 취하였다.

엑스박스를 포함한 전 기종으로 발매된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게임 제목 그대로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규칙 포맷인 마스터 듀얼 포맷을 토대로 만들어진 F2P 카드 게임이다. 재밌는 점은 23년 간 쌓아올린 현 마스터 듀얼의 포맷에 거의(약 1년 정도의 간극은 있다) 유사하게 나온 케이스는 유희왕 비디오 게임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전에 나온 유희왕 비디오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었기 때문에, 특정 애니메이션에 나온 제한적인 카드들로만 구성되었지만 본 게임의 경우에는 판권 문제 때문에 나오지 못한 일부 카드들(대표적으로는 삼환신의 수장인 호르아크티 같은)을 제외하면 현재 실물 카드 게임에 가장 유사한 모습이다. 

카드 게임의 특징과 매직 더 게더링을 통해 본 기본 흐름에 대한 간략한 분석

 

 

 마스터 듀얼을 본격적으로 리뷰하기에 앞서서 TCG 장르에 대해서 간략하게 분석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TCG라는 게임 장르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문장구조에 단어를 집어넣는다'라는 구조를 가진 게임이다. 게임의 전체 룰은 문장구조와 문법에 대응하고, 각각의 카드들은 단어에 대응하며, 게임이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서 문장의 완성도를 평가한다. TCG는 여타 보드게임 룰들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상당히 성긴 형태의 규칙을 갖고 있는데, 규칙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카드들을 규칙에 맞게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카드 게임은 여타 보드게임과 달리 플레이어의 상상력과 개성이 보장되는 게임인데, 구조적으로 '문법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 무엇을 집어넣어도 상관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단어들의 뭉치인 덱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각 카드와 카드가 룰 사이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플레이어의 숙련도와 역량도 중요한 게임이다. 문장을 구성할 때, 문법에 맞는다고 모든 문장이 문장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문장이 발화되는 순간의 맥락에 따라서 그 문장의 적절성(발화자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도 언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TCG에서 단어와 단어의 선택은 게임 룰에 맞춰 카드의 발동과 배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손패에 들고 있는 카드들의 풀 내에서 짜임새 있게 카드를 이용해서 이득을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TCG라는 장르에서는 단어, 즉 카드를 재화로 취급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장르의 이름인 트레이딩 카드 게임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플레이어는 부스터/드래프트 팩을 통해서 무작위로 담긴 카드들로 카드들의 뭉치인 덱을 구성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각 카드들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카드들은 각각 희귀 등급이 정해져있고, 희귀도가 올라갈 수록 덱에서 키가 되는 역할을 맡는다. 트레이딩 카드 게임에서 트레이딩이란 이러한 희귀도 차이를 유저들 간의 거래 또는 샵에서의 거래를 통해 극복하게끔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유희왕이 오마주했었던 매직 더 개더링(매더개)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자. 위 그림과 같이 매더개는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카드의 뭉치인 덱과 플레이어가 자신의 턴에 사용할 수 있는 패, 그리고 실제 게임이 플레이되는 필드의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매더개의 특징은 패에서 발동하는 모든 카드들이 '마나 자원'을 소비한다는 점, 그리고 그 마나 자원을 턴마다 생성하는 대지 카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매더개나 매더개의 가장 성공한 아류인 하스스톤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자원의 존재는 플레이어가 아무리 강한 카드들을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카드를 꺼내기 위해서 내 대지 카드들을 보호하고(대지 파괴 요소가 매더개에는 존재한다), 초반 턴에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위니(주로 1~2 코스트로 빠르게 나올 수 있는 카드들) 카드들을 통해서 적절하게 나를 방어하기도 해야한다. 결국은 매더개는 자원을 적절하게 쌓아올리면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자신의 덱이 갖고 있는 포텐셜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덱을 전개해나가는 운영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다. 카드 간의 연계도 중요하지만, 한번에 휘몰아치기 보다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카드로 막아가면서 게임을 고조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어드벤티지, 한국에서는 '아드'라 불리는 개념이 등장한다. 아드는 플레이어의 가용 자원 수와 상대 플레이어의 가용 자원 수의 차이를 일컫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카드 한장을 사용하여 상대 필드 위에 카드 한장을 파괴하고 그 카드가 묘지로 갔다면, 플레이어는 한 장의 카드로 상대의 한 장 카드를 막았기 때문에 별다른 이점을 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한 장의 카드로 상대의 두 장 이상의 카드를 제거했을 때, 나는 한장을 쓰면서 상대의 카드를 두장 이상 제거하여 최소 한 장 이상의 이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서 보면 TCG는 유려한 말싸움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각자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단어들(카드들)을 모은 단어 뭉치(덱)를 만들고, 그 단어 뭉치에서 제한된 단어들만 뽑아낸다(손 패의 구성). 그리고 각 플레이어들은 언어의 문법(게임의 규칙) 내에서 각 단어를 조합해서 상대의 문장을 효율적으로 분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와중에 자신을 대표하는 멋진 단어들(희귀한 카드 같은)을 중심에 두고 단어 뭉치를 구성하거나 독특한 단어 뭉치들을 이용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부수적인 재미를 주는 것이 TCG 장르의 재미라 할 수 있다.

유희왕 분석 - 랩 배틀, 또는 드래그 레이싱

 게임으로써 유희왕은 만화와 다르게 만화를 소비하는 저연령층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게임이 구성되었다. 그렇기에 원작 만화의 매직 더 개더링스러운 부분들(카드에 명기되지 않은  '키워드', 위에서 언급한 기뢰화의 케이스처럼)은 배제되고 매직에서 저연령층 소비자들이 어렵게 느껴질만한 요소들을 제거되었다. 가장 큰 변화점은 '마나 자원의 삭제'와 '카드 내에 모든 텍스트가 들어감'일 것이다. 기존 매직 더 개더링이 신규 유입 유저에게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마나 자원의 관리'와 '카드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아니한다(키워드 시스템)', 그리고 '마법과 효과 처리를 하는 스택' 개념일 것이다. 스택은 유희왕에서 체인 개념으로 변화하였음으로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마나 자원 관리와 키워드 시스템은 유희왕에서는 없는 개념이다. 특히 플레이어가 자원을 관리하게 만들고, 강한 카드들이 곧바로 나오지 못하고 차근차근 게임을 쌓아올려가는 기제였던 마나 자원의 삭제는 눈여겨 볼 만하다. 이런 부분이 삭제되면서, 유희왕은 매직 더 게더링보다 더 쉽고 빠른 게임 페이스를 지향하게 되었고, 만화의 주 소비층인 저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나 자원의 삭제 등의 변화점이 유희왕을 '무자원으로 빠르게 강한 몬스터를 꺼낼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유희왕의 독특한 점은 카드 자체가 이점으로 적용되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위 그림에서 정리한 것처럼, 몬스터 존/마법, 함정 존/묘지 존 등등으로 나뉘어져 있고 제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카드가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게끔 만들어 두었다. 자원을 삭제한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한정하였고, 마법/함정의 경우에는 앞면으로 빠르게 사용하거나(마법) 뒷면으로 세트 후 다음 턴에 발동한다(함정) 발동 상황에 대해서 제약을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유희왕은 덱을 구성할 때 플레이어는 빠르게 깔 수 있는 몬스터/마법과 상대턴에 상대를 견제할 수 있는 함정 카드, 최종적으로는 몬스터를 제물로 써서 더 강한 몬스터를 불러와서 상대 라이프를 줄여야 했었다. 흥미롭게도 규칙 자체는 매직 더 개더링보다 간소화되었어도 '게임에서 플레이어 서로가 주고 받는 상황'이나 최종 국면 자체는 기존 매직 더 개더링이 지향했던 부분과 유사하였다.

 

 

하지만 근 5년 간의 유희왕, 쉽게 이야기해서 최근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흐름은 초기와는 완전히 달라졌는데, 대표적으로 극단적일 정도로 빠르고 유연해진 게임 진행 속도가 그렇다. 한 턴에 2~3마리의 상급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인 덱이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이고, 덱 서치, 샐비지, 대량 파괴, 퍼미션 등의 강렬한 난타전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현재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의 시스템에 가장 유사하게 제작된 비디오 게임인 ‘유희왕 마스터 듀얼’ 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20년이 강산이 두번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긴 하지만,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렇게까지 변화했는가라는 궁금증이 들 정도로 큰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마스터 듀얼에서 쉽고 강한 덱이라 할 수 있는 엘드리치 덱을 보면 쉽게 감이 올 것이다. 엘드리치 덱은 구성에 따라서는 덱에 황금경 엘드리치 3장만 넣고 돌리는, 초기 유희왕 유저로써는 상상조차 안 되는 과격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 돌려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덱이 부드럽게 굴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덱의 메카니즘을 이해하려면 아래 도표를 보도록 하자.

 

 

복잡하게 그려져 있지만, 핵심은 엘드리치 마법/함정들은 마법/함정 존에서 엘드리치를 소환하거나 상대 마법 함정을 카운터 치고, 사용되고 난 다음에는 무덤에서 엘드리치 마법/함정을 덱에서 서치/리필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엘드리치의 경우에는 패에서는 상대 필드의 몬스터/함정/마법 등을 파괴하는 견제 카드로, 묘지에서는 패 한장을 코스트로 스스로 되살아 올라와서 필드에 다시 소환된다는 것이다. 즉, 엘드리치 덱에서의 각 카드들은 한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묘지에 따라서 재활용되고, 카드 테마 내의 카드들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한 카드가 다른 카드들을 덱/패/묘지 등등에서 계속해서 줄줄이 불러낸다. 

즉, 모던 유희왕은 초기 유희왕에서 두 가지 큰 변화를 겪었다. 첫번째는 각 카드가 더이상 자신의 위치(몬스터, 마법/함정, 묘지 등)에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두 군데 이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범용 카드, 한 장으로 완성된 강력한 카드보다는 독특한 플레이 방식을 보여주는 수많은 테마군들 내의 카드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게임을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 플레이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우선 공격측 전략 관점에서 보자. 모던 유희왕으로 넘어오면서 덱 서치/묘지 샐비지/덤핑 등의 요소 때문에 게임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게임은 이제 패 자원에 있는 카드 뿐만 아니라 덱과 묘지, 필드 등의 다양한 곳들의 자원들을 최대한 적재 적소에 배치하여 덱 전체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논리 엔진을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논리 엔진은 전개/운영덱 특성에 따라 플레이어가 판단하는 목표 카드들(높은 공격력의 효과 몬스터, 퍼미션 카드, 에이스 등)을 향하는 콤보의 흐름을 구축한다. 

 

 

본인이 마스터 듀얼에서 운영하고 있는 LL 트라이브리게이드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위 그림과 같이 LL 트라이브리게이드(통칭 LL 트라게) 덱은 두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트라이브리게이드 테마의 몬스터들과 그 몬스터들로 링크 소환이 되는 트라게 축, 다른 하나는 LL 몬스터들과 그 몬스터들로 엑시즈 소환이 되는 LL축이다. 그림으로 보면 복잡해보여도 실제 운영 자체는 간단하다.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서 트라게 축과 LL축을 오가면서 몬스터를 전개하고, 상황에 따라서 서로의 축을 오갈 수 있는 카드들(너벨이나 마법 버드 콜 같은)을 활용해 축을 갈아탄다. 그리고 그 전개된 몬스터들을 이용해 상대 운영/전개를 방해한 뒤에 체력을 깎아 끝을 내면 된다. 요약하자면 게임의 전반적인 운영은 목표로 삼은 카드를 뽑기 위해 각 카드별로 이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위치(트라게는 묘지, LL은 주로 패)에 카드를 배치하고, 최대한 그 이점을 덜 소비하면서 효율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희왕은 빠른 진행과 능동적인 플레이어의 선택을 강조한다.

한편 방어 관점에서의 유희왕은 크게 패트랩과 퍼미션 전략 두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퍼미션부터 보자. 기본적으로 퍼미션은 '특정 카테고리의 행위를 막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가령 '효과 몬스터는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마법/함정을 무효로 하고 파괴한다' 등의 텍스트가 여기에 속한다. 단순한 기능이긴 하지만, 상대의 특정 행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틀어막는다는 점에서는 무시무시한 기믹이며 여타 카드 게임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룰이지만 유희왕에서는 퍼미션이 중요한 방어 전략으로 대부분 덱은 한 두개 이상의 퍼미션 요원이나 퍼미션 기믹을 탑재하고 있다.

두번째는 패트랩이다. 패트랩은 함정 카드와 비슷하지만, 손패에서 별다른 세트나 준비 없이 발동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몬스터/마법/함정 가리지 않고 손패에서 발동할 수 있는 카드군을 유저들 용어로 패트랩이라 부르는데, 사실상 노 코스트로 나와서 상대의 진행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방어이자 억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에서 예로 든 LL 트라게 덱의 사례에 적용해보면 아래와 같은 흐름이 등장한다.

 

결국 엔진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을 공략하는 것이 유희왕에서의 방어 전략인데, 문제는 여타 카드 게임에 비교하면 이러한 방어전략은 '극단적'이라 할 수 있다. 퍼미션 같이 한 카테고리의 행동 자체를 봉쇄하거나, 패트랩 처럼 대비조차 할 수 없는 요격 수단이라는 것 자체가 당하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수단들이 없었다면 공격측의 전개에 방어측 플레이어가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전무하다. 게임 플레이가 극단적으로 빨라진 만큼, 패트랩이나 퍼미션 한 두개 정도 있는 수준으로는 우회 루트로 빌드를 올리거나 카운터 운영을 하는 등의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희왕의 방어는 성을 잘 짓고 상대의 소모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 날아오는 미사일을 다른 미사일로 격추시키는 일종의 요격 개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패트랩과 퍼미션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구사하여야 한다.

공격과 방어, 양 측면에서 유희왕을 세 요소로 요약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목표까지 도달하기 위한 콤보/루트의 산정
2.상대의 방어 전략들(패트랩 등)을 전제하고 공략에 나서는 것
3.1과 2를 반복하면서 상대 라이프를 깎아 승리에 도달.

 


위의 LL 트라게 덱의 경우, 트라게 축과 LL축의 전개를 섞어가면서 상대의 패트랩을 교란하고 퍼미션 요원들(특수소환 퍼미션 - 앙상블루 로빈, 대상 지정 효과 퍼미션 - 왕신조 시무르그, 마법 함정 퍼미션 - 안개 골짜기의 거신조)을 전개하여 상대의 패 소모를 유발하면서 이점 차이를 벌리다가, 마지막에 피니셔들(트라이브리게이드 흉조 슈라이그, 엑세스 코드 토커)을 투입해서 게임을 마무리 짓는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유희왕 실물 카드 게임은 여타 카드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인 빠른 전개와 과격함을 보여준다. 게임이 격렬한 만큼, 게임 시작 3턴 안에 대부분의 승패가 결정되거나 승패의 흐름이 나며, 좀 더 극단적인 조합에 따라서는 불안정하긴 하지만 첫 턴에 덱 40장을 모두 써서 엑조디아를 모아 필승을 노리는 덱을 짤 수도 있다. 그렇기에 게임은 드래그 레이싱(넓은 직선 대로에서 누가 가장 빠른지를 대결하는 레이싱)라고도 볼 수 있는데, 누가 더 빠르게 자신 덱의 목표 카드들을 뽑아내는가, 그리고 얼마나 상대의 플레이에 재를 잘 뿌리는가로 승패를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 때문에 유희왕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첫번째는 절대적으로 선공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덱이 패 5장 이내에서 필요로 하는 첫 전개/운영 요원들이 나오도록 덱을 구성해서 그 턴 내에 절반 정도의 목표 카드들이 나오게 되고, 목표 카드들로 먼저 집을 지어놓으면 그걸 뚫고 들어가지 못하게 퍼미션 요원 몇을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선공을 잡는 순간 패 상황에 따라서는 퍼미션과 함께 공격력 3000이상의 몬스터 2~3체 이상이 꺼내서 다음턴에 상대를 완벽하게 압살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실제 게임에서는 이러한 선공의 절대적 유리함을 완화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안전장치들을 도입하였다. 선공 드로우의 폐지, 3판 2선승제 매치 플레이와 사이드 덱 전의 도입,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패트랩 등의 요소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선공을 잡아도 단판에서는 유리하지만 전체 매치에서는 적절한 밸런스가 맞게 된다. 허나 후술할 마스터 듀얼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두번째는 텍스트의 문제다. 유희왕은 매직 더 게더링과 달리 카드 한 장이 하나의 완성된 카드라는 개념으로 게임이 설계되었다. 예를 매직 더 게더링은 생물 카드에 비행이라는 키워드가 붙어있다면, 그 비행이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카드 내의 텍스트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유희왕은 카드 내에 그 카드가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해놓아서 그대로 그 규칙대로 사용하면 된다. 다만 문제는 유희왕의 룰 적용이 중구난방이라는 점, 그리고 20년이 세월이 흐르면서 초창기 카드들과 후기 카드들의 규칙 충돌이 일어나는 점, 거시적인 부분이 아닌 세부적인 룰 작동에서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마스터 듀얼 -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카드 게임

 

 

마스터 듀얼은 현대적인 유희왕의 체계를 탑재하고 있는 게임이며, 게임 성격은 이전 비디오 게임 유희왕 프랜차이즈들과 많이 다르다. 과거 유희왕 비디오 게임들은 게임의 홍보와 애니메이션의 부가 상품으로 병존하는 경향성을 보여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 게임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듀얼 링크스 같은 게임도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카드 게임을 홍보하고 주 소비 고객이 저연령층이었던 과거의 유희왕에게 있어서 비디오 게임이란 케릭터 상품의 일부였다. 듀얼 링크스를 예로 들어보면 명확한데, 듀얼 링크스에서는 나오는 카드가 제한적일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케릭터마다 스킬이 주어져 있어서 유희왕 카드 게임을 그대로 즐기기 보다는 애니메이션의 케릭터를 조작하는 느낌을 주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마스터 듀얼은 이러한 요소를 일체 배제하고, 유희왕 카드 게임에서의 카드 풀과 룰, 게임으로의 개성만으로 정직하게 승부한다. 이는 유희왕 마스터 듀얼 포멧(비디오 게임이든 카드 게임이든)이 순수하게 자신이 쌓아올린 그 역사로만 우직하게 승부하겠다는 최근 유희왕의 전략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덕분에 위에서 이야기한 유희왕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십분 살리고 있다.

마스터 듀얼은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어지면서 수혜를 톡톡이 입은 게임이다. 일단 위에서 언급하였던 룰의 적용과 복잡한 재정들, 중구난방인 카드 텍스트들이 프로그램에 의해서 자동으로 처리가 되며 플레이어가 쉽게 놓칠 수 있는 카드의 체인 발동 타이밍 같은 것들을 게임이 잡아줌으로 처음 유희왕 게임을 접하는 플레이어라도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다. 또한 덱 레시피를 검색해서 쉽게 복제할 수 있는 점이나 덱 레시피 구성 시 연관카드 검색 같은 비디오 게임이기에 가능한 편의 기능들도 충분히 갖췄다. 카드 게임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의 게임이다.

다만 마스터 듀얼이 모던 유희왕의 매력을 살리고 있는 점과 기본적인 완성도와 편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과 별개로 두가지 문제는 묵과하기 힘들다. 첫번째는 마스터 듀얼의 매치 시스템이다. 원판이 3판 2선승제의 매치 시스템을 통해서 선공이 유리한 구조를 어느정도 벨런스를 맞추었다면, 비디오 게임 마스터 듀얼에서는 오로지 단판 매치 규격만 지원하기 때문에 상대 덱을 파악해서 사이드 덱으로 전략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이드 덱 전이 없을 때 강세를 보이는 몇몇 덱들(특히 유저들의 원성을 듣는 디클레어 기반의 드라이트론 같은)이 엄청난 강세를 보여준다.

그리고 두번째는 현 환경과 1년 정도 텀을 두고 있다는 점도 걸리는 부분이다. 6천여장의 카드 풀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핑계겠지만, 최신 테마들의 기믹을 못 쓴다든가 하는 부분들이 감질난다. 매직 더 게더링 아레나가 현재 블록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국내에서 매직 더 게더링 아레나의 등장 이후 스탠다드 포맷(근 2년간의 블록들 카드로만 덱을 구성해서 게임을 하는 것) 게임 플레이가 오프라인 환경에서는 상당수 사라졌다는 증언들을 고려해보면 결국 코나미와 마스터 듀얼이 염려하는 점은 프랜차이즈 간 카니발리제이션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텀을 둔걸로도 보여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건이지만, 마스터 듀얼을 통해서 보여지는 코나미의 정책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마스터 듀얼은 기본적으로 갖출 것들은 갖추고 있지만, 기술적인 짜임새가 아쉬운 부분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그래픽에 비해서 프레임 드랍 이슈가 발견되는 등 고작 이걸로 버벅거린다고? 싶은 부분이 있거나,  UI가 어딘가 허전한 점, 비공개 방에서는 발생하는 네트워크 이슈들 등등은 치명적이진 않지만 무시하기 힘든 부분들이다. 또한 게임 포멧들이 단판 게임 포멧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다양한 게임 플레이 스타일(금제를 다양하게 걸거나, 특정 테마 위주의 이벤트라던가) 등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마스터 듀얼은 게임 플레이 자체에 하자는 없고 유희왕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잘 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뭔가 완벽하다 라고 이야기하기에도 묘하게 빠져있는 듯한 게임이다.

결론

결론을 내리자면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분명 재밌는 게임이다. 원작 실물 카드 게임의 재미도 잘 살렸고, 비디오 게임이 되면서 한결 편해진 부분들도 존재한다. 이후 다룰 재화 소비 구조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하겠지만, 게임 자체도 초반에 시원시원하게 원하는 덱들을 맞출 수 있다는 점도 좋은 부분이다. 그러나 완벽하다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어딘가 부족하다. 원작인 실물 카드 게임의 매력은 잘 살리고 있지만, 비디오 게임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콘텐츠들, 편의 요소들 등이 결여되어 있고, 그 부분들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뭔가 소금물을 마신거 마냥 마시고 나서 더 목이 마르게 만드는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카드 게임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있고, 한번 유희왕이 어떤 게임인지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적어도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별도로 돈을 쓰지 않더라도 재밌게 즐길 게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