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코미디라는 장르는 웃음이라는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르다. 하지만 웃음이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 것일까? 웃음이라는 감정을 정의하는 것은 여러 것이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웃음의 특수성은 '위치의 변화'일 것이다:웃음은 어떤 소재의 높낮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만약 높은 위치를 점하는, 예를 들면 고상하거나, 위대하거나, 아름답거나 한 것들이 추하거나, 하찮거나, 비루한 것이 되었을 때, 그 '높이의 차이'에서 우리는 웃음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들(비행 서커스나, 성배나, 브라이언의 생애 같은)일 것이다.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들은 기본적으로 70년대의 영국의 엄숙주의에 기반한다. 위대한 영국, 성과 예절에 엄격했던 영국의 사회 분위기는 성과 권위에 대하여 대단히 엄격하였다. 몬티 파이썬이 파고드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이들은 성과 권위의 단단하고 높은 위치들을 '추락'시킨다. 엄숙한 초상화들은 외설적인 그림과 사진들과 콜라주 되어서 뛰어놀고, 높은 권위를 가진 자들(판사나, 음악가 같은)은 이상한 개념에 집착하여 촌극을 빚어낸다. 부조리하면서 떄로는 초현실적인 개념의 연결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는 이후 많은 코미디 장르에 영향을 끼쳤다.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부분은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가 단순한 스탠드업 코미디의 말장난이나 좌충우돌의 슬랩스틱식 코미디를 벗어나서 '영상매체'의 특수성을 십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콜라주되는 이미지들도 그렇고, 각종 편집을 이용한 컷과 시퀸스의 배치와 배분, 연결들을 통해서 권위를 추락시키거나 생소하고 낯선 상황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TV 코미디 프로그램 스러운 '웃음'을 삽입하여 웃음 포인트를 명확하게 잡는 부분들은 TV 프로그램 스러운 부분들이고,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방식으로 따로 논다는 점에서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경우,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의 특성이 영화적으로 드러났을 때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브라이언의 생애다:이 영화는 예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브라이언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종교와 정치에 대한 풍자를 이어나간다. 꽁트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성배와 다르게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브라이언의 생애는 '영화'라는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드러난다. 기독교에 대한 강도 높은 비꼬기(메시아와 종교, 그를 따르는 사람들까지)를 보여주는 영화는 십자가에 메달린 사람들이 브라이언에게 삶이란 부조리 하며, 그걸 있는대로 받아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끝을 낸다:이러한 장면에서 영화는 코미디의 핵심이 '부조리함'과 '높은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로운 점은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들(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이나 세브린느, 비리디아나, 욕망의 모호한 대상 같은)도 이러한 특성(부조리함과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 부뉴엘은 초현실주의 사조를 이끈 감독으로 유명한데, 영화 내에서 부르주아의 문화들과 관음증들을 상징과 교차하여 배치하고, 지배계급에 대한 차가운 경멸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루이스 부뉴엘이 이러한 경멸을 표현한 방식도 몬티 파이썬이 이용한 코미디의 방식과도 유사하다. 자유의 환상을 예로 들어 보자:자유의 환상에서 부르주아들은 응접실에 설치된 화장실 변기에 앉아 배설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화장실에 설치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이렇게 교양을 차리는 식사와 은밀하게 용변을 보는 것을 서로 뒤섞어 놓음으로 부르주아가 갖고 있는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이 부뉴엘의 방법론이다.

 

하지만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들은 코미디의 방법론을 따르는 것과 별개로 전혀 '웃기지' 않는다. 이를 이해하려면 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몬티 파이썬의 코미디들에서 권위는 추락하여 특정한 '위치'에 도달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에 대한 르포를 쥐 옷을 입는 사람들로 치환시켜서 만든 꽁트에서는 동성애라는 당시 무거운 주제가 쥐 옷을 입는 사람들이라는 사소하고 엉뚱한 것으로 치환되어 사소한 것에 대해 엄숙함과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세태를 비꼬는 것으로 바꾼다. 혹은 브라이언의 생애에서는 메시아의 삶은 평범한 젊은이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도 이러한 방법론이라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코미디의 방법론에서 추락은 결국 '어느 일정한 위치' 까지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에서 추락은 '어느 일정한 위치'에 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에서 추락은 무한한 상태다. 자유의 환상에서 한 에피소드를 보자:옥상에 올라서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던 남자는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을 언도 받는다. 그러고 나서 남자는 담배를 한까치 태우고, 변호사와 검사와 악수를 한 뒤에 재판정에서 나와 사람들 사이로 유유히 사라진다. 이 에피소드에서 보여지는 것은 법정과 법에 대한 권위의 추락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달하고 치환되는 지점은 과연 어디인가? 이 에피소드에서 법과 제도는 추락하고 기능을 상실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웃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안전한' 위치에 도착하지 않는다.

 

이는 부뉴엘이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른다:스페인 인이었던 부뉴엘은 프랑코 정부 수립 후 망명하며 전세계를 떠돌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바라봤던 세계는 절망으로 가득찼을 것이다:혁명은 실패하고, 학살은 묵인되며, 시위는 무자비하게 탄압당했다. 실제 그의 영화들에서 실제의 사건에 모티브를 둔 부분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절멸의 천사는 실제 학살을 방조한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이며, 자유의 환상의 엔딩은 당시 시위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의미하는 부분이었다. 신성모독으로 유명한 비리디아나의 경우에는 가톨릭 성찬식을 빈민들의 만찬과 섹스로 치환시켜 종교의 권위를 무너트렸고, 어느 하녀의 일기는 아동 성추행 살인범이 파시스트가 되는 결론으로 이끈다.

 

그렇기 떄문에 부뉴엘의 영화는 부조리 코미디 장르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전혀 웃기지 않고 싸늘하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고, 절망의 끝은 없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는 웃음도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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