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만화, 영화 이야기

 

서부극에서 서부라는 공간은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존 포드의 서부극인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를 예로 들어보자: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서부는 낭만과 자유가 넘치는 공간이 아닌, 법 바깥에서 착실한 사람들이 무법자들에게 고통받는 공간이다. 하지만 인디언에서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까지, 모두에게 열려있는 기회의 땅,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공간에서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울타리, 법을 만드는 일이다.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서부라는 공간은 양가적인 감수성을 지닌다. 역사의 어둠도 존재하지만 그 어둠에 빛이 비추어지면서(마치 리버티 벨런스를 쏘는 그 장면이 다시 한번 재해석 되듯이) 새로운 맥락을 갖게 되는 것처럼,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좋았던 그 때를 반추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부라는 공간이 어떻게 비추어지는가는 창작자들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안소니 만과 같이 흥미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감독도 없었을 것이다. 안소니 만의 서부극에서 서부는 '미지의 공간'이다. 안소니 만의 영화에서 서부에서 모든 소문과 전설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서부의 사나이Man of the West의 예를 보자. 여기서 주인공인 링크 존스는 처음 학교 선생을 구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떠나는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과거에 악랄한 토빈의 갱단원이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진술로 모호하게 밝혀질 뿐이다:영화 내에서 그 어떠한 사실도 명확하게 확정짓지 않는다. 

 

서부의 사나이의 모호성은 인물들의 진술과 실제 사이의 괴리에 기반한다:링크 존스를 살인자와 악당이라 주장하는 토빈의 진술과 링크 존스의 초반 묘사는 분명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상충된 묘사 그 어느쪽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링크 존스에 대한 직접적인 회상과 묘사를 완벽하게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진술은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회색 영역에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토빈의 허황찬란한 은행강도 계획은 다 쓰러져가는 마을과 빈 금고로 거짓되었음을 드러내고, 토빈과 링크 존스의 마지막 결투는 장엄하기 최후라기 보다는 폐허 위에서 이루어지는 난투에 가깝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서 안소니 만은 서부극이라는 전설을 장엄하고 휘황찬란한 것이 아닌 진실과 이를 둘러싼 알 수 없는 공간으로서의 서부를 다룬다. 안소니 만의 서부극에서 주인공과 이야기들은 사건의 연속에 배치되어 있으며, 그 시작과 결과는 알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진실과 공간, 그리고 시간의 흐름(좀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역사) 사이의 관계가 안소니 만 서부극에서는 계속해서 등장하는 테마였다는 것이다. 윈체스터 73의 사례를 보자. 이 서부극에서는 윈체스터 73이라는 명총이 다양한 소유주를 거치면서, 서부를 둘러싼 폭력의 역사와 그 속에서 도구가 갖는 의미를 보여주었다. 윈체스터 73의 클라이맥스는 린이 추적하던 자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쏜 동생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일 것이다. 무법자의 폭력, 원주민과 기병대 간의 폭력,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쏜 아들이라는 근원의 폭력까지,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도구인 윈체스터 73이라는 총기를 통해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흥미로운 점은 윈체스터 73에서 이 윈체스터라는 총기가 겪는 일련의 사건이 안소니 만의 서부극의 특질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윈체스터라는 총기는 거대한 맥락의 연속에 놓여있으며, '전체와 분리해서 볼 수 없지만, 동시에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묘한 관점에 놓여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서부의 사나이 같은 안소니 만의 서부극을 설명하는 주요한 기제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감상적인 로맨티시즘이 아닌, 약육강식의 비정함이 존재할 뿐이다. 다른 예인 머나먼 서부의 예를 보자. 여기서 주인공인 제프는 영화의 시작부터 살인죄로 고발되며, 일반적인 영화의 주인공 같이 도덕적으로 무결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법과 제도를 피해서, 서부에서 서부로 움직이며 돈을 버는 이 남자는 그 정체와 기원이 모호하다. 

 

물론, 머나먼 서부는 그래도 윈체스터 73이나 서부의 사나이와 같은 서부 공간에 대한 비정한 시각에만 입각해서 바라보지는 않는다. 마을을 세워서 법의 태두리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리버티 존스를 쏜 사나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유사하다. 법과 제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악역 게넌 보안관과 이를 바라보는 제프와 여주인공의 모습은 법과 제도 바깥인 서부를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악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른 예들도 그러하듯이, 이러한 악을 처단하는 것이 머나먼 서부의 메인 플롯이다. 하지만 다른 서부극들과 안소니 만의 서부극이 결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 끝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부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이러한 사건은 그저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 그들의 끝이 행복할지, 아니면 또다른 불행으로 이어질지, 플롯은 명확하게 확답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불확실성이 안소니 만 서부극을 구분짓는 또다른 특질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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