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데메크 류의 액션 게임에서 복수의 케릭터를 동시에 조작하여 액션을 전개하는 시도는 생각보다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기억할만한 사례는 약 20년 전의 카오스 레기온의 사례일 것이다:카오스 레기온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레기온들을 소환하면서 적과 맞서 싸웠다. 그야말로 레기온(군단)이라는 말에 걸맞게 수많은 소환물들을 소환했던 카오스 레기온은 겉으로 보인 컨셉의 참신함과 별개로,  플레이스테이션 2 초기 장르 정체성이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은 과도기적 작품이었다. 게임은 ai 문제나 맥빠지는 액션 매커니즘 등으로 당시 게임을 플레이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별로 평이 좋지 않았었다. 액션 게임에서 두명의 케릭터를 조작한다, 라는 명제는 상당히 흥미롭긴 하였지만 카오스 레기온 이후로 이러한 계보를 잇는 게임은 등장하지 않았다.

 

2019년작 아스트랄 체인은 카오스 레기온의 두 명 이상의 케릭터를 동시에 조작한다는 발상을 다시 꺼낸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2019년 초반에 발매한 데메크 5에서도 2명 이상의 케릭터(신 케릭터 V)를 조작하는 액션을 선보인 적이 있다는 것이다:어떤 게임이 어떤 게임에 영향을 줬다고 이야기를 할 수 없겠지만, 데메크 5의 V는 4편에서 네로와 같이 실험적으로 정립한 액션 스타일(참신하지만 다소 단순한)인데 비하여 아스트랄 체인의 전투는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심지어 데메크 5가 스타일(단테) - 데빌 암(네로) - 소환물 통제(V) 라는 다양한 액션 스타일을 끌고 오는 백화점 형태의 게임이었다면, 아스트랄 체인은 오로지 2인 이상의 케릭터를 조작하여 전투를 이끌어가기 위해 액션 게임 장르의 특징들을 재정립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아스트랄 체인은 주인공과 레기온의 조작으로 구성된다. 주인공 조작은 여타 액션게임과 유사하나 레기온은 여타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당히 독특한 개념이다. 플레이어가 레기온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은 '거시적'인 위치 선정, 회수, 스킬 뿐이다. 언제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방어적인 행동을 취할 것인지 등은 전적으로 레기온의 AI에 달려있다. 이런 점에서 레기온은 플레이어에게 종속되어 있는 동시에 독립되어 있는 독특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게임은 주인공과 플레이어를 서로 결속하는 '선'의 개념을 들고 오면서 주인공과 레기온의 조작을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 시도한다. 설정상 레기온은 플레이어에게 결속되어 있는 '사냥개' 같은 존재로,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없기 때문에 레기온과 주인공을 연결하는 아스트랄 체인이라는 사슬을 이용하여 플레이어가 조작해야한다. 게임 상에서는 플레이어가 사슬을 이용해서 적에게 레기온을 배치하고, 위험할 때는 회수하거나 소환을 해제하여 레기온을 보호해야 한다. 그대신 레기온은 레기온 타입에 따라서 적에게 자동공격을 하거나 공격을 튕겨내는 등의 행동을 한다. 플레이어는 아스트랄 체인을 사용해 레기온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적당한 위치에 배치를 하거나 레기온의 위치로 이동을 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보여지는 점은 전반적으로 화려한 공격을 적에게 쏟아붓기 보다는 적절한 위치에 레기온과 주인공이 올 수 있게끔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주목해야하는 점은 아스트랄 체인이 플래티넘 게임즈의 이전 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한 콤보' 위주의 액션 게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스트랄 체인에서 공격은 패드 버튼이 아닌 '트리거'에 놓여있고, 콤보는 ZR-ZR-ZR 이라는 단순한 형태다. 주인공의 공격이 메인이라기 보다는 '레기온'을 보조하면서 레기온 - 선 - 주인공의 이인삼각의 구도를 지향하기 때문에 주인공 중심으로 조작을 한다고 생각하면 게임이 제대로 플레이하기 힘들 것이다. 즉, 플레이어는 적재적소에 레기온을 배치하고 스킬을 사용하고, 주인공을 레기온을 보호하면서 딜을 넣어야 한다. 게임은 액션 게임 장르가 오랫동안 걸어왔던 '화려한 액션을 단순한 버튼 조합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벗어나서 새로운 형태의 장르 문법을 다졌다. 

 

그렇기에 보통의 액션 게임과 다르게 아스트랄 체인은 스코어링 및 랭크 평가 기준이 다르다. 기존 액션 게임의 랭크 평가 기준은 얼마나 많은 데미지를 끊임없이 적에게 주는가이다. 베요네타의 예를 들어보자:베요네타에서 스코어링은 각 공격의 점수와 콤보 배율로 합산되어 들어오는데, 여기에 이 모든 점수에 피격 회수와 클리어 타임을 함께 놓고 평가한다. 아스트랄 체인도 큰 틀에서는 비슷하나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레기온을 활용하고 다양한 액션을 하느냐에 따라서 점수를 계산한다. 잘 하면 계속해서 점수를 쌓아올릴 수 있는 베요네타와 달리, 아스트랄 체인의 경우 각각 조건을 달성할 경우 그 달성한 조건에 대해서 점수 항목이 체크되고 점수를 최종적으로 합산하는 방식이 되는데 이 때문에 최대한 조건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레기온들을 조작하거나 다양한 액션을 취해야 한다.

 

아스트랄 체임의 게임 플레이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점은 '생각보다 본격적인 롤플레이(경찰/수사극 등)에 방점을 찍은 게임'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은 미래의 신참 경찰이라는 설정으로 대민지원이나 수사, 탐문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 각각의 활동들은 본격적이라 하기에는 소소하긴 하지만 상당한 퀄리티로 제작이 되었다. 이는 전투와 전투 사이의 롤플레이를 강화하고, 플레이어가 전투 이외에도 다시 게임을 플레이하게끔 유도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아스트랄 체인의 그래픽은 스위치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그래픽이다. PS4나 트리플 A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그래픽은 아니지만, 스위치의 제한된 성능 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아웃풋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래픽을 끊김없이 30프레임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줄 만한 부분이다. 성우의 연기나 BGM 등에서도 흠잡없을 데 없이 깔끔하다.

 

결론을 내리자면, 아스트랄 체인은 닌텐도 스위치를 빛내주는 독점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게임이 독특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지는 점은 플레이어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만한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아스트랄 체인은 그만한 가치를 갖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