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포켓몬스터는 통상적인 MMORPG 장르라고는 할 수 없다. MMORPG에 있어서 거대함Massive이란 미학적인 풍광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협동하거나 경쟁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풍경의 거대함을 넘어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구성도 매우 중요하다. 와우의 레이드가 이러한 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에버퀘스트 같은 게임들도 언급해야겠지만) 레이드는 10명에서 25명의 사람들이 보스 클리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일사분란하게 전술을 맞춰서 움직이는 게임 플레이로 현재 MMORPG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대표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요컨대, MMORPG에서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포켓몬스터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포켓몬스터 6세대부터 PSS라는 기능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게임 플레이 요소를 넣었고, 이는 7세대와 8세대의 YY통신의 형태로 이어졌다.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항상 게임 내의 콘탠츠가 변화하는 프랜차이즈였지만, 6세대에서 8세대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멀티플래이 요소를 집어넣은 것은 이것이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주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켓몬스터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MMORPG의 발상과는 달랐다. MMORPG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레이드의 개념일 것이다: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협동하는 레이드는 분업과 신뢰라는 측면을 깊이있게 파고든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탱커-딜러-힐러와 같은 역할의 3분할도 각 역할을 전문화 및 분업화한 하나의 사례이다. 탱커는 적의 어그로를 끌고, 힐러는 파티가 전멸하지 않게 체력을 관리하며, 딜러는 적을 분쇄한다. 각자가 맡은 파트에 대해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고 끌어낼 때, 레이드를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켓몬스터에는 이러한 요소가 없다:심지어 본격적인 레이드 배틀을 표방한 맥스레이드 배틀에서도 역할 분담의 중요성 보다는 한 사람이 다이맥스화 해서 베리어를 깨고,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딜을 꾸준하게 넣어서 다이맥스화된 적을 격파하는 것이 기본적인 공략방식이다. 여기에는 전략이고 분업이고 협업이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다른 PSS 통신에서의 요소도 그러하다. 플레이어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버프를 걸거나, 교환을 신청하는 것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대1의 관계 맺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대체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지나가게 만드는 게임 플레이 방식을 MMO라 볼 수 있을까. 흥미로운 점은 포켓몬스터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트위터 타임라인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PSS나 비동기 멀티플레이 같이 잔상의 형태로 지나가는 소드/실드의 와일드에리어 처럼, 포켓몬스터는 포켓몬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은 포켓몬스터 게임 플레이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기본적으로 포켓몬스터의 게임 플레이는 TCG 장르와 맥락을 같이한다. 실제 사람과의 대전에서 포켓몬스터는 자신이 원하는 카드(=포켓몬)를 만들고, 이것을 드래프트해서, 서로 가지고 있는 선택지에서 최대 효과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에 입문하기 위해서 중요한 점은 '게임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재화'인 포켓몬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PSS와 같은 멀티플레이 요소가 추가된 6세대부터 대전에 필수적이라 여겨진 고개체 포켓몬을 교배 및 육성하는 난이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교배 및 육성이 편해진 6세대 이후, 플레이어는 한 마리의 완벽한 포켓몬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실패작' 포켓몬들(V값이 올바르게 배분되지 않았거나, 성격이 다르거나)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 수많은 실패작들은 말이 실패작일 뿐이지 실상은 4V 이상의 고개체거나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즉, 누군가의 쓰레기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교배 및 육성에 뛰어들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담없이 내가 필요없는 포켓몬과 무작위의 상대방이 필요없는 포켓몬을 교환하는' 미라클 교환의 존재는 일종의 재화의 재분배 창구를 하였다. 즉, PSS가 단순히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스쳐지나가는 기믹으로만 묶은 것이 아닌, 실제로 인게임 내의 재화를 재분배하는 창구로 기능한 셈이다.

 

요컨데 앞으로도 포켓몬스터가 생각하는 MMO는 우리가 아는 MMO와는 다를 것이다. 한 게임 세션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역할 분담이나 고도의 전략 전술을 요하는 게임 플레이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같이 한다는 감각과 함께 재화의 재분배 창구로서 포켓몬스터의 MMO는 계속해서 그 명맥과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