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멀티 플레이 및 대전에 대한 리뷰는 하편에서 다룹니다.

 

6년전 포켓몬스터 XY를 기억하는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포켓몬스터 XY는 충격적인 게임이었다. 최초로 2D 스프라이트를 넘어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최초의 포켓몬스터 게임, 사상 최초로 대각선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게임.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게임이었지만,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 포켓몬스터 XY는 비웃음의 대상이기도 하였다:대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대각선으로 움직이는게 혁명인 게임이 존재할 수 있는가? 포켓몬이야말로 시대에 뒤쳐진 게임이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이 이 조롱에서 자주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포켓몬스터는 단 한번도, 휴대기기 라는 플랫폼을 떠난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게임보이에서 게임보이 어드벤스드로, 게임보이 어드벤스드에서 DS로, DS에서 3DS로. 상대적으로 적은 리소스와 자원만 지원되는 환경에서 게임 프리크는 포켓몬을 만들어 왔다. 적어도 3DS까지는 이러한 변명은 통했다. 그러나 스위치로 넘어오면서 사정은 급작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는, 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거치형 콘솔'에 데뷔한 포켓몬스터 메인 타이틀이다. 그리고 근 20년간 쌓여왔던 팬덤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작품이기도 하다:인상적이지 않은 그래픽,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버린 포켓몬 도감, 성의없는 전투 모션, 모델링 재사용 논란 등등. 항상 휴대기에 메여있었다는 핑계로 변함이 없었던 포켓몬 프랜차이즈에 대해 20년 동안 쌓인 팬들의 분노는 어마무시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는 스위치 발매 이후 흥행기록을 죄다 갈아치우고 있는 중이다. 마치 20년간의 팬들의 바람을 비웃듯이 말이다.

 

과연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의 흥행이 프랜차이즈의 후광을 등에 업은 팬들의 신뢰에 대한 모라토리엄일까? 흥미롭게도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는 게임 프리크의 센스와 기술력 부족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게임 템포의 조절이나 시스템 개선, 게임 플레이에 대한 비전은 훌륭했다. 그러나 스위치라는 기기의 성능을 100% 이끌어내지 못한 부분,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조악한 마감이나 아쉬운 부분들도 눈에 띄는 게임이다. 물론, 그런 양 측면을 모두 고려해보았을 때도 포켓몬 소드 실드는 즐길만한 게임인건 분명하다.

 

 

대대로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게임 구성은 크게 스토리-(클리어 이후의)포켓몬 육성과 수집-실제 대전으로 나뉘어진다:전반적인 게임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체육관 격파 및 서브플롯을 진행하는 스토리 파트, 스토리 진행 후 대전이나 교환에 쓸 수 있는 강한 포켓몬을 기르거나 수집하는 육성과 수집 파트, 마지막으로 육성과 수집을 통해서 다른 플레이어와 대전을 즐기는 대전 파트. 이런식으로 포켓몬스터의 게임 구성은 3단계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폭이 늘어난다. 소드 실드도 큰 틀에서 포켓몬스터 특유의 정석적인 구성을 따라간다.

 

먼저 스토리 단계는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조작하여 모험을 떠나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정석적인 전개로 진행된다. 이 단계는 저연령층도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에 입문할 수 있게끔, 게임 시스템의 기본적인 명제들(포켓몬의 타입에 따른 상성의 이해같은)을 체육관 깨기의 형태로 구현하였다:각 체육관들은 포켓몬의 타입에 따라서 체육관의 로스터 및 전술을 배치하고, 플레이어는 이들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성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익힌다. 체육관 공략의 정석은 '체육관에 따라서 각 타입 포켓몬을 고루 육성하여 클리어'하는 것이다.(물론 각 체육관의 포켓몬 레벨은 고정이기 때문에 레벨업을 해서 우격다짐으로 클리어 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소드 실드의 스토리 파트는 두가지 측면에서 전작들과 다른 차별화되었다. 첫번째는 경험치 배분 방식의 변경 및 편의성의 증대다. 1세대 포켓몬스터 시리즈에서 경험치는 학습장치를 꼈을 시 '원래 받아야하는 경험치를 6마리가 나눠가지는' 형태였다. 이것이 2세대와 블랙/화이트를 거치면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도 학습장치를 소지한 포켓몬이 경험치를 받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6세대를 거치면서 학습장치는 기본 경험치를 전투에 나간 포켓몬이 받고, 그 절반에 해당하는 경험치를 포켓몬들이 받는 형태로 바뀌었다. 즉, 제작자들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포켓몬들이 경험치를 받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편하면서 편의성을 증대시키고자 한 것이다.

 

소드 실드는 플레이어 레벨업 편의성을 이전보다도 더 극대화하였다. 심지어 소드 실드의 레벨업 곡선이 전작들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극단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전투에 나온 포켓몬이 더 많은 경험치를 먹을 수 있게 바뀌었고, 교체 맴버로 존재하는 포켓몬들도 경험치를 받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낮은 레벨의 포켓몬일 경우 레벨이 높은 포켓몬에 비해 더 많은 경험치를 받게끔 바뀌었다. 이전과 다르게 포켓몬의 레벨업 속도가 빨라져서 스토리 도중에 서브 멤버를 키우거나 하는 것들이 어려워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게임 프리크는 이 조차도 느리다고 판단한건지, 맥스레이드 배틀에서 경험치를 대거 획득할 수 있게 만들었고, 포켓몬 캠프 등의 활동을 통해서도 레벨업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심지어 스토리 클리어 후 꾸준하게 레이드만 돌아도 새로키우려는 맴버를 레벨 100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정도다.

 

또한 편의성 부분도 극대화되었다. 포켓몬을 교체하기 위해서 박스까지 갈 필요 없이 필드에서도 자유롭게 박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스토리 레벨링 구간도 짧아져서 포켓몬 센터로 접근하거나 하는 등의 편의성도 늘었다. 심지어 스토리 측면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XY나 썬문을 생각한다면 직관적인 정도로 단순한 이야기고, 그 스토리의 분량도 짧다. 마치 스토리도 이후 진행될 육성과 대전에 방해가 된다는 듯이 짧게 쳐낸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이런 저런 점에서 편의성이 너무 늘어버린 나머지, 이번 포켓몬의 엔드 콘탠츠 부분에 대해서 걱정이 들 정도다.

 

 

교배와 육성관점에서 본다면 소드 실드는 흥미로운 점이 많다. 포켓몬스터에서 전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포켓몬의 특성, 포켓몬의 속성, 그리고 포켓몬의 능력치와 기술배치다. 기술배치와 포켓몬의 속성을 제외한다면(엄밀히 따진다면 유전기의 존재도 따져야겠지만, 여기서는 빼겠다) 포켓몬의 특성과 능력치는 교배를 통해서 대부분 결정된다. 그리고 특성은 교배할 때마다 달라지지만, 중요한 것은 포켓몬의 능력치를 구성하는 4요소, 종족값(각 포켓몬 종별로 지정된 능력치), 개체치(그 포켓몬이 갖고 있는 재능을 표현한 능력치, 가장 높은 수치가 V로 표기하며 V의 개수에 따라서 4V,5V 이런식으로 표기한다), 노력값(경험치를 얻거나 아이템으로 올릴 수 있는 능력치), 성격(레벨업에 따른 능력치의 성장을 결정 짓는 요소)이다. 포켓몬스터의 교배 및 육성 콘텐츠는 이들 중 개체치와 노력값, 성격을 어떻게 통제하느냐로 구성되었다.

 

포켓몬 교배 및 육성 콘탠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값(특히 노력값, 개체치)들이 있기 때문에 각 포켓몬스터 작품들의 교배 및 육성 콘텐츠들은 '어떻게 플레이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수치를 관리하는가'가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스템들이 모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게임이 가르쳐주는대로 진행하면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대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게임을 플레이 해야 한다. 

 

포켓몬스터는 대대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수치'들을 가시화 시키진 않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단 큰 변화가 있었던 X나 Y를 보자. 포켓몬 XY가 높은 개체값을 가진 포켓몬 교배에 필요한 2V~3V 고개체들을 프랜드 사파리라는 콘텐츠를 통해서 제공하였고, 노력치는 미니 게임으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드는 등 편의성이 이전 세대에 비해서 크게 증대되었다. 알파 사파이어와 오메가 루비에서는 포켓내비를 이용해서 연속해서 포켓몬을 잡다보면 고개체 포켓몬을 잡을 수 있는 요소가 더 높은 V값을 가진 고개체 포켓몬을 잡는 시스템이었고, 썬 문에서는 난입 배틀로 고개체 포켓몬을 확보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시리즈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라기는 했지만(썬문의 난입 배틀은 상황에 따라서 빡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콘탠츠 및 입문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교배 육성 콘탠츠에 진입하게끔 만들었다.

 

소드 실드는 그 변화의 정점에 도달한 작품이다. 소드 실드의 맥스레이드 배틀은 본작의 기믹인 다이맥스화 된 포켓몬을 상대로 4인 협력 레이드 배틀을 벌이는 콘탠츠다. 레이드라고 거창하게 적어뒀긴 했지만, 주력 맴버나 보조 맴버를 꾸준하게 키워왔다면 속성과 레벨을 맞춰서 레이드에 쉽게 입문할 수 있다. 심지어 이번작 전설의 포켓몬인 자시안/자마젠타, 무한다이노는 다이맥스화된 포켓몬에게 특효인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맥스레이드 배틀의 입문 문턱은 낮은 편이다.

 

중요한 것은 맥스레이드 배틀의 보상이다:맥스레이드 배틀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기술 레코드, 돈으로 환금할 수 있는 아이템, 경험치 사탕 및 이상한 사탕을 얻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맥스레이드 배틀에서 얻을 수 있는 포켓몬이 5성 기준 기본 4V를 보장하며, 5V 심지어는 6V까지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맥스레이드 배틀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6세대의 프랜드 사파리를 능가하는 콘탠츠가 되었다. 보상의 규모가 남다르며, 더 나아가서 고개체 교배를 위해서 필요한 개체들이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맥스레이드 배틀을 주축으로 게임 편의성 부분도 큰 변화가 있었다. 먼저, 성격치도 아이템을 통해서 보정할 수 있는 점, 고개체인지 여부를 판별하는 심판 기능이 포켓몬 박스 기능과 통합되어 여러 마리의 포켓몬 개체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점, 키우미 집이 두개가 되어서 알을 두 개씩 받아서 깔 수 있게 된 점, 알까는 속도가 오른 점 등등은 이전이었다면 상상조차 못할 기능들이 잔뜩 들어갔다.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종합하자면, 육성과 교배 측면에서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는 거침없이 진행되게끔 게임을 구성했다. 6세대 실전 포켓몬을 맞추기 위해서 고생했던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8세대는 상대적으로 들어가는 시간도 적다. 또한 맥스레이드를 주축으로 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돈을 벌거나 경험치 노가다를 해야하는 부수적인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 성격이나 노력치 같은 경우에는 아이템으로 해결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노력치를 맞추기 위해서 특정 몬스터만 연달아 잡을 필요도 없어졌다.

 

 

스토리 및 육성/교배까지의 콘탠츠를 통해서 내릴 수 있는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의 평가는 빠른 사이클의 완성이다:스토리를 통해서 게임에 빠르게 입문하고, 맥스레이드를 끊임없이 돌리면서 심도 있는 플레이에 필요한 재원을 모으고, 대전에 투입할 개체들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이 거침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이클은 잘 작동하는 편이며, 플레이어가 손을 때지 못하고 계속해서 게임을 하게 만드는 동력을 부여한다. 과거 3D로 이행했던 6세대에서 일어났던 큰 변화들이 소드 실드로 대표되는 8세대에서 동일하게 일어났다고 해도 될 정도다. 포켓몬 도감이 반토막 났지만, 역설적이게도 소드 실드는 세대 간 같은 틀을 공유하기에 바뀔 수 없는 핵심 콘탠츠들(교배, 육성, 개체치, 노력치 등등)을 버리지 않고 최대한 프랜차이즈의 본질을 지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소드 실드는 게임 콘탠츠 소비 사이클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그것 외에는 다른 할 것이 없다'라는 게 정말로 아쉽다. 물론 리그 카드 만들기나 포켓몬 캠프, 카레 만들기 같은 소소한 미니 게임들은 있지만 와일드 에리어라는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였음에도 포켓몬 육성/교배 - 대전이라는 요소 외에는 좀 더 심도있게 게임을 즐길만한 요소가 없다.

 

또한 게임의 전반적인 퍼포먼스도 문제가 있다.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부분도 있지만 리뷰 후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와일드 에리어나 이런 부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을 때, 프레임이 상당히 불안정하다. 특히 와일드 에리어는 허공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플레이어의 잔상을 볼 수 있는 등, 온갖 기괴한 버그로 넘쳐나는 곳이다.

 

전반적으로 소드 실드를 평가하자면, 프랜차이즈에 걸맞는 작품이며 프랜차이즈 팬이나 신규 유입 플레이어에게 모두 매력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전반적으로 뭔가 2%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이러한 부분이 만족되려면 적어도 스위치로 새로 나올 포켓몬스터 신작을 또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