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야기

 

브레이크 포인트라는 게임은 올해 나온 게임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게임이다. 그것은 게임이 너무 못만들어졌기 때문에 올해를 대표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10여년 쯤 서구 주도의 트리플 A 콘솔 게임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분명 지나쳐 버린 실패들(모든 좋은 것들을 다 섞어놓으면 더 좋은 것이 된다!)을 2019년에 와서 다시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유비 소프트 같이 자사 프랜차이즈들의 실패와 성공을 내부적으로 철저하게 벤치마킹하는 회사에서도 말이다. 물론 글 말미에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지만, 이것은 유비 소프트가 오랫동안 슈터+오픈월드의 큰 방향성을 잡지 못한 점도 클 것이다.

 

일단 고스트 리콘:브레이크 포인트는 설명하기 참으로 난해한 게임이다. 콘탠츠의 양으로 생각한다면 이정도 분량의 게임을 2년만에 만들어낸건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게임의 퀄리티다. 비유하자면 3개 정도의 트리플 A 게임의 콘탠츠 구성을 약 A급 미만의 질로 담아서 뒤섞은 결과가 C급의 버그와 완성도를 가진 게임되었다 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UI다:브레이크 포인트의 UI는 게임이 갖고 있는 엄청난 정보량을 소화하지 못한 채, 플레이어에게 시각적으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몇몇 정보들은 과도하게 스크린을 가리기도 하고, 때때로는 플레이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생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어떤 것이 게임이 의도하고 플레이어가 직접 찾도록 만드는 것인지 아닌지를 혼란스럽게 한다.

 

메인 미션 보드의 UI를 보면 브레이크 포인트의 문제가 명확하게 다가온다. 브레이크 포인트는 범죄 수사물의 화이트 보드의 경치를 게임 미션 UI의 형태로 구현하였다. 문제는 브레이크 포인트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미션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게임은 시계열이나 어떤 특정한 순서가 아닌 인물과 사건의 관계도 형태로 UI와 미션을 배치하고 플레이어가 스스로 찾아보게끔 하였기 때문에 직관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게임 내에 존재하는 사진 인물 중에서 약 30% 정도는 관련 미션 없이 순수하게 '배경'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혼선을 초래하기 쉽다. 설령 자신이 원하는 인물의 미션을 찾았더라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UI 내에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객체가 상당히 많고, 플레이어에게 계속 읽어보라고 알림을 띄우고 있기 때문에 난잡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포인트의 모든 문제는 메인 미션 UI의 연장선상이다:무언가 다양한 것을 배치하고,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구성하게끔 만들려 하지만 정작 게임 내 콘탠츠들은 플레이어의 의식의 흐름에 맞춰져 있기 보다는 게임의 내적인 흐름에 전적으로 맞춰져 있다. 하지만 문제는 브레이크 포인트의 내적 논리는 게임 스스로도 갈팡질팡한다는 것이다. 뭔가 중요한 듯이 들어간 서바이벌 요소와 크래프팅 요소가 실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나(물통과 식량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자사 디비전 2와 다르게 성장이 체감조차 안되는 레벨링 시스템 등등은 브레이크 포인트가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흥미로운 점은 브레이크 포인트가 지향한 부분이 레드 데드 리뎀션 2와 같은 '의도된 불편함'과 맥이 닿아있다는 것이다. 탐험 모드와 안내 모드의 분리 같이, 브레이크 포인트는 플레이어가 직접 맵을 읽고 스스로 갈 곳을 정하게 만들려 하였다. 서바이벌 요소나 크래프팅 같은 부분도 플레이에 의도적인 제약사항을 가해서 좀 더 총체적인 경험('지원 없이 고립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고스트')을 이루고자 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납득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이 브레이크 포인트와 레드 데드 리뎀션 2 사이의 성패를 좌우했을까. 두 게임의 차이점은 바로 '총이라는 도구가 레벨 디자인에서 갖는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냐 였다.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애시당초에 총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핵심적인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벨 디자인에서 무언가 특출난 구성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브레이크 포인트의 경우, 스테이지에 따라서 저격, 잠입, 강행돌파, 동료 플레이어 지원 등의 다양한 상황들이 발생하며,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도구는 바로 '총'이다. 

 

브레이크 포인트의 문제는 총이라는 도구가 만병지왕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다루기도 쉽고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총이라는 도구의 특성을 살리는 레벨 디자인'은 사실 고도의 숙련도를 요하는 부분이다. 브레이크 포인트와 반대로 작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딧세이의 사례를 떠올려 보면 좀 더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 질 것이다. 오리진과 오딧세이의 양 연타로 어크 시리즈는 유니티의 부진을 딛고 올라서는데 성공하였는데, 레벨링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브레이크 포인트에도 있었던 탐험 모드를 도입함으로써 유비 소프트의 오픈월드 게임 제작 노하우를 한 껏 끌어올린 우수 사례로 기억되었다. 이는 '장비를 통해서 강해진다'라는 레벨업의 개념이나 콘탠츠의 배치 등이 냉병기라는 도구에 걸맞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브레이크 포인트의 게임 플레이 문제는 이미 파크라이 5나 뉴 던에서 겪었던 문제이기도 하고, 와일드 랜드에서도 경험했던 문제고,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파크라이 4, 3, 그리고 최초의 2편까지 경험했던 문제다. 엄밀하게는 브레이크 포인트의 게임 플레이는 파크라이 2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전초기지가 존재하고, 오픈월드 상의 빈 공간은 전초기지 자체를 돌려보기 위한 회전판의 역할을 한다. 파크라이 2에서 등장한 잠입이나 총격전 플레이의 개념은 파크라이 3로 계승되어 지금까지 내려왔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잘 작동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되어 재생산되었다는 것이었다. 파크라이 4와 5를 거치면서, 플레이어들은 유비 식 오픈월드 슈터라는 것이 파크라이 2 식의 야생이라는 것을 눈치채었다. 비슷하게 파크라이 2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았지만 레벨 디자인이나 잠입 이라는 본질에는 충실하였던 메탈 기어 팬텀 패인을 생각한다면, 유비 소프트가 지나치게 2에 안주한 것도 문제였긴 했다. 그러나 파크라이 2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명제는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팬텀패인이 몇십년 간의 잠입 게임 디자인을 통해서 잔뼈가 굵은 디렉터가 만들어낸 작품이란 걸 생각한다면, 유비소프트 식의 개발론과는 상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더이상 파크라이 2의 레벨 디자인이나 콘탠츠 디자인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비 소프트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